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방금 뭐였지?’
김나린은 눈앞의 게이트를 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게이트의 중앙에는 입장 불가 안내문이 떠 있었다.
[보너스 게이트입니다.]
[패배하여 게이트 밖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재입장이 불가합니다.]
기관 소속 각성자인 그녀는 서해 쪽의 섬에 생기는 게이트들을 정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C급부터 S급까지. 어떤 게이트가 나타나더라도 팀원 선에서 처리가 가능해야했기 때문에 이곳에 파견을 온 각성자들은 나름 기관 안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각성자들이었다.
김나린은 이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이었다. 그녀는 팀장의 직무를 다하고자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과 후, 기관에 연락함은 물론이고 게이트 내부에서 있었던 일까지 상세한 보고를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지만 중상을 입어 팀원이 교체되는 경우는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물론 모든 게이트가 그러하겠지만 필수적으로 이곳의 게이트들을 맡아야하는 그들로서는 부다감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매일매일이 긴장상태였다.
이 보너스 게이트는 그러던 중 나타난 곳이었다. 이 부근에서는 처음 생긴 보너스 게이트였다.
간만에 숨 좀 돌리겠다는 생각에 팀원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입장했는데.
‘게임 시작 1시간만에 퇴장이라니….’
며칠이라는 대기시간이 무색할만큼 빠른 퇴장이었다.
억울하다면 상당히 억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죽인 각성자를 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당했다는 점이 더욱 그러했다.
보너스 게이트의 보정때문에큰 고통은 없었다.
그저 의아할 뿐.
‘대체 누구지?’
자신과 같이 파견을 온 팀원들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 이런식으로 아무도 모르게 접근을 해 자신을 죽일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옆쪽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훅!
연기와 함께 나타난건 팀원인 박신우였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 그가 커다래진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그를 바라보는 김나린을 발견했다.
“…어, 팀장님…?”
당혹스러운 목소리.
“…신우 씨. 신우 씨도 당했어요?”
“…네.”
박신우가 겸연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슬쩍 김나린을 보며 물었다.
“근데 혹시 누구한테 당하신거에요? 저는 누군지 보지도 못하고 산산조각나버렸는데….”
중얼거린 박신우가 살짝 몸을 떨었다. 아무리 고통이 반감된다고는 하지만 몸이 터져나가는 느낌이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나린도 그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산산조각나서 죽음을 맞이했고 게이트 밖으로 나와졌으니.
“…저도 못봤어요. 아마 같은 각성자에게 당한 것 같은데.”
곧 나머지 세 명의 팀원 역시 하얀 연기와 함께 게이트 앞에 나타났다.
다만 그들의 경우에는 자신을 죽인 각성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세 각성자의 말에 김나린과 박신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주선오 각성자라고요?”
“네. 확실히 마주쳤어요. 저도 긴가민가 하긴 했는데 그 얼굴이랑 스킬을 보니 확실하더라고요.”
“저도 봤어요.”
“나도 봤어. 뭐 대응을 하려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베어버리더구만. 거 참.”
세 각성자의 말이 일치하니 잘못본거라 반박할 수도 없었다.
“주선오 각성자가 여기까지 왔다는게 안 믿겨지는데. 아마 보너스 게이트 닫으려고 온거겠죠?”
박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보너스 게이트라면 이곳까지 올만한 가치가 있긴 했다.
“그 덕분에 최소 인원이 차서 진행이 된 것 같긴 한데….”
“어, 혹시 저희가 기관에 연락이 안되서 살펴보러 온건 아닐까요?”
박신우가 팀을 이끄는 팀장인 김나린을 보며 물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김나린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 기관에 연락부터 해야겠네요.”
보너스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 그곳에 들어간다고 연락을 남긴 것이 마지막이었다. 며칠동안 그곳에서 대기를 했으니 당연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 어쩌면 정말로 자신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기관측에서 주선오에게 요청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김나린은 바로 기관에 연락을 해 모두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정말 다행입니다. 며칠동안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기관 이사인 김지석의 말에 김나린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윤도아 각성자와 주선오 각성자가 가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뻔 했네요.]
잠시 눈을 껌뻑거리던 김나린이 되물었다.
“…윤도아 각성자요?”
