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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54화 (155/201)

제154화

쿠구구구구…!

묵직한 진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진동에 광석의 잔해들이 스스스 흩어져내렸다. 그 범위가 상당히 큰 것이 그만큼 덩치가 커다란 놈인 것 같았다.

조금 물러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뒤로 도약을 하는 사이, 잔해를 뚫고 무언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악!

거대한 빌딩이 하나 치솟는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솟아오른 잔해들이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져내렸다.

그 사이로 레부의 빛을 받아 붉게 번들거리는 가죽이 얼핏 보였다.

파스스스.

잔해들이 떨어지며 일으긴 먼지들이 가라앉자 놈의 모습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머리 위로 돋아난 가시는 구부정하게 굽어있는 등까지 일렬로 죽 이어져있었다.

“쿄오! 린드웜입니다!”

한껏 고개를 처들고 그것을 바라보던 레부가 외쳤다.

“…저게 린드웜이라고?”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린드웜은 몸집이 작고 물가에 서식하는 몬스터였다. 아무리 커봤자 3미터를 넘는 린드웜을 본 적이 없었는데.

눈 앞의 이놈은 500여 미터 쯤 되는 동굴의 천장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건 잔해 사이로 튀어나온 것이 몸의 절반정도라는 것. 어떻게 이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쿄오…. 린드웜이 이렇게까지 자랄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레부 역시 이렇게 커다란 놈을 보는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때 놈의 등에 돋아난 가시가 스르륵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가시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놈이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파스스스…

놈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의 잔해들 역시 꿈틀거렸다.

나는 잔해의 움직임에 휩쓸려 속에 파묻히는 불상사를 막기위해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곧 놈의 얼굴이 나타났다.

공룡처럼 툭 튀어나온 주둥이의 위에서부터 시작된 가시가 머리를 타고 등으로 이어져있었다. 불뚝 튀어나온 눈두덩이 가죽의 가느다란 틈 사이로 노란 눈동자가 보였다.

앞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뱀처럼 기다란 목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잔해의 깊은 곳 어딘가에 목과 비슷한 두께의 두 다리와 기다란 꼬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놈이 비죽 튀어나온 주둥이를 우리쪽으로 내밀었다. 주둥이의 끝에 있던 콧구멍 두 개가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킁킁.

내 냄새를 쫓는 것이었다.

원래도 시력이 좋지 않은 린드웜이었다. 저놈의 눈은 이 쓰레기장의 어둠에 익숙해져있어 다른놈들보다 더 퇴화됐으리라. 때문에 청력과 후각만으로 나를 찾는 것이었다.

놈의 머리는 냄새를 쫓아 내가 서있는 곳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킁!

눈앞에 놈의 콧구멍이 멈추어섰다. 위에서 보았던 좁은 광산의 길목같이 뻥 뚫려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안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을 법한 크기.

훅!

그 안에서 뜨끈한 바람이 불어나왔다. 남의 숨결을 코앞에서 받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이런 거대한 몬스터, 게다가 사체를 먹고 사는 놈의 숨결을 맞으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뒤이어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는 도저히 참아주기가 힘들었다.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심연의 불꽃을 횡으로 그었다.

촤악!

갑작스럽게 코를 베인 린드웜이 내게 가져다댔던 주둥이를 뒤로 뺐다.

놈의 코에는 굉장히 많은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니 상당히 고통스러우리라.

놈은 빌딩같은 목을 마구 휘두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캬아아아아아!”

동굴 안에 놈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그 소리에 이곳의 청소부들이 모조리 몰려드는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것도 잠시. 내 위치를 파악한 놈은 나를 삼키기위해 입을 벌렸다.

쩌억!

그 벌어짐은 평범하게 입의 끝이라고 생각할법한 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얼굴을 가뿐히 지나쳐 목을 타고 내려가 앞다리가 있어야할 곳까지 도달한 후에야 멈추었다.

크기가 큰 먹이를 한 입에 삼키기에 아주 용이해보이는 입이었다. 그 안의 이빨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컸지만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뱀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쥐의 시점을 겪는 것 같았다.

한껏 벌어진 린드웜의 입이 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촤악!

놈의 입을 피해 잔해들을 박차며 도약했다.

훅!

입이 큰 만큼 놈에게 삼켜지지 않으려면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했다.

덩치가 큰 만큼 놈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기에 놈이 내가 서있던 곳을 통째로 삼키기 전,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덥썩!

콰득!

린드웜이 한 입 가득 잔해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꿀꺽.

입에 머금은 잔해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놈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 그곳은 텅 빈 구덩이만이 남아 있었다.

거의 굴삭기로 잔해를 퍼낸 것 같은 수준이었다.

고작 나 하나를 삼키려고 저 많은 잔해들까지 집어 삼키다니.

