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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55화 (156/201)

제155화

숨을 죽인채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놈을 바라보았다.

아직 놈은 나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전히 광석 위에 앉아 손에 쥔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비어있던 손을 허리의 뒤로 움직여 광휘의 서리를 꺼내들었다.

내 움직임은 아주 느리고 신중했다.

혹여라도 놈이 나를 발견한다면 내 암습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니까.

쿵, 쿵, 쿵.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손에 베어나는 식은땀에 잘못했다가는 단검을 놓칠 것 같았다.

이곳에는 마나가 없다.

회귀를 하며 얻은 악마의 고양이의 특성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럼 내게 남은 은밀한 고양이 특성만으로 과연 신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오만의 그리폰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만약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더라면, 오만의 그리폰 역시 신급 몬스터에 이름을 올렸으리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도 신급의 몬스터일 것이다.

막 회귀를 했을 때는 오만의 그리폰이고 신급의 몬스터고 모조리 씹어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신급 몬스터의 앞에 서자니 다시금 긴장이 몰려왔다.

그래도 해야했다.

이곳에서 목숨을 하나 더 잃는 한이 있더라도 놈과 부딪히지 않고서는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없었다.

‘은신.’

은밀한 고양이 암살자 특성의 정점. 내 기척을 죽이고 모습을 지우고 모든것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

신급의 몬스터를 죽이기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오만의 그리폰에게 하려했던것처럼 최대한 조용히 접근한 후 단번에 처리해야했다.

천천히 놈에게 접근했다.

소리는 일체 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미약한 발소리가 들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귀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먹먹해져 내 심장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벽면에서 일렁이는 횃불이 내 앞으로 놈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저 그림자를 밟으면 놈의 뒤를 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나는 아주 조용하게 놈의 그림자를 밟았다.

‘그림자 밟기.’

훅.

순식간에 놈의 뒷모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검은 로브의 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대로 두 단검을 놈에게 찔러넣기만 하면 된다. 내 심장 소리가 놈의 귀에 닿기 전에.

나는 힘껏 두 개의 단검을 놈의 등을 향해 내질렀다.

“하핫!”

갑작스럽게 들려온 가벼운 웃음.

순간적으로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쿵, 쿵, 쿵, 쿵!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놈의 귀에도 내 심장 소리가 들리리라.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내 두 단검은 놈의 등에 닿기 직전에 멈추어 있었다.

1cm.

조금만 더 손을 움직였다면.

놈은 아까의 린드웜처럼 터져나갔을텐데.

하지만 놈의 갑작스러운 웃음에 그 1cm를 밀어넣지 못했다.

“정말 재미있단 말이지.”

나직한 말소리.

혼잣말같기도 했지만.

하필 지금?

날 알아채기라도 한걸까?

혹시나 싶어 빠르게 내 상태를 살폈다.

은신을 한 내 몸의 윤곽이 반투명하게 보였다. 남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투명한 윤곽이 보인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내가 알아야 하니까.

은신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단검을 찔러야한다.

손의 땀 때문에 미끄러지려는 단검을 움켜쥐는데.

슥.

놈이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굳어버려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칼 끝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덜덜 떨려왔다.

이렇게 또 죽는걸까 싶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놈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

놈이 양손을 들어올려 머리에 눌러썼던 검은 후드를 벗었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짧고 느린 동작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오만의 그리폰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위압감이었다.

가느다란 숨을 내뱉는 것 조차 힘들었다.

머리를 덮었던 후드가 완전히 내려가고 놈의 뒷모습이 보였다.

보라색? 아니, 남색같기도 했다. 어쩌면 검은색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건, 놈의 머리카락은 밤하늘을 닮아있다는 것.

“칼은 넣어두지 그래? 어차피 나한테는 통하지 않을텐데.”

장난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

순식간에 그에게서 풍겨오던 위압감이 사라졌다.

그제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경계태세를 취했다.

아무리 놈에게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를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마주했다.

