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주선오는 기관을 향해 차를 몰았다.
기관의 회의실에서는 기관장 안세인과 이사 김지석, 기관 소속 각성자 권재경, 그리고 이전 미등록 각성자의 무리에 속해있던 문기훈과 최은서가 모여 있었다.
이시결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가 찔렀던 각성자가 이전 미등록 각성자의 무리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천둥새. 이름은 모릅니다. 그때는 특성을 이름처럼 불렀으니까요.”
이시결의 말에 안세인이 문 쪽에 서있던 문기훈을 바라보았다.
전 미등록 각성자들의 부단장이었던 문기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미등록의 무리는 말그대로 각성자 등록을 하지 않은채 활동하던 각성자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정부와 기관에 반감을 품었고 그것을 바꾸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잘못된 방식을 선택했었다.
첫 회귀 전이었다면 파국으로 치닫았을 그들을 미리 막아낸 것은 나였고.
천둥새는 그 당시 투항하지않고 도망쳐버린 몇몇의 각성자 중 하나였다.
“코앞에 두고 찾지 못하고 있었다니. 부단장도 별것 아니었군요.”
도발이 패시브로 깔려있는 이시결의 말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이시결을 바라보는 문기훈의 눈빛은 미묘했다.
분노의 감정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철이 덜든 아이를 보는듯한 눈빛에 가까웠다.
30대 중반까지 살다온 나조차도 가끔 자신의 흥미위주로만 움직이는 그가 철없어 보일때가 있는데. 문기훈이 보기에는 오죽할까.
“잘잘못을 따지려고 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이시결 씨. 그런 말씀은 삼가해주세요.”
김지석이 이시결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시결은 그저 어깨를 으쓱여보일 뿐이었다.
이시결에게서 시선을 뗀 문기훈이 말했다.
“천둥새는 이전에 말씀드렸듯, 꽤 위험한 특성을 가진 각성자입니다.”
천둥새에 대한 정보는 기관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들과 함께 했던 미등록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었다.
미등록 각성자 일부가 도주했을 때 문기훈과 최은서는 그들의 특성을 아는한 상세하게 정리해서 기관에게 넘겼었다.
김지석이 앞에 있던 노트북을 빠르게 조작했다. 그때 받았던 정보를 찾아보고 있는 듯 했다.
“아, 여기 찾았습니다. 천둥새. 벼락길과 낙뢰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스킬의 이름만으로도 어느정도 감이 왔다.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기관 소속은 아니었지만 여차하면 개입할 생각이 있는지, 주선오가 정보를 요청했다.
사실 미등록의 잔당을 추적하는 것은 문기훈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상 기관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못할 터.
고개를 끄덕인 김지석이 말했다.
“최은서 씨, 설명 좀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던 최은서가 화들짝 놀랐다. 슥 고개를 들어올린 최은서가 눈알을 굴려 우리를 돌아보고는 살짝 입을 열었다.
“…제, 제가요?”
“네. 부탁드립니다.”
김지석이 그녀에게 설명을 요청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은서가 받은 가호는 프레리독 신의 가호. 성문의 언어라는 특성을 통해 다른 각성자의 정보를 캐낼 수 있었다.
아마 천둥새의 정보를 받을 때에도 문기훈보다는 그녀의 도움이 컸으리라.
회의실 내 모두의 시선을 받게된 최은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천둥새는 벼락길과 낙뢰라는 스킬을 사용해요.”
기어들어갈것 같은 목소리.
한껏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녀의 말을 놓칠것 같았다.
“벼락길은,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길을 더듬어 이동하는 이동기고…. 낙뢰는…. 말그대로 낙뢰를 일으키는 공격 스킬이에요.”
가볍게 혀를 찬 이시결이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이게 낙뢰에 당한겁니다.”
“그 화상같았던?”
이시결의 치료를 도왔던 주선오가 그 상처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네. 굉음이 들림과 동시에 손이 타버렸습니다. 벼락길의 움직임도 상당히 빠르더군요. 다만 몸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빠를뿐 다가와서 칼을 휘두르는것까지의 동작은 다른이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움직임이 빠르긴 하지만 공격을 하기까지는 틈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 틈을 잡는건 간단한 일이었다.
‘벼락길보다는 낙뢰가 더 위험하겠어.’
그렇다고 아예 알아차릴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천둥새가 낙뢰를 사용하기 전 어떠한 전조현상이 있을 터.
“제가 찌른 상처가 남아있다면 벼락길은 사용하기 힘들겁니다. 낙뢰야 어떤식으로 발동이 되는건지를 모르겠지만요.”
