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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42화 (143/201)

제142화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는 20대 초반의 남자는 자신을 선지자라 소개했다.

‘더이상 가면은 필요 없겠군.’

이시결은 그가 내민 손을 붙잡는 대신,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익.

이시결이 쓰고 있던 김영우의 가면이 벗겨졌다.

남자는 그런 이시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의 거미줄을 모두 걷어낸 이시결은 아직도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남자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끈적일텐데요.”

그의 손에는 걷어낸 거미줄들이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하하.”

짧게 웃음을 흘린 남자가 이시결에게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남자의 말에 이시결이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한테 들은건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야기를 들었다고 저를 아는 체 해봤자 좋을 일이 없을텐데요.”

손에 묻은 거미줄 덩어리를 털어낸 그가 코트 속에 숨겨두었던 시커를 꺼내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어차피 저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윤도아 각성자와 한 거래가 있지 않나요?”

윤도아와 한 서약에 관한 것은 기관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뭔가 알고 있나?’

이시결이 시커를 늘어트리자 선지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성위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온다는 것도요.”

사전에 대충 파악한 정보로 이들이 외계인을 성위라고 칭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시결은 눈 앞의 남자가 정말로 외계인과 교신을 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신수연을 죽인 사람으로 자신을 몰아갈 때부터 아마도 이들은 자신이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 터.

이시결은 시커로 앞의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흐음. 제가 이곳에 온다고 알려준 것도 성위. 아는체를 하라고 한 것도 성위. 선지자라는 사람은 고작 성위가 시키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군요. 성위가 죽으라고는 안 하던가요?”

이시결이 빈정거렸지만 선지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이 윤도아 각성자에게 갚아줄 빚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위께서는 저희가 그걸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보고 계십니다.”

그 말에 이시결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고작 당신들이요? 헛소리는 집어치우시죠.”

국내에서 가장 큰 무리인 개의 이빨 무리의 단장인 주선오조차 윤도아에게는 함부로 덤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조차 생소한 무리가 윤도아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만 이시결의 신랄한 말에도 선지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저희는 이시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선지자의 낮은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당신이 저희, 성위의 수하들과 뜻을 함께 한다면 그 힘은 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저희가 원하는 것이 되겠지요.”

이시결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저보고 성위의 수하에 들어오라, 이 말입니까?”

선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성위의 선택을 받으신 겁니다.”

이시결은 시커를 든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는 한참을 큭큭대며 웃었다.

“선택을 받았다라. 영광이군요. 하지만….”

이시결은 금세 싸늘한 미소를 띠었다.

“건방지군요.”

뜻밖의 말에 선지자는 조금 놀란 얼굴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무슨 권리로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합니까? 제가 당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거라 생각한다면 정말 큰 오산인데요.”

그러자 선지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게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성위의 아래에서 함께 움직이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게 성위의 뜻이니까요.”

싸늘한 미소를 거둔 이시결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던가요?”

“물론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수연 각성자의 일 때문이겠지요.”

선지자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이시결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당신들의 입장에서 저는 신수연 각성자를 죽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성위는 자신의 수하를 죽인 저를 배척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제가 선택을 받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선지자는 곧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도 신수연 각성자를 잃게 된 것은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게 성위의 뜻이라면 받아들여야합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성위의 말씀이시니까요.”

그에 이시결은 다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 속한다 한들 저에 대한 오해가 벗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오해를 안은 채 이곳에 오는 건 선지자 씨도 원하지 않을것 같은데 말이죠.”

선지자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입술을 살짝 살짝 달싹이는 것이 꼭 무언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시결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런 선지자를 살폈다.

잠시 후 선지자가 눈을 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당신에게는 모든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지자는 조용히 움직여 단장실을 나갔다.

그 사이 이시결은 단장의 책상에 앉아 책상 이곳저곳을 뒤적여보았다.

그곳에는 꽤 많은 서류들이 있었다.

성위의 수하 단원들의 신상이 적힌 서류들과 게이트에 대한 정보들을 모아둔 서류들. 그리고 성위의 말씀이라고 적힌 서류까지.

이시결은 성위의 말씀이 적힌 서류를 훑어보았다.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가 적혀있었다.

