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에이단 맥카시는 작년 5월 전기뱀장어 신의 가호를 받은후 곧바로 각성을 했다.
그리고 그해 6월, 한국에서 열렸던 각성자 컨벤션에 참여했다. 그는 그때 아이템 마켓을 경험한 후 자신도 아이템 거래 사업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는 즉시 각성자 개인간 거래의 틀을 마련했고 거래를 하며 그것을 보완해나갔다.
세계적으로 아이템 거래에 대한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그는 그의 방식을 고수했다.
‘법은 까다롭고 성가시기만 해.’
구매자들도 그의 방식을 좋아했다.
일단 거래에 대한 기록과 신상을 기관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또한 S급 이상의 아이템은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아야하는데 그러려면 경매가 열리기까지 기다려야했고 혹시 모를 경쟁자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그것을 상당히 달갑지 않게 생각한 각성자들은 법보다 에이단을 따랐다.
에이단은 그런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객을 속여 더 비싼값에 아이템을 넘기고 이득을 챙기는 것을 즐겼다.
그런 에이단의 뒷모습을 모르는 고객들은 앞다투어 에이단을 찾았고 에이단의 세력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결국 전세계의 암시장은 에이단의 손바닥 안에 자리잡았다.
물론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각성 기관으로부터 추적을 당해 한동안 숨어지낸적도 있었고, 또 고객에게 된통 당한적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껏 모든 고비를 잘 넘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선 여자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때 저놈을 그냥 돌려보냈어야했는데.’
며칠전 저 남자 혼자 찾아왔을때도 느낌이 쎄하긴 했다.
가끔씩 기묘하게 웃는 얼굴과 의중을 알 수 없는 눈빛. 그는 에이단을 신뢰할 수 있도록 며칠동안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를 알려줄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거절했다.
‘신뢰로 먹고사는 상인인데 그걸 알려달라고?’
그건 고객의 정보를 넘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그는 끈질겼다. 시간이 남아도는지 에이단의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딱히 영업 방해를 하는것은 아니었지만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무력을 행사해서 쫓아내자니 소문이 한번 잘못나기 시작하면 이곳을 찾는 손님은 싹 사라질터. 게다가 기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손해보는건 에이단이었다.
결국 에이단은 가장 최근에 판매한 S급 아이템들의 내역을 제공해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조용히 물러났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잘못 걸린 것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에이단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능했다. 일단은 그저 생글생글 웃고 있는 수밖에.
그때 미소를 지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너.”
“…뭐?”
상상을 초월한 대답에 에이단은 당황한 얼굴을 그대로 내비치고 말았다.
그러자 여자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걸 말하라며.”
에이단은 얼빠진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이해가 좀 안 가는데. …나라고?”
“맞아. 잘 이해했네.”
여자가 웃었다.
물론 에이단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자신을 원한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위치, 즉 암거래 시장의 중심을 원한다는 뜻이리라.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에이단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안 돼.”
“아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걸.”
여자의 단호한 대답.
그 완강함에 에이단은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
고객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것이 그의 철칙이었지만, 이런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썩 꺼져.”
에이단이 얼굴을 싹 굳히며 말했다.
물론 말을 들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에이단은 꼼짝도 하지않는 둘을 보며 의자에서 일어나며 스킬을 시전했다.
‘전류 발산.’
파직.
에이단의 손끝에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괜히 전류를 조절하지 않아 죽기라도하면 곤란한건 그였다. 때문에 전류는 살짝 고통스럽고 기절을 할 정도로.
어차피 둘은 에이단의 특성을 알리 없었다. 에이단의 손이 둘에게 닿으면, 그들은 그에게서 나온 전류에 곧바로 기절해버릴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도 모르게 말이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여자부터.’
여자를 먼저 기절시킨 후 곧바로 뒤쪽의 남자를 기절시킨다. 그리고 둘의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사무실 키를 회수한 후, 경호원을 불러 둘을 바깥으로 내보내면 깔끔하게 끝난다. 그럼 더이상 이 둘을 자신의 사무실에서 볼 일은 없겠지.
“말 안들려? 당신들이랑 거래할 생각 없으니 나가라고.”
