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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40화 (141/201)

제140화

“…시기와 질투요?”

유지은이 되물었다.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건지 확인하는 것 같은 물음이었다.

그리고 유지은의 말에 주선오 역시 자신이 잘못들은게 아님을 확신했다.

김영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저희는 성위의 수하들. 즉, 성위의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당연히 선택받은 자들을 시기하겠지요.”

김영우의 말에 셋의 눈길이 빠르게 마주쳤다.

유지은이 살짝 고개를 비틀며 김영우에게 물었다.

“잠깐 질문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그 성위라는 게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유지은은 성위의 수하 무리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것 같았다.

주선오는 윤도아를 미행했던 신수연을 만난 이후로, 성위의 수하가 어떤 무리인지에 대해 찾아보았기에 그들의 주장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김영우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셋을 돌아보며 말했다.

“성위는 지금 전세계에 일어나는 이런 사건들을 모두 관장하고 계신 분이지요.”

“이런 사건이라면 게이트를 말씀하시는건가요?”

이번에는 김지석이 질문을 던졌다.

“맞습니다. 게이트도 신의 가호도 모두 성위께서 일으키신 일들입니다.”

다시 유지은이 물었다.

“그럼 그 성위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건 어떤 사람들인거죠?”

“성위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께서 지목한 사람들이 바로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이 우리 성위의 수하이고요.”

“…선지자라는게 혹시 단장님이십니까?”

김지석이 조금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김영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선지자는 따로 있습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유지은이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시기때문에 선지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가 선택을 받은 신수연 각성자를 죽였다, 이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김영우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예상은 했지만….’

그들의 논리는 사이비 종교와 다를바 없었다. 다만 사이비 종교에서 내세우는 신의 자리에 성위라는 외계인이 있을 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유지은이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저희가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유지은은 수사에 필요한 질문 몇가지를 던졌다. 하지만 김영우는 교묘하게 답변들을 피해갔다.

그러면서 분명 다른 각성자의 시기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며 범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결국 유지은은 그이상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김영우와의 대화를 마쳤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수사에 진전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에 김영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더이상 저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요.”

김지석과 유지은, 주선오를 슬쩍 돌아본 김영우는 곧바로 방을 나가버렸다.

“후…. 뭔가 기가 빨린 것 같은 기분이네요.”

유지은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김지석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뭐라 할말이 없었습니다.”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선오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조금만 더.]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짧은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잠시 따라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주선오가 핸드폰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사실을 나가 복도를 살피자 김영우가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주선오가 물었다.

“잠시 이야기 가능하십니까?”

김영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잠깐이면 됩니다.”

주선오는 도착한 엘레베이터에 먼저 올라타며 말했다. 김영우가 경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려가시죠.”

주선오의 말에 김영우는 찜찜한 표정으로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주선오는 그를 데리고 기관 뒤쪽의 휴식 공간으로 향했다.

김영우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주선오는 잠시 그가 담뱃불을 붙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무언가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와 대화하는 걸 그닥 반기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주선오의 말에 김영우는 깊은 한숨섞인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주선오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으면 빨리 끝내죠. 마음같아서는 그냥 가고 싶지만 그래도 그쪽이 첫 번째 각성자라서 참아주고 있는 겁니다.”

김영우가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보이는 것도 예상은 했었지만 직접 이런 시선을 받으니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기분대로 김영우와의 대화를 끝냈다가는 이시결이 위험해질테고, 그러면 분명 윤도아에게도 불똥이 튈 터.

잠시 숨을 고른 주선오는 다시 김영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첫 번째 각성자인거랑은 무슨 관계입니까?”

“그쪽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성위와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요.”

‘헛소리.’

주선오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을 뻔한 말을 겨우 삼키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이 모든 현상이 외계인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다시 담배 연기를 내뱉은 김영우가 주선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성위입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그쪽은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영우의 역질문에 주선오는 잠시 멈칫했다.

게이트가 나타나고 신의 가호를 받고 각성을 하고.

이러한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건 가호를 받고 첫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 뿐이었다.

막상 게이트에 입장해서 게이트를 닫다보니 이런일이 발생한 원인보다는 빨리 눈앞에 보이는 게이트들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했다.

