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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52화 (153/201)

제152화

며칠동안 박성현에 대한 것은 이시결에게 맡겨두고, 나는 평소처럼 게이트를 도는 데에 집중했다.

이번에 입장한 게이트는 상당히 이상했다.

‘…분명 깊은 지하의 광산인데.’

쏴아아아…

비가 오고 있었다.

그것도 여름의 장마철같은 폭우가.

게다가 광산 안을 비추고 있어야할 횃불도 모조리 꺼진 상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레부를 불러내어 주변을 밝히게 했겠지만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곳에서는 그것도 불가능했다. 레부는 이 축축한 공기 속에 고개를 내미는 것조차 힘들어할 것이다.

입고 있던 코트가 순식간에 젖어들어 몸이 무거워졌다.

‘우선 주변을 살펴야….’

빛이 없더라도 마나 운용 범위 내의 지형지물은 탐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곧바로 주변의 상황에 집중했지만.

이상하게도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같았으면 집중을 하는 즉시 주변의 마나들이 느껴지며 이곳의 공간을 그려줬을텐데.

‘뭐지?’

두어번 다시 집중을 해보았지만 주변의 공간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순간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박성현의 각성과 관계가 있는걸까? 놈이 각성을 해서 내가 빼앗았던 악마의 고양이 특성에 문제가 생긴건가?

‘옵션 확인.’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글자들이 촤르륵 떠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떠오르는 글자에 집중했다.

은밀한 고양이의 특성에 이어.

악마의 고양이 특성이 나타났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당연히 특성이 사라질리는 없었다.

한 번 받은 전용 특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두 번의 회귀를 거쳤음에도 특성들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니.

비전 마법의 특성을 사용했던 박성현이 각성을 한다고해서 사라질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박성현의 등장이 내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순간적인 생각때문에 흘러나온 식은땀이 차가운 빗물에 섞여 흘러내렸다.

얼굴의 빗물을 훑어내린 나는 반짝이는 글자들을 없앴다.

악마의 고양이 특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니, 이 공간 자체의 문제이리라.

확인을 해볼겸 나는 다른 스킬을 사용해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

주변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나방패.’

‘마나구.’

‘마나막.’

그 어느것도 생성되지 않았다.

결론이 났다.

이 공간에는 마나가 없었다.

‘마나가 없는 곳이라….’

앞선 누군가가 이곳의 마나를 몽땅 써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입장 전 이 게이트에 입장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 처음부터 마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게이트 안에 그런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첫 회귀 전의 나는 마법사가 아닌 암살자였다. 암살자가 마나에 제약을 받을리는 없었으니 어디에 마나가 있고 없고 따위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마나는 어디에든 존재한다는 것 뿐이었다.

‘정보를 갱신해야겠는걸.’

어쨌든 이곳에는 마나가 없었고, 따라서 이곳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더라도 나한테는 은밀한 고양이, 암살자의 특성이 남아있었다.

마나가 없다는 것 외에도 묘한것은 또 있었다.

나는 빗물에 젖은 입술을 살짝 핥았다. 혀끝에 즉시 느껴지는 강렬한 짠맛.

‘바닷물이야.’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폭우에서는 비릿한 바다내음이 물씬 풍겼다.

바닷물이 비처럼 내리는 광산이라니.

아무리 게이트 안에서 기현상이 많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곳이 정말로 바닷속에 위치한 광산일지도 몰랐지만. 만약 그렇다면 물이 비처럼 퍼부을 것이 아니라 이 공간 자체를 가득 메우고 있어야했다.

‘정보에서 말한 이상현상이 이런거였나.’

입장 전에 보았던 게이트 클리어 방법은 이 광산의 이상현상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상현상이라고 해봤자 광산에 없는 몬스터가 나타난다거나 그런 부류의 것일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것은 생각도 못한 현상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이 폭우를 뚫고 움직이는 것은 힘들었다.

일단은 이 비를 일부분이라도 멈춰야했다.

“우부.”

내 부름에 팔목에 감겨있던 물 덩어리가 스르륵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푸!”

아래쪽에서 경쾌한 우부의 대답이 들려왔다.

“푸? 주인 어디있어? 우부, 안 보여!”

“여기.”

살짝 쪼그려앉아 앞을 더듬었다. 물컹한 우부의 몸체가 손끝에 닿았다.

“푸!”

놀란 우부가 펄쩍 뛰는 것이 느껴졌다. 하마터면 그 묵직한 물덩어리에 얼굴을 맞을 뻔 했다.

