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갑작스러운 요구였지만 주선오는 별다른 질문없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그의 손 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작고 부드러운 하얀 깃털이었다. 당연히 길거리에서 주워온 쓸데없는 깃털 따위는 아니었다. 주선오 역시 내가 출발을 미뤄가며 쓰잘데기없는 것을 줬을리는 없을거라 생각했는지, 손에 놓인 하얀 깃털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이템…?”
각성자인 그에게도 당연히 아이템의 정보가 보이리라.
“맞아. 이번 보너스 게이트 보상으로 받은거야.”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주선오의 눈이 다시 커졌다. 그가 깃털과 나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걸 왜 제게….”
“나보다는 네가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살짝 웃어보인 후 그가 들고 있는 깃털의 정보를 다시 확인했다. 그는 나와 같은 정보를 보고 있을 것이다.
[랜덤 스킬 부여권]
[배틀로얄 최후의 1인에게 주어지는 랜덤 스킬 부여권입니다.]
[생존에 유리한 스킬 중 하나를 랜덤으로 부여합니다.]
랜덤 스킬 부여권.
지난번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를 잡은 후 놈이 떨어뜨렸던 안개화 지정 스킬이 담겨있던 것과 같은 부류의 아이템이었다.
보스몹을 잡고 나온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보너스 게이트에서는 어떤 것이 보상으로 주어지더라도 이상할게 없었다.
게다가 생존에 유리한 스킬이라면. 배틀로얄의 방식을 취했던 게이트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보상 아닌가.
그렇기에 굳이 내가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일단 여러개의 목숨이 남아있었고, 부상을 입어도 회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이동기와 스킬도 많았다.
‘너무 과해도 독이야.’
반면 주선오는 달랐다.
지금의 그는 공격면에서는 나와 맞먹을 정도의 힘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그에게는 빠른 이동기가 없었다.
‘저기에서 이동기와 관련된 스킬이 나오면 딱 좋을텐데.’
주선오는 멍한 눈빛으로 깃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얼떨떨한 기분인것 같았다.
“빨리 사용해봐. 어떤 스킬을 얻을지.”
오히려 내가 더 궁금해져 그를 재촉했다.
“아….”
정신을 차린 주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랜덤 스킬 부여권 사용.”
주선오의 나직한 말에 반응한 깃털이 하얀 빛을 내뿜으며 그의 손바닥 안으로 부드럽게 흡수되었다.
“어떤 스킬 얻었어?”
질문은 했지만 대답을 듣기도 전에 주선오의 옵션을 살폈다.
[지정 스킬 : 헤이스트 lv.1]
‘헤이스트!’
딱 좋은 스킬이 나왔다!
“그거….”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확인을 해버렸기에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다행히 주선오는 스킬을 확인하고 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앞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헤이스트 스킬을 얻었습니다.”
“설명은?”
주선오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스킬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는 것이리라.
“일시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스킬이네요. 1레벨은 30초 정도 지속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후 재사용을 하려면 5분 정도 걸리는 것 같고요.”
다행히 그에 따른 패널티같은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안개화처럼 스킬 레벨업권을 사용해서 레벨을 올릴 수 있을테고,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지속 시간도 길어질 것이다. 어쩌면 빨라지는 속도 자체도 증가할지도 모른다.
헤이스트 스킬이 생겼으니, 이제 주선오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기동력있는 전투가 가능해질 것이다.
“잘됐다. 딱 너한테 필요한게 나왔어.”
이대로 계속해서 성장을 한다면 분명 주선오도 내가 회귀 전 알던 그보다 더욱 강력한 각성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조금 전에 네가 이런 이속 스킬만 있었어도 나를 공격하는게 훨씬 쉬웠을거야. 마지막에 널 찌르기 전에 벌써 뒤로 빠져서 나를 베어낼 수도 있었을테고. 그 전에 내가 마나구를 날렸을 때 그 폭발에 휘말리지도 않았겠지. 그랬다면….”
느껴진 시선에 말을 멈추고는 옆을 돌아보자, 주선오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
나도 모르게 많은 말을 쏟아내버렸다.
보너스 게이트에서 있었던 그와의 대련에 첫 회귀 전의 일이 떠올랐고, 그때는 주선오와 대련이 끝났을 때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었다. 서로의 전투에서 부족한 점을 짚어주고 그것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던 것.
순간적으로 그때와 착각을 해버렸다. 게다가 주선오에게 이속 스킬이 생겼다는 것에 흥분을 해버린 탓도 있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많은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주선오가 저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민망해진 내가 작게 헛기침을 하자 주선오가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제 가자.”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 고개를 돌린 채 벨트를 메었다. 하지만 주선오는 차를 출발시키는 대신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누나.”
갑작스러운 감사인사에 흘긋 주선오를 돌아보니, 그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한테는 크게 필요없던거라서 준거야. 전에 모래의 심장을 받은 것도 있었고.”
지금 모부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래의 심장은 원래 주선오가 받았던 보상이었다. 그에 대한 보답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핑계로 좋았다.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민망함에 한소리를 하려 다시 그를 돌아보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면.”