주선오가 대답이 없자 김영우가 말했다.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고 있는 것 같으니 전 그만 돌아가보겠습니다.”

김영우가 반쯤 남은 담배를 털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아직 그를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주선오는 정말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신수연 각성자가.”

그녀의 이름에 김영우가 멈칫했다.

“윤도아 각성자를 미행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김영우는 주선오에게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표정을 볼 수가 없는데.’

주선오는 김영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때 저도 같은 자리에 있었습니다만. 신수연 각성자는 성위의 수하가 윤도아 각성자를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김영우의 옆에 선 주선오가 살짝 그의 얼굴을 살폈다. 김영우의 동공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군.’

살짝 입꼬리를 올린 주선오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신수연 각성자가 윤도아 각성자를 미행한 걸 알고 계셨습니까? 그걸 지시한게 김영우 단장님이신가요?”

“…….”

김영우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주선오는 팔짱을 낀 채 김영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이 없으시다면 저는 제마음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 이만.”

빠르게 대답한 김영우가 주선오를 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역시 알고 있었어.’

성위의 수하 전체는 몰라도 단장인 김영우가 윤도아의 미행에 개입이 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단장이 개입이 되어 있다면 적어도 간부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을 터.

‘정보는 좀 알아냈으려나.’

시간은 끌만큼 충분히 끌어준 상태였다.

주선오는 핸드폰을 꺼내 이시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빠져나와.]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이시결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 * *

쏴아아아!

“…이…, 이게 무슨….”

사칭 레부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머리 위로는 거대한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반면 우리가 서있는 곳에 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야. 굉장한데?”

윤도빈이 감탄하며 바닥 한 켠을 바라보았다.

앞발을 핥던 고양이 모습의 투명한 젤리 덩어리가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푸우, 우부 굉장해!”

그리고는 펄쩍 뛰어올라 윤도빈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컥!”

윤도빈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우리가 휘몰아치는 물살에서 무사할 수 있던 이유는 우부 덕분이었다.

물 슬라임인 우부는 물의 흐름에 간섭해서 몰아치는 물살을 우리의 머리 위쪽으로 흘려버렸다.

데려올때만 해도 어린 슬라임이라 할줄 아는 게 많이 없어 걱정을 했었지만, 어느정도 교육을 시켜두니 꽤 쓸만해진 상태였다.

나는 뿌듯한 얼굴로 우부를 바라보았다.

“잘했어, 우부.”

“우부, 잘했다아!”

우부는 칭찬을 들은 것이 기뻤는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흐억! 우부, 잠깐 가만히 좀. 컥!”

몸부림치며 기뻐하는 우부때문에 윤도빈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사칭 레부에게 그런것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놈은 살짝 벌어진 눈으로 우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스…, 슬라임…?”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우부를 보고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팔찌의 모습이었기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씩 웃으며 놈에게 말했다.

“더 놀랄만한 게 있지.”

“뭐, 뭐죠?”

사칭 레부가 젤리를 파르르 떨며 물었다.

“레부, 나와.”

“무슨…?”

사칭 레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사칭 레부를 부른 것이 아니었다.

심연의 불꽃을 꺼내들자, 곧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륵!

물 아래의 공간을 모두 메울 것 같은 크기의 불꽃에 사칭 레부가 뒤로 나가떨어졌다.

“흐이이익!”

“쿄오오오! 이노옴!”

거대한 불덩어리가 사칭 레부에게 쏟아져내렸다.

“흐아악!”

“감히 나를 사칭하다니! 쿄오오오! 용서할 수 없다!”

레부의 사칭 슬라임에 대한 분노의 불길은 굉장했다.

사칭 레부가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듯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레, 레, 레부?”

“쿄오! 어디 젤리에 수분도 안 마른 놈이 이 몸의 명성을 더럽혀?”

“자, 자,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으악!”

“용서할 수 없다!”

이시결에게 팔찌를 떼어주었기에 레부의 젤리 크기는 평소의 절반정도였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일어나는 불꽃때문에 레부는 평소보다 더욱 커보였다.