잠시 잔해들을 음미하던 놈은 곧 다시 괴성을 내질렀다. 신선한 고기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나보다.

“캬아아아악!”

다시 한껏 입을 벌린 놈이 또 잔해를 양껏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삼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그야말로 청소부다운 행동이었다.

잔해들을 모조리 입에 쓸어 담아서라도 나를 먹고야 말겠다는 그 집념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 성의가 갸륵해서라도 조금 더 놀아주고 싶었지만. 잔뜩 젖은 옷이 영 찝찝했다.

‘빨리 처리하고 게이트를 나가야겠어.’

나는 두 단검을 고쳐쥐었다.

린드웜의 가죽은 상당히 단단해서 웬만한 칼은 튕겨내었다.

하지만 내 두 단검, 심연의 불꽃과 광휘의 서리라면. 거기에 백어택의 효과까지 더해진다면. 저 커다란 놈의 등가죽을 뚫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조금 아쉬운건 이곳에 빛이 없다는 것이었다. 위쪽에서 떨어지는 빛이 있다면 놈의 그림자를 밟고 쉽게 등으로 올라갈 수 있을텐데. 지금 이곳을 밝히는 것은 내 어깨 위의 레부였다. 내가 어디에 있든 린드웜의 그림자는 반대편에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놈을 잡기에는 충분하다.

나는 일부러 발을 크게 굴러 놈을 유인했다.

쓰레받기처럼 광석의 잔해를 입에 쓸어담던 놈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게 몸을 돌려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놈이 일으키는 잔해의 파도가 밀려들었다.

촤르르륵!

린드웜이 십 미터 쯤 앞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훅!

순식간에 바닥이 멀어졌다. 나와 함께 떠오른 레부의 불빛이 아래쪽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빛 아래로 잔해를 밀고 들어오는 린드웜의 머리가 보였다.

촤르륵!

중력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아래쪽에는 잔해를 한껏 머금은 놈의 가시가 돋힌 등이 있었다.

나는 두 단검을 역수로 고쳐쥐었다.

불꽃의 날과 서리의 날이 동시에 놈의 등가죽에 닿는 순간.

콰앙!

놈의 가죽은 물론 그 안의 뼈와 내장, 심지어 놈이 삼켰던 광석의 잔해들까지.

모든것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주변의 잔해들이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순간적으로 폭발한 힘 때문에 잔해들이 사방으로 밀려나있었고 나는 윈드웜의 시체와 함께 쓰레기장의 바닥을 밟고 있었다.

거대한 깔대기와 같이 움푹 파인 구멍이 생겨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구멍은 일시적일뿐.

금세 주변의 잔해들이 비어있는 공간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스스스슥.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린드웜의 사체와 함께 광석의 잔해 사이에 묻힐 상황.

하지만 나는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전율.

기분좋은 오싹함.

심연의 불꽃과 광휘의 서리로 이런 공격을 한 것이 대체 얼마만인지!

첫 회귀 전 겪었던 첫 번째 시험 이후로, 아니. 아니다. 그때는 오만의 그리폰의 등을 찌르는데 실패했었다.

그러니 이 감각을 느꼈던 것은 그것보다 더 전의 일이었다.

광휘의 서리를 얻은 이후로 여러개의 게이트를 닫았지만 두 단검의 합을 확인해볼만한 곳은 없었다. 비전 마법으로만 해결을 한 이유도 있었지만 이정도로 큰 위력을 필요로 하는 게이트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게이트에 마나가 없는 것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덕분에 이전의 그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쿄, 주인? 나가셔야할 것 같습니다.”

앞에 선 레부가 나를 보며 말했다. 고양감에 취해 놈이 내려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어느새 구멍 안으로 쏟아진 잔해는 내 발목 높이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간 정말 묻히게 될 판이었다.

나는 레부를 데리고 도약해 그곳을 벗어났다.

다시 잔해의 위에 올라서고보니 잔해가 쌓인 깊이가 생각보다 깊었다.

그러니 저런 크기의 린드웜이 숨어있을 수 있던 거겠지.

린드웜의 사체는 잔해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크게 벌려 위로 튀어나왔던 주둥이 윗부분 정도만이 이곳에 거대한 린드웜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는 짜릿한 감각을 움켜쥐었다.

쓰레기장의 청소부 린드웜을 제거했으니 이제 노커에게 박아두었던 표식을 추적해야했다.

뒤쪽에 하얀 빛이 두둥실 떠있었다. 크기가 크게 작아지지 않은 것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빨리 도망가더니.’

표식을 따라 이동하자 곧 광석의 잔해 대신 평범한 흙바닥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깨 위에 있던 레부를 내려놓고 녀석을 앞세워 계속 걸었다.