“가만히 있어. 일단 이 주변에 비 좀 막아봐.”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푸우!”

우부의 외침과 함께 내게 쏟아지던 빗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퍼붓던 비가 사라지니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묵직한 코트를 벗었다.

툭! 철벅.

코트가 바닥에 떨어지자 고여있던 빗물이 출렁거렸다.

젖은 머리카락들을 질끈 묶은 후 허리 뒤에 꽂아뒀던 심연의 불꽃을 꺼내들자.

화륵.

심연의 불꽃의 불빛 덕분에 주변이 밝아졌다.

“푸!”

바로 앞에 있던 우부가 갑자기 쏟아진 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비에 젖어 축축한 흙바닥 위에 앞뒤로 쭉 뻗어있는 낡은 철로가 있었다.

‘멋모르고 움직였으면 넘어졌겠는데.’

그랬다면 철로 위에 비죽비죽 솟아난 철사와 못 등에 몸이 성치 못했으리라.

심연의 불꽃을 들어올려 위쪽을 비추자, 내 위로 동그란 물의 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돔 형으로 이루어진 유리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우부가 내게 물이 닿지 않게 하기위해 물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너머로 비를 만들어내는 구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천장의 암벽이 구름인냥 그곳에서 곧바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공간과 연결이라도 된건가?’

몸을 일으키며 우부에게 물었다.

“넓힐 수 있어?”

“푸! 얼마나?”

“최대한.”

“푸! 최대한!”

물의 막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공기가 바닷물을 밀어내어 빈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공간이 순식간에 넓어졌다.

‘역시 물 슬라임.’

나는 피식 웃으며 우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여전히 어리고 철없고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쓸만하긴 했다.

“푸우! 우부 잘했어? 푸푸푸!”

우부가 기분이 좋은듯 내 손에 얼굴을 부볐다.

“유지해.”

나는 몸을 일으킨 후 심연의 불꽃으로 사방을 비추어보았다.

십 여 미터 쯤 비가 갠 시야가 확보되어 있었다.

통로의 폭이 한 3미터 쯤은 되어보이는 것이 꽤 큰 광산인 것 같았다. 주변을 감싼 통로의 암벽은 잔뜩 젖어있었고 통로 위쪽의 횃불은 흠뻑 젖은 나무 막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푸푸푸! 주인, 여긴 바다인가아?”

젖은 흙바닥에 발자국을 남기며 주변을 맴돌던 우부가 물었다.

“아니야.”

“푸우, 근데 왜 바다같을까아?”

우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물에서 바다 내음을 맡은 모양이었다.

“잘 막기나 해봐.”

“푸푸, 우부만 믿어!”

우부의 대답에 크게 신용이 가지는 않았다. 이곳에 마나가 있었다면 내가 직접 주변의 물들을 움직여 막았을텐데. 그럴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상현상의 해결이라.’

땅 속 깊숙한 곳에 이렇게 비가 내린다는 것이 평범한 현상은 아니었으니.

분명 비를 내리게한 원인이 있으리라.

그걸 찾기위해 무턱대고 길을 따라 걸을 수만은 없었다. 이런 광산 안에 길이 딱 하나일리 없다. 분명 갈림길이 나타날 터. 잘못 길을 들었다가는 몇날 며칠을 이곳에서 보내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시킬 방법은 있었다.

“레부.”

내 부름에 심연의 불꽃 안에 있던 레부가 스윽 고개를 내밀었다.

“…쿄, 주인. 제가 나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조그마한 크기의 레부가 젖은 바닥을 훑어보며 말했다.

“푸푸푸, 레부는 겁쟁이래요. 푸푸푸!”

우부가 레부를 한껏 약올렸지만 환경이 환경인지라 레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우부가 이곳의 물들을 끌어다가 레부에게 쏟아부으면 레부는 손 하나 까닥 못하고 죽어버릴테니까.

“쿄오….”

축 쳐져있는 레부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나침반.”

“쿄.”

심연의 불꽃에서 레부의 팔이 솟아났다. 그 팔은 본인의 머리 속을 뒤적이더니 잠시후 낡은 나침반을 쑥 꺼내들었다.

“여기있습니다.”

예전에 주선오, 신교진과 함께 갔던 쌍둥이 게이트에서 레부가 물어온 것이었다. 그때는 나침반의 몸체만 있어서 사용할 수 없었지만 컨벤션의 아이템 마켓에서 찾아낸 자침 덕분에 나침반으로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원하는 것의 위치를 알려주는 아주 좋은 성능.