게이트는 외계인, 즉 성위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사람들이 받고 있는 가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자신들은 선지자를 중심으로 모인 성위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며,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각성자들은 성위의 힘을 이용해 성위에게 대적하려는 자들이니 경계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중 특히 경계할 것은 성위가 우리를 멸망시키려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땅의 지배자 무리.

그리고 그런 땅의 지배자 무리의 단장인 심지원과 친분이 있는 윤도아 역시 주 경계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시결이 아는 한, 윤도아와 심지원은 딱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다.

‘그걸 친분으로 보는건가?’

어쨌든 그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신수연에게 윤도아를 미행하도록 한 것 같았다.

신수연이 들키자 선지자와 단장은 성위의 뜻이라며 신수연을 처리했고.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군.’

코웃음을 친 이시결은 서류를 덮어 책상에 던져두었다.

잠시 후 선지자와 함께 한 여자가 단장실로 들어왔다.

안색이 매우 창백한 여자였다. 그녀는 사시나무떨듯 몸을 떨다가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이제 저를 성위의 수하에 받아주시는 건가요? 빨리 말씀해주세요. 제가 행한 일이 옳은 일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세요.”

여자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이 헐떡이며 말했다.

“저, 더이상은 악몽을 꾸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죠? 자꾸 꿈에 신수연이 나타나요.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여자는 곧 흐느끼기 시작했다.

“성위의 수하가 되고 싶어서 시험을 치뤘지만 아직도 전 그 촉감이 잊혀지지 않아요. 이, 이 손으로 제가 그 가느다란 목을….”

여자가 덜덜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이시결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신수연을 죽인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신수연을 죽이면 무리에 받아주겠다는 뻔한 거짓말에 속아서 저지른 짓.

‘재미없군.’

이시결은 이 상황에 흥미를 잃었다.

‘돌아가야겠어.’

그때 선지자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그녀의 떨리는 손을 따듯하게 감싸쥐었다.

“괜찮습니다. 성위께서는 당신을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계세요.”

그 말에 여자가 충혈된 눈으로 선지자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인가요? 그럼 저도 이제 성위의 수하가 된 건가요?”

여자가 선지자의 손을 꼭 붙잡고 흐느꼈다.

선지자는 잠시 눈을 감은 채 그녀의 머리에 이마를 맞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성위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잠시 후.

선지자는 그녀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책상 옆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단검이었다.

선지자는 그것을 들고 여자의 앞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단검을 바라보았다.

“선지자님, 이건….”

“성위님의 답변이십니다.”

선지자가 여자의 어깨를 짚자, 그녀가 선지자를 바라보았다. 선지자는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 가지고 기관에 찾아 가세요. 그리고 신수연 각성자를 죽인 것이 당신이라고 말하세요.”

“…네?”

여자의 어깨를 짚은 선지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게 마지막 일입니다. 이것까지 무사히 해낸다면 성위께서는 당신을 온전한 자신의 수하로 받아들이실겁니다. 물론 그 전까지 저희와 연관된 모든 것은 비밀로 해야한다는 것.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곧 여자는 홀린듯이 단검을 받아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장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선지자가 이시결을 돌아보았다.

“이제 당신에 대한 오해는 풀릴 겁니다.”

하지만 이시결은 코웃음을 쳤다.

“자백하라는 사람에게 단검은 왜 쥐어줍니까?”

“성위의 믿음을 실천하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성물이니까요.”

이시결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저 여자, 기관에 가기는 커녕 이 근처를 벗어나기도 힘들겠군.’

저 단검은 죽음의 표식일 것이다.

성위의 수하 무리 내에서 저 단검을 지닌 사람은 죽인다, 라는 약속을 해두었을 터.

하지만 저 여자가 죽게되면 이시결에게 씌여진 혐의를 없애는 것이 힘들어진다.

‘귀찮지만 개입을 좀 해야겠어.’

이시결은 그녀의 뒤를 따르기 위해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 그럼 저도 생각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을 선지자가 막아섰다.

“아뇨. 저는 당신께 모든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생각할 시간도 충분히 드렸고요.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이시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강요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리고는 선지자를 지나쳐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선지자의 한숨이 들려왔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드렸는데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뭐, 선지자 씨가 저를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지자를 돌아본 이시결은 그의 모습을 훑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보이는군요.”

