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전지전능한 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
밤의 어둠을 닮은 머리카락과 별을 품은 눈을 가진 그가 말했다.
‘그럼 나는 신이겠구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할 법한 말이었다.
평소같았다면 코웃음을 치고 허튼 꿈에서 깨라며 코에 주먹을 날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세라피스는 달랐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신일지도 몰랐다.
신급의 몬스터보다도 훨씬 월등한 자. 차마 몬스터라고 칭할 수 조차 없는, 우리를 한낱 미개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그러한 신.
그가 정말로 신이라면.
대체 왜 나를 지켜보았고 나를 만나러 이곳까지 왔는가?
온갖 의문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놈에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존재, 그것도 나와 적대할 몬스터에게 내 감정을 보이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 감정의 빈틈만큼 패배에 가까운 것은 없다.
세라피스가 내게 한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세라피스. 너희 세상에서 신으로 치부되는 존재. 너를 만나보고 싶었어.”
계속해서 나를 지켜봤다는 것도,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어째서?”
놈의 오른손이 내 왼쪽 뺨에 닿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깨어지는 유리 인형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차디찬 그 손가락에 오한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쳐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라피스의 손가락이 내 뺨을 슥 훑어내렸다.
“흥미로우니까.”
“…흥미…?”
생각치도 못한 대답이었다.
놈의 대답에 아직까지 떨려오던 손도 우뚝 멈춰버렸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다.
결국 본인의 즐거움때문에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거다.
내 필사적이었던 싸움이 세라피스에게는 그저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까.
절대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아, 이런. 인상 좀 펴. 이렇게 보러왔는데 서운하게 그러지 말고.”
덕분에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내 뺨에 머물러 있던 놈의 손을 쳐냈다.
툭!
잠시 내쳐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던 세라피스가 피식 웃는다.
겨우 한낱 인간이 신의 손을 처냈다는 것이 어이가 없기라도 한걸까. 왠지 놈의 웃음에서 같잖음이 느껴졌다.
“뭐, 좋아. 갑작스러운 상황이니 이러는 거 이해해줄게. 하지만 생각해봐. 너도 내 입장이었다면 너같은 사람이 흥미롭지 않았겠어?”
내가 신의 입장을 알 턱이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내가 이놈과 하고 싶은 대화는 그런게 아니었다.
“몰라. 고작 그런걸 물어보려고 나와 대화가 하고싶다고 한거야?”
“하하.”
세라피스가 가볍게 웃었다.
“게이트는 뭐지?”
불쑥 질문을 던지고 마른침을 삼켰다.
대답을 해줄지 궁금했다.
놈이 살짝 고개를 숙인채 생각에 잠겼다. 기다란 속눈썹의 그림자가 그의 뺨에 드리웠다.
게이트의 정체에 대해 한발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혹여나 놈의 대답을 하나라도 놓칠새라 숨소리조차 죽였다.
잠시후 고개를 든 세라피스가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감당할 수 있겠어?”
“…감당?”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되면, 네가 버틸 수 있겠냐는 이야기야. 네 세상으로 돌아가서 내게 들은 이야기를 한다고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어줄까? 믿어준다고해도 지금 당장 너희들이 할 수 있는게 있을까?”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내가 랭킹 1위의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내가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것도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나서야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세라피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 내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은 몇 없을 터.
도빈이나 안세인, 김지석, 주선오 등 몇몇은 믿어주겠지만. 세라피스의 말대로 지금의 나조차도 이놈의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데. 게이트의 정체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게 있을까?
내가 침묵을 고수하자 세라피스가 말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될거야.”
‘그 때가 언제인데?’
질문을 삼켰다. 당연히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가벼운 눈웃음을 지은 세라피스가 물었다.
“이번엔 내가 질문해도 될까?”
나는 아무런 반응없이 놈을 쏘아보았다.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대답해줄 생각은 없었다.
“7번 남은거, 맞지?”
질문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내게 남은 7번이라면.
고양이 신의 가호인 목숨 밖에 없었다.
게이트에 관여하는 신이라서 내 가호까지 알고 있는 건가? 가호 역시 이놈의 관할인건가? 아니면 관할이 아니더라도 그정도 쯤이야 읽을 수 있는걸까?
