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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47화 (148/201)

제147화

하지만 주선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신교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 신교진이 팔짱을 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허. 꿇으라니까?”

주선오는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 파악 좀 하지.”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문 밖에 있는 이시결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제야 신교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통 부상을 입게 되면 개의 이빨 사무실에 있는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곤 했다.

하지만 이시결은 얼굴을 바꾼 상태임에도 굳이 주선오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무언가 사소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분명 주선오는 그곳에 온 신경이 쏠려 있을 터.

지금 게이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신교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터였다.

‘지금 부려먹어봤자 내가 손해지.’

판단을 끝낸 신교진은 주선오를 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지금은 봐주도록 하지. 나중에 약속 지켜라.”

“…그래.”

주선오가 조금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진짜 무슨 일인데?”

신교진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

“후.”

한숨을 내쉰 주선오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성위의 수하 쪽 관련해서 좀 일이 있었어.”

“성위의 수하?”

신교진이 되물으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주선오는 그에게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신수연의 죽음을 뒤집어 쓴 이시결이 성위의 수하에 잠입했고 그곳에서 탈출을 하려다가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들은 신교진은 입을 떡 벌린 채 거실쪽을 바라보았다.

“…진짜 미친놈 아냐?”

“그러게 말이다.”

“아니, 저 사람도 저 사람인데. 너는 그걸 또 받아줬다고? 그러다 너까지 말려들면 어떡하려고?”

신교진의 말에 주선오는 머리를 짚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도아 누나가 연관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게다가 실력도 무시 못할 각성자라서 죽게 두기에는 손실이 클 것 같았고. 그렇지만 않았으면 진작에 신경 껐을 사람이야.”

“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도아 누나나 너나 대체 속을 모르겠다. 저런 위험한 놈을 저렇게 풀어두는 것도 그렇고.”

신교진이 분개하며 외쳤다.

주선오는 별다른 반응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신교진에게 말했다.

“그거 보여주려고 온거지? 볼일 끝났으면 돌아가. 괜히 불편한 자리에 끼어있지 말고.”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신교진을 위한 이야기였다.

주선오가 먼저 방을 나섰다.

“어휴.”

신교진은 답답한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선오의 말대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편이 나은 상황이었다. 그러려면 저 싸늘한 분위기의 거실을 지나쳐야했다.

신교진은 잠시 거실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왠지 찝찝한 기분.

‘…에라, 모르겠다.’

신교진은 그냥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어 이것저것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커뮤니티에 들어간 신교진은 잠시 그곳의 글들을 보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교진은 눈을 비비고는 다시 커뮤니티의 글들을 살폈다.

-그 새끼 또 사람 찔렀다며?

-ㅇㅇ. 성위의 수하라는 무리에 잠입한 것도 모자라서 각성자까지 찌르고 나왔다고 함.

-누가 그래? 확실한 정보야?

-거기 있던 각성자가 직접 봤댔어.

-뒤집어 씌운걸지도 모르잖아.

-영상 있음. 확인 ㄱㄱ. 혐주의.

그 뒤로 짤막한 영상이 있었다. 마른침을 삼킨 신교진은 조심스레 영상을 재생했다.

위쪽에서 찍힌 감시 카메라의 영상이었다.

소리가 담기지 않은 영상이었다.

누군가가 휘어진 칼로 하얀 가면을 쓴 사람의 복부를 찔렀다.

“헙!”

신교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칼을 복부 깊숙히 밀어넣은 그는 빠르게 화면 밖으로 벗어났다.

화질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칼을 찌른 것이 이시결이라는건 확실했다.

‘…진짜 찔렀어.’

까맣게 변한 화면에 놀란 신교진의 얼굴이 그대로 비추었다.

잠시 멍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신교진은 이번에는 빠르게 기사들을 살폈다.

[성위의 수하 소속 각성자, 이시결에게 찔려 심각한 부상 입어]

[무단 침입도 모자라 각성자까지 찔러]

[이시결 제어하겠다던 윤도아 각성자는 어디로?]

[벌써 세 번째? 사람을 공격하는 각성자, 이대로 둘 것인가?]

“…하….”

핸드폰 화면을 끈 신교진은 앞을 바라보았다.

이시결이 사람을 찌르는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칼을 밀어넣는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는 곧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문 옆에 기대어 서있던 주선오가 방에서 나온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교진의 시선은 이시결에게 꽂혀 있었다.

복부의 치료는 모두 끝났는지, 이시결은 일그러진 오른손을 이리나에게 맡기고 있었다.

“신교진.”

주선오가 의아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신교진은 주선오를 지나쳐 이시결에게 걸어갔다.

“이봐요.”

신교진의 부름에 창 밖을 내다보던 이시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신교진은 자신이 보았던 영상을 틀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시결은 그닥 흥미가 없는 표정으로 신교진을 바라보다가 그가 내민 핸드폰의 화면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시결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뭐죠, 이건?”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거 아닌가요? 누가봐도 본인 얼굴인 것 같은데.”

신교진의 말에 이시결의 손을 치료하던 이리나가 궁금한듯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신교진이 그런 이리나의 눈을 가렸다.

“뭐에요? 나도 보고 싶은데.”

이리나가 신교진의 손을 피해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이 사람이 사람 찌르는 영상이야. 안 봐도 돼.”

신교진의 말에 이리나가 흠칫 놀랐다.

그 사이, 성큼성큼 다가온 주선오가 신교진의 핸드폰을 빼앗아 들고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상을 확인한 주선오가 심각한 얼굴로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CCTV 영상이잖아.”

“그렇네요.”

대답하는 이시결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그에 신교진이 버럭 외쳤다.