다른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날카롭게 치솟은 눈매 안에 담긴 눈동자가 그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붉은색의 동공. 그 동공을 둘러싼 까만 눈동자에 비치는 가벼운 반짝임.

가만히 그 눈을 보고 있자니 그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눈.

그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섰다.

바삭.

방심하는 바람에 발소리를 크게 내고 말았다. 흠칫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반투명한 내 발이 광석을 밟고 있었다.

놈은 여전히 은신을 하고 있던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마당에 은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도 웃겼다.

나는 은신을 해제했다.

스륵.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놈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듯 곧게 뻗은 눈썹이 살짝 찌푸러들었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으로 광휘의 서리 끝을 살짝 내리눌렀다.

“넣어두라니까.”

큰 힘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공기를 내리누르는 것처럼 가벼운 손짓.

하지만 나는 광휘의 서리를 내릴수밖에 없었다.

긴장감때문에 손이 떨려 힘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는 건 변명이다. 놈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파스슥.

광휘의 서리에서 새어나온 차가운 냉기가 놈의 손가락을 타고 넘어갔다.

“흠.”

그는 서리에서 손을 뗀 후 자신의 얼어붙은 검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후.”

검지 손가락을 향해 입김을 훅 불자.

손가락을 얼렸던 서리가 순식간에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얼어붙은 서리를 저렇게 날려버린다고?’

믿기 힘들정도였다.

광휘의 서리는 EX급의 무기. 여기에서 뿜어져나오는 냉기는 웬만한 몬스터들은 모두 얼릴 수 있었다.

한번 얼어붙은 것을 녹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저놈은 입김 한 번으로 서리를 날려버렸다.

그럼 심연의 불꽃 또한 놈의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리라.

지금의 내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 너랑 싸울 생각은 없으니까.”

“…싸울 생각이 없다고?”

간신히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뱉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목이 잔뜩 잠겨 입밖으로 튀어나온 내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어차피 네 공격은 나한테 통하지도 않고.”

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조금 전 광휘의 서리를 밀어내던 힘과 한숨에 서리를 날려버리는 놈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어떤 능력을 사용하더라도 놈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어. 너랑.”

“…이야기?”

대체 이런 상황에서 신급 몬스터가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걸까. 각성자와의 교감을 원하는 신급 몬스터라도 된다는 말인가?

기가 막혔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빌어먹을 게이트들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기회.

“내가 이곳에 오면서 이 게이트가 조금씩 틀어진건 알아. 덕분에 원래의 난이도보다 급도 올라가버렸고.”

역시 이놈은 원래 이곳에 있어서는 안될 몬스터였다. 그런데 그걸 어기면서까지 이 게이트에 왔다는건 무슨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중얼거리던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 꽂혔다. 그리고 또다시 눈과 입이 곡선을 그렸다.

“그래도 역시나 여기까지 왔구나, 넌.”

놈은 마치 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나를 알아?”

놈의 입꼬리가 더욱 치솟았다.

“알고말고.”

당연하다는듯한 놈의 대답.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지켜봤으니까.”

…지켜보고 있었다니.

어떻게?

내가 게이트에 들어올때마다 나를 쫓아다니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그런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끼지 못하는게 당연해.’

조금 전 노커가 이놈의 위치를 알려주기 전까지 나는 놈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놈은 자신의 개입으로 게이트가 틀어졌음에도 이곳에서 날 기다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그것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지금껏 내가 게이트 안에서 해왔던 일들을 보지 않았다면 이 게이트에서 살아남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을테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놈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네가 궁금한 모든걸 말해줄 수는 없지만. 한두개 정도는 대답해줄 수 있어.”

무엇을 물어봐야할까.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왜 이런 게이트가 우리의 앞에 나타났는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건지. 이것들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놈이 알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알고 있더라도 대답해주지 않을수도 있었다.

어쩌면 저 이야기 자체가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일지도 몰랐다. 대답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안하면 그만이니까. 그런 장난질에 놀아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랐다.

