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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36화 (137/201)

제136화

나는 도빈이와 레부에게 마저 짐을 챙기고 있으라고 이야기해둔 후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표식을 향해 걸어갔다.

멀리서 날 알아본 이시결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설마 절 마중나오신 건 아닐거고요. 어디 가십니까?”

가까이 다가온 이시결이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를 살폈다.

이시결이 정말로 각성자를 또 죽였다면 서약에 따라 그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외관상으로 어딘가 다치거나 불편해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어쩌면 서약의 조건을 교묘하게 피해갔을수도 있었다.

마리오네트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게되면 정말로 서약이 적용되지 않을수도 있었고, 아니면 또 다른 맹점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왠지 이번 각성자 살인 사건은 이시결과 연관이 없을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꾸가 없는 나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이시결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렇게 보시는걸 보니 뭔가 또 제가 의심받을만한 짓을 했나보군요. 전 아침에 말씀드렸다시피 게이트에 다녀왔을 뿐입니다. 제 정보만 확인해봐도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건 아실텐데요.”

“그냥 확인 차 살펴본거였어.”

“흠. 그래요, 그럼. 전 조금 피곤하니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이시결이 뒷목을 주무르며 나를 지나쳤다.

“아니, 잠깐만.”

내 부름에 그가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피곤한지 원래도 짙은 다크서클이 한층 더 짙어진 것 같았다.

“기관에 갈 일이 생겼어.”

“기관에요? 거기에 절 반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이시결이 조금 성가신 듯 말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윤도아 씨가 가자면 가야죠.”

나는 이시결과 함께 기관으로 향했다.

* * *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을 했기에 기관 앞의 주차장에는 소수의 차량만이 남아있었다.

그중에는 김지석의 차와 함께 주선오의 차도 있었다.

조금 전에 도착한건지 차에서 내리던 주선오가 우리를 발견했다.

“주선오 씨도 오셨네요?”

역시 그를 발견한 이시결이 말했다.

차 문을 닫고 우리에게 다가온 주선오는 다짜고짜 이시결의 멱살을 잡아챘다.

갑작스러운 주선오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렸던 이시결이 곧 웃으며 말했다.

“벌써 두 번째면 많이 참았는데. 바로 시작해볼까요?”

이시결이 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그쪽이야말로 벌써 두 번째겠지.”

주선오가 까득 이를 갈며 말했다.

그는 이시결이 각성자를 죽인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듯 했다.

주선오의 말에 장갑을 반쯤 벗고 있던 이시결이 멈칫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두 번째요? 제가 뭔가를 했습니까? 적어도 주선오 씨한테 피해가 될만한 일은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모르는 척도 정도껏 해.”

이시결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장갑을 마저 벗은 후 말했다.

“이건 정말 못 참겠군요. 조금 다치는 정도야 상관없겠지요.”

나는 이시결이 거미줄을 뽑기 전에 그의 멱살을 붙잡은 주선오의 팔을 붙잡았다.

“그쯤해. 이시결이 한 거 아니야.”

그제야 주선오는 나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주선오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지만 그는 순순히 내 이시결의 멱살을 놓았다.

“후.”

이시결이 기분나쁜 얼굴로 멱살을 잡혀 구겨진 옷을 탁탁 털어냈다.

“상당히 기분이 별로긴 하지만 제가 더 어른이기도 하니까 이번만 참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대체 뭐가 두 번째라는 겁니까?”

이시결의 말에 주선오는 조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정말 이시결이 한게 아닌가하는 얼굴이었다.

“각성자가 죽었어.”

내 말에 이시결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각성자가요?”

그 반응은 꽤나 신선한 것이었기에 주선오는 조금 당혹스러워보였다.

“…진짜 그쪽이 한 짓이 아냐?”

주선오의 질문에 이시결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믿든 안 믿든 저는 아닙니다. 그나저나 놀랍군요. 저 말고도 그런 대담한 짓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니.”

“대담?”