이시결이 닫혀있던 문고리를 잡자, 뒤에서 선지자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아쉽군요. 그럼 성위의 뜻대로.”

그순간 방 안에 짧은 굉음이 일었다.

쾅!

동시에 문고리를 잡았던 오른손에 끔찍한 고통이 일었다.

“!”

이시결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왼손의 시커를 들어올렸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마비라도 된 듯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문고리를 잡았던 손은 새빨갛게 벗겨진 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며 타버린 손을 바라보던 이시결의 앞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이시결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시결은 왼손의 시커를 들어올려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푹.

“!”

왼쪽 옆구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일었다.

“돌려보내지는 못하겠군요.”

이명을 뚫고 선지자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시결은 왼쪽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다.

하지만 선지자는 이미 뒤로 빠졌는지 팔꿈치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앞에서 흰 가면의 그가 이시결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찔러넣었다.

훅!

이시결은 다시 시커를 휘둘러 단검을 쳐냈다.

비수에 찔린 왼쪽 옆구리와 오른손의 통증때문에 힘이 부족했지만, 상대방 역시 근력이 쎄지는 않았는지 시커에 부딪힌 단검이 날아갔다.

하지만 동시에 앞에 있던 사람 역시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자.

다시 나타난 그의 단검이 이시결의 목을 노렸다.

이시결은 자세를 낮춰 그것을 피했다.

‘천둥새군.’

이전, 그가 미등록 각성자들의 무리에 잠시 발을 담갔을 때 만났던 각성자가 분명했다.

선지자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금의 몸상태로 싸움을 지속하는건 위험했다.

‘어쩔 수 없지.’

이시결은 왼손의 시커를 천둥새의 복부로 찔러넣었다.

푹!

공격은 확실히 들어갔다.

왼손에 느껴진 촉감도 촉감이었지만 동시에 이시결의 복부에도 예리한 칼날이 파고드는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시결은 입술을 깨물며 시커를 끝까지 밀어넣었다.

“크흡!”

하얀 가면 뒤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가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사이, 이시결은 창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왼손에서 뽑아낸 거미줄을 이용해 창문을 연 후, 곧장 밖으로 뛰어내렸다.

* * *

동굴 앞에는 여전히 훌쩍거리는 자갈 슬라임이 앉아 있었다.

“뭘 잘했다고 질질 짜고 있어?”

내 말에 자갈 슬라임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저라고 뭐 처음부터 이러고 싶어서 이랬겠어요? 저도 남들 등쳐먹고 사는 거 싫어요! 나름 꿈이 있었단 말입니다!”

갑자기 자갈 슬라임이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도빈이가 올라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 같았기에 나는 팔짱을 낀채 놈의 시덥잖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슬라임 주제에 꿈도 있었어?”

그러자 자갈 슬라임이 버럭 외쳤다.

“슬라임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저도 나름대로 인정받던 대장장이였습니다!”

그 말에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자갈 슬라임을 바라보았다.

“슬라임이 대장장이?”

놈의 양쪽 입끝이 축 쳐졌다.

“맞아요. 물론 제멋대로 스승님을 따라 흉내내고 있던 거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무기들을 써본 고객들은 대부분 만족했다구요. 그런데도 스승님은 계속해서 저를 인정해주시지도 않고 얼마나 비참했는지 압니까? 그래서 결국 저도 이렇게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구요.”

자갈 슬라임이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를 했지만 내 귀에 꽂힌 단어는 하나 뿐이었다.

나는 눈을 번뜩이며 놈을 바라보았다.

“스승님이라고?”

“네.”

자갈 슬라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놈의 옆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그 스승님이라는 게 혹시 난쟁이야?”

“맞아요.”

놈의 대답에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잘했다, 신교진.’

“안내해.”

“네?”

“네 스승한테 안내하라고.”

자갈 슬라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안돼요! 지금 돌아갔다간 분명 스승님이 절 갈아버릴거에요!”

나는 심연의 불꽃을 꺼내들며 물었다.

“지금 갈리는거랑 이따 갈리는 거. 선택해.”

“…안내할게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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