놈에게서 정말 중요한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으니까.

그러려면 일단 되든 안되든 질문을 던져보기라도 해야했다.

나는 잠시 질문을 골랐다.

그리고는 놈을 보며 물었다.

“넌 뭐야?”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놈의 정체.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면 놈에 대한 추측이 가능했으니까.

내 질문에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세라피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신급 몬스터 중 그런 이름을 가진 놈은 없었다.

“…세라피스…?”

내가 놈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놈이 해맑게 웃었다.

“이름 들으니까 좋다. 내 주변에서는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거든.”

천진난만한 목소리.

하지만 그 말인즉.

이놈은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신급 몬스터인거야?”

신급의 몬스터라면 다른 몬스터들이 섣불리 덤벼들수도 없거니와 말을 섞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격차가 벌어지는 상대 앞에서 상대의 이름을 막 부른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몬스터들은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쉽게 굴복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질문을 던지고 나니 멍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그것을 알리가 없었다.

게이트와 다르게 몬스터의 급을 나눈건 우리 각성자들이었다.

게이트 내의 몬스터는 다양했다.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놈들부터 시작해서 잡기 어려운 놈들까지.

그중 가장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신급 몬스터였다.

우리가 놈들을 신급의 몬스터로 분류한 것은 놈들의 위력이 다른 몬스터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이라 칭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정도로 강한 힘을 가졌다는 걸 표현하기위해 신급이라는 급을 매겨둔 것.

“흠. 신급의 몬스터라. 그건 너희의 기준이라서 잘 모르겠네. 예를 들어볼래?”

역시나 세라피스가 예시를 요청했다.

몬스터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게 당혹스러울 정도였지만, 놈에게서 정보를 이끌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레비아탄이나 크라켄같은 놈들.”

“아하.”

세라피스가 이해했다는듯 손가락을 튕겼다.

“EX급 게이트의 보스들을 이야기하는 거구나?”

게이트 중에도 EX급이 있는건가?

내가 알고 있는 게이트의 최대 급수는 S급이었다. EX급은 아이템으로밖에 보지 못했는데.

“아차. 방금 그건 모르는 척 해줘. 발설하면 안 되는건데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네.”

실수를 한것 치고는 너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었다. 일부러 나에게 정보를 흘린건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정보들까지 알고 있다는건 세라피스가 게이트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뜻이다.

“어쨌든,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자면.”

세라피스가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채 내게 말했다.

“급이 다르지.”

신급의 몬스터와는 급이 다르다…?

“사실 그놈들이랑 비교당하는 건 상당히 기분이 나쁜데. 너는 우리를 잘 모르니까. 이번엔 이해해줄게.”

‘우리.’

세라피스와 같은 놈들이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신급의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놈들이라면.

첫 회귀 전 내가 겪은 일들은 새발의 피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EX급의 게이트의 존재도 놀라운데 그곳의 보스가 신급의 몬스터라니.

첫 회귀 전, 신급의 몬스터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각성자는 없었다. 나도 그랬고 그 때의 주선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랭킹 1, 2위를 오락가락하던 사람들이 상대할 수 없었는데 그 밑으로는 오죽했을까.

하지만 회귀 후의 나는 놈들에게 공격을 퍼부었고 일부 공격이 통한다는 것도 확인을 했다.

그래서 게이트를 끝장내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었는데.

‘…가능할리가….’

세라피스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처음에 느꼈던 위압감은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까의 그 느낌을 떠올리면 다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너희가 신급 몬스터라고 이름을 붙였다는건 신이라는게 그만큼 굉장한 존재인것 같은데. 맞아?”

세라피스의 물음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데.

일순 스치는 불안감.

놈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세라피스를 포함한 ‘우리’는 신급 몬스터인 레비아탄이나 크라켄과 비교를 당한 것이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놈은….

“너희에게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를 표현할 단어가 없다면.”

다음에 이어질 말이 예측되었다.

세라피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신이겠구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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