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EX급 아이템 박쥐 신의 가호가 깃든 돌]
[질병의 매개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질병이라니.
너무 위험하다.
여우 구슬로 정확한 정보를 본것이 아니었기에 판단하기 이른감이 있었지만, 박쥐가 매개체인 질병이라면 치명적인 질병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박성현이 가진 가호도 그럴 확률이 컸다.
그는 이 가호를 이용해 게이트를 30분만에 클리어했다. 제압이나 섬멸이 아닌 다른 형태의 퀘스트가 있는 게이트였다면 아무리 능력이 좋더라도 30분만에 클리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내자를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는것만해도 30분이 넘을테니까.
즉 박성현은 질병의 매개체라는 특성으로 30분 안에 게이트 내의 몬스터를 몰살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치명적인 질병일테고.’
그 질병이 몬스터에게만 통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 각성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퍼질 수 있는 질병이라면.
‘…전세계가 팬데믹에 빠질지도 몰라.’
치유 특성을 가진 이리나도 질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내가 가진 돌고래 신의 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개입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 악화된건가?’
정말 모든게 회귀를 한 내가 개입을 했기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내 생각을 계속해서 밀고나가는게 과연 맞는 행동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디선가 내가 일으킨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있는건 아닐까?
“질병의 매개체라는게 뭡니까?”
이시결의 질문에 죄책감에 빠져들던 정신을 겨우 수습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에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매자가 그것도 확인하지않고 넘겼을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좋은 질문이야.’
경험해본바로, 아이템으로 얻게 되는 신의 가호는 직접 내려받는 신의 가호와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직접 신의 가호를 받게되면 우선 가호의 내용과 함께 전용 스탯, 그리고 전용 스킬이 몇 개 주어진다.
나의 경우. 고양이의 목숨은 9개라는 고양이 신의 가호를 받은 후, 동시에 근력과 민첩 등의 전용 스탯, 그리고 도약, 조용한 발걸음 등의 전용 스킬을 얻었다.
그 상태에서 처음 게이트를 클리어한 후에 전용 특성인 은밀한 고양이를 선택했고, 이후 스킬 게이트에서 전용 특성에 맞는 특성 스킬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EX급 돌고래 신의 가호가 깃든 돌을 사용했을 때는 조금 달랐다. 돌고래 신의 가호 내용 대신 자가치유라는 전용 특성이 담겨있었다. 그것을 사용하자 동시에 그에 따른 특성 스킬을 함께 얻었다.
‘박쥐 신의 가호도 같았을거야.’
돌의 정보를 보았을 때 질병의 매개체라는 특성을 사용할 수 있다고 떴을테고, 그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면 분명 그에 따르는 스킬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판매자인 에이단이 그런 정보도 보지 않은채 무조건 아이템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 스킬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질병에 대한것도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을 터.
나는 번뜩이는 눈으로 에이단을 응시하며 물었다.
“질병의 매개체에 대한 설명이 어땠지?”
아직 질문에 대한 답을 단번에 하기는 싫은 모양이다. 대답 없이 눈을 피하는 에이단의 목에 심연의 불꽃을 더욱 가까이 가져다댔다.
그는 잠시 눈을 꾹 감았다 뜬 후 말했다.
“…질병의 매개체 lv.1. 상대방에게 광폭, 경련, 마비같은 질병의 증상을 발현시킬수 있다고 했어.”
에이단이 말한 증상들을 일으키는 질병이 어떤것인지 추측을 하기도 전에 이시결이 말했다.
“광견병과 비슷하군요.”
광견병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가 아는한 적어도 공기중으로 전파되는 병은 아니었으니까.
“이 가호가 깃든 돌을 사간 사람.”
여전히 자신의 목을 겨눈 두 단검을 살피던 에이단이 빠르게 내게 눈을 돌렸다.
“꼭 이 가호를 구해달라고 이야기한건가?”
그럴 확률은 적을거라 생각했다. 원하는 가호가 깃든 돌을 찾는 것은 신교진이 아니라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역시 에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그 고객님은 그냥 게이트에서 효과적인 가호를 구해달라고 했을 뿐이야.”
확실히 그런 스킬들이라면 몬스터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다.
