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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44화 (145/201)

제144화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

하지만 다시 들려온 대장장이의 대답은 단호했다.

“지금은 광휘의 서리를 만드는 게 불가능 해.”

“어째서?”

“에잉, 쯧.”

대장장이는 혀를 내두르고는 파이프 연기를 뻑뻑 내뿜으며 말했다.

“광휘의 서리는 네놈이 가진 그 심연의 불꽃과 함께 우리 난쟁이들에게 전해내려오는 전설의 무기나 다름없네. 하지만 그걸 구현해낸다는게 쉽지는 않아. 그래서 지금껏 방법만 전해져올 뿐 실존하지 않았다.”

“왜 쉽지가 않지?”

“재료가 구하기 힘든 것들이니까.”

대장장이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난쟁이들이 살던 곳에서는 서리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네. 게다가 힘들게 구해온 서리는 너무 작아서 심연의 불꽃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녹아버렸지.”

난쟁이들은 항상 불과 술을 가까이 하고 살았기에 그들이 있는 곳에는 서리가 존재할 수 없었다.

대장장이가 다시 서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정도 크기의 서리라면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같지만요?”

윤도빈이 궁금한 듯 대장장이를 재촉했다.

“광휘의 서리의 주된 재료가 이 서리인 것은 맞지만, 말 그대로 만들려는건 광휘의 서리가 아닌가. 그것을 만들려면 또 하나의 재료가 필요하네.”

“또 하나의 재료라면….”

내 중얼거림에 대장장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연히 빛이지.”

그러자 윤도빈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빛이라면 밖에 널린 거 아닌가요?”

그러자 대장장이의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이 도빈이에게 박혔다.

“쯔쯔쯧. 저런 평범한 빛으로는 택도 없다.”

“그럼 어떤 빛이 필요한건데요?”

계속되는 질문에 짜증이 났는지 대장장이가 성을 냈다.

“에잉! 근데 넌 뭔데 자꾸 질문질이냐? 저 모래 슬라임은 또 뭐고?”

대장장이는 이제서야 도빈이와 모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심연의 불꽃에 정신이 팔려 둘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것 같았다.

“뭐, 궁금하니까요? 누나가 그 광휘의 서리라는게 필요한 것 같은데 없는 재료가 있으면 찾아와야죠.”

윤도빈이 기특한 소리를 했지만 대장장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못 구한다.”

“네? 자꾸 뱅뱅 돌리지 말고 속 시원하게 좀 얘기해주세요.”

대장장이가 다시 혀를 내두르고는 말했다.

“쯔쯔쯔. 광휘는 아주 귀한 빛이야. 지상에서 유일하게 그 빛을 지니고 있는 생물이 반딧불이인데 이곳이 원래는 반딧불이 서식처로 유명한 곳이었지.”

“어? 그러면 오히려 잘된 거 아닌가요? 밤에 나가서 바로 잡아오면 될 것 같은데.”

그러자 대장장이가 버럭 화를 냈다.

“에잉! 입 다물고 끝까지 듣지 못해? 그런 곳이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가 힘들어. 하피놈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반딧불이가 모두 사라져버렸네. 쯧.”

그에 윤도빈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광휘의 서리를 만들기 위해 난쟁이를 찾았고 겨우 이곳에서 대장장이를 만났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 해.’

대장장이의 말대로라면 광휘의 서리에 반딧불이는 꼭 필요했다.

“최근에 본 적 없어?”

“이 근처에서는 본 적 없다. 다만 저쪽 산에는 하피들이 발을 들이지 않아서 몇 남아있는 것 같긴 하던데.”

대장장이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을 가리켰다.

멀찍이 솟아나있는 산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산이었다.

“저쪽에는 왜 안 갔데요?”

도빈이가 다시 대장장이에게 물었다.

“저기는 산신의 영역이야. 감히 하피따위가 얼쩡거릴 수 없는 곳이지.”

“산신?”

도빈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산신은 말그대로 산의 신. 어떤 형태의 몬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을 지키는 신급 몬스터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산신이라면 나 역시 상대하기 힘들터.

“그래. 나조차도 산에 함부로 발을 들일 수가 없어.”

“만약에 발을 들이면 어떻게 되는데요?”

“쯔쯔, 말을 허투루 알아듣는구만. 말했지. 발을 들일 수가 없다고. 정말로 들어갈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놈들아. 포기하는 게 좋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산에 반딧불이가 남아있다면 반딧불이에게서 꼭 광휘를 얻어내야했다.

