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주선오의 기분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신교진의 메시지가 첫 번째 이유였다.
[도아 누나 돌아오기 전까지 무릎 단련 좀 해둬라. 우리 잘난 2위님 무릎 꿇느라고 무릎 상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단장님, 손님이 와 계세요.”
사무직원의 말을 듣기도 전부터 느껴진 단장실 안의 사람 때문이었다.
응접용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한 남자.
처음보는 얼굴 같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미약한 체향과 손에 낀 까만 장갑때문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주선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만해도 절대로 마주보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
주선오는 조용히 차를 마시는 이시결의 낯선 얼굴을 보며 물었다.
“얼굴은 어떻게 바꾼거지?”
“아. 이거 말입니까?”
이시결이 장갑 낀 손을 들어보였다.
“거미줄로 형태를 짠 후에 색을 칠한겁니다. 지금은 누군가의 얼굴을 따서 쓰는게 아니라 조금씩만 덧대놓았습니다.”
이시결의 눈밑에 짙게 드리워져있던 다크서클은 사라져있었고 살짝 쳐졌던 눈도 평범하게 변해있었다.
“사실 귀찮아서 얼굴을 바꾸는 건 잘 하지 않는데 지금은 시기가 시기라 어쩔 수 없군요.”
그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어제 밤 각성자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뜨기 시작한 후 역시 가장 의심을 받은 건 이시결이었다.
-전에 각성자 죽였던 그 각성자 아님?
-그 살인자 갇혀있던거 아니었음?
-ㄴㄴ. 실력 좋은 각성자가 귀해서 그때 조건 걸어두고 풀어준 걸로 알고 있음.
-갓도아 님이 컨트롤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설마.
-진짜 그놈 짓이면 그거 책임 윤도아가 져야 하는 거 아닌가?
커뮤니티에는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시결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눈총은 그리 좋지 못했다.
만약 이시결이 윤도아를 따라 출국을 했어도 여론은 더욱 나빠졌을 것이다.
‘그랬으면 도아 누나가 오해를 받았을지도.’
윤도아가 이시결을 조사와 비난을 피해 도망치게 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시결이 자신에게 살인을 뒤집어 씌우려고 한 사람에게 흥미를 가진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차 향이 좋군요.”
이시결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잠시 단장실 안에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어젯밤, 윤도아는 주선오에게 이시결과 함께 성위의 수하에 대해 조사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사실 주선오도 이시결이 상당한 전력이 되는 각성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윤도아가 인정할만한 실력자에 게이트의 경험도 많았고 머리도 좋았다.
하지만 신경을 긁는 말투나 오직 자신의 흥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그런 성격이, 주선오의 마음에 들지 않을 뿐.
만약 첫 단추가 어긋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괜찮은 동료가 됐을지도 몰랐다.
잠시 그를 쏘아보던 주선오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이걸 이용해서 잠입해볼까 합니다.”
이시결이 턱을 괸 손으로 자신의 볼을 톡톡 두드렸다.
“잠입?”
“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잠입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묻어들어야 했고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쉬울리 없었다.
“우선 그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주선오의 말에 이시결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면 늦습니다.”
“늦는다고?”
“윤도아 씨의 생각은 그 각성자의 죽음이 성위의 수하와 관련이 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잠입을 늦춰버리면 그들에게 진실을 은폐할 시간을 주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이 시기면 의심을 받지 않겠어? 게다가 그쪽에서 새로운 단원을 모집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잖아.”
주선오가 반박했다.
그에 이시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새로운 단원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이시결은 팔짱을 낀 채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주선오 씨는 개의 이빨 무리 새 단원에게 무리 내부 사정을 모두 이야기해줍니까?”
그 말에 주선오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시결이 이야기하려는 바를 깨달았다.
“그래요. 이왕 정보를 빼낼거면 그들 머리 쪽을 털어봐야죠.”
주선오는 어떻게 머리 쪽을 털 생각이냐는 멍청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시결은 분명 얼굴을 바꾸는 것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는건 현재 성위의 수하들 중 높은 위치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빌리겠다는 뜻이었다.
“그 머리 쪽을 알아내려면 일단 정보가 필요하잖아.”
“그건 알아내기 쉽죠.”