“그렇네요? 지금 그걸 대답이라고 하는 겁니까? 지금 당신이 사람을 찌른 영상이잖아요!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겁니까?”

“교진아, 잠깐만.”

주선오가 그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신교진이 날 선 눈초리로 주선오를 돌아보았다.

“뭐야, 너. 왜 이리 침착해? 이 사람이 사람 찌른 거 알고 있었어? 아까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그것까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 남한테 알려봤자 좋을 일이 아니니까.”

주선오의 말에 신교진은 기가 찬듯 되물었다.

“남한테 알려봤자 좋을 일이 아닌데 이렇게 영상이 퍼지고 있다고?”

“어디에 있던 영상입니까?”

이시결의 물음에 신교진은 다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커뮤니티고 기사고 난리에요. 당신이 성위의 수하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사람 찌르고 튀었다고.”

거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이리나는 치료를 중단한 채 놀란 표정으로 이시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받는 이시결은 그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그 표정에 신교진이 울컥하며 입을 떼려는데, 이시결이 주선오를 보며 말했다.

“이게 저를 잡을 다른 방법인가보군요.”

* * *

인천 공항의 입국장에는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 기자들은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플래시를 터트리며 엄청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윤도아 각성자!”

“이시결 각성자가 다른 각성자를 공격한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시결 각성자는 윤도아 각성자가 제어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나요?”

“그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지실 겁니까?”

너무 많은 질문이 한번에 쏟아져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시결이 다른 각성자를 공격한 것에 대한 나의 책임.

“누나.”

윤도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도빈이는 아직 신수연의 죽음과 그에 대해 이시결이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따 말해줄게. 잠깐만.”

나는 도빈이를 물러나게 하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기자들이 알아서 하나둘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용해지고 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저도 아직 정확한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하게 파악되는대로 따로 발표하도록 할게요.”

이야기를 마친 나는 도빈이를 데리고 기자들 사이를 빠르게 벗어났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

“윤도아 씨.”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마스크를 턱에 걸친 이시결이 보였다.

“너!”

나는 날을 세우며 그에게 한발 다가섰다.

평소와는 다르게 품이 큰 후드를 입어 반쯤 가려진 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있었다.

이시결은 왼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 앞에 가져다댔다.

기자들에게 자주 하던 내 행동이었다.

괜한 소란을 일으켜서 기자들의 이목을 끌어봤자 좋을 일이 없었기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윽박질렀다.

“제정신이야? 지금 여기에 나와있을 상황이 아니잖아.”

그러자 이시결이 마스크를 다시 올려 쓰며 말했다.

“윤도아 씨만 아니면 들킬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일단은 차로 가시죠.”

이시결이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안내한 곳에는 익숙한 차가 한 대 세워져있었다.

“선오 형?”

역시 차를 알아본 윤도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시결을 돌아보았다.

“뭐야. 둘이 그새 친해졌어요?”

주선오가 들으면 정색을 할만한 이야기였다.

코웃음을 친 이시결은 대답없이 주선오의 차에 올라탔다. 그 반응에 윤도빈이 기분나쁜듯 표정을 구겼다.

“뭐야? 또 오자마자 시비거는거에요?”

“일단 타자.”

나는 도빈이를 먼저 차에 밀어넣은 후 뒤따라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도빈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주선오가 나에게 물었다.

“가셨던 일은 잘 해결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선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지만 주선오에게는 글쎄. 신교진과의 거래를 생각하면 좋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주선오는 안심한듯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질문을 참고 있던 도빈이가 물었다.

나는 베트남의 게이트로 향하기 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곧 도빈이는 입을 다문채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조수석에 앉은 이시결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조금 전에 들은건 대체 뭐지? 왜 네가 천둥새를 공격한 사실을 기자들이 알고 있는 거야?”

이시결이 흘긋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영 귀찮다는 표정으로 왼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뒤로 넘겼다.

“그걸 보시면 알겁니다.”

나는 염력으로 이시결이 건넨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도빈이 역시 궁금한듯 내게 몸을 기울이며 핸드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한 영상이 틀어져있었다. 이시결이 사람을 찌르는 것이 적나라하게 찍힌 CCTV의 화면.

“!”

윤도빈이 흠칫 놀라며 화면과 이시결을 번갈아보았다.

이런 CCTV의 화면이라면 분명 이것을 퍼트린 것은 성위의 수하 측일 터.

나는 빠르게 영상에 대한 반응들을 살폈다.

-미쳤네. 저거 왜 풀어놓음? 빨리 다시 잡아다 사형시켜.

-윤도아가 관리한다메. 윤도아 뭐하는데? 걔가 시킨거 아님?

-도누님 외국 게이트 닫으러 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서 아마 모르지 않을까.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본인이 관리한다고 말해놓고 방치한거나 마찬가지잖아.

-책임져야지.

나는 잠시 구겨진 미간을 문질렀다.

‘이걸 노린거였군.’

그들이 부상을 입은 이시결을 쫓지 않고 내버려 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성위의 수하는 나를 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이번 일은 행운이었다. 이시결과 나를 동시에 무너트리기에 아주 좋은 상황.

나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이시결에게 돌려주었다.

“제가 멋대로 저지른 일이니 두 분을 끌어들이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핸드폰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러자 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던 주선오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당연한 소리.”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믿어주느냐가 문제 아니에요?”

도빈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이시결이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하더라도 그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각성자를 죽였던 사람. 더구나 이번에도 신수연을 죽였다는 의혹에 휩싸인 상태였고 그런 와중에 각성자를 찌른 영상이 퍼졌다.

그덕에 지금의 여론은 완벽하게 성위의 수하쪽으로 쏠려있었다.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면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시결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저도 할 말이 있으니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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