나는 일단 서리를 다시 우부에게 돌려주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려고?”

윤도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밤까지 기다렸다가 산으로 갈거야.”

그에 대장장이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쯔쯔쯔, 개고생만 하게 생겼구만.”

* * *

“고생했어. 늦었는데 데려다줄까?”

집을 나서는 이리나에게 주선오가 물었다.

그러자 이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네요. 택시타고 가면 금방이고. 오빠 할 일도 있을 것 같은데.”

이리나가 슬쩍 거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숨을 내쉰 주선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착하면 연락하고. 오늘 일은 모른 척 해줘.”

“알겠어요. 들어갈게요.”

이리나를 돌려보낸 주선오는 살짝 굳어진 얼굴로 거실로 돌아갔다.

거실의 소파에는 이시결이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과 복부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대체 뭘 했길래.’

성위의 수하 단장 김영우가 돌아간 후 한참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던 이시결은 늦은 저녁에 주선오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것도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급하게 이리나를 불러 그를 치료하게 했지만 살펴본 상태는 더욱 가관이었다.

이리나가 치료를 하긴 했지만 상처들이 너무 깊어 한 번의 치료로 다 나을 수 있는 상처도 아니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치료를 계속 해야했기에 당분간은 저 상태로 지내야할 것 같았다.

방으로 가 셔츠 하나를 들고 나온 주선오는 그에게 그것을 던졌다.

“아.”

이시결은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들었다.

주선오는 팔짱을 낀 채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셔츠를 걸친 후 왼손으로 서툴게 단추를 잠그던 이시결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주선오 씨와 붙어보는 건 저도 원하는 바이지만 지금은 받아주기가 힘듭니다.”

이시결의 말을 무시한 주선오가 물었다.

“그래서. 목적은?”

살짝 한숨을 내쉰 이시결이 대답했다.

“윤도아 씨 생각이 맞았습니다.”

주선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신들 무리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각성자를 이용해서 신수연 각성자를 죽인 것 같아요.”

“하.”

주선오는 기가 찬 코웃음을 내뱉었다.

분명 오후에 기관에서 만났던 성위의 수하 단장 김영우는 다른 각성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물론 믿지야 않았지만 그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증거는?”

다리를 꼬며 살짝 인상을 찌푸리던 이시결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뭐?”

주선오가 멈칫하며 되물었다.

“선지자가 그 여자에게 기관에 가서 자수를 하라고 하더군요. 자기들과 관계가 있다는건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요.”

주선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한 이야기였다.

성위의 수하가 신수연을 죽이기 위해 그 사람을 이용한 것이라면 자수를 하라고 부추길리가 없었다.

물론 자신들과의 관게를 비밀로 하라고 하긴 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거라고 믿기는 힘들 터.

만약 그가 자수를 한 후 실수로라도 성위의 수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성위의 수하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수를 시킬 이유가 있다고?’

“그러면서 단검 하나를 쥐어줬습니다.”

“단검?”

이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물을 특정하는 단검일겁니다.”

그 말에 주선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번쩍 뜨고는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설마, 죽인다는 건가?”

그에 이시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죠. 그 무리 내에서 그 단검을 가진 사람은 척살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그냥 뒀어? 그 사람이 죽도록?”

주선오가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그에 이시결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놔두려고 했겠습니까? 제 혐의를 벗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죽이겠다는데.”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따라 나가서 개입 좀 하려했는데 공격당했습니다.”

주선오는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이시결은 성위의 수하 단장의 가면을 쓰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나가려다가 공격을 받았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그 사람에게 단검을 쥐어준 것은 선지자. 가짜이긴 했지만 그곳에는 단장의 탈을 쓴 이시결이 있었다.

그런데 이시결의 의사를 무시한 채 선지자가 단검을 쥐어주었다는 점.

그것들을 종합하여 봤을 때, 성위의 수하 무리에서는 단장인 김영우보다 선지자의 입지가 더욱 큰 것 같았다.

주선오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위해 재차 물었다.

“단장의 가면을 쓰고 갔는데 그쪽을 공격했다고?”

그에 이시결이 웃었다.

“아. 선지자는 만나자마자 제가 그 단장이 아니라는 걸 알아보더군요.”

그에 주선오는 기가 찬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자신있어하더니? 얼굴 한 쪽이 흘러내리기라도 했나보지?”

