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광휘를 품은 서리를 보자마자 대장장이는 서리를 받아든 후 우리를 내쫓았다.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있게!”
하지만 잠시 후 다시 조용히 문을 열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불꽃이 필요하네.”
나는 기꺼이 심연의 불꽃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레부를 이용해 심연의 불꽃을 덜어내어 대장장이의 화로에 옮겨주었다.
화르륵!
화로에 떨어진 심연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대장장이의 눈에 화로의 불꽃이 비추었다. 그의 눈 역시 기쁨으로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대장장이는 그 눈으로 우리의 뒤에 숨어있던 시부를 바라보았다.
“네놈!”
그에 시부가 화들짝 놀라며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대장장이는 양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도와라.”
시부는 이해를 못 했는지 잠시 눈을 깜빡거리며 멀뚱히 그를 바라보았다.
“뭐해? 빨리 오지 않고! 이 느려터진 슬라임 같으니라고!”
대장장이의 불호령이 떨어지고나서야 시부는 후다닥 그를 따라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잘됐네.”
윤도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대장장이가 작업을 마칠 때 까지 대장간의 바깥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게이트는 이미 클리어가 된 상태였다.
반딧불이의 광휘를 채취하러 산으로 향하는 동안 이미 협곡을 벗어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광휘의 서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이번 게이트의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 확인.”
그러자 어두운 바닥의 풀들 위에 빛나는 글자들이 나타났다.
[스킬 레벨업권 3장]
[1회용 방어 스킬권 1장]
‘최대의 보상!’
떠오른 보상을 보며 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하피를 모조리 잡은 덕에 이 게이트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방어 스킬권은 제쳐두고.’
어떤 스킬을 올려야할지 파악하기위해 나는 일단 지금의 특성 옵션을 살펴보았다.
‘전용 옵션 확인.’
[전용 특성 : 악마의 고양이 lv.4]
[전용 스탯 : 마나 운용 73/탐지 69]
[특성 스킬 : 마나 방패 lv.5/보이지 않는 손 lv.2/블링크 lv.4/염력 lv.5]
[돌고래 신의 가호]
[전용 특성 : 자가치유 lv.2]
[특성 스킬 : 감각차단 lv.2/혈액차단 lv.2/회복 lv.3]
[지정 스킬 : 안개화 lv.2]
나는 잠시 팔짱을 낀 채 스킬들을 살펴보았다.
아직도 올려야 할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돌고래 신의 가호나 지정 스킬은 이정도면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역시 악마의 고양이 특성인데.’
염력도 지금정도면 부족하지는 않았다.
나는 세 개의 스킬 레벨업권을 나머지 세 개의 스킬에 하나씩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마나 방패 레벨 6, 보이지 않는 손 레벨 3, 블링크 레벨 5로.’
그러자 레벨 증가의 안내문들이 촤르륵 펼쳐졌다가 사라졌다.
이제 보이지 않는 손은 총 3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블링크는 연속해서 5번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마나 방패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점이 생겨났다.
[마나 방패 lv.6]
[마나 방패 형태의 변형이 가능합니다.]
‘형태 변형?’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바로 마나 방패를 시전했다.
‘마나 방패.’
촤르륵!
레벨 5의 마나 방패보다 더욱 견고해진 마나 방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 자체는 내 전신을 뒤덮을 수 있을 정도로 이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상태에서 형태의 변형이 가능한 것이라면 아마도 이 동그란 방패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리라.
나는 동그란 마나 방패의 위 아래를 슥 눌러보았다.
그러자 마나 방패의 원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원을 그리고 있던 마나 방패는 곧 옆으로 길쭉한 타원의 형태를 취했다.
‘역시. 그럼 이것도 가능하려나?’
나는 염력을 이용해 타원의 마나 방패의 양 끝을 살짝 휘어보았다.
마나 방패의 양 끝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각이 지도록 꺾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어느정도 곡선을 그리는 것은 가능했다.
그렇게 휘어진 마나 방패는 내 주변을 빙 두른 형태로 고정되었다.
‘이러면 사방에서 오는 공격을 동시에 막을 수 있겠어.’
이전에도 마나 방패 자체를 움직여 공격을 막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탐지로 주변을 항시 살피고 다가오는 공격에 대한 반응이 빨라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몸을 감싼 형태로 마나 방패를 둘러둔다면 공격을 막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터.
