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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59화 (160/201)

제159화

도빈이의 감시 때문에 암거래 상인을 만나러 가게된건 이틀 후였다. 덕분에 누워있느라 늘어져있던 몸도 풀었고 컨디션도 상당히 좋아졌다.

하지만….

“불편한데.”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다.

“가만히 계십시오.”

이시결이 내 턱을 살짝 들어올렸다.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내리깔자, 무언가 얼굴 위에 스륵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이시결의 거미줄이었다.

어쩔수없는 선택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얼굴이 팔린 랭킹 1위가 암거래 상인을 만났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내 위상은 곧바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어떻게든 얼굴을 가려야했지만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는 누가보더라도 수상해보였다.

결국 하는수없이 이시결의 거미줄 가면을 빌렸다.

놈은 상당히 익숙하게 내 얼굴에 거미줄을 덧댄 후 색을 입혔다. 손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작업은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끝이 났다.

“만지지 마십시오. 마를때까지 좀 기다려야합니다.”

이시결이 옆의 탁자에 살구빛의 물감이 묻은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탁자에 살짝 걸터앉은 후 옆에 놓여있던 가면을 썼다. 그가 다른 얼굴의 가면을 쓰는 것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 직접 체험을 하게되니 상당히 기분이 묘했다.

단순히 눈매와 코, 입술의 형태만 조금 덧대었을 뿐인데 거울에 비치는 내 얼굴은 전혀 다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냥 나와 비슷한가하며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아직도 덜 말랐나.’

살짝 손을 대보려하자 이시결이 나를 보지도 않으며 말했다.

“다시 처음부터 하고 싶으십니까?”

쯧 혀를 차고는 팔짱을 낀채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시결이 머물러있는 방에 들어와본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방이라기보다는 작업실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걸 알려주는것은 깔끔하게 정리된 옷 몇벌 뿐이었다.

지루해질 쯤, 다른 얼굴의 이시결이 내 얼굴에 살짝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얼굴에 닿았지만 얼굴에 쓴 거미줄 가면 때문에 느낌이 이상했다.

잠시 얼굴을 더듬던 그가 손을 내렸다.

“됐군요.”

그말에 살짝 얼굴을 만져보니 빳빳하게 굳은 거미줄이 느껴졌다.

“어차피 누가 얼굴에 손댈 일은 없으니 촉감은 상관없습니다.”

확실히 인상은 변했지만 혹시 몰랐다. 평소와 다르게 도수없는 안경까지 착용하고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우리는 곧바로 집을 나서 청계천으로 향했다.

아이템 상점이 몰려있는 청계천의 거리는 휴일의 놀이공원처럼 상당히 북적거렸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았다가는 일행을 잃어버리기 딱 좋은 곳. 나야 이시결에게 달아둔 표식 때문에 그를 잃어버릴 일은 없었다.

줄을 서서 이동하는 것같이 사람들의 뒤를 따라 걷자니 영 지루했다.

아이템이 놓인 상점의 매대는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앞사람의 뒷통수 뿐. 이래서야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어도 제대로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거래가 이정도로 활발하게 일어나나?’

아이템을 거래하러 온 각성자가 이렇게 많은건가 싶어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훑어보니, 반 정도는 정보를 볼 수 없는 일반인이었다.

아이템 상점들이 딱히 일반인의 출입을 막지 않았기에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물론 일반인도 아이템의 구매가 가능했지만 구매를 할 경우 개인의 신상 정보를 기관에 남겨야했기에 대부분은 구경으로 그치는 듯 했다.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랭커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려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들의 시선에 스친건 나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가면을 썼다고 하더라도 역부족이었나싶은 생각에 마른침을 삼키는데.

이시결이 내 팔을 툭 쳤다.

흠칫 놀라 그를 돌아보니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그가 속삭였다.

“윤도아 씨 얘기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마시죠.”

앞쪽의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와, 진짜 랭커잖아?”

“어디?”

“저쪽. 저기.”

앞의 여자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전에 기관에서 만난적 있는 국내 랭커인 김지형과 매의 발톱 정시언이었다. 간단하게 모자만으로 얼굴을 가렸던 둘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자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놀랐네.’