주선오의 말에 이시결이 살짝 기분이 나빠진 듯 말했다.

“제 가면에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만. 행동거지에 문제가 있었을 뿐.”

확실히 얼굴만 바꾼다고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속인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뭔가 방법이 있는줄 알았더니.’

주선오는 혀를 찼다.

어쨌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장보다 선지자의 입지가 더 크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단장이 자리에 없더라도 그가 원한다면 성위의 수하 무리를 움직여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성위의 수하라는 무리가 어떤 무리인지 어느정도 가늠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럼 선지자가 그쪽을 공격한건가?”

이시결은 총 세 군데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오른손에 입은 심각한 화상자국과 복부의 깊은 자상, 그리고 옆구리의 비수까지.

손의 화상은 각성자의 특성에 의해 생겼을 것이고 옆구리와는 다르게 복부의 상처는 비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각성자가 혼자서 두 개 이상의 칼을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즉 이시결을 공격한 것은 한 명, 아니면 최대 셋 이었다.

이시결이 고개를 저은 후 왼쪽 옆구리를 가리켰다.

“선지자가 공격한 건 이것 뿐입니다.”

“다른 상처들은?”

주선오의 물음에 이시결은 붕대를 감은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이건 다른 각성자한테 당한겁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각성자,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분명히 천둥새였습니다.”

“천둥새?”

주선오는 처음 들어보는 특성이었다.

이시결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미등록 각성자 중 하나였습니다. 특성 자체가 독특해서 눈여겨 보았었는데 크게 뛰어나지는 않아서 금방 관심을 거뒀었죠. 그런데 거기에 가있을 줄이야.”

“미등록….”

정부와 각성 기관을 적대하며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채 활동하던 각성자들의 무리였다.

이전 윤도아가 그들을 정리하고 미등록들의 부단장이었던 문기훈이 아직까지도 그 잔당을 쫓고 있었다.

“문기훈 각성자에게 연락을 해주는게 좋겠네.”

주선오의 중얼거림에 이시결이 턱을 괴며 말했다.

“글쎄요. 천둥새가 살아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잠시 이시결의 말을 곱씹던 주선오가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뭐?”

이시결은 별다른 감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찔렀거든요.”

주선오의 시선이 이시결의 복부에 꽂혔다.

‘설마 저게….’

복부의 자상은 옆구리의 자상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그가 사용하던 시커 날의 휘어짐과 길이와 비슷할 것 같았다.

“천둥새가 그때보다 성장을 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선지자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둘을 상대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시결이 가볍게 쥔 왼손을 앞으로 슥 밀었다.

아마 그 손에 쥐어있던 시커가 그대로 천둥새의 복부를 찔렀으리라.

“뭐, 조금 특별한 경험이긴 했습니다. 남을 상처입히는 것과 동시에 같은 상처를 입는다는게. 그가 겪었을 고통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게 참. 뭐랄까요.”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던 이시결이 웃었다.

“재미있더군요. 아깝게도 시커는 그대로 박아두고 올수밖에 없었지만요.”

주선오는 할말을 잃었다.

분명 그는 서약때문에 남을 공격하면 자신도 같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제로 행했다는것이 주선오는 놀라우면서도 기가 막혔다.

“…그럼 그 사람은….”

이시결은 그닥 흥미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면 살아있겠죠.”

주선오는 잠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시결의 경우 상처를 입은 후 자신이 거미줄로 응급처치를 한 뒤 주선오를 찾아왔기에 이리나를 통한 빠른 치료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상을 입은 사람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주선오 역시 지금껏 많은 생명체를 베어왔다. 하지만 그 대상은 모두 자신을 공격하던 몬스터였고 사람을 벤 적은 없었다.

반면 이시결은 달랐다.

그는 이미 오진서 각성자를 죽인 전적이 있고 윤도아 역시 죽이려 시도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틈틈히 자신과 맞붙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놈이었고.

“아.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시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주선오가 되물었다.

“이상한 점?”

“분명 제가 천둥새를 공격하고 빠져나올 때. 이상하게도 선지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더군요.”

이시결은 성위의 수하 쪽에서 감추고 싶어할만한 일을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그냥 보내준 것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적이 될지도 모르는 저한테 자신들의 모든 전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긴 합니다만.”

이시결의 중얼거림에 주선오가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쪽이 사실을 이야기한다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언제든 그쪽을 처리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수도 있지.”

그에 이시결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주선오에게 되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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