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박성현(남, 23세) 각성자는 성위의 수하라는 무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성자이다.
그는 30분만에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클리어함으로써, 성위의 수하 단장이었던 김영우의 죽음으로 침체되어있던 무리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그에 박성현 각성자는 성위의 수하 차기 단장으로 지목받고 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회귀를 한 나도 40분이 최단기록이었다. 그때는 새로운 특성인 악마의 고양이를 실험해보기위해 느긋했던 면이 없지않았지만.
물론 본인이 가진 특성과 게이트가 잘 맞아 떨어지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박성현은 각성은 커녕 가호를 받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게이트에 입장했고, 어떻게 클리어까지 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30분 만에.
박성현이 나처럼 회귀를 하기라도 한건가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럴리가 없었다.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가까스로 기사에서 눈을 떼어 앞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겨울의 차디찬 공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 폐 속까지 스며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박성현이 성위의 수하 사무실을 떠나서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까지 비어있던 5시간.
‘그 사이에 가호를 받은건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박성현은 가호만을 가진 상태로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30분만에 클리어해낸 것이다.
회귀 전 놈이 받았던 가호는.
‘오딘의 까마귀.’
전투에 관련된 가호는 아니었다. 프레리독 신의 가호를 받은 최은서처럼 상대방의 감정을 조작하고 기억을 읽는 정신조작계열의 가호였다.
가호와 함께 주어지는 전용 스킬로 몬스터의 정신을 조작할수는 있겠지만. 그래봤자 전용 스킬의 레벨은 겨우 1이었을텐데.
그렇다고 박성현이 무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순수한 무력으로 따지자면 평범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놈이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30분만에 클리어했다는건….’
지난 1년. 과거는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흘러갔다. 나의 개입으로 인해 달라진 것이었다. 때문에 다가올 미래 또한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를것이다.
내가 회귀를 하고 원래 박성현이 택했어야할 특성을 내가 선택하는 바람에. 어쩌면 놈에게 주어지는 가호 또한 변했을지도 모른다.
직접 박성현을 만나 가호의 정보를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단언할 수 없다.
지잉—
잠시 내려두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것을 들어 화면을 보니, 이시결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말해.”
통화를 연결하자 평소보다 조금 달뜬 이시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우 구슬이 저한테 없는게 아쉽군요. 있었다면 바로 놈의 정보를 확인했을텐데 말이죠.]
이시결은 자신이 점찍어둔 먹잇감이 바로 성장을 한 것이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박성현이 빠르게 성장을 할수록 이시결이 그를 잡는 시간도 빨라질테니까.
“미행하는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어?”
[청계천으로 가서 한 상가 건물로 들어갔던게 전부입니다. 그곳에서 두 세 시간 정도 머무른 후 바로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청계천?”
잠시 기억을 더듬은 나는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아이템 상점.’
게이트는 끊임없이 열렸고 각성자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초반의 사람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게이트에 입장했지만, 아이템의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아무런 준비없이 게이트로 뛰어드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첫 게이트의 입장 전, 혹은 첫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각성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의 구매를 원했다.
그렇게 수요가 늘어나니 각성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아이템들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성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버려가며 아이템을 팔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구매와 판매를 맡아서하는 중개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성자를 대신해 아이템의 거래를 해주었고 그 사이에서 수수료를 챙겼다. 그 수수료가 꽤 쏠쏠하다는 것을 알게되자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놓칠리 없었다.
가호를 받았지만 게이트에 입장하지 못하는 가호자나 혹은 가호를 받지 못한 일반 사람들도 아이템을 거래하는 것은 가능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아이템 거래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템 상점은 순식간에 커지게 되었고 그런 상점들이 몰려있는 곳이 바로 청계천이었다.
“거기서 뭘 했는데?”
[건물 안에까지 따라 들어갈 수가 없어서 뭘 했는지는 모릅니다. 아이템 상점들이 있는 곳이니 무언가를 구매했겠죠.]
문득 내 오른쪽 손목에 팔찌처럼 새겨져있는 돌고래의 형태가 눈에 띄었다.
레부를 처음 만났을 때, 놈에게서 얻어냈던 EX급 아이템 돌고래 신의 가호.
