제135화
번개에 맞을 확률인 600만 분의 1. 그리고 그보다 더 낮은 800만 분의 1.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었다.
신교진은 그 확률을 뚫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리고 그는 그 운을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게이트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신교진에게서 확신에 찬 연락이 온 건 개의 이빨 사무실에서 그와 대화를 한 바로 다음날 저녁이었다.
[누나, 당장 짐 싸요.]
그리고 뒤이어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건 신교진이 선택한 게이트에 관한 정보였다.
막 내용을 확인하려는데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탐지로 누군지 대충 살펴보니 신교진이었다.
‘확인을 좀 늦게 했더니 쫓아온 모양이네.’
피식 웃은 나는 방에서 나가며 염력을 이용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신교진이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누나! 확인했어요?”
그 목소리에 방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빈이가 나왔다.
“응? 교진 형?”
“어어, 너 있었냐?”
신교진은 도빈이에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는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누나, 봤어요?”
신교진의 호들갑에 나는 미간을 구긴 채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이제 보려고.”
그러자 신교진이 후다닥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거, 거기가 느낌이 확 왔어요. 거기 분명할 거에요.”
나는 다시 신교진이 보내준 메시지를 확인하려했지만. 신교진이 빠르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침에 누나 기관이랑 계약 만료됐다고 기사 뜨고나서 진짜 의뢰 사이트 터진 거 알아요? 와, 진짜 완전 폭발. 그거 복구하느라고 진땀뺐는데 그러고나서도 한참동안 누나한테 쏟아지는 의뢰들 확인한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나는 결국 메시지 읽기를 포기하고는 턱을 괸 채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신교진은 아무래도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 같았다.
“그래서?”
곧 윤도빈과 방에 있던 레부와 모부, 우부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소파의 앞에 둘러앉았다.
관중들이 생기자 더욱 신이 났는지 신교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하나같이 다 느낌이 안오더라고요. 별로 좋은 아이템도 안 줄 것 같고 괜히 가면 개고생할 것 같고 그런거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것들은 적당한 각성자들한테 뿌리고 이제 좀 눈길 가는 것들만 몇 개 추려놓고 보는데. 그게 딱! 어? 딱! 눈에 보이더라고요.”
신교진이 내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다시 흘끔 신교진이 보냈던 메시지를 살폈다.
베트남 다낭의 한 호텔 앞에 위치한 A급 스킬 보상 게이트였다.
“거기 이제 좀 있으면 생긴지 4개월 째 되거든요. 호텔에서 의뢰가 들어온건데 그쪽도 이제 진짜 발등에 불 떨어진거죠. 언제 브레이크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3개월이 넘었다면 베트남 소속 각성자뿐만 아니라 외국의 각성자들에게도 의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각성자들한테 의뢰 안 했었어?”
“아뇨, 당연히 했죠. 근데 이제 S급도 아니고 A급이라서 적당한 각성자들이 지원해서 몇 번 갔었는데 계속 안 닫히더라고요.”
그럼 이 게이트에서도 각성자 여럿이 목숨을 잃은 것이리라. 나는 씁쓸함을 감추며 신교진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제 호텔 쪽에서도 난리가 났던거죠.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장사고 나발이고 본인들이 죽게 생겼으니까. 그러다가 이제 오늘 누나가 계약 만료됐다고 하니까 확실하게 누나한테 게이트 좀 닫아달라고 온 것 같아요.”
신교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여기가 내가 찾는 게이트라는 거지, 넌?”
내 물음에 신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신이 담긴 끄덕임이었다.
“알겠어. 곧 4개월이 되는거면 빨리 가봐야겠네. 잘못해서 브레이크라도 터지면 큰일이니까.”
“네, 네. 그래야죠. 빨리 가서 확인해봐야죠.”
신교진이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재촉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관중들이 물었다.
“휴? 주인 또 어딜 가나요?”
“쿄, 그럼 짐은 며칠치를 챙기면 됩니까?”
“푸우? 주인, 우부도 데려가는가아?”
“찾는 게이트는 또 뭐야? 게다가 브레이크?”
그제야 신교진이 도빈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얘한테 말 안했어요?”