안심한 후 둘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리려는 찰나, 정시언과 눈이 마주쳤다.

“!”

정시언의 시선이 몇초간 내게 머물렀다. 들켰나, 생각하며 괜스레 안경을 고쳐쓰는데 정시언이 고개를 돌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이시결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자.”

우리는 인파를 뚫고 아이템 상점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상점 앞의 매대가 눈에 들어왔다.

매대에는 손님들을 끌기위한 각종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도난을 방지하기위해 유리로 덮여있었는데 아이템 구매를 원하는 손님이 있는 경우 판매자가 직접 꺼내주는 방식인 것 같았다.

물론 매대에 올라와있는 아이템들은 전부 C급의 아이템이었다. B급 이상은 상점 내에서만 판매하고 있으리라.

이렇게 상점들을 보고 있자니 컨벤션 때 열렸던 아이템 마켓이 떠올랐다. 상점을 하나하나 차분히 살펴보며 아이템들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따로 해야할 일이 있었다.

“들어가죠.”

이시결이 상가 건물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건물 안은 바깥에 비하면 그나마 한산한 편이었다. 구경거리는 바깥의 상점들에 널려 있었으니 이 안까지 들어오는 일반인은 드물었다.

“잠시 여기 계십시오.”

이시결이 내 어깨를 짚은 후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그 앞에는 검은 정장차림의 우람한 체구의 남자가 있었다.

‘이런 곳에 경호원이라.’

이곳과는 그닥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저런 경호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위층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겠다는 의미였다.

침입하려는 각성자가 있다면 막아내야했기에 경호원 역시 각성자였다. 정보를 살펴보니 사실 그닥 높은 수준의 각성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웬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각성자가 아니라면 순순히 물러날만한 외모였다.

경호원은 계단 앞으로 다가간 이시결을 막아섰다.

둘은 대화를 나누었다. 거리가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위층에 올라가려면 거쳐야할 절차이리라.

경호원과 몇마디 주고받던 이시결이 살짝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딱딱한 표정의 경호원 역시 나를 돌아본다.

나를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그의 눈을 마주했다.

몇초동안 눈싸움을 하고있는데 이시결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까만 카드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경호원은 곧 뒤로 물러났고 이시결은 내게 손짓했다.

경호원은 우리가 계단 위로 사라질때까지 우리를 주시했다.

앞서걷는 이시결에게 작게 물었다.

“뭐야?”

“뭐가요?”

“2층에 올라가는데 입장권이 필요해?”

“아, 이거 말입니까?”

이시결이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보여주었다.

기다란 물고기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 꼬리를 물고 있는 문양이 그려진 까만 카드였다.

“비슷합니다. 만날 암거래 상인의 문장이거든요.”

“문장?”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났다. 암거래 상인 주제에 그런 문장까지 갖추고 있다니.

“이게 없으면 들여보내주지를 않더군요.”

아래층의 경호원부터 시작해서 아주 가지가지였다.

하긴 아무래도 불법으로 거래를 하려다보니 그놈들도 아무나 고객으로 받지는 못할터. 가리지않고 받았다가 혹여나 그게 기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한순간에 망할테니까.

“그건 어디서 구했어?”

이시결은 대답없이 씩 웃기만했다. 보나마나 다른 이에게서 갈취한 것이리라. 갈취당한 쪽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그놈도 암거래를 하고 있었으니.

2층의 구조는 단순했다. 복도가 쭉 뻗어있고 계단쪽 면에 몇 개의 철문이 있었다. 철문 앞에는 이시결이 지닌 카드에 있었던것과 비슷한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져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물고기가 만든 원 문양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시결은 들고 있던 카드를 도어락에 가져다대자.

삐리릭.

안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에 암막 커튼이라도 친건지 방 안은 어두웠다. 입구 반대편의 책상에 놓인 작은 전등만이 은은하게 방을 비추었다.

이시결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문 닫아.”

안에서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명령조에 조금 기분이 나빠졌지만 일단 방에 들어간 후 문을 닫았다.

쿵.

방은 깔끔했다.