이시결의 태연한 말에 주선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차피 기관에서 오후에 성위의 수하 단장을 부르지 않습니까.”
기관에서는 오늘 성위의 수하쪽과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 무리 소속의 각성자가 죽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를 전하기 위해.
“…그럼 단장이 기관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그쪽에 잠입하겠다는 거야?”
“그렇죠. 단장이 묻는데 대답하지않을 단원이 어딨겠습니까.”
“잠입해있는 도중에 단장이 돌아가면?”
주선오의 질문에 이시결이 팔짱을 낀 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걸 이제 주선오 씨가 막아주셔야죠.”
“막아달라?”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 이 말입니다. 어쨌든 제가 그 안에서 원하는 정보를 빼내려면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이시결의 말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대체 주선오가 무슨 수로 성위의 수하 단장을 붙잡아둔다는 말인가.
보통 무리의 단장끼리는 어느정도 교류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무리의 단장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성위의 수하의 단장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주선오는 며칠 전만해도 그런 무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서 단장을 붙잡아둬야하냐는 말이었다.
주선오는 잠시 이마를 짚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려면 일단 주선오 씨가 이따 기관에서 그 단장을 함께 만나는 편이 좋겠지요.”
역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시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거기에서 안면을 트고 단장이 돌아갈 때 쯤 붙잡아서 무언가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이제 됐다고 판단될 때까지 붙잡아주면 좋겠지만 사실 그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단장이 돌아가려고 할 때 미리 언질을 해주기만 해도 됩니다.”
“…후.”
주선오는 기가 찬 한숨을 내뱉었다.
그로써는 도저히 이시결의 사고방식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대체 어느 스파이가 한 무리의 단장으로 둔갑해서 들어가는 대담함을 보인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들키게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망치게 될 수가 있었다.
더구나 이시결은 윤도아와 연관이 되어 있었기에 그가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을 경우 손해를 보는 것은 윤도아였다.
‘그렇게 둘수는 없어.’
그런 주선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시결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생각같아서는 그 각성자의 얼굴을 본따서 그들의 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지만. 제가 체형까지 바꿀 수는 없으니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서 아쉽군요.”
이시결이 입맛을 다셨다.
주선오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잠입은 너무 위험해.”
“별로 걱정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시결의 말에 주선오는 코웃음을 쳤다.
“그쪽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괜히 도아 누나가 피해를 입을까봐 하는 소리야.”
하지만 이시결 역시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윤도아 씨는 지금 외국에 나가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걸린다고 하더라도 저한테는 명분이 있어요. 누군가가 저한테 그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으니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명분 말입니다.”
“그 각성자의 죽음이 성위의 수하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야. 기관도 그렇고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고. 그러니까 그게 명분이 될 수는 없어.”
“그거야 물론 그렇죠. 하지만 일단 그런짓을 한 사람이 저이지 않습니까.”
이시결의 말에 주선오가 멈칫했다.
이시결은 눈앞을 가린 까만 머리카락들을 슥 쓸어넘기며 말했다.
“이미 저는 각성자를 죽였다고 알려져있는 사람입니다. 윤도아 씨는 한국에 없고 제가 주선오 씨와 만나서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모든 건 제 의지만으로 일어난 일이 되는 겁니다. 윤도아 씨에게도 말했지만 지금의 저는 윤도아 씨의 손을 더럽히지 않을 도구에요. 윤도아 씨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습니다. 물론 주선오 씨에게도 그렇고요.”
주선오는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걸 말릴 방법도 없었고 말릴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찝찝한 것은 그에게는 서약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그런데 만약 정말로 성위의 수하가 신수연 각성자의 죽음과 연관이 있고, 그 사람들이 잠입한 그쪽을 눈치챈다면. 그리고 신수연 각성자처럼 그쪽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건데?”
“그러면 어쩔수없죠. 가만히 죽어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시결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서약이 걸려있잖아. 도아 누나가 허락하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할 수 없다는 서약. 그러면 반격할 수 없는 것 아냐?”
주선오의 물음에 이시결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뭐, 일단은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조금 다치는 것 정도야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고요. 그리고 정말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윤도아 씨의 허락을 받으면 그만 아닙니까.”
이시결이 셔츠의 소매를 살짝 걷어올려 손목에 채워진 가느다란 붉은빛의 팔찌를 보였다.