게이트에 관한 것에서만 보면 기본적인 센스는 있는 놈이었다. 그러니 그만큼 자신의 거래 물품들에 자부심이 많은 것일테고.
‘그래도 그 특성은 너무 위험해.’
에이단에게 그놈이 사람에게 스킬을 쓰면 어쩌려고 그걸 넘겼냐며 따지고들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회귀 전 박성현의 모습을 아는건 당연히 나 뿐이었으니까. 지금 그런 질문을 해봤자 돌아올 대답은 뻔했다.
그렇게치면 나를 포함해서 가호를 받은 모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냐고. 다른이에게 스킬을 쓰면 위험한건 똑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가호를 불시에 받는 것과 구매하는것이 다를바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게이트 밖에서 가호와 관련된 모든것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스킬을 사용했고, 그렇게 전쟁도 일어났었으니까.
“근데 그건 왜? 혹시 그 고객님이 무슨 짓이라도 했어?”
에이단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내 손사레를 쳤다.
“아니, 아니다. 고객의 사정은 나랑 관계없으니까. 이제 볼일 끝났으면 돌아가지?”
이번에는 우리를 향해 꺼지라는듯 손을 휙휙 내둘렀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너한테 또 요청한게 있어?”
박성현이 그를 찾는 것이 한번으로 끝날리 없었다. 어느정도 게이트를 닫는것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더 빠르게 많은 게이트를 돌기위해 아이템을 구매할 것이다.
그 이후에야 거래가 현저히 적어지겠지만 그전까지는 놈이 어떤 아이템들을 원하는지 파악해둬야했다.
놈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말했을텐데. 지금 이 시간부로 거래내역 모두 나한테 공개하라고.”
“…하아…. 아직 별다른건 없어. 조만간 다시 찾아올 가능성은 있어보였지만.”
에이단이 포기한듯 말했다.
“앞으로 박성현이 찾아온다거나 어떤 아이템을 원한다면 바로바로 보고해.”
“…….”
‘일단 확인은 이정도로 하고.’
거미줄 가면이 갑갑하기도 했고, 이곳에 오래있어봤자 그닥 좋을일은 없었다.
에이단에게 똑바로 경고를 해둔 뒤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그 달에 있었던 모든 거래 내역, 나한테 보고해. 날짜와 시간은 나중에 정해서 연락할테니까 1분이라도 늦지마. 그럼 바로, 알지?”
핸드폰을 슥 들어보였다. 기관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똑똑한 그는 내 뜻을 이해할것이다. 그것을 본 에이단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EX급 아이템의 거래가 있을때도 마찬가지야. 요구나 거래가 있을 때, 박성현과 마찬가지로 즉시 연락할 것.”
놈이 도망칠 가능성도 있었기에 경고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않았다.
“네가 어디로 도망을 간다고해도 너 하나 찾아내지 못할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게 좋아. 그리고 그랬다가 잡히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알겠지. 그땐 얄짤 없어.”
심연의 불꽃이 닿을락말락한 놈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서늘한 눈빛으로 놈에게 경고를 남긴후 두 단검을 거두었다.
에이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놈에게 표식 스킬을 사용했다.
‘표식.’
에이단의 머리 위에 하얀 빛이 스르륵 떠올랐다. 이제 놈이 어디에 있든 끝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거래 물품에 대해 속일 생각도 하지마. 허위 보고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나에게 거짓을 판별하는 방법은 없었지만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레부나 모부를 붙여두는 방법도 있었고 여차하면 이시결을 계속 붙여둘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내 특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저놈이 섣불리 행동할 수도 없을것이다.
“또 하나.”
내 말이 계속 이어지자 에이단은 아직도 남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가호를 구하게 되면 그건 무조건 나한테 가져와.”
“…뭐?”
“그건 내가 살테니까.”
에이단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 그게 얼마인줄 알고? 그걸 다 사겠다고?”
“그래. 네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더 열심히 찾아야겠지.”
신의 가호가 깃든 돌은 EX급인만큼 얻기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에이단이 두 눈에 불을 켜고 그것을 찾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이템처럼 빠른 시일 내에 많은 것을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나에게 EX급 신의 가호가 깃든 돌을 모조리 사들일 돈은 없었다. 대신 그 돈을 지불해줄 다른 사람이 있었다.