신이니까?
그런 내 양 어깨를 놈이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널 기다리고 있어.”
한껏 커다래진 놈의 눈이 내 눈을 침식할 것 같았다.
빛나는 눈.
그 눈에 압도당해서 아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
어깨를 짚고 있던 놈의 서늘한 손이 스르륵 움직여 내 목을 감쌌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 목을 졸라서 너를 죽이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내게 올 수 있을텐데.”
점점 놈의 손아귀가 목을 조여왔다.
서서히 숨이 막혀왔다.
놈의 눈빛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그런데 난 너를 지켜보는게 좋아. 계속 지켜보고 싶어. 그래서 널 죽이지 않기 위해 나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어.”
목을 조여오던 손이 멈추었다.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떡하지? 죽일까? 안 돼. 내가 개입을 하면 안 돼. 하지만…, 하나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나를 잃는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그래도 아직 여섯 개가 남잖아.”
소근거리는 그 목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놈은 내 목숨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서 놈이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내 목은 그대로 부러질 것이다.
‘벗어나야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힘없이 늘어트렸던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수백 키로의 추를 매달아놓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하나 더 날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여기서 죽게 되면 놈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심연의 불꽃을 휘둘렀다.
서걱!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팔을 움직이는데에 성공했다.
힘껏 휘둘러진 심연의 불꽃이 내 눈앞에 불꽃의 잔상을 남기며 스쳐지나갔고, 목을 죄어오던 놈의 두 팔이 불꽃에 잘려나갔다.
동시에 내 목을 쥐고 있던 놈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억!”
한껏 숨을 들이키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털썩!
촤르륵!
쌓여있던 광석들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내 앞에 떨어진 놈의 두 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놈이 뭔가 행동을 하기 전에 심장을 찔러야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잔뜩 물을 먹은 휴지처럼 바닥에 늘러붙은 기분.
나는 가까스로 눈동자만을 굴려 위를 바라보았다.
세라피스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손이 떨어져나갔는데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가보다. 아무런 몸부림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실체가 아닌걸까싶은 생각도 잠시.
놈의 얼굴을 본 나는 생각을 멈췄다.
‘…웃고 있어.’
얼굴 가득 미소가 만연했다.
다시 비라도 내리는 걸까 싶을 정도로 온몸이 축축해졌다. 비는 아니었다. 놈의 미소에 소름이 돋아 흐르는 식은땀이었다.
“말했잖아. 네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고.”
세라피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래도 기대 이상이야. 만족했어.”
세상 온화한 미소가 역겹게 느껴졌다.
“…미친놈.”
나는 온힘을 다해 다시 한번 심연의 불꽃을 힘껏 휘둘렀다.
서걱!
놈의 목이 불꽃에 베어나갔다.
반짝이던 눈이 가늘어졌다.
세라피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핫!”
정말 기뻐보이는 그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화르륵!
놈의 목을 태우던 불꽃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하하…. 오늘은 이만 가볼게.”
이제 어디에 놈의 눈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불꽃이 온몸을 뒤덮은 상태였다.
여전히 그의 목소리나 몸짓에는 전혀 고통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불꽃은 거세게 타오르다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천천히.
불꽃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참, 이건 내 선물이야.”
무언가 내 앞으로 툭 떨어졌다.
영롱한 푸른빛을 띄는 주먹만한 구슬이었다. 놈이 이곳에 앉아있을때 손에 쥐고 있던 것 같았다.
“다음에 또 봐.”
평범한 인사에 고개를 들었다.
머리만 남았던 불꽃이 가벼운 미소를 짓는듯 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화륵!
타오르던 불꽃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주변이 정적에 휩싸였다.
‘없다.’
놈이 사라졌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극도의 긴장이 풀리며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회귀 후 처음으로 느끼는 무력감이었다.
그의 모습, 그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가진 압도적인 힘.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모조리 박살을 내주겠다고 다짐했던 첫 회귀 당시의 내가 떠올랐다.
“…하.”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래서 뭘 박살내겠다는건가.
코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회귀 전과 후, 몇 년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나는 무력했다.
게이트들을 모조리 없애기위해서는 아직도 한참 부족했다.
“…쿄…. 주인…?”
“푸….”
