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권재경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나는 즉시 방의 창문 앞으로 이동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곳은 건물의 뒷편. 골목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하나 있었다.
굉음의 원인은 그곳이었다.
길의 중앙 부분의 시멘트가 움푹 파인채 매캐한 먼지가 잔뜩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건….”
함께 창밖을 내려다보던 권재경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벼운 날숨.
휘날리는 먼지 사이로 드러난 문기훈의 모습에 조금 마음을 놓은 것이리라.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일렀다.
문기훈이 각력 강화를 사용해 길을 파괴했다면 필시 그 이유가 있을 터.
역시나 그의 앞에는 세 사람이 멈추어 서 있었다. 길을 막아선 그에게 발이 묶인 것이다.
그들 중 두 명은 각자의 무기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그들을 본 권재경이 양손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미등록인가보군요.”
뒤쪽에 있던 천둥새 서윤지의 가면이 우리쪽을 향하는 것이 탐지되었다.
꿀꺽.
그녀의 울대뼈가 위로 솟았다가 원위치로 돌아왔다.
가면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긴장한 낌새가 역력했다.
그 원인은 아래쪽에 나타난 세 각성자 때문이리라.
‘감추려고 했던 것이 저들이었군.’
그녀는 자신이 미등록이라는 것을 순순히 인정해서 우리를 붙잡아두었다. 그 사이에 움직임이 자유로운 셋이 이곳을 빠져나가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뒷문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의 오산이었다.
“…부단장!”
셋 중 하나의 외침은 2층에 있던 우리의 귓가에도 똑똑히 꽂혔다.
그순간.
뒷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권재경을 밀어내며 몸을 숙였다.
꽈광!
쾅!
삐이이이——
귓가에 공간을 찢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돌고래 신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회복 발동]
청력의 손상을 감지한 돌고래 신의 가호가 즉시 발동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은 끊이지 않았다.
삐이이이——
‘젠장!’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낙뢰!’
순간적인 느낌으로 자리를 피해서 낙뢰 자체는 피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일으킨 굉음은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삐이——
회복 덕분에 귓가를 울리던 이명은 점점 작아졌지만, 청각에 손상을 입었는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있을수는 없었다.
천둥새의 공격이 또 언제 이어질지 몰랐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앞쪽에 권재경이 귀를 틀어막은채 쓰러져있었다. 그에게도 큰 외상은 없었다.
살짝 떨리는 몸을 일으키며 옆을 돌아보자, 유지은과 김현우 역시 귀를 막고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천둥새 서윤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탐지!’
정신을 집중하자 즉시 마나 운용 범위 내의 모든 것이 느껴졌다.
쓰러져있는 권재경과 유지은, 김현우를 지나 방 밖으로 무언가의 길이 남아있었다.
지그재그로 뻗어나간 그 길을 보자마자 그것이 서윤지의 스킬인 벼락길의 경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벼락길은 빠르게 사라졌지만 그 경로는 이미 탐지에 잡힌 상태.
나는 망설임없이 낙뢰를 맞아 부서진 창문을 뛰어넘었다.
훅!
동시에 후문을 통해 서윤지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벼락길을 사용한채 순식간에 세 각성자의 앞에 자리잡은 후.
부서진 아스팔트 길 위의 문기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서윤지의 손끝에 하얀 빛이 맺혔다.
‘또 낙뢰다!’
이대로면 문기훈이 낙뢰에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염력을 이용해 서윤지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쿵!
“크윽!”
바닥에 쓰러진 서윤지의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낙뢰는 이미 그녀의 손을 떠나 문기훈에게 쏘아지고 있었다.
쿠웅!
먹먹한 굉음이 다시 귀를 강타했다.
비틀거리며 바닥에 착지한 후 그곳을 바라보니. 부서진 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낙뢰를 눈치챈 문기훈이 빠르게 뛰어올라 그 자리를 피한 것이다.
서윤지가 손을 뻗고 낙뢰를 일으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 2초.
문기훈이 서윤지의 특성을 잘 알고있지 못했다면 절대 피하지 못할 공격이었다. 만약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알면서도 낙뢰에 당할 수밖에 없었을 터.
‘역시 좋은 실력이야.’
허공에 뛰어오른 문기훈의 손에 어느새 창이 쥐여있었다. 전용 특성인 배주머니에 보관해두었던 것이었다.
“젠장!”
뒤쪽에서 들려온 욕지거리에, 보이지 않는 손 두 개를 추가로 만들어내었다.
각자의 무기를 빼어들고 내게 달려들던 두 각성자가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혔다.
“뭐, 뭐야!”
“움직일 수가…!”
그리고 제압되지 않은 미등록을 향해, 문기훈이 내리꽂혔다.
쿵!
문기훈이 착지한 길이 움푹 파였다.
“부탁한다. 그만 멈춰.”
어느덧 청각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는지 문기훈의 목소리가 정확히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그는 문기훈의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당신도 우리를 속인거나 마찬가지야! 배신자의 말 따위 들을 생각 없어!”