주선오가 다시 발끈했다.

또다시 둘이 신경전이 붙기 전에 나는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일단 들어가자.”

기관의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안세인과 김지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마침 다 같이 왔네요.”

안세인이 회의실로 들어선 우리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아무래도 각성자가 죽었다는 소식 때문에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아닙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안세인과 김지석에게 이시결이 말했다.

“조금 전에도 다짜고짜 멱살을 잡혀서 말이죠.”

이번에는 안세인과 김지석의 시선이 주선오에게 향했다.

하지만 주선오는 그저 팔짱을 낀 채 이시결을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후. 일단. 얘기를 듣긴 한 모양이네요, 이시결 씨도.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시결 씨는 지난번 컨벤션 때 오진서 각성자를 죽인 전적이 있잖아요? 물론 지금은 서약이 걸려있긴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했어요. 정부쪽에서도 지금 이 일 때문에 난리가 났거든.”

안세인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당장 이시결 씨를 잡아 넣으라는 걸 설득하느라 꽤 힘들었다고요, 우리도.”

이시결은 잠시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나는 여전히 머리를 문지르는 안세인에게 물었다

“그래요. 사체가 발견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한 여덟 시 쯤.”

지금은 겨울이라 해가 일찍 떨어졌기에 여덟 시라면 이미 주변이 어두워졌을 시간이었다.

“지난번 오진서 각성자 사체가 발견됐던 그곳에서.”

그 이야기에 이시결이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안세인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곳이라면….”

오진서 각성자의 사체가 발견됐던 장소는 본가가 있는 지역의 커다란 공원.

내 중얼거림에 안세인이 흘긋 이시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시결 씨가 가장 잘 알고 있겠죠. 그 공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공원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형태로 발견됐어요, 이번에도.”

그 이야기에 나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는 오늘….’

“관장님. 혹시 사체가 발견됐다는 각성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질문에 안세인이 김지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조용히 한쪽에 서 있던 김지석이 우리에게 한 각성증을 내밀어보였다.

그 각성증에 있는 사진과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내 꺼림칙함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을 받은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저 사람…!”

주선오가 커다래진 눈으로 김지석이 내민 각성증을 바라보았다.

[신수연]

이틀 전 나와 주선오를 미행했던 사이비 종교 신자이자 성위의 수하 중 한 명인 각성자였다.

그리고 그 공원에는 신수연에게 남겼던 표식이 오늘 내내 머물렀었다.

‘그럼 죽은 건 오늘이 아닐지도 몰라.’

잠시 각성증을 살피던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우리의 반응에 김지석이 물었다.

“아는 각성자인가요?”’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잠깐이지만.”

주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선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안세인이 물었다.

“언제?”

나는 신수연이 우리를 미행했던 날을 떠올렸다.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틀 전에요. 선오랑 잠깐 만나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저를 미행했던 각성자에요.”

“아. 그날인가요?”

이시결 역시 그날을 기억했는지 아는체를 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행을 했다고요? 이 각성자가?”

안세인이 각성증을 가리키며물었다.

“네.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저희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어요.”

내 대답에 안세인이 다시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흠…. 그런데 왜….”

“혹시 이분에 대해서 다른 정보 알고 계신 것 있습니까?”

김지석이 각성증을 거둬들이며 물었다.

“예전에 기자회견 때 저희를 습격했던 사이비 종교 기억 하시나요?”

내 물음에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요. 기억하고 말고요.”

“그 사이비 종교의 일원이었던 사람이에요. 제가 그 종교를 해체시킨 바람에 앙심을 품고 저한테 복수를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다른 무리에 들어가서 힘을 얻었고, 이후 저를 미행한거에요.”

내 설명에 김지석이 잠시 태블릿을 두드려보고는 말했다.

“다른 무리라면…. 성위의 수하, 이 무리가 맞나요?”

“맞습니다.”

주선오가 대답했다.

“이 무리는….”