‘…가호를 산건가?’
박성현이 그곳에서 어떠한 신의 가호를 구매한 것이라면,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른 아이템들을 함께 구매해서 게이트를 클리어하러 간 것이라면.
가호만 얻은 상태에서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는데에는 무리가 없을 터.
하지만 아이템 상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은 최대 A급의 아이템이었다. S급의 아이템은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다.
EX급의 아이템은 경매에서조차 볼 수 없었다.
신의 가호가 담겨있는 아이템이라면 분명 EX급. 그런 아이템을 상점에서 구했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일이었지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야.’
아이템의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세계 각성 기관에서는 아이템 거래에 대한 법을 만들었다. 상세한 것들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꼭 기억해야할 것이 몇 개 있었다.
각성 기관의 허가를 받은 아이템만 거래가 가능한 것과 거래 내역의 장부를 필수적으로 작성해야하는 것.
그것을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템은 게이트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게이트 밖에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가호자, 혹은 각성자 뿐이라는 것. 아이템을 구매하기위해서는 가호자 등록증 혹은 각성자 등록증을 보여야만 했다.
이것들이 게이트 밖 세상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규칙이었다.
박성현이 청계천에서 EX급의 아이템을 구매했다면 위의 사항들에 모두 위반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가호를 구매했다면.
그런 거래를 할만한 놈들은 딱 하나였다.
‘암거래 상인들.’
놈들은 합법적인 아이템 상점의 그늘에서 몰래 높은 등급의 아이템들을 엄청난 고가에 거래하는 놈들이었다.
“누구한테 뭘 샀는지 알아볼 수 있어?”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완벽한 확신으로 만들어야했다.
[안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시결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와의 통화를 마치자 핸드폰 화면에 다시 박성현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박성현은 분명 성위의 수하 단장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게 놈이 김영우를 죽인 이유.’
박성현이 언제부터 성위의 수하에 개입이 되어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각성을 한 박성현에게 김영우는 쓸모없어진 인형일 뿐.
김영우가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성위의 수하 이미지에 타격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성현은 각성을 한 후, 최단 시간 게이트 클리어로 단번에 무리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사실 첫 회귀 전에는 박성현이 어떻게 각성을 했고 성위의 수하 단장이 되었는지의 경위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놈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조사했던 것은 굴 안의 뱀 유지은. 그녀가 파헤쳤던 정보는 박성현이 성위의 수하 단장이 된 이후부터였다. 그래서 각성의 시기를 추정하기만 했을 뿐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다.
이제는 회귀 전의 일들이 거의 무의미해질 지경이었기에 놈의 행동을 주시해야하겠지만.
이번 게이트 클리어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그 역시 당분간은 큰 일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당분간은 숨을 죽인채 이시결이 알아오는 정보들로만 놈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나는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 * *
박성현은 금세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비록 윤도아처럼 첫 게이트가 아니었고 외계인을 숭배하는 무리에 소속된 각성자였지만.
윤도아를 뛰어넘는 게이트 클리어 기록을 세웠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 30분 클이라니. 대체 무슨 특성이래요?”
턱을 괸 정시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나라를 안고 있던 권재경 역시 궁금한 눈치였다.
하지만 김지석이라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줄수는 없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도아 씨처럼 특성을 적지 않았거든요.”
“엥?”
김지석의 말에 정시언이 고개를 번쩍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도아 언니는 좀 특별한 경우 아니었어요? 먼저 게이트를 클리어한 후에 등록을 했으니까 그렇다쳤다지만.”
정시언의 말대로 윤도아는 가호자 등록을 하기 이전에 게이트를 두 개나 닫았다. 그것도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가호와 특성을 모르더라도 윤도아에게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것들을 굳이 적어달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정시언이 의문을 품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미 가호자였던 박성현이 아무 게이트도 클리어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호자 등록을 하려면 그 가호와 특성을 적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김지석은 고개를 저었다.
“박성현 씨는 이번 게이트를 클리어 한 후에 등록을 했어요.”
“가호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겁니까?”
질문을 던지는 권재경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러자 품에 안겨있던 나라가 아빠의 미간을 문질렀다.