[아, 만나지 못하셨나보군요. 맞습니다. 그 두 분께서 보너스 게이트에 가신다고 하셔서 여러분들이 무사한지 확인을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맙소사.’
그렇다면 자신과 박신우를 죽인 것이 윤도아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김나린은 다시 멍해진 기분으로 김지석과의 통화를 마쳤다.
김나린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네 각성자가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도아 각성자도 왔다는거에요?”
“헐…. 진짜?”
“그럼 저 죽인게 윤도아 각성자일지도 모르겠네요?”
박신우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김나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랭킹 1위에게 죽임을 당한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할까.
“…일단 두 분이 나오길 기다려보죠.”
김나린의 말에 네 각성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염없이 하얀 구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남은 인원 2명]
배틀로얄 보너스 게이트에 입장한지 3시간. 이제 이 안에 남은건 둘 뿐이었다.
내가 죽인 각성자는 다섯.
한국 각성자 두 명, 일본과 중국의 각성자 세 명이었다.
나머지 23명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주선오에게 당했을 확률이 컸다.
‘최소 10명에서 최대 23명. 굉장한데.’
여러 나라의 각성자들이 있는것을 보아 보너스 게이트 안은 그만큼 넓은 공간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주선오가 그만큼의 각성자를 정리했다고 생각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후각 스탯.’
스탯의 범위 안에 남아있는 체취를 추적하여 각성자를 쫓아가 베어버린다.
아무리 추적을 피하고 몸을 숨기더라도 체취를 없애지 않는한 주선오의 후각을 피해낼 순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세계 랭킹 2위라는 실력을 쫓아올만한 각성자가 없었기에도 가능한 일이었다. 마주친 각성자들은 모두 단칼에 베여나갔으리라.
나 역시 몸을 숨기는것은 의미가 없었다. 주선오가 가진 후각 스탯은 이미 여러번 확인한 바 있었다.
이 자리에 멈춰있으면 주선오가 알아서 찾아오겠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나도 그와의 대련을 꽤 기대하고 있었기때문에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이 공간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마음먹고 주선오를 찾고자하면 문제는 없었다. 내게 그와 같은 후각 스탯이나 스킬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내게는 빠른 이동기와 탐지가 있었으니까.
마나 운용의 최대 범위 끝 쪽으로 블링크를 한 후.
훅!
곧바로 탐지로 주변을 살핀다.
‘없어.’
그렇다면 다시 블링크 후, 탐지를 반복한다.
그렇게 연속으로 블링크를 4번 사용하자, 드디어 탐지 범위 안에 그가 잡혔다.
주선오는 비스듬히 썰려나간 건물의 앞에 서있었다.
동시에.
주선오가 은빛의 칼을 고쳐쥐었다. 내가 다가왔음을 눈치챈 것이리라.
단검을 고쳐쥔채 빠르게 주선오의 정보를 살폈다.
[주선오]
[개 신의 가호]
[개 팔자 상팔자]
[전용 특성 : 개의 이빨 lv.5]
[전용 스탯 : 검격 77/근력 88/암소시 65/후각 73]
[전용 스킬 : 버티기 lv.5/후각 lv.6]
[특성 스킬 : 검격증폭 lv.5/물어뜯기 lv.7/선별 lv.3/이빨벼림 lv.5]
높은 수치였다.
나의 회귀가 그에게는 좋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주선오가 천천히 칼을 들어올렸다. 탐지로 시선의 위치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는 나를 향해 서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주선오가 먼저 나를 공격할 생각인 것 같았다.
보너스 게이트가 가진 특수성때문에 가능한 모습이겠지만, 초반 사이비 종교인들을 제압하지 못해 망설이던 모습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회귀 전의 그가 떠올랐다.
두근.
두근.
기분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적을 마주했을때와는 다른 느낌. 순수하게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고 감각을 키우기 위한 부딪침. 회귀 전의 그때와 같은 설렘이었다.
물론 지금의 주선오에게 그때와 같은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주선오가 들어올린 칼을 횡으로 그었다.
수십 개로 펼쳐진 날카로운 칼날은 나와 그 사이의 건물을 파고들어 나에게 빠르게 뻗어왔다.
사아악!