에이단이 성큼성큼 여자에게 걸어가 그녀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다시는 보지 맙시다, 들.’
그의 손이 여자의 어깨에 닿기 직전.
촤악!
갑자기 에이단과 여자의 사이로 무언가 치솟았다.
“뭐야!”
당황한 에이단이 뒤로 물러나며 그것을 살폈다.
“…모래?”
고운 입자의 모래막이 에이단과 여자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저 여자의 스킬인가?’
모래라니. 생각도 못한 보호막이었다.
변수가 생겨버렸으니 계획을 변경해야했다.
‘차라리 조금 더 전류를 세게 한 후 멀리서….’
“휴휴휴휴.”
모래 너머에서 괴상한 웃음이 들려왔다. 둘 중 한 명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달랐다.
‘또 다른 뭔가 있는건가?’
에이단은 잔뜩 긴장한채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항상 몸에 지니고 있던 철로 된 채찍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사르륵.
그가 전류가 흐르는 채찍을 휘두르기도 전에, 어느새 바닥을 가득 메운 모래가 그의 다리를 휘감고 채찍까지 삼켜버렸다.
“큭!”
단단히 굳은 모래는 에이단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풀리지 않았다.
“휴휴휴. 꼴 좋네요. 그러게 사람을 봐가며 덤벼야죠.”
들려온 가느다란 목소리에 앞을 보니.
온통 모래로 이루어진 사람의 형상이 서 있었다. 특징적인 삿갓과 지팡이, 그리고 쭉 찢어진 두 눈까지.
‘분명 어디서 봤는데….’
에이단은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고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한 사진이 있었다.
한국의 테마파크 근처 호수에서 찍혔던 한 사진. 분명 그 사진에서 저것과 닮은 생물체를 보았다.
‘슬라임!’
모래 슬라임이 분명했다. 그것도 세계 랭킹 1위가 키운다던….
“!”
에이단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졌다.
그리고는 모래 슬라임 너머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랭킹 1위인 윤도아의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시로 얼굴을 바꾸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에이단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며 말했다.
“…뭐…, 뭐야…. 당신 설마….”
“진짜 감쪽같긴 한가봐? 이래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면.”
여자가 옆의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피식 웃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휴휴휴. 먹어도 됩니까, 주인?”
앞에 있던 모래 슬라임이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주인. 그 단어로 저 여자가 윤도아라는건 확실해졌다. 윤도아가 아니라면 대체 어느 각성자가 몬스터를 부하로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어쩐지 감이 별로더라니 역시나였다.
‘…젠장!’
* * *
모부가 튀어나온걸보니 에이단이 나에게 스킬을 사용하려고 한 모양이다.
그덕에 에이단은 나를 알아보았고 곧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내 말은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나는 가볍게 손짓해 염력으로 주변에 쳐있던 커튼을 모두 걷어냈다.
촥! 촤악!
책상 뒤쪽의 창문을 가리고 있더 커튼이 열리며 창밖에서 밝은 빛이 쏟아졌다. 그 빛에 에이단의 곱슬진 다갈색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양쪽의 커튼 뒤에는 진열장 안에 가득한 아이템들이 보였다. 대충 둘러보아도 S급 이상의 아이템들이었다.
“이게 지금 갖고 있는 전부야?”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채 에이단 앞으로 다가갔다.
“좋아. 그럼 두 가지 선택권을 줄게.”
그러자 에이단의 눈이 살짝 나를 향했다.
“첫 번째. 나한테 복종한다.”
놈의 눈이 다시 옆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 선택권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 번째라고 마음에 들리는 없을텐데.’
“두 번째. 이대로 기관으로 넘겨져서 지금까지 모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은 평생을 기관 지하에서 썩는다.”
에이단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아. 그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동안 있어봐서 잘 알거든요. 그곳 생활이 얼마나 무료한지 말입니다.”
이시결이 거들었다. 그곳에 한참을 갇혀있었던 경험담이기에 상당히 신뢰가 가는 이야기였다. 하긴 나라도 그런 곳에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에이단의 눈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하지만 내 인내심은 길지 못했다.
“결정할 시간 3초 줄게.”
손가락 세 개를 펴서 놈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3, 2, 1.”