그런 나라의 행동을 보며 살짝 미소를 띤 김지석이 대답했다.
“네. 가호는 진작에 받았지만 성위의 말씀에 따라 그동안 가호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헛소리래요? 그거 미등록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정시언이 확 인상을 구겼다.
미등록 각성자들의 사태 이후로 모든 가호자나 각성자들은 등록을 필수 절차로 여겼다.
물론 여전히 권고일 뿐, 그에 응하지 않았을 시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을 뿐.
권재경이 안고 있던 나라를 옆의 소파에 내려두며 물었다.
“기관에 왔던게 그럼 각성자 등록을 하려고 온 거였습니까?”
박성현은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30분만에 클리어한 다음날, 기관을 찾았었다.
“겸사겸사였습니다. 비어있던 성위의 수하 단장 자리에 이름을 올릴 겸, 각성자 등록도 할 겸.”
그렇게 바로 등록을 하러 기관에 왔기에 이전의 상황에 대해 딱히 무어라 책을 잡기도 애매했다.
그에 정시언이 조금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가호랑 특성도 안 적었다고요? 그걸 그냥 뒀어요?”
“도아 씨와 같은 경우가 되버렸으니까요.”
박성현에게서 각성자 등록 신청을 받은 것은 김지석이었다.
그때만해도 김지석은 윤도아와 어깨를 견줄만한 각성자가 한국에 또 나타났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라에 실력이 좋은 각성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와 각성 기관의 위상은 더욱 올라가고 그만큼 기관의 힘 역시 더욱 커지기에.
그래서 일부러 기관에 찾아온 박성현을 응대했지만. 그는 윤도아를 예로 들며 자신의 가호와 특성을 적는 것을 거부했다.
“이미 전적이 있기에 안된다고 거절하지도 못하셨군요.”
권재경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안타까움이 실려 있었다. 김지석이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뭐야. 그런 얘기 들으니까 조금 찝찝해지네.”
정시언이 입술을 비죽였다.
“사실 저도 성위의 수하 쪽에 한 번 가볼까 싶었거든요.”
“성위의 수하에?”
“네. 요새 어느 무리에 들어갈지 고민중이라서 그쪽도 상황을 좀 봐볼까 싶었거든요. 새로 올라간 단장이라는 사람이 30분만에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게 궁금하기도 하고.”
현재 무리가 없는 가호자나 각성자들은 정시언과 같은 이유로 성위의 수하에 관심을 가졌다.
“뭐, 가더라도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요.”
성위의 수하는 외계인을 숭배하는 무리였다. 그곳의 단장이 된 박성현은 성위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무리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 분개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사람이 더 몰리는 것도 있었다. 자신은 선택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도전 정신이었다.
“그닥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요.”
권재경의 말에 김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각성 기관의 이사로서 무리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과 자신의 편견을 남에게 심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바깥으로야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위의 수하는 상당히 찝찝한 곳이었다.
게이트를 일으킨 원인이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을 숭배하는 것도 그렇고, 성위의 뜻이라며 가호를 숨기던 것, 그곳의 전 단장이 단원을 죽이고 자살을 했다는 것.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박성현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웃고 있는 얼굴과 공손한 말투, 예의를 갖춘 행동거지. 첫 만남부터 호감을 살만한 인물이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
박성현은 윤도아와는 전혀 달랐다.
짧고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실행하는 윤도아와는 다르게 박성현은 김지석을 진득하게 설득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틀린 말들도 아니었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상당히 집중을 한 것도 인정은 하지만. 이후 생각해보니 무언가 말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불편한 사람이었어.’
웬만하면 그와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좀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근데 도아 언니는 요새 뭐해요? 안보이던데.”
“혼자 활동하셔서 잘은 모르겠지만 도빈 씨 이야기를 들어서는 집에도 안오고 게이트에서만 사는 것 같더라고요.”
“헐. 박성현 단장 나타나고 자극이라도 받은 것 같은데요?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네.”
정시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점에 대해서는 김지석도 걱정이 많았다.
열심히 게이트를 닫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걱정스러운 것 역시 당연했다.
‘부디 조심하셔야할텐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