한 발 뒤로 물러선 그의 앞이 일렁이더니 투명한 방어막이 나타났다. 곧이어 날카로운 가시들이 튀어나와 투명한 방어막을 온통 뒤덮었다.
‘방어막에 가시?’
보기 드문 특성의 소유자였다.
빠르게 그의 정보를 살피자.
[김무영]
[고슴도치 신의 가호]
[고슴도치의 딜레마]
공방이 모두 가능한 고슴도치의 특성이었다.
‘흔치 않은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자세히 살펴볼 시간은 없었지만 저 방어막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적용이 가능한 것 같았다.
‘잘 키우면 도움이 되겠어!’
김무영의 특성에 감탄을 하는 사이, 그가 이번에는 손에서 기다란 가시를 만들어냈다.
방어막의 투명한 가시와는 다르게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정말 고슴도치와 같은 갈색이었다. 다만 그 크기가 사람보다 더 큰 크기의 고슴도치의 가시 같달까.
잘 벼려진 레이피어를 닮은 고슴도치의 가시가 문기훈의 가슴을 노렸다.
‘그렇게는 안두지.’
나는 미리 만들어두었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김무영을 움켜쥐었다.
방어막의 가시들이 보이지 않는 손을 꿰뚫었지만 상관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해제될 정도로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기에 김무영을 잡아두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큭!”
중간에 덜컥 멈추어버린 김무영이 이를 까드득 갈았다.
창을 움켜잡은채 반격을 하려 대기하던 문기훈이 자세를 풀었다.
“감사합니다.”
문기훈의 인사에 나는 살짝 고개를 꾸벅였다.
도망치려던 미등록들은 내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서윤지는 바닥에 쓰러진채 움직임이 없었다.
그녀의 복부쪽에 피가 고여있는 것을 보아 이시결에게 입었던 상처가 다시 터진것 같았다.
벼락길과 낙뢰를 계속해서 사용한 탓이 크리라.
천둥새 역시 잃기에는 아까운 특성이다. 빠르게 치료하지않으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천둥새 데리고 먼저 돌아가세요. 나머지는 위에 계신 분들과 함께 정리해서 가겠습니다.”
문기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쓰러진 서윤지를 조심스레 들어올리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로 몸을 돌렸다.
이후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2층의 의무실에 들어서자, 이제야 몸을 추스른듯한 권재경과 유지은, 김현우가 보였다.
“다들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대답하는 유지은의 안색은 그닥 좋지 못했다. 그녀는 살짝 내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살짝 입술을 깨무는 것이 서윤지가 낙뢰를 터트리고 도망친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옆에 선 김현우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문채 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뇨. 알았어도 막기는 힘들었을거에요. 밑에 미등록들 연행 좀 부탁드립니다.”
유지은과 김현우가 빠릿하게 움직였다. 권재경 역시 내게 깊은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는 그들을 따라 먼저 이곳을 떠났다.
의무실에 혼자 남게된 나는 잠시 탐지로 주변을 살폈다.
조금전의 전투 때문에 성위의 수하 단원들 대부분이 이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 좋은 기회를 그냥 지나칠수는 없었다.
‘조금 살펴볼까.’
조용한 발걸음을 발동한 나는 의무실을 나섰다.
기척을 죽인 소리없는 움직임.
은신과 함께 근처에 도달해서 칼을 그을때까지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전용 스킬이었다.
평소에도 패시브처럼 사용하는 스킬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스킬에 집중한 상태였다.
비어있는 무리 사무실에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남이 보아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으니.
움직여 단장실의 문 앞으로 다다간 나는 팔짱을 낀채 문을 바라보았다.
이시결이 다쳤던 곳은 이 단장실 안. 그 모습이 담긴 CCTV의 영상이 퍼졌다는 것은 이 문 안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들어간다면 분명 내 모습이 화면에 찍힐터.
주선오의 차 안에서 보았던 CCTV 화면은 문 앞 만을 비추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단장의 책상은 사각지대였다.
혹시 몰라 천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다른 CCTV는 보이지 않았다.
‘좋아.’
나는 씩 웃고는 탐지로 살핀 단장의 책상 앞 공간에 집중했다.
‘블링크.’
훅!
눈을 감았다 뜨자 주변의 풍경이 변해있었다.
빠르게 단장의 책상을 훑어보자, 이시결이 이야기했던 서류 뭉치가 보였다.
굳이 손을 대서 내 지문을 남길 이유는 없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염력으로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서류들을 허공에 펼쳤다.
촤륵!
두꺼웠던 서류뭉치가 여러개로 나뉘었다. 눈앞에 펼쳐진 서류들의 제목을 훑는 중에.
‘찾았다.’
성위의 수하 단원들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발견했다.
다른 서류들은 볼 필요가 없었다. 시간도 없거니와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는 필요없는 서류들을 다시 원래의 자리에 돌려두었다.
이번에는 단원의 정보가 적힌 서류뭉치 옆면을 꾹 눌러 편 후, 그것을 한장씩 빠르게 넘겼다.
촤르르륵.