이시결이 설명을 마쳤다.
성위의 수하 내에 미등록이었던 천둥새가 있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천둥새를 잡으러 가는 일만 남았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권재경이 입을 열었다.
“천둥새와 함께 다른 미등록들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해봐야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문기훈 씨 혼자서 감당하기는 힘들겁니다.”
“같은 생각이에요. 그곳에 모두 모여있다면, 이번에야말로 미등록들의 일을 마무리지을 기회겠군요.”
안세인이 권재경의 말에 동의했다. 뒤이어 김지석이 말했다.
“그쪽에서 천둥새와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미등록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된다면 이시결 씨가 무고한 각성자를 찔렀다는 말은 수그러들겁니다.”
여러가지 얽혀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결국 중심은 이시결의 결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신수연 각성자의 죽음에 이시결이 연관이 없다는 걸 밝혀내야 모든게 정리되겠지만, 그래도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해결을 하는 편이 좋았다.
문기훈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바로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미등록이 관여된 일이니 유지은 씨와 김현우 씨가 우선적으로 함께 해야하고.”
“연락하겠습니다.”
안세인의 말에 김지석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그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유지은과 김현우는 기관 소속의 각성자이기 이전에 경찰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당시 정부는 미등록들의 투항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그에 응하지 않고 도주를 선택했다. 그렇기에 공권력을 가진 그들이 함께하는 것이 맞았다.
“권 선생님도 함께 가주겠어요?”
“알겠습니다.”
안세인의 요청에 권재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옆에 세워두었던 양손검을 집어드는 사이 내가 살짝 손을 들어올렸다.
“저도 갈게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안세인이 예상하지 못한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도아 씨가요?”
“네.”
사실 미등록 각성자를 잡아들이러가는데에는 기관의 인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내가 자원한 이유는 성위의 수하 사무실에서 확인해야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박성현이 지금 성위의 수하에 있는지, 있다면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해.’
권재경과 문기훈은 내 동행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도아 씨가 함께 가주면 더 든든하겠네요.”
우리는 곧바로 성위의 수하 사무실로 향했다.
뜸을 들일 시간은 없었다. 혹시라도 이 소식이 성위의 수하에 새어들어가게되면 그들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 진실을 은폐해버릴 것이다.
놈들은 서울의 노원구에 있는 2층 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관에 무리를 등록하면서 적어놓은 주소가 정확했기에 손쉽게 놈들의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이시결도 그 정보를 이용해서 이곳을 찾았으리라.
“일단 저희가 먼저 들어가서 협조 요청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유지은은 후배인 김현우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탐지를 이용해 건물 내부를 대략적으로 훑어보았다.
꽤 넓은 건물이었기에 탐지 범위 내에 건물 내부 전체가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물의 구조와 안에 있는 사람의 수를 대략적으로는 파악할 수 있었다.
최소 열 명이었지만 건물 앞에 서있는 우리를 보고 도망치려는 각성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분명 출입구가 하나만 있지는 않을텐데.’
나는 조용히 서있던 문기훈을 보며 말했다.
“건물 뒤쪽에 후문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주시겠어요? 혹시나 우리가 온 걸 알고 도망칠 구멍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문기훈은 빠르게 건물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권재경이 짧게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뒤쪽에 후문이 있는 모양입니다. 문기훈 씨는 그곳에 있겠다고 하네요.”
‘역시나.’
약삭빠른 이놈들은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뒷문을 마련해두었다.
뒷문은 문기훈이 지키고 있으니 이제 안에 있는 이들은 도망가지 못하리라.
“참, 기관에서 슬슬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킬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브레이크를요?”
“네. 물론 C급의 게이트 중에서 고를 생각입니다. 박 소장님의 연구가 계속 되려면 아무래도 게이트 브레이크를 더 일으키는 편이 좋으니까요.”
기관의 박효진 연구소장은 각성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주기위해 게이트 내부의 몬스터들을 연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호자가 아니었기에 직접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연구를 위해서는 어쩔수없이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켜야하는 상황.
하지만 이제 기관에도 실력이 있는 각성자들이 꽤 늘었기에 브레이크에 관한 것은 걱정이 없었다.
잠시 말을 멈춘 권재경은 우리 앞의 2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미등록 각성자들의 잔당을 모두 잡아들인다면 이제 문기훈 씨도 기관의 일을 도울 것 같습니다. 그럼 상당한 전력이 될테고요.”
문기훈 정도라면 자신의 몫을 하고도 남을 각성자였다.