레부가 사칭범을 쥐잡듯 잡는 소리에 모래의 심장 안에 있던 모부까지 제멋대로 튀어나와버렸다.

“휴? 뭔가 재미난 소리가 들려서 나와봤는데 저건 뭔가요?”

모부가 불꽃 너머의 작아진 슬라임을 바라보며 웃었다.

“휴휴휴휴. 하필 사칭을 해도 레부 사칭이라니. 차라리 저를 사칭하지 그랬어요. 자갈 슬라임이면 모래 슬라임인 저를 사칭하는 편이 더 나았을텐데요. 휴휴흇.”

나는 레부에게 혼쭐이 나고 있는 사칭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자갈 슬라임이었군.’

슬라임은 태어날 때의 주변 환경에 따라 슬라임의 속성이 결정되곤 했다. 즉 레부는 불꽃에서, 모부는 모래에서, 우부는 물에서 태어났기에 그러한 속성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저놈은 아마 이 자갈밭에서 태어나고 자란 슬라임이리라.

나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몰아치던 물살은 꽤 잦아들어있었다. 얇은 물의 막 너머로 하늘의 구름들이 일렁이며 보일 정도였다.

‘이정도면 걸어갈 수 있겠는데.’

“우부. 물줄기 갈라서 길을 좀 만들수 있어?”

내 물음에 우부가 도빈이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푸우! 우부, 물 가를 수 있어!”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우부가 도도하게 가늘어진 물줄기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앞발을 물이 치솟기 시작하는 바닥 위에 툭 내려놓자.

촤아아!

우부의 앞발이 닿은 곳부터 우부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협곡을 흐르던 물은 양옆으로 갈라졌고 우리의 머리 위를 흐르던 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 우부의 기적이네.”

윤도빈이 짧게 감탄하며 양옆으로 치솟은 물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슬라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쿄옷…. 우부 녀석 제법입니다.”

“휴휴흇. 그동안 가르친 보람이 있군요.”

레부와 모부가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물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두 슬라임의 교육이 꽤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우부는 모두의 시선에 몸을 쭈욱 펼쳤다.

“푸푸푸푸!”

마치 자신이 풍채좋은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피식 웃은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길은 열렸고.”

레부와 모부의 뒤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자갈 슬라임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네 차례인데.”

내가 놈을 향해 걸어가자 레부와 모부가 살짝 비켜서며 내게 길을 열어주었다.

“히, 히익….”

자갈 슬라임이 부르르 떨며 젤리를 움츠렸다.

나는 그런 놈의 앞에 쪼그려앉아 말했다.

“자. 너한테 마지막 기회를 줄게.”

그러자 자갈 슬라임이 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기, 기회요?”

나는 놈을 보며 씩 웃었다.

“이 협곡을 벗어나는 길을 안내할 기회.”

“그건….”

나는 자갈 슬라임의 앞의 자갈에 심연의 불꽃을 박아넣었다.

콱!

치이이익!

심연의 불꽃의 열기에 주변의 젖어있던 자갈들이 물기가 순식간에 증발했다.

“히끅!”

자갈 슬라임은 놀랐는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다른 길을 안내하거나 또 이런 뻔한 짓거리를 벌인다면. 어떻게 되지, 도토리들?”

내 질문에 레부와 모부가 내 양옆으로 슥 다가와 서며 말했다.

“쿄쿄쿄, 온몸의 젤리가 터져나가는 끔찍한 고통을 수백 번 맛보게 될겁니다. 쿄쿄쿄쿄.”

“휴휴휴, 그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요. 평생동안 자갈속에 갇힌 채 주인에게 굽신거리며 살아야할지도 모르지요. 휴휴휴흇.”

둘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꽤나 즐거워보였기에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두 슬라임의 음흉한 웃음에 뒤에 있던 우부 또한 둘을 따라 웃었다.

“푸푸푸푸푸.”

세 슬라임의 웃음 소리에 결국 자갈 슬라임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안내할게요!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좋아.”

나는 심연의 불꽃을 거두어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레부와 모부를 들여보낸 후 젤리를 추스르며 일어나는 자갈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안내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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