하지만 여전히 놈의 대답은 없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기관 소속 각성자이자 각성자 담당 경찰인 유지은에게 연락을 하려는 찰나.
“자, 잠깐!”
에이단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선택할 시간은 충분히 줬는데.”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자 에이단이 움찔거렸다. 모부의 모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아니. 3초면 너무 짧은 거 아냐?”
에이단의 억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피식 웃고는 모부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모부. 짧은 것 같아?”
“휴! 전혀요?”
“그렇다는데?”
“아니, 한통속한테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게 대답하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볼까?”
핸드폰을 슥 들어보이자 에이단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자 놈이 또 다급하게 외쳤다.
“아, 잠깐만! 좀 기다려달라고! 나도 생각을 좀 해봐야할거 아냐!”
필사적인 외침에 다시 에이단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서 진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고 핸드폰을 내렸다.
“그래? 뭐가 문젠데? 얘기해봐. 해결해줄테니까.”
“…….”
에이단이 잠시 눈을 내리깐 채 침묵했다. 이번의 침묵은 조금전까지와는 달랐다. 생각을 정리하기위한 침묵.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한순간에 넘길 수는 없어. 지금 받아놓은 아이템 예약이 많아.”
“파기해.”
어차피 그놈들도 불법적인 거래를 한건 마찬가지다. 일방적인 파기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겠지.
“그 위약금이 얼마나 큰데! 그리고 나도 먹고 살기는 해야할 것 아냐?”
“좋아. 그럼 협상해줄게.”
의외였는지 놈의 눈이 다시 커졌다.
사실 처음부터 놈의 위치를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만약 놈을 암시장에서 끌어낸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생겨날것이 뻔했다. 그럴바엔 차라리 영향력이 큰 놈을 통제 가능하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넌 지금까지처럼 아이템 거래를 계속 하면 돼. 단, 지금까지의 거래 내역과 앞으로의 거래 내역 모두 나한테 보고해.”
에이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
이곳에 있는 아이템만 보더라도 놈이 구하는 아이템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구할 아이템 역시 마찬가지리라. 그리고 그 수준높은 아이템들이 누구에게 흘러들어가는지는 알아둬야했다.
“대답. 3초.”
다시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아, 그것 좀 하지마! 알겠어, 알겠다고!”
에이단이 질색하며 외쳤다.
나는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이제 지금까지 거래 장부, 가져와.”
다시 질색한 얼굴.
“그…, 그건….”
또 손가락을 펴보이려 손을 들자 에이단이 외쳤다.
“이걸 풀어줘야 될 거 아냐!”
어깨를 으쓱여보인후 모부를 돌아보았다. 모부는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고는 에이단을 묶고있던 모래를 풀어냈다.
“채찍은 뺏어.”
그러자 모부의 모래가 다시 에이단의 채찍에 감겨들었다.
입술을 꾹 깨문 에이단이 손에 들린 채찍을 놓았다.
탐지로 확인했을 때 그의 책상에도 여러 개의 아이템들이 있었기에 허튼 수작을 부릴지도 몰랐다. 심연의 불꽃과 광휘의 서리를 꺼내 에이단의 목에 겨누었다.
“허튼짓했다간 어떻게 될지 알지?”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터덜터덜 책상으로 돌아간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가장 큰 책상서랍을 열었다. 그리고는 안에 있던 두터운 종이뭉치 두 개를 꺼내들었다.
염력으로 그것들을 받아든 후 앞으로 끌어당겨 살폈다. 하나는 S급, 하나는 EX급의 아이템 거래를 적어둔 장부였다. 이시결이 봤던 것은 S급 뿐이었겠지.
바로 EX급의 장부를 펼쳤다.
첫 장의 거래 날짜가 작년인걸보니 이전부터 써오던 장부인것 같았다.
종이를 넘겨 최근의 거래 일자를 살펴보니 박성현이 다녀간 날짜에 두 개의 거래가 있었다.
‘이거다.’
이시결이 이야기했던 두 아이템과 함께 적혀있는 EX급의 아이템 신의 가호가 있었다.
“……!”
그것을 확인한 나는 상황이 회귀 전보다 심각해졌음을 깨달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