하지만 서류뭉치가 끝을 보일때까지 박성현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김영우와 서윤지, 김무영 등의 서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름과 사진, 그리고 개인의 특이사항란에 단장, 전 미등록 각성자 무리 소속이라고 떡하니 적혀있었으니까.
‘놓쳤나?’
다시 한번 서류를 훑었다.
하지만 여전히 박성현은 보이지 않았고 선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이사항란에 선지자라고 적혀있는 단원은 없었다.
이시결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선지자를 통해 성위의 말씀을 듣는다고 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서류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선지자가 자신의 정보를 남겨두지 않은데에는 필히 이유가 있을 터였다.
문득 이전부터 의심스러웠던 가능성이 하나 떠올랐다.
‘…선지자가 박성현인가.’
지잉.
그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아마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지은이나 권재경의 연락이리라.
‘…일단은 돌아가자.’
계속 이곳에 있다가 혹시라도 되돌아온 성위의 수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건 나였다.
염력으로 서류를 처음과 비슷하게 정리해둔 나는 블링크를 이용해 단장실을 떠났다.
* * *
[미등록 각성자의 잔당 드디어 모두 소탕!]
[미등록들을 숨기고 있던 성위의 수하 무리, 그들은 알고 있었나?]
[성위의 수하 단장 김영우, ‘미등록인지 몰랐다’ 주장]
[이시결 각성자, ‘윤도아 씨와는 관계 없는 일. 또한 먼저 공격을 받은 것은 나였다’고 밝혀]
[이시결 각성자의 주장에 대한 증거, CCTV 풀 영상 공개]
언론에 공개된 CCTV의 풀 영상에는 방을 나서려던 이시결을 공격하는 천둥새 서윤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있었다.
그녀의 낙뢰를 손에 맞은 이시결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그런 그에게 서윤지가 단검을 찔러넣었다.
이시결은 그녀의 단검을 막아내며 화면에서 벗어났다.
서윤지는 계속해서 이시결을 밀어붙였고 잠시 후, 이시결은 서윤지를 찌른 후 그곳을 벗어났다.
-근데 이시결은 저기에 왜 간거?
-각성자 또 죽였다는 누명쓴게 억울해서 쫓아갔다는듯.
-그렇다고 저렇게 잠입을?
-그럼 가서 물어보리? 왜 엄한 사람한테 누명씌우냐고? 퍽이나 잘 대답해주겠다.
-아니, 내 말은. 당연히 의심받을 상황에서 의심을 받은건데 왜 쟤들을 쫓아가냐 이거지. 뭔가 이유가 있었나?
-쟤들이 죽이고 이시결한테 뒤집어 씌운거임.
-뇌피셜 확신처럼 퍼트리지 마라.
-사실 미등록이었다니까 별로 안타깝다는 생각은 안 듬. 오히려 도망다니다가 저꼴이 났으니 잘됐다 싶은데.
-그래도 사람 찌른 건 찌른거에요…. 왜 아직도 그냥 풀어두는건지 모르겠네….
-갓도아가 컨트롤 한다잖아. 걍 신경 끄고 늬들 할 일이나 해라, 좀.
-컨트롤 잘 됐으면 이 사단 나지도 않았지.
이시결은 무고한 각성자를 찔렀다는 오해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둘러싼 의견은 분분했고 나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여전했다.
“근데 누나.”
가만히 영상을 지켜보던 윤도빈이 나를 불렀다.
“이것만 보면 얘기들었던거랑 좀 다르지않아?”
“뭐가?”
내 물음에 윤도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저 사람은 선지자한테도 찔렸다고 했는데. 이 영상에는 선지자는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시결이 선지자에게 찔린 것은 서윤지에게 밀려 화면을 벗어났을 때 일 것이다.
“화면 밖에 있었을 거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나 역시 그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시결이 거짓말을 했을리는 없었다. 그가 옆구리에 비수를 찔렸었다는 것은 주선오와 이리나가 증언해줬으니까.
우연일지도 모르지만 선지자는 CCTV가 비추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사전에 그 범위를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의식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완벽하게 CCTV를 벗어나 있을 수는 없었다.
“설마 이럴 걸 예상했나?”
윤도빈이 중얼거렸다.
‘선지자가 박성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
그들이 서윤지와 김무영 등이 미등록임을 몰랐다고 주장하는것도 거짓말이었다.
어제 보았던 성위의 수하 단원 서류에 그들이 전 미등록 각성자 무리였다는 것이 떡하니 적혀있었으니까.
이놈들은 미등록들을 이용했고 꼬리가 밟히자 잘라버린 것이었다.
“그나저나 빨리 그 각성자를 죽인게 누군지 밝혀져야 누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어질텐데.”
윤도빈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무릎 위의 우부를 쓰다듬었다.
신수연을 죽인 범인은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찾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 사람은 이미 죽었을 테니까.
이번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다면 내 계획과는 다르게 이시결을 다시 기관의 지하로 돌려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건 곤란한데….’
하지만 며칠 후, 생각치도 못한 형태로 일이 해결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