잠시 흐뭇하게 마나 방패를 움직여보던 내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형태 변형이 가능한거라면 혹시 나눌 수도 있나?’
나는 즉시 마나 방패를 분리해보았다.
그리고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마나 방패는 둘로 나뉘어 내 주변을 맴돌았다.
‘총 면적이 일정한 상태라면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구나!’
나는 마나 방패를 여러개로 나누어보았다.
갯수는 내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염력의 갯수와 동일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나눌 필요는 없었다.
두 개 정도로 나눈 마나 방패를 겹쳐서 사용하기만 해도 더 강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터.
더욱 견고해진 마나 방패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나는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진정시키려 애쓰며 여러 조각으로 나뉜 마나 방패를 없앴다.
캉! 캉!
카앙!
멀리서 들려오는 폭포 소리를 배경으로 대장장이의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도빈이 역시 보상 확인을 마쳤는지 세 슬라임과 함께 풀밭 위에 앉아서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 위의 반짝임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망치질 소리에 왠지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평온한 풍경을 바라보며 대장간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끼익.
광휘의 서리가 완성된 것은 날이 밝아올 무렵이었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대장장이는 굉장히 수척해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장장이의 앞으로 걸어갔다.
“서리는?”
내 물음에 난쟁이가 손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총 길이가 30cm가량되어 보이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광휘의 서리…!’
나는 조심스레 대장장이의 손에서 서리를 받아들었다.
회귀 전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거추장스러운 장식따위는 없었다. 그저 날렵한 모습의 새하얀 단검이었다.
내 손에 꼭 맞는 손잡이를 잡고 하얀 칼집에서 칼을 뽑아내자.
스릉.
찬란한 광휘를 품고 있는 서리의 날이 드러났다.
동시에 날에서 뿜어져나오는 냉기가 주변의 공기를 차갑게 침식했다.
그 냉기는 손잡이로까지 흘러들어 내 손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나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EX급 아이템 광휘의 서리]
[사용 시 자상을 통해 빛과 같이 퍼져나간 서리가 대상을 동결시킵니다.]
광휘의 서리를 휙 휘두르자.
쩌저적.
서리가 가른 공기가 빠르게 얼어붙었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드디어 광휘의 서리를 얻었어!’
빙긋 웃은 나는 칼집에 서리를 넣었다.
심연의 불꽃과 광휘의 서리.
두 개의 세트 아이템이 모였으니 두 단검은 내게 더 커다란 힘이 되어줄 터.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서리를 바라보고 있는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아주 좋아.”
그에 지켜보던 도빈이가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에헴!”
어깨를 한껏 치켜세운 대장장이가 말했다.
“당연한 소리를! 손기술로 나를 따라올 난쟁이는 아무도 없다네!”
“잘 쓸게. 심연의 불꽃을 나누어줬으니 대가는 충분하겠지.”
내 말에 대장장이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크흠. 뭐, 나도 덕분에 전해져오기만 하던 광휘의 서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었으니 충분하네. 저놈도 이제 정신을 차렸을 테고 말야.”
대장장이가 뒤쪽, 대장간 안을 가리켰다.
안에서 열심히 뒷정리를 하던 시부가 움찔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쭈뼛쭈뼛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기….”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내 말에 시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이제와서 사죄해봤자 소용없겠지만….”
나는 팔짱을 낀 채 자갈 슬라임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하피와 공모해서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사과를 하려는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벌인 짓 때문에 여러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해서요.”
시부가 고개를 들지못한 채 말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의 몸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칼과 활, 창 등 온갖 아이템들이었다. 게다가 그중에는 A급 이상의 아이템도 있었다.
“쿄, 쿄…!”
그것들을 본 레부의 눈에 번뜩였다.
시부가 계속 아이템들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사죄의 의미라기에는 뭣하지만 지금까지 빼앗았던 아이템들을 모두 돌려드릴게요.”
“쿄옷!”
그에 레부가 펄쩍 뛰며 나를 돌아보았다.
“쿄, 주인! 저, 저거 챙기면 됩니까?”
아이템에 대한 탐욕은 아직도 여전한 레부를 보며 윤도빈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그런 레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전에 일어났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고, 이것들은 주인을 잃은 아이템들이었다.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레부가 순식간에 바닥에 놓인 아이템들을 집어 삼켰다.
“쿄쿄쿄쿄!”