주선오가 윤도아, 신교진과 함께 쌍둥이 게이트에 갔을 때 보았던 레부의 팔찌였다.
“윤도아 씨가 출국 전 주고 갔습니다. 아무래도 빠른 연락책으로 이만한 게 없으니까요.”
결국 주선오는 이시결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행동 똑바로 해.”
“연락이나 제 때 주시죠.”
* * *
“와. 여기 들어가려면 게이트를 통과해야하잖아?”
호텔의 정문 앞에 떡하니 자리잡은 게이트를 보며 윤도빈이 말했다.
게이트는 정말로 자신이 호텔의 정문인냥 그곳에 생성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호텔의 주변은 굉장히 조용했다.
꼭 호텔 자체가 폐업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근처가 북적인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지금이야 이렇지만 아마 게이트가 생성된 초반에는 호텔에서도 그것을 반겼으리라.
“이거 통과해서 들어가면 진짜 게이트 입장하는 기분이겠네.”
윤도빈이 중얼거렸다.
호텔에서도 저것을 이용해 마케팅을 했을 것이다.
게이트를 통해 입장하는 호텔이라는 식으로.
일반 사람들 역시 신기해하며 많이 방문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게이트에 입장하는 기분이라는 이야기를 했겠지.
하지만 그것도 브레이크의 위험성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지금은 언제 브레이크를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니 자신의 목숨부터 챙겨야하겠지.
나는 빠르게 눈앞의 붉은 연기를 내뿜는 게이트의 정보를 살폈다.
[A급 스킬 보상 게이트]
[협곡으로 통하는 스킬 보상 게이트입니다.]
[무사히 협곡을 통과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게이트 클리어 시 최대 4개의 스킬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난쟁이에 대한 얘기는 없네.’
나는 조금 착잡함을 느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신교진이 잘못된 게이트를 알려줄 확률은 굉장히 적었다. 정보에서도 이곳에서 무엇이 나온다는 설명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협곡을 통과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많은 각성자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건 아마도 무언가 함정이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짐 풀자.”
나는 도빈이에게 손짓을 하고는 게이트를 지나쳐 호텔로 들어갔다.
“와, 이거 느낌 이상한데?”
게이트를 지나온 윤도빈이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 역시 이런식으로 게이트를 지나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꼭 수증기가 가득한 공간을 통과하는 것처럼 축축한 느낌이었다.
‘구름을 통과하는 게 이런 기분이려나.’
피식 웃은 나는 호텔 안의 로비를 살펴보았다.
크기가 커다란 호텔이었지만 로비에 있는 직원의 수는 굉장히 적었다.
호텔의 직원들도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킬까 무서워 일을 그만둔 것 같았다.
로비에 있던 직원이 우리를 알아보고는 굉장히 밝아진 얼굴로 달려왔다.
그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베트남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통역기를 켰다.
“윤도아 각성자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정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정말 윤도아 씨가 와주시다니….”
호텔의 지배인으로 보이는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제발 저 흉물스러운 게이트를 좀 없애주십시오. 저건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저 안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못한 각성자만해도 수십이 넘어요!”
“알겠습니다. 이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짐을 좀 풀고 싶은데 방을 좀 안내해주시겠어요?”
“네, 네, 네. 이쪽으로 오시지요!”
고개를 마구 끄덕인 지배인이 나와 도빈이를 방으로 안내했다.
배정이 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지배인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언제쯤 입장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브레이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에 최대한 빨리 게이트에 입장하기를 바라는 듯 했다.
몸이 좀 뻐근하긴 했지만 바로 입장하더라도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짐만 풀고 바로 입장할 거에요. 걱정 마세요.”
내 말에 지배인은 다시 환해진 얼굴로 돌아갔다.
우리는 각자의 방에 짐을 푼 후 게이트에 입장할 준비를 마친 후에 다시 로비로 내려갔다.
“낫 챙겼어?”
내 질문에 윤도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부의 팔찌를 가리켜보였다.
“응. 안에 있어. 아, 실전에서 써보려니까 좀 긴장되는데.”
윤도빈이 중얼거렸다.
피식 웃은 나는 내 단검들과 모래의 심장, 푸른 팔찌 형태의 우부까지 모두 확인을 한 후 먼저 게이트로 입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