슬라임들의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라피스가 사라지자 다시 기운을 차린건지 레부와 우부가 아래에 서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걱정이 가득 실린 목소리였다.
저놈들도 세라피스의 앞에서 무력했던 내 모습을 봤으리라.
나는 애써 태연한척 고개를 끄덕였다.
슬라임들의 뒤에 있던 노커가 물었다.
“그놈, 그놈은 간거야?”
그 질문에 내가 무엇을 하는 중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광산의 게이트에 들어온 후 이상현상을 해결하려는 중이었다.
그 이상현상은 세라피스가 이곳에 나타나면서 일어난 것이었고, 그가 사라진 지금은 이상현상이 해결이 됐어야하는데.
하지만 게이트의 클리어를 알리는 안내문 같은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잘못했다가는 균형을 잃고 이곳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바스락.
광석을 밟아 움푹 패인 내 발쪽으로 무언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툭.
세라피스가 선물이라며 놓고 간 구슬이었다.
‘젠장.’
그것을 보며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곱씹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당장 부숴버리기위해 그것을 붙잡았는데.
손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뭔가 이상했다.
평범한 구슬이 아니었다.
[EX급 아이템 용주]
[바다를 부릴 수 있는 용의 구슬입니다.]
“…하…!”
용주.
용주라니.
기가 막혔다. 어처구니가 없다가, 점점 분노가 차올랐다.
용주는 광산에 있을 아이템이 절대 아니다.
용의 구슬. 신급 몬스터인 용이 품고 있어야할 구슬인데. 그게 왜 이 광산에 있냐는 말이다.
이곳의 이상현상을 일으킨 것도 이 용주이리라. 그래서 광산의 비에서는 비린내음과 짠맛이 가득했던 것이고.
하지만 왜!
왜 세라피스가 용주를 이곳에 가져온 것인가. 그것도 나에게 선물이라며 이걸 놓고 갔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물의 핵을 대신해서 우부를 넣어둘 집이 필요했고, 마음껏 끌어다 쓸 수 있는 무한의 물이 필요했으니까.
신급 몬스터인 용을 어떻게 쓰러트리고 용주를 얻어내나 고민했었는데 그런 고민따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어졌다.
신급 몬스터인 용을 상대하지 않고도 용주를 얻어냈으니 굉장한 행운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용주를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알고 있었지?’
내가 용주를 찾고 있다는건 함께 그 이야기를 했던 이시결 외에는 아무도 몰랐다. 게이트 내부에서 말을 꺼낸 적도 없었다.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지만 곧바로 돌고래 신의 가호가 발동되어 감각이 마비되고 피가 멎었다.
‘…일단. 마무리하자.’
몸도 정신도 너무 지친 상태였다. 어서 이 게이트를 벗어나 쉬고 싶었다.
용주를 어떻게 컨트롤 하는건지는 알지 못했지만 여느 아이템들이 그렇듯 의지를 실으면 그만이리라.
용주를 꽉 움켜 쥐었다.
‘이곳의 비를 멈춰.’
이곳에는 비가 오지 않고 있었기에 용주가 내 의지에 반응해 비를 그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용주가 내뿜던 푸른빛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떠오른 안내문. 용주가 내 의지를 받아들여 광산의 비를 멈추었다.
게이트가 클리어됐다.
클리어의 보상으로 전용 특성 레벨업권과 스킬 레벨업권, 그리고 스탯 포인트 10을 받았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보상을 내 옵션에 적용하지도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레부를 심연의 불꽃 안으로 들여보낸 후 우부 역시 용주의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푸우? 우부 집이야아? 우부도 집이 생겼어? 푸푸푸푸! 우부도 집이 있어! 푸푸푸!”
우부는 굉장히 기뻐했다.
펄쩍펄쩍 뛰는 우부를 보고 있자니 그래도 조금 미소가 지어졌다.
용주의 안에서라면 고향을 떠나기 전 생활했던 바다를 느낄 수 있으리라.
“고마워, 인간. 덕분에 살았어!”
노커가 신이 나서 인사를 건넸지만 크게 반응해줄 힘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다음에 보면 은혜는 꼭 갚을게!”
손을 마구 흔드는 노커를 뒤로하고 나는 게이트를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