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64화 (165/201)

제164화

주선오가 침착하게 칼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격 증폭이 적용되어 있었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원래 칼의 길이의 1.5배 정도 뿐이었다.

‘베어내려는건가?’

끝일거라 생각했는데 주선오는 아직 아닌 모양이었다.

나도 꽤 흥미가 생겼다.

그가 정말로 마나구들을 베어낼 수 있을지.

마나구와 주선오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졌다.

주선오가 들어올린 칼의 날이 수십개로 늘어났다. 그의 손이 움직임에 따라 칼날들이 유려한 춤을 추었다.

그의 칼날 중 하나가 마나구에 닿는 순간.

쾅!

가벼운 폭음과 함께 일어난 작은 불꽃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뒤이어 마나구들이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광!

연달아 울리는 폭음에 주변의 폐허가 들썩였다.

바닥이 흔들리며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던 건물더미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부유를 이용해 허공으로 몸을 띄우자, 곧바로 딛고 있던 건물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쿠구구구…!

뜨거운 불꽃과 매캐한 연기, 텁텁한 먼지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살아있나?’

탐지로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려는데.

사아악!

먼지를 뚫고 은색의 칼날들이 쏟아졌다.

“!”

촤악!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지만.

투두둑!

방심했던 탓에 반응이 느려 왼쪽 팔을 베이고 말았다. 베인 팔을 따라 피가 왈칵 쏟아져내렸다.

쏟아지는 피의 양에 비해 팔에 느껴지는 통증은 경미했다. 보너스 게이트의 보정치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처를 감지하자 곧바로 돌고래 신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돌고래 신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감각차단 발동]

[혈액차단 발동]

[회복 발동]

돌고래다 왼팔의 기다란 상처를 따라 유영했다.

경미했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주르륵 흘러내리던 피의 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몸을 가누는 와중에 불꽃과 연기, 먼지 사이에서 주선오의 모습이 탐지되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폭발의 여파에 살짝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에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왔다.

생각 이상이었다.

내가 그를 너무 과소평가했던건가 싶었다.

물론 마나구 자체의 압축률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은 몸에 직격한 하나의 마나구에 몸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정도의 위력을 품고 있는 마나구였는데.

주선오는 그 마나구 수십개의 폭발에서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가 정말로 마나구를 베어내었기때문에 마나구의 위력이 약해진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 폭발을 견뎌낼 수 있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버티기 스킬!’

첫 회귀 전 오만의 그리폰의 공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주선오였다. 그것 역시 버티기 스킬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사악!

그때 화염을 뚫고 다시 한번 은색의 칼날들이 나타났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주선오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양손의 단검을 고쳐쥐었다.

돌고래 신의 가호 덕분에 왼팔의 상처는 빠르게 아문 상태였다.

‘블링크!’

훅!

순식간에 주선오의 머리 위쪽으로 이동했다.

화염 속에서 마주친 주선오의 모습은 성하지 못했다.

작지만 여러번의 폭발에 휘말린 탓에 온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심지어 얼굴 절반은 흘러내린 피로 뒤덮여 한쪽 시야가 막혀 있었다.

멀쩡히 부릅뜬 한쪽 눈동자에는 비친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꼭 그의 투지가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 같았다.

아까와 같았다면 곧바로 나를 눈치챘겠지만, 가까이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의 냄새와 연기, 먼지 때문에 후각이 둔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그의 앞에 착지하기 전까지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탓!

“!”

주선오의 한쪽 눈이 커다래졌다.

그가 몸을 뒤로 빼려했지만, 심연의 불꽃이 그의 심장에 닿는 것이 더 빨랐다.

푹!

“윽!”

주선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심연의 불꽃을 본 후, 내게 시선을 두었다.

화염이 실린 그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아마 나와의 실력차이에 대한 생각이 가장 클 것이다.

지난 1년동안, 주선오가 얼마나 열심히 게이트를 닫아왔는지는 그의 옵션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내 악마의 고양이 특성과만 비교를 한다면 나와 비등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하게 승패가 갈렸다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겠지.