에이단은 벙찐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씩 웃어보인 나는 이시결과 함께 그곳을빠져 나왔다.
* * *
“어쩌면 선지자한테 백신이나 치료법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시결이 툭 말을 던졌다. 그 역시 박성현이 받은 박쥐 신의 가호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지.”
에이단이 이야기했던 질병의 매개체 특성의 스킬에는 백신따위는 없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실제로 없었던 것일수도 있다.
실제로 없었다고 하더라도 박성현이 게이트를 클리어한 후 그에 따른 가호 내용과 스탯 등이 추가됐을지도 모른다. 직접 가호가 내려진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가호가 깃든 돌만 사용한채 게이트에 입장했던 경우의 옵션을 본적은 없었기에 그부분이 조금 변수가 될 것 같았다.
“선지자가 왜 승표를 골랐는지 알 것 같군요.”
“승표의 칼날에 스킬을 바를 수 있다면 그 줄을 이용해 원거리에서도 감염이 가능할테니까.”
“공기 중 확산의 가능성은 없다고 보십니까?”
“없다고 생각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어.”
그저 가능성이 낮을 뿐이었다.
“아니라고해도 박성현이 확신이 없는한, 게이트 밖에서 함부로 그 스킬들을 쓰지는 못할거야.”
“왜죠?”
이시결이 의아한듯 물었다.
“공기 중 확산의 우려가 있다면 그놈의 단원들이라고 무조건 무사하지는 않을 거 아냐.”
회귀 전 박성현은 자신이 신용하는 수하들은 꽤 끔찍이 여겼다. 그런 그가 자신의 수하들이 옮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스킬을 함부로 쓰지는 않을터.
만약 놈이 게이트 외부에서 스킬을 사용했다는 정황을 발견하면 그건 놈이 감염을 일으킬 상대를 지정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물론 그 이후는 이미 늦은거지만….’
그게 아니라면 정말 이시결의 말대로 백신과 치료에 관련된 스킬이 그에게도 있다거나.
어쨌든 가장 확실한건 박성현의 정보를 직접 살펴보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최대한 근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일이 있을 기회가 생기기를 기다려야했다.
* * *
“…쿄…. 쿄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집에 들어오던 주선오가 거실 구석에 박혀 청승을 떨고있는 레부를 보며 물었다.
“갖고 있던 A급 이하 아이템들을 모두 털렸거든요.”
도빈이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레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레부의 저런 증상은 청계천에서 돌아온 이후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모았던 A급 이하의 아이템을 모두 청계천의 아이템 상점에 내놓고 왔기 때문이었다.
“…쿄…. 삶의 낙이 없습니다, 모부….”
“배부른 소리 하지 마세요. 전 스킬자체를 얻기는 커녕 구경조차 못했습니다! 휴!”
“푸? 레부는 아이템을 모으고 모부는 스킬을 모아? 그럼 우부는 뭘 모을까?”
“다 청승 그만떨고 들어가.”
내 명령에 세 슬라임이 꾸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선오에게 빈 소파를 권했다.
“앉아.”
주선오가 살짝 고개를 꾸벅이고는 소파에 앉았다.
그에게 아침에 잠깐 들러도 되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선오가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핸드폰 액정에는 보너스 게이트의 정보가 떠 있었다. 기관의 사이트에 있는 게이트 정보로 서해의 한 섬에 나타난 것이었다.
‘역시.’
정보 확인을 마친 후 고개를 들자 주선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보너스 게이트에 가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눈빛은 결연에 차있었다.
광휘의 서리를 만들기위해 신교진의 운을 이용했을 때였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난쟁이가 있는 게이트를 찾아달라며 내가 신교진에게 내걸었던 조건. 주선오의 24시간을 그에게 주는대신, 주선오와 보너스 게이트에서 대련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것때문에 주선오는 신교진에게 굴욕을 당할것이라는걸 알면서도 그 조건을 받아들여주었던 것이었다.
이제 내가 주선오와의 약속을 이행할 차례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