“쿄, 저는 그럼 들어가봐도 되겠습니까?”

레부가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 축축하고 비릿한 공기가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레부가 순식간에 심연의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나침반의 뚜껑을 연 후 내가 찾아야할 것을 떠올렸다.

‘비의 원인.’

추상적인 목표라서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을 할지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자침이 핑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자침이 멈추었다.

자침이 가리키는 곳은 두 시 방향.

“우부, 이동.”

“푸!”

철로를 따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심연의 불꽃의 불빛으로는 그닥 멀리 내다볼 수가 없어서 이동은 조심스러웠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비가 퍼부었기에 주변의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고 공간 가득한 바다 비린내에 냄새를 맡을 수 도 없었다.

혹시나 모를 습격에 대비해 광휘의 서리 또한 꺼내 들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적을 인지하고 단검을 뽑아들기까지의 시간동안, 적의 칼이 나를 꿰뚫을 가능성이 더 크다.

차갑게 젖어든 피부가 예민하게 주변을 경계했다.

서늘한 긴장감.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날카로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느끼는 이 그리운 감각에 웃음이 날 뿐이었다.

‘옛날 생각 나네.’

악마의 고양이 특성을 얻기 전. 게이트에 입장할때마다 항상 느끼던 감각이었다.

나에게 주변을 정찰해서 무엇이 숨어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스탯이나 스킬은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그저 내 소리를 지우고 내 자취를 감추는 것 뿐.

그렇게 나를 숨긴 채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이 내 사냥법이었다.

“푸, 갈림길!”

두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우리는 나침반을 참고하여 방향을 잡은 후 계속 걸었다.

사람 여럿이 함께 걸을 수 있을 정도였던 통로는 이제 철로만이 지날 정도로 좁아졌다.

그런데다가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도 나타났다.

철로 위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사람 둘 정도는 거뜬히 올라탈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광차였다.

“푸, 이건 뭐야?”

광차의 안에는 빗물이 가득했다.

철로가 지날만한 공간밖에 되지 않는 좁은 길목이었기에 광차를 밀어내지 않는 한 이곳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저 물 속을 건너가자니 영 찝찝했다. 나는 몸을 길게 늘려 광차의 안을 들여다보는 우부에게 말했다.

“안에 물 빼.”

“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부가 광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광차의 안에 있던 물이 사방으로 넘쳐흘렀다.

잠시후 거대해진 물고양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푸우우!”

물로 만들어진 가짜였지만 거대한 고양이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어렸을 적의 로망이 떠올랐다. 커다란 고양이와 교감을 나누는 그런….

“푸푸푸! 우부 또 커졌다아! 주인보다 크다!”

이렇게 어린 슬라임과 교감이 될리가 없었다.

“내려와.”

우부가 광차 안에서 나오기위해 앞발을 꺼내들었다.

끼익.

그러자 물의 무게에 밀려 광차가 스르륵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우? 밀린다아?”

당황한 우부가 버둥거리자 광차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알아서 광차를 밀어내주고 있었기에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광차는 점점 속도가 붙었고 심지어 앞쪽은 내리막길이었다.

“푸우, 주인! 우부 살려줘!”

우부가 울먹이며 외쳤다.

그냥 펄쩍 뛰어내리면 될것을 광차에 갇힌 것마냥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우부가 멀어지게 되면 나는 또 폭우에 노출되게 된다. 다시 비를 맞고 싶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쉰 나는 우부가 타고 있는 광차를 쫓았다.

“물 뱉어.”

그러자 우부가 입에서 물줄기를 뱉어냈다.

“푸우우!”

나는 물줄기를 피해 질퍽이는 흙바닥을 박찼다.

훅!

우부가 타고 있는 광차 위에 오르자, 내 무게 때문에 광차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한참동안 물줄기를 뱉어낸 우부는 평소의 크기로 돌아왔고 나는 편안하게 광차의 안에 앉을 수 있었다.

쿠구구구!

광차가 낡은 철로를 따라 미끄러졌다.

심연의 불꽃이 비추는 범위가 상당히 작았기에 앞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런 속도라면 주변에 몬스터가 있더라도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쿵!

쿠구구궁!

광차가 크게 덜컹거리더니 갑자기 앞쪽으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푸우우!”

“!”

나는 우부를 끌어안고 광차를 꽉 붙잡았다.

앞으로 뻗어있어야할 철로가 무너진 지반 사이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엄청난 폭우에 약해진 지반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푸우우우우! 우부 떨어진다아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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