“아직 안 했어. 내가 교진이한테 게이트 좀 찾아달라고 한 게 있었거든.”
그러자 도빈이의 미간이 살짝 찌푸러들었다.
아마 또 늦게 이야기를 한 것 때문이리라.
“어제 얘기한건데 얘가 벌써 찾아온거야. 얘기 안하려고 했던 게 아니고.”
그러자 신교진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요, 그럼요. 이번에는 내가 좀 빠르긴 했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도빈이 물었다.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
뜻밖의 이야기였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도빈이도 그림 리퍼의 낫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으니 실전에서 사용해봐야 했고, 그럴거면 나와 함께 게이트를 가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이번마저 거절한다면 윤도빈은 또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간이 시험에서 무사히 돌아와서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아직까지 마음 한 구석에 그걸 담아두고 있을 터.
“그래. 가자. 그럼 네 표까지 끊는다.”
그러자 윤도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표? 어디?”
“베트남.”
“쿄? 베트남?”
“휴? 베트남?”
“푸? 베트남?”
세 슬라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 말을 따라했다.
그러자 윤도빈이 기가 찬 한숨을 내뱉었다.
“…허.”
하지만 곧 납득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3개월 지났으니까 외국 각성자도 갈 수 있구나. 게다가 요청도 왔고. 그럼 나도 짐 좀 싸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나던 윤도빈은 입꼬리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있는 신교진을 보며 멈칫했다.
“…근데 형, 이번에는 주사위 게임 안 했나봐요?”
그러자 순간적으로 신교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야,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 지금 한참 기분 좋은데 망칠래?”
“그래요? 근데 왜 그렇게 웃고 있어요? 무섭게.”
신교진은 이번에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도빈이를 보며 말했다.
“도빈아. 형이 어제 너무 설레서 밤에 잠을 못 잤어.”
그러자 윤도빈이 뭔가 싶은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보일 뿐 별다른 이야기 없이 베트남행 비행기표를 찾기 시작했다.
윤도빈은 사실 크게 관심이 없지만 물어봐달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신교진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왜요. 애인이라도 생겼어요?”
하지만 신교진은 검지손가락을 휘휘 내두르며 말했다.
“아냐.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그것보다 더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일이 있단 말야. 그 생각만하면 내가 정말, 너무 신이 나서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더라고.”
신교진이 입을 가린 채 크크크 웃음을 흘렸다.
“휴. 저 사람, 처음부터 좀 이상한 것 같았는데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었군요.”
모부가 그런 신교진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푸우, 이상한 사람!”
그리고 윤도빈 역시 찜찜한 표정으로 신교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별로 궁금하지는 않으니까 그만 물어볼게요. 행복하세요.”
“야, 늬들. 사람 그렇게 보는 거 아니다. 어? 너, 임마. 형한테 지금, 어?”
윤도빈은 짐을 싸겠다는 핑계로 우부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하지만 신교진은 그런 도빈이를 쫓아가 자신이 고대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기쁨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나는 신교진의 잔뜩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웃음을 흘렸다.
‘주선오의 시간을 걸기를 잘했어.’
내가 원하는 게이트를 찾아주는 대가로 내 시간을 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시간을 주는 건 귀찮기도 했고 신교진에게는 내 시간보다 주선오의 시간을 거는 것이 더 잘 먹힐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신교진은 내 미끼를 잘 물었고 굉장히 열정적으로 내가 원하는 게이트를 찾아 헤멨다.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이렇게 게이트를 물어오다니.’
역시 쓸만한 가호를 가진 각성자였다.
내가 신교진을 통해 찾으려고 했던 게이트는 난쟁이가 있는 게이트였다.
그 이유는 딱 하나.
‘광휘의 서리를 제작해야해.’
광휘의 서리는 지난 컨벤션 때 열렸던 경매에서 낙찰받은 서리를 재료로 만드는 무기였다.
그걸 만들 수 있는건 오직 난쟁이 뿐.
하지만 첫 회귀 후 처음으로 갔던 게이트에서 난쟁이 왕을 만난 이후로 좀처럼 난쟁이를 마주칠 수가 없었다.
‘서리가 제작된 게 이맘때 쯤 일텐데.’