곧 위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타났다. 광산으로 향하는 곳이리라. 노커도 이 위쪽에 있는 것 같았다.

한참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광산 코볼트 떼에게 다굴을 당하고 있는 노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오, 인간! 아까 본 인간! 제발 나 좀 도와줘!”

“…….”

당당하게 외치는 노커를 한심하게 바라본 나는 빠르게 코볼트들을 정리했다.

“역시, 인간! 너 완전 쎄구나? 좋아, 좋아. 아주 괜찮은 인간이 들어왔어!”

노커가 호탕하게 웃었다.

혹여나 또 도망을 칠세라 나는 놈의 뒷덜미를 덥썩 잡아올렸다. 이전에 잡아올렸던 난쟁이 왕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래서. 안내자 역할을 좀 하지, 이제?”

놈을 번쩍 들어올려 눈을 맞추자 노커가 다시 자신의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그래, 그래! 나도 억울하다니까! 여기의 안내자는 나인데 글쎄 정체모를 어떤 놈이 내 자리를 꿰차려고 하고 있다고!”

‘안내자를 빼앗을 수가 있는건가?’

역시 이 게이트는 이상했다.

혹시 이상현상이 안내자가 뒤바뀌는 것에 대한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게이트의 사정이지 내가 참견할 부분은 아니었다.

“자리를 꿰찬다고? 그게 가능해?”

“불가능하지!”

“꿰차려고 한다며?”

“맞아!”

뭔가 싶어 싸늘한 눈빛으로 노커를 바라보았다. 그에 움찔한 노커가 변명처럼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그게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잘 몰라! 근데 그놈이 오고부터 광산에 비가 오기 시작하고 이상해졌어!”

‘비.’

역시 이상현상은 비가 맞는 것 같았다.

노커가 말하는 안내자 자리를 꿰차려는 놈을 만나야 그 이상현상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내해. 해결해줄테니까.”

“진짜, 진짜야?”

노커의 눈이 반짝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하지만 놈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좀 무서운데.”

“뭐가? 그놈이?”

노커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안내자 자리를 꿰차려는 것이 보스 몬스터라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됐고, 안내.”

노커는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주변에 쓰러져있는 광산 코볼트 떼를 보고는 결심이 선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안내할테니 그놈 좀 꼭 몰아내줘!”

노커가 힘차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놈의 안내에 따라 기나긴 계단을 오르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우부를 불러내어 비를 막게한 후 계속 노커에게 안내를 시켰다.

가는길에 몇 번 코볼트 떼를 만났다. 상대하는것도 귀찮아졌기에 광휘의 서리로 놈들을 얼린 후 깨트리거나 레부에게 삼키도록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광산 내부의 거대한 홀이었다. 희안하게도 이 홀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홀 여기저기는 광차들이 쌓여있었다. 낡아서 버려진 것도 있었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져 광석이 잔뜩 실려있는 것도 있었다.

바닥에는 광차를 이동시킬 낡은 철로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철로들은 홀 주위의 작은 통로들로 뻗어있었다.

통로가 없는 벽면들에는 잘 가공된 광석들이 쌓여있었다. 곧 지상으로 옮겨질 것 같은 광석들.

이곳은 광산의 중심부이자 지상과 통하는 곳인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에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래서. 어디?”

노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뭔가 싶어 손에 들린 놈을 바라보니. 놈의 안색이 창백해져있었다.

떨군 시선과 미묘하게 떨리는 몸. 단단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저 홀에 들어온 것 뿐인데도 상태가 급격히 변했다.

그놈이 무섭다고 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아도 노커가 이야기하는 안내자의 자리를 빼앗으려던 놈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디.”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노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기껏해봤자 이곳에 서식하는 광산 코볼트 중 하나이거나 다른 노커, 혹은 광산에 살고 있는 다른 몬스터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잔뜩 쌓여있는 가공된 광석의 위쪽에 무언가 있었다.

‘…사람…?’

까만 로브를 뒤집어 쓴 채 앉아있는 것 같은 사람의 형체.

아니, 사람일리는 없었다.

이곳에 먼저 입장한 사람은 없으니까.

“…쿄….”

“…푸우…. 주인…. 우부 무서워….”

레부와 우부가 내 뒤로 숨어들었다.

놈을 본 두 슬라임의 반응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노커와 비슷한 반응.

같은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급이 다른 몬스터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저건 상위의 몬스터.

그것도 사람의 형체를 본딸 수 있고 아마 말이 통하는 신급의 몬스터일 확률이 컸다.

꿀꺽.

천천히 노커를 내려놓았다.

놈에게서 눈은 떼지 않았다.

저놈이 정말로 신급의 몬스터라면. 그리고 이 게이트의 이상현상을 만들어낸 놈이라면.

‘상대할 수밖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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