“휴휴. 저렇게 탐욕스러운 모습이라니. 정말 추하군요.”
뒤에서 지켜보던 모부가 고개를 내둘렀다.
“푸우, 레부 신났어! 푸푸푸푸!”
우부는 처음보는 레부의 모습이 재미있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시부가 꺼내놓은 아이템들을 모두 주워먹은 레부는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심연의 불꽃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모부와 우부 역시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낸 후 난쟁이 대장장이, 시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윤도빈이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대장장이는 부루퉁한 반응을 보였다.
“두 번 볼 일은 없을 걸세! 썩 꺼지게!”
누가 난쟁이 왕의 형 아니랄까봐 마지막 인사까지 비슷했다.
피식 웃은 나는 도빈이와 함께 게이트를 나섰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서 쌓여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야할 때였다.
* * *
“…뭐야? 뒤에는.”
문을 열어준 주선오가 잔뜩 인상을 쓴 채 이리나의 뒤에 선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얍. 친구네 놀러온건데.”
신교진이 밝은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주선오의 시선이 이번에는 이리나에게 꽂혔다.
“…사무실에 있었는데 교진 오빠가 쫓아오겠다고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이리나가 살짝 신교진을 흘겨보며 대답했다.
왠지 그 시선들에 기분이 나빠진 신교진은 뚱한 얼굴로 둘을 쏘아보았다.
“왜, 뭔데. 나 뺴놓고 늬들끼리 뭐하려고 한건데. 늬들 연애하냐?”
“미쳤어요?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도 말아요! 저 진짜 매장당하긴 싫거든요?”
이리나가 기겁하며 신교진을 타박했다. 주선오 역시 상종을 말자는 표정으로 신교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일단 들어와.”
“하여간 한 번을 곱게 들여보내주지를 않아요.”
잔뜩 투덜거리며 거실 안으로 들어간 신교진은 주선오의 집에 그 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보는 얼굴의 그는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응? 누구야? 새 단원? 왜 사무실로 안오고 여기에 있어?”
주선오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왠지 그닥 달가운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신교진의 물음에 대답한건 낯선 얼굴의 남자였다.
“흠. 개의 이빨 무리에 입단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왠지 익숙한 재수없는 목소리에 신교진이 눈을 치켜떴다.
“엥? 뭐야. 설마....”
“이시결 씨에요.”
이리나가 옆에서 속삭였다.
“에엥?”
신교진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뭐야, 무슨 상황인데?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이리나는 슥 주선오를 가리켜보였다. 이야기는 그에게서 들으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이시결에게 향하며 말했다.
“상처 봐봐요.”
그녀의 말에 이시결은 입고있던 상의를 들어올렸다. 그의 복부에 있던 갓 아물기 시작한 기다란 상처가 드러났다.
그 상처를 본 신교진은 흠칫 놀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붕대는 왜 풀었어요? 이러다 덧나면 힘들어진다고요!”
이리나가 타박을 주었지만 이시결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불편하길래요.”
그런 이시결을 가만히 쏘아보던 이리나가 말했다.
“사는건 안 불편한가봐요?”
이리나의 표독스러운 말에 긴장한건 신교진이었다.
그는 혹여라도 심기가 뒤틀린 이시결이 이리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시결은 이리나의 말에 그닥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은 괜찮습니다만. 재미가 없어지면 불편할수도 있겠죠.”
그에 이리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상처 치료에 전념했다.
역시 한숨을 내쉰 신교진은 둘을 바라보던 주선오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신교진은 방문을 쾅 닫고는 주선오에게 물었다.
“야, 뭔데? 저 인간 왜 여기있어? 저 상처는 또 뭐고?”
신교진이 질문을 쏟아내자 주선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사정이 있어. 근데 왜 온거야?”
주선오의 물음에 신교진은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그 웃음소리에 주선오의 미간이 한껏 구겨졌다.
“선오야. 인상 펴라. 네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될 텐데.”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어 주선오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잠시 신교진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주선오의 얼굴이 곧 미묘하게 변했다.
신교진이 그에게 보인것은 윤도빈에게서 도착한 문자였다.
[역시 교진 형! 누나가 원하던 게이트 맞았어요. 저녁 쯤 도착 예정이에요. 그럼 한국에서 봬요.]
신교진은 핸드폰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상큼한 미소를 띠며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주선오야, 뭐해? 무릎 안 꿇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