하지만 나 역시 그동안 노력을 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노력의 결과는 비슷했지만, 마음가짐은 다를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첫 회귀 전의 과거를 알고 있는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다시 한번 그 미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나가서 봐.”

주선오의 심장에 박혀있던 심연의 불꽃을 뽑아냈다.

* * *

“!”

하얀 연기에 휩싸여 게이트의 밖으로 이동된 주선오는 곧바로 자신의 가슴을 더듬었다.

‘…멀쩡해.’

심장에 구멍이 뚫리지도, 옷이 피에 젖지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건 보너스 게이트의 안에서 일어난 일. 게이트의 특성상 밖으로 나오게 되면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가슴에 박혔던 단검의 뜨거운 열기가 계속해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아직 보너스 게이트는 하얀 구형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신을 죽였으니 최후의 1인은 윤도아가 되었고, 그녀는 게이트의 보상을 받은 후에 밖으로 나올 것이다.

‘…아직도 멀었구나.’

1년동안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윤도아를 이기는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불가능하다면 대체 언제쯤 윤도아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좌절감이 들기도 했지만.

주선오는 금새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냈다.

조금전 윤도아와 대련을 할 때, 그녀를 공격하는데에 성공했었다. 공격을 단 한번이라도 성공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정도까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베어내기도 했어.’

분명, 윤도아가 날린 작은 구슬들을 베어내는데에 성공했다.

사실 스스로도 그것을 베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끝낼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어떻게든 해보자는 생각으로 칼을 휘둘렀는데. 정말로 구슬들을 베어낼 수 있었다니.

그때의 감각이 떠올라 찌릿한 오른손을 꽉 움켜쥐었다.

‘…아쉽다.’

윤도아와의 대련이 벌써 끝났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자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대련이 더 길어질 수 있었을텐데.

대련 중 윤도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실력에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윤도아가 게이트에서 나오면 묻고 싶은것이 많았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 수 있을까?’

“주선오 씨?”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선오는 주먹을 쥔 손을 내리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주선오를 바라보고 있는 다섯 명의 사람이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게이트에 입장하기 전 김지석에게 들었던 기관 소속의 각성자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자신에 베어냈던 각성자들도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살짝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기관 소속 각성자 김나린입니다. 이 부근 섬들에 생기는 게이트를 맡아서 닫고 있어요.”

“네. 이사님께 들었습니다.”

“…저, 윤도아 씨는 아직 안에 계신건가요?”

김나린이 조심스레 물었다.

보너스 게이트의 게임 내용이 배틀로얄이었다는 것은 이들 역시 알고 있었다. 잘못하면 윤도아에게 진거냐는 무례한 이야기가 되어버릴수도 있었기에 상당히 고심해서 던진 질문같았다.

주선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곧 나오실겁니다.”

그러자 각성자 다섯의 눈빛이 반짝였다. 윤도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품은 모양이었다. 윤도아가 게이트에서 나오면 그들은 기자라도 된 것 마냥 그녀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을 것 같았다.

쉽게 만날 수 없는 국내 랭킹 1위이자 세계 랭킹 1위를 이런 곳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당연히 감격스럽겠지만.

그들때문에 윤도아와 대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늦어질 것 같았다.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먼저 돌려보내거나 자리를 뜨게 할 명분은 없었다.

주선오는 그저 입을 꾹 닫은채 윤도아가 조금이라도 빨리 게이트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배 안에서 대화할 시간이 있겠지.’

잠시 후, 윤도아가 게이트에서 나오자 그들은 윤도아에게 몰려들었다.

“와! 지, 진짜 윤도아 씨네?”

“헐. 와, 나 처음봐. 와, 이런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그들은 윤도아에게 만나서 영광이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보너스 게이트 안에서 그녀에게 죽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쏟아내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주던 윤도아의 얼굴에 곤란함과 피로함이 떠올랐다.

참다못한 주선오가 윤도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돌아갈 배 시간이 다 되서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딱딱해진 목소리를 내뱉자, 다섯 각성자의 시선이 주선오에게 꽂혔다. 빠르게 시간을 확인한 박신우가 외쳤다.

“아! 배 시간!”

김나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배 시간이 다 돼 가네요.”