잠시 태블릿을 바라보던 김지석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외계인 숭배자들의 무리군요.”

“네. 맞아요.”

“…외계인 숭배자?”

듣고 있던 이시결이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시결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지금 이런 자리에서 웃는 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안세인이 조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시결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뇨, 아닙니다. 너무 뻔한 것 같아서요.”

“뭐가 뻔하다는 거지?”

주선오가 다시 그를 매섭게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이시결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각성자를 죽일 생각을 하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없습니다. 저 역시 사실 그 각성자를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본인이 약해빠져서 죽은 바람에 어쩔수없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하필 제가 그 시체를 놓았던 장소와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형태로 사체가 발견이 됐다면. 누가 보더라도 제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각성자를 죽인 사람은 이시결 한 명 뿐.

같은 곳에서 같은 형태의 사체가 발견되면 당연히 그가 가장 의심받는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방범죄나 다른 것들 또한 생각하기야 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그러했듯이, 가장 먼저 이시결의 행적을 확인할 것이 분명했다.

“…이시결 씨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는 지금 진범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거겠군요.”

김지석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그의 얼굴은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아마도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각성자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리라.

“일단 우리도 조사는 해보고 있습니다만, 혹시 알게 되는 사실이 있으면 연락해줬으면 좋겠어요.”

안세인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이시결 씨는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데 기사가 나게되면 분명 이시결 씨가 타겟이 될테니까.”

“노력해보죠.”

이시결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전후사정을 모두 들은 우리는 다시 기관의 밖으로 나왔다.

“윤도아 씨, 조금 성가시게 된 것 아닙니까?”

기관을 나온 이시결이 말을 꺼냈다.

“윤도아 씨와 주선오 씨를 미행했던 사람이 이틀 뒤에 사체로 발견됐다. 이 사실만을 놓고 보면 저보다는 두 분을 의심할 법 하잖습니까.”

확실히 아무런 연관이 없던 이시결과는 다르게 나와 주선오는 신수연을 만났고 대화까지 나누었던 사이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죽여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체 왜….’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굳이 저희랑 연관해야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의 개인적인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섣불리 그렇게 연관짓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선오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뭔가 찜찜했다.

그리고 이건 분명 성위의 수하에 관련된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신수연이 왜 죽게 됐는지 정말 내 생각대로 성위의 수하와 연관이 있는건지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나는 광휘의 서리를 만들기위해 베트남의 게이트에 가야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광휘의 서리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

살짝 입술을 깨문 나는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선오야, 부탁할게 있어.”

“말씀하세요.”

“아무래도 찝찝한게 있어서 신수연 각성자랑 성위의 수하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싶은데 내가 조금 있다가 출국을 해야하거든.”

그러자 이시결이 나를 돌아보았다.

“출국이요? 어디 가십니까?”

“아…. 교진이가 게이트를 찾아준건가요?”

눈치를 챘는지 내게 묻는 주선오의 표정은 오묘했다.

신교진이 내게 도움이 됐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대가로 줘야할 자신의 시간때문에 착잡해진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시결에게 말했다.

“도빈이랑 잠깐 외국 게이트 좀 닫고 올거야. 넌 따라오지 마.”

그러자 이시결이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을 두드렸다.

“흠. 뭐, 그럼 전 여기에 남도록 하죠.”

의외로 순순한 대답이었다.

“남아서 윤도아 씨가 알아보고 싶다는 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뭐? 그쪽이 그걸 왜.”

주선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시결에게 물었다. 이시결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체 어떤 놈이 저한테 살인을 뒤집어씌우려고 한건지 궁금해서요. 그 대담함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런 이시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분명 이시결은 지난번 컨벤션 때 얼굴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런 점을 잘 이용한다면.

어쩌면 이시결이 성위의 수하들의 정보를 빼내줄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없으면 이시결은 제멋대로 날뛸지도 몰랐다. 물론 레부의 팔찌를 통해 조금의 제어는 가능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가까이에서 그를 제어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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