“괜찮네요.”
거기에 나라의 예지까지 있으니 위험한 일은 사전에 알 수 있을 터.
“나라는 잘 있어요?”
건물을 바라보던 권재경이 살풋 웃었다.
“네. 잘 있습니다. 꼭 다 큰 어른처럼 행동하려는게 참….”
아직 어린 아이였고 아빠의 손에서만 자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야무지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권재경의 미소에는 금세 걱정이 스며들었다.
“이제는 특성을 다루는 것도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게이트에 갈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예지를 사용하더군요.”
그동안 나라는 기관의 보호 하에 보너스 게이트를 다니며 특성을 키웠다.
그만큼 여러곳에서 쓸모가 많았기에 기관에서는 좋아라했지만, 나라의 아빠인 권재경의 입장에서는 모든 상황이 씁쓸하기만 할 터.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라의 특성은 키우는 것이 좋았다.
그때 유지은과 김현우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닥 밝지 않은 얼굴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나, 김현우가 투덜거렸다.
“무슨 권리로 자기네 무리를 확인하겠다는거냐며 엄청 난리에요. 선배가 겨우겨우 설득해서 일단 윗선에 물어보기라도 해달라고 얘기해뒀어요.”
“위에 단장이 없나요?”
내 질문에 유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단장도 선지자도 없다고 합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하필 얼굴을 확인해봐야할 사람이 이곳에 없다니.
유지은은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시 빠져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못 봤습니다. 후문 쪽은 문기훈 씨가 지키고 있으니 문제가 있었다면 연락이 왔을겁니다.”
권재경의 답변에 유지은이 살짝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요. 윗선에 물어보고 대답해준다고 하긴 했지만 성위의 수하 입장에서도 조사를 거부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걸 피하면 의심받게 되는건 성위의 수하니까요.”
잠시후, 건물의 입구로 누군가가 내려왔다.
상당히 불쾌해보이는 표정의 그는 우리를 기분나쁘게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삐딱하게 말했다.
“들어오시죠. 선지자님께서 당신들이 이곳을 살펴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누가 성위의 수하가 아니랄까봐 다른 각성자들인 우리에게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딱히 상대를 해줄 가치조차 없는 태도였다.
우리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건물 입구의 문을 닫았다.
1층의 내부는 평범한 사무실같았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여러개 놓여있고 그 앞에 몇몇의 사람들이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흘끔거리며 계속 우리를 향하고 있었기에.
한숨을 내쉰 성위의 수하 단원이 유지은에게 물었다.
“그래서 뭘 알고싶다고요?”
“이시결 씨에게 찔렸다는 각성자를 만나러 왔습니다.”
단원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에게 들으라는 듯한 인위적인 한숨이었다. 권재경의 손가락이 살짝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쪽이요.”
단원이 사무실 중앙을 가로질러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건물의 2층에는 기다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총 여섯 개의 문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빠르게 탐지로 그 내부를 훑어보았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문의 안쪽은 단장실로 보이는 방이었다. 텅 비어있었지만 안쪽의 창문이 깨져있는 것이 이시결이 이곳에서 도망치기위해 부순 창문을 아직도 고치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입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성위의 수하 단원이 계단 바로 앞의 문을 열었다.
여러개의 침대가 놓여있는 것이 휴게실 및 의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곳 같았다.
그 침대 중 하나에 한 여자가 누워있었다. 침상에 누워있음에도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
천장을 보고있던 하얀 가면이 우리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여우 구슬로 그녀의 정보를 살폈다.
[서윤지]
[천둥새 신의 가호]
천둥새가 맞았다.
유지은이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각성증을 꺼내보이며 말했다.
“기관 소속 각성자이자 경찰 유지은 경사입니다. 선생님께서 미등록 각성자였던 천둥새라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확인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잠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천둥새, 서윤지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맞습니다. 밤거미가 절 기억하고 있을줄은 몰랐군요.”
체념한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무언가 찝찝했다.
이시결의 시커에 당한 상처때문에 도망을 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대답이 너무 순순했다.
나는 팔짱을 낀채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유지은이 그녀가 누운 침대로 다가갔다.
“함께 기관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서윤지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윽….”
상당히 고통스러워보이는 것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유지은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했다.
“혹시 다른 미등록들도 이곳에 숨어있습니까?”
그녀를 바라보던 권재경이 물었다.
서윤지의 가면이 살짝 권재경을 향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모릅니다.”
대답은 단호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숨기려는 느낌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때.
쾅!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