이빨 벼림으로 한없이 날카로워진 칼날이 콘크리트를 부드럽게 썰어냈다.
사람의 몸을 썰어내는 것은 일도 아닐터.
그가 가진 검격의 범위는 77미터. 그 수치대로라면 칼끝이 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리라.
하지만 그가 가진 검격 증폭 스킬때문에 그의 검격은 훨씬 길었다.
‘피하지 않으면 베인다.’
곧바로 주선오의 뒤쪽의 마나에 집중했다.
‘블링크.’
훅!
순식간에 내 앞에 주선오의 뒷모습이 보였다.
함께 게이트를 많이 다녔던 탓인지, 주선오는 내 이동을 예상했고 곧바로 몸을 앞으로 굴렸다.
콰드득!
비틀어진 은색 칼날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다가 사라졌다.
쿠구구궁!
주선오의 칼날이 베어내던 건물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새는 없었다.
곧바로 땅을 박차며 아직 자세를 바로잡지못한 주선오에게 도약했다.
콰득!
디뎠던 바닥이 움푹 패이며 앞으로 튀어나가자 얼굴에 거센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후욱!
순식간에 가까워진 주선오의 가슴을 향해 심연의 불꽃을 휘둘렀다.
캉!
주선오가 간신히 들어올린 칼로 심연의 불꽃을 막아냈다.
아직 몸을 채 일으키지 못한 탓에 균형을 잃은 그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그 틈을 타 왼손에 들고 있던 광휘의 서리를 주선오의 복부에 찔러넣었다.
하지만 광휘의 서리가 그의 복부에 닿는것보다 주선오의 무릎이 내 옆구리를 가격하는것이 먼저였다.
퍽!
근력의 스탯은 나보다 낮았지만 기본적인 근력의 차이때문에 그의 위에서 밀려날수밖에 없었다.
차인 옆구리가 살짝 시큰거렸다. 하지만 미미한 고통에 비해 내가 밀려난 거리는 꽤 멀었다.
허공을 날아가 떨어져 바닥 위를 구르는데, 위쪽에서 은빛의 칼날들이 쏟아져내렸다.
빠르게 바닥에 두 단검을 꽂아 움직임을 멈추며 위쪽으로 마나 방패를 생성했다.
‘마나 방패!’
촤르륵!
빠르게 생성된 마나 방패가 주선오의 칼날과 부딪혔다.
콰지직!
은빛 칼날은 마나 방패를 가뿐히 쪼개버렸다. 특성과 스킬의 시너지 덕분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마나 방패가 버텨준 덕분에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주선오의 칼이 내게 닿기 전,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몸을 피한후 먼지만이 남아있던 땅 위에 칼날이 내리꽂혔다.
촤악!
가까이 접근을 해서 공격을 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회귀 전에도 그랬지.’
둘 중 하나가 실수를 하거나 지쳐서 포기하기 전까지, 지금과 같은 공방이 지겹도록 이어졌다.
그리고 대게 나의 패배가 많았다.
주선오는 검격 증폭 덕분에 원거리 공격까지 커버가 가능했지만, 나는 근접한 공격 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은신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그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체력적으로 먼저 지쳐떨어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
탐지로 주변을 살핀 후, 뒤쪽의 무너져내린 폐허의 위로 이동했다.
‘블링크.’
주선오는 칼을 거두며 내 위치를 금세 찾아냈다. 그가 다시 칼을 휘두르기 전, 나는 빠르게 마나를 압축했다.
‘마나구.’
시작은 가볍게 하나였다.
50:1로 압축한 마나구를 그에게 날려보냈다.
내 마나구를 본적이 있는 주선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챘다.
칼을 거둔 주선오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빈 땅 위에 부딪힌 마나구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그 여파에 몸을 피하던 주선오가 살짝 비틀거렸다.
맛을 보여줬으니 이제 갯수를 늘려줄 때였다.
‘마나구.’
빠른 이동기가 없는 주선오는 수십개의 마나구를 모두 피해낸다고 하더라도 이 마나구들이 일으킬 폭발의 여파때문에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선오와의 대결은 이걸로 끝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쁘지 않았어.’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회귀 전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만족했다.
내 주변에 생성된 수십개의 마나구가 주선오를 향해 날아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