주선오는 윤도아의 어깨를 살짝 잡아끌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 좀 조용히 얘기를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박신우가 그런 둘에게 따라붙으며 말했다.

“가시죠! 배 타러!”

“…네?”

“아. 저희도 며칠 동안 보너스 게이트 안에 있었던 터라. 재정비도 할 겸 휴식도 할 겸, 인천으로 돌아가려고 하거든요.”

“표 안 끊으셨죠? 제가 바로 끊겠습니다!”

주선오와 윤도아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박신우가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주선오는 배에서 윤도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것이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 * *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관 소속 각성자들에게 둘러싸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4시간.

무려 4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 윤도빈이 있었더라면, 도빈이가 알아서 중재를 해주었을텐데.

주선오는 우리의 대화에 전혀 끼어들 생각이 없어보였다. 기본적으로 친절함이 없는 그의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기분이 딱히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창밖만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 주제는 아주 다양했다. 보너스 게이트의 안에서 있었던 일은 당연히 이야기해야 할 주제였고, 그들이 지금까지 닫았던 섬에 나타났던 게이트들의 이야기까지도 좋았다.

‘거기까지만 했어야했어.’

그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가족 관계와 친구들, 연인에 관한 전혀 알 필요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민트 초코 호불호에 대한 토론까지 듣고 있어야했다!

한 시간 쯤 후부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결국 인천에 도착했을때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게이트를 연속으로 돌다 온 기분이야.’

“그럼 고생많으셨습니다. 저희는 여기에 차를 대놔서.”

잔뜩 지친 목소리로 주차장을 가리키자 박신우가 내 손을 덥썩 잡으며 말했다.

“아, 진짜 아쉽네요. 조금만 더 얘기하다 가시면 안 될까요?”

절대 사양이었다.

그나마 중간쯤부터 나와 주선오의 눈치를 살피던 김나린이 그런 박신우를 말렸다.

“신우 씨. 그만하세요. 바쁘신 분들인데 계속 붙잡고 있으면 안 되죠.”

그틈에 빠르게 손을 빼내었다.

박신우가 아쉽다는듯 입맛을 다시고는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렇겠죠. 어쨌든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만나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다른 각성자들 역시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겨우겨우 모두와 인사를 마친 후 주차장에 세워둔 주선오의 차로 걸어갔다.

“조심히들 가십시오! 조만간 서울에서 뵈면 좋겠네요!”

뒤에서 박신우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예의상 뒤를 돌아보고 손을 흔들자, 멀찍이 사람들의 사이에 파묻힌 박신우가 양손을 번쩍 들고 마구 휘저어보였다.

주선오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의자에 기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러자 운전석에 올라타던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걱정과 미안함이 섞인 얼굴이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그가 흐린 말끝에는 아마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리라.

자신때문에 이렇게 먼 곳 까지 오게 됐고, 괜히 각성자들에게 둘러싸여 시달리게 됐음에 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내 상태를 신경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가 미안해할 일은 없었다. 그가 내 부탁대로 신교진과의 거래에 응해줬으니 나 또한 당연히 응해줬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그나저나 실력 많이 늘었던데.”

진심에서 우러난 이야기였지만 주선오의 표정은 그닥 밝지 못했다.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이 아직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 공격은 누나한테 닿지도 못했는데요.”

폭발에 가려 자신의 칼날이 내 팔을 베어냈던 것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냐. 나도 베였어.”

살짝 왼팔을 들어보였다.

주선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네? 하지만….”

안에서 돌고래 신의 가호가 발동이 되며 상처가 거의 아문 상태였고, 밖으로 나오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기에 팔 자체가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때 주선오의 공격에 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 네 상태가 상태라 잘 못 봤던 모양인데. 조금 위험했거든.”

방심을 했기 때문이지만 반응이 조금만 느렸더라도 내가 먼저 게이트를 나오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정말입니까?”

주선오가 조금 믿기 힘든듯 되물어왔다.

“진짜야.”

단호한 대답에 주선오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간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나와의 격차를 줄였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 모양이다.

작게 헛기침을 한 주선오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 그 전에.”

내 말에 벨트를 메려던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잠깐 손 좀 줘볼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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