첫 회귀 전, 각성자 컨벤션은 작년 말 쯤에 열렸으며 이시결은 그곳에서 서리를 구매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주선오와 맞붙기 훨씬 전부터 서리를 사용했으리라.
주선오에게서 광휘의 서리를 건네받을 당시, 광휘의 서리에는 상당히 사용감이 많았다. 척 보기에도 몇 년은 되어보이는 것이었다.
주선오가 단검을 사용했을 리는 없었다. 그러니 그것을 사용한 것은 전 주인인 이시결.
그는 컨벤션 이후 얼마되지 않아서 광휘의 서리를 제작한 것이 분명했다.
‘대체 언제 어디서 난쟁이를 만난거지?’
그걸 지금의 이시결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내가 직접 게이트의 정보를 보며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국내의 게이트 전부를 모두 돌아다니며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난쟁이가 나오는 게이트가 국내에 한정되어 있다고도 볼 수 없었다.
‘박성현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짓을 하고 있는건 명백한 시간낭비였다.
그래서 신교진에게 주선오의 24시간을 대가로 내가 원하는 게이트를 찾아줄 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물론 나도 주선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그의 시간을 신교진에게 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요청을 들은 주선오는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 결국 내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들어주었다.
대신 주선오 역시 나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해왔다.
나중에 보너스 게이트에서 자신과 제대로 대련을 펼쳐보자는 것이었다.
‘보너스 게이트 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보너스 게이트는 게이트의 특성상, 그 안에서 입는 상처의 고통이 얕고 게이트를 나오게 될 시 모조리 사라진다.
안에서 죽게 되더라도 죽은 각성자는 게이트의 밖으로 이동될 뿐 실제로 목숨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회귀 전에도 각성자들의 대련 장소로도 많이 사용이 되었던 곳이었다.
주선오의 그런 요청을 받고 나니 조금 기대가 되기도 했다.
회귀 전 주선오와 나는 보너스 게이트에서 자주 대련을 했었다.
그때 당시 그와 맞붙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각성자는 거의 없었고 국내에서도 내가 유일했다.
때문에 그때의 주선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보너스 게이트 안에서 대련을 하는 것을 즐기곤 했었다.
‘꽤 기다려지네.’
어쨌든 지금 신교진이 골라준 베트남의 이 게이트에서 난쟁이를 만나야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나는 최대한 빠른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이 남았기에 대충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하면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시결이 안 보이는데.’
그는 아침에 게이트를 다녀오겠다며 나간 이후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차라리 그가 지금 이곳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이시결이 내가 베트남의 게이트에 간다는 걸 알았다면 또 따라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을테니까.
‘그럼 짐 좀 챙겨볼까.’
나는 가만히 내 명령을 기다리던 레부와 모부에게 손짓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게이트만 돌고 바로 올 생각이니 짐은 많이 챙길 필요도 없었다.
“레부, 대충 여분 옷만 챙겨.”
“쿄, 알겠습니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김지석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이제 기관의 일로는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터.
게다가 시간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또 생겼나?’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김지석의 연락을 받았다.
“네, 이사님. 무슨 일이세요?”
[아, 도아 씨. 통화 괜찮으신가요?]
김지석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레부에게 손짓하며 김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레부는 내 옷가지 몇 개를 주섬주섬 챙겨 젤리 속에 집어넣었다.
[혹시….]
김지석이 조금 뜸을 들였다.
“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건가 싶은 와중에 그가 물었다.
[이시결 씨, 같이 있나요?]
‘이시결?’
의외의 이름이었다.
“아뇨. 아직 안 들어왔는데. 볼일 있으신가요?”
하지만 김지석의 대답은 금방 들려오지 않았다.
“…이사님?”
[아…. 네. 혹시 그럼 이시결 씨가 돌아오면 함께 기관에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확인해볼 게 있어서요.]
“확인이요?”
나는 이시결에게 심어두었던 표식을 확인했다.
하얀 표식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탐지로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표식이 움직이는 동선을 보아하니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김지석은 또 한참 대답이 없었다.
이시결과 관련해서 뭔가 심상치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이사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세요.”
내 말에 핸드폰 너머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김지석이 말했다.
[…또 각성자가 사망한 채 발견이 됐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