양옆으로는 까만 암막 커튼이 쳐져있었는데 탐지로 살펴보니 그 뒤쪽으로 진열장이 늘어서있었다. 거래할 아이템들을 보관해둔 곳이었다.

“손님이 왔으면 정중히 맞이라도 해야지않습니까?”

이시결이 앞으로 걸어가 책상을 두드렸다.

낡은 갈색의 책상 위에 두 발을 올려둔채 눕다시피 앉아있는 남자가 있었다. 팔짱을 낀채 의자에 기대 천장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책이 한권 덮여 있었다.

“하아….”

남자가 책 아래에서 한숨을 푹 내쉬더니 팔짱을 풀고는 책을 살짝 들어올렸다.

짧게 자란 수염이 턱전체를 덮고 인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위로 드러난 날카로운 눈매 속의 이국적인 푸른 눈동자 한쪽이 나와 이시결을 훑어보았다.

‘외국인?’

그는 이시결을 알아본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뭐야. 그때 왔던 형씨네. 돈 없어서 그냥 간 거 아니었어?”

다시 눈동자를 굴려 나를 보더니.

“물주라도 데려온건가?”

그러더니 낄낄대며 웃는다.

말투가 영 글러먹은 놈이었다.

하지만 이시결 역시 저놈 못지 않게 말로 사람을 팰 수 있는 능력자였다.

이시결이 입을 가리며 피식 웃었다.

“물주라면 물주겠죠. 그런데 그 물주께서 당신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갑을 안 열어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회하려면 바닥에 코라도 박으셔야 할 것 같군요.”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남자가 얼굴에서 책을 치웠다. 두 개의 푸른 눈동자가 드러났다.

“대단한 물주를 데려오셨나본데. 하지만 물건을 파는건 나라고.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내가 안 넘기겠다면 그만 아냐? 오히려 코를 박을건 그쪽들인것 같은데.”

말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놈이 나를 보았다.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것이 마음놓고 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대단한 물주죠. 당신은 상상도 못할 사람이니까요.”

이시결이 슬쩍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이분이 실망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아이템을 보여줘야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이시결을 보며 그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서야 거래를 할 마음이 든건지 그는 책상에서 다리를 내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뭐,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그래서 뭐가 필요해?”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나 싶었다.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놈의 정보를 살폈다.

[에이단 맥카시]

[전기뱀장어 신의 가호]

[잠재우는 자]

태도에서 그가 각성자일것이라는 건 예상했다.

그런데 이름이 뜻밖이었다.

‘에이단 맥카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첫 회귀 전 박성현의 부하 중 한 명이었던 전기를 다루는 마법사. 나와 직접적으로 맞붙은 적은 없었지만 놈의 전기에 당한 각성자가 수십이 넘었다.

어떻게 만났나 했더니 암거래를 하며 안면을 튼 사이였나보다.

‘잘됐어.’

이참에 아예 둘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이 여기까지와서 암거래를 하고 있네?”

“다 먹고 살자고 하는건데 뭐. 말 돌리지 말고. 필요한게 뭐냐니까? 무기? 방어구? 아니면 다른것?”

에이단이 까슬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날 떠보듯 물어왔다.

“EX급 아이템, 얼마나 갖고 있어?”

“에헤이. 그렇게 물어보시면 안되지.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걸 다 공개하면 되겠어? 당신도 살면서 모든걸 드러내보이지는 않잖아?”

그의 푸른 눈이 나를 훑어보았다. 내가 뭘 숨기고 있는지 찾기라도 하는듯.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원하는 걸 말해. 만약 나한테 없는 물품이라고 하더라도 고객님이 원한다면 얼마든 구해다 줄 수 있으니 말야.”

원하는 아이템을 구해준다라.

아이템을 구하겠다고 게이트를 들어간다고해도 고객이 원하는 아이템을 얻어낼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가 게이트를 돌아서 아이템을 얻는 것 외에도 다른 수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놈의 영향력은 세계적일지도 몰랐다.

그런 놈을 밑에 두게 된다면. 앞으로 아이템때문에 골머리를 썩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다.

씨익.

‘환영한다. 두 번째 레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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