여전히 미소를 띤 주선오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에 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대련을 말하는 것이리라.
간만에 그와 가졌던 대련의 시간이 즐거웠던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 * *
[이번달 거래 내역이야.]
간략한 문자와 함께 문서 하나가 함께 도착했다.
발신자는 에이단 맥카시.
3개월 째, 그는 내 말에 따라 모든 거래 내역을 꾸준히 보고해왔다.
‘착실하네.’
기관에 걸려서 갇히게 되는 것이 어지간히 무섭긴 한 모양이었다.
빠르게 문서를 확인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은 거래는 없었다. 그날 이후로 박성현과의 만남도 딱히 없었다.
박성현이 있는 성위의 수하 쪽도 조용했다. 그쪽은 이시결이 계속해서 전담하고 있었다. 그덕에 이시결의 감시아닌 감시에서 벗어나 마음껏 게이트를 활보하고 있었고.
또한 아직 EX급 가호가 깃든 돌에 대한 보고도 없었다.
그래도 언제 가호가 깃든 돌을 얻게될지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두긴 해야했다. 물건을 구했는데 돈이 없어서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는건 안될 일.
‘돈을 마련하려면 역시 의뢰를 받는게 가장 빠르지.’
최근에는 지방의 게이트들을 돌아보느라 의뢰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한번 연락을….’
지잉.
때마침 오는 핸드폰의 진동에 화면을 바라보니 신교진의 연락이었다.
꽤 좋은 타이밍에 피식 웃은 나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뭐라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신교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누나!]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목소리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들려. 살살 얘기해.”
[누나, 바빠요? 어디에요? 집? 전화 받은거보니까 게이트는 아닌 것 같은데.]
“집이야. 왜?”
[그럼 빨리 사무실로 좀 와줄 수 있어요? 여기 개의 이빨 사무실!]
목소리가 꽤 다급한 것이 뭔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개의 이빨 무리에 관련된 일이었다면 주선오가 직접 연락을 했을텐데.
‘혹시 주선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게 아니라면 누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걸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낮아진 내 목소리에 신교진이 한 템포 쉬고는 말했다.
[…아니, 그렇게 심각한건 아닌데. 여기 누가 좀 찾아와서요.]
순간 맥이 확 빠져버렸다.
쯧, 세게 혀를 찬 후 짜증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누가. 왜. 근데 왜 나를 불러.”
[의뢰에요, 의뢰. 급해서 바로 찾아왔는데 누나를 지목했다고요.]
신교진이 금세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를?”
[네. 빨리 와봐요.]
그러더니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전화를 뚝 끊는다.
“…….”
의뢰인은 둘째치고 가서 신교진을 한 대 때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삼십 분 후, 개의 이빨 사무실로 향하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사무실 옆의 휴게실에서 내게 손짓을 하는 신교진을 발견했다.
“누나! 여기, 누나!”
휴게실로 들어서자 신교진이 주변을 슥 살피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내게 몸을 돌리는 그의 볼을 확 꼬집었다.
“악! 으어, 누나! 아, 죄송해요!”
꼬집히자마자 사과를 하는것이 최근들어 내게 너무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걸 본인도 자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전화를 끊을 때는 끝맺음 확실히. 알겠어?”
“아, 알겠어요!”
울상인 신교진의 볼을 놓아주었다.
“그래서 누군데?”
그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빨개진 볼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아파 죽겠네, 진짜. 그 뭐야. 작년에 우리 쌍둥이 게이트 갔던거 기억나요?”
“아.”
작년 1월 쯤.
신교진, 주선오와 함께 인천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 생겼던 쌍둥이 게이트를 닫은적이 있었다. 신교진에게 의뢰 사이트를 만들게 한 후 처음 받았던 의뢰였다.
“기억나지. 근데 왜?”
모른척 물었지만 신교진의 이야기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마 이 때 쯤이었던 것 같은데.’
하임 건설의 사장 최정식이 박성현의 도움을 받은 후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 도움은 당연히 최정식이 요청한 게이트를 닫아주는 것이었다.
‘혹시 지금 찾아온게 최정식인가?’
“나참, 어이가 없어서. 그때 그 하임 건설 사장. 저희한테 엄청 뭐라고 했었잖아요? 뭐 사기꾼이니뭐니 그런 이야기까지 해놓고. 지금 여기에 갑자기 찾아왔다니까요.”
정말이었다. 하임 건설의 사장 최정식이 나를 찾아왔다.
최정식은 각성자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때문에 작년 쌍둥이 게이트가 생겼을 때 우리를 그닥 믿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깔끔하게 그 게이트들을 클리어해주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는 박성현을 찾는 대신 곧바로 나에게 온 것이리라.
“급한 의뢰라고?”
신교진이 코웃음을 쳤다.
“네.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연락을 한건지 모르겠는데, 누나를 콕 찝어서 의뢰 요청을 했어요.”
하임 건설이라는 큰 기업의 사장이 이곳까지 직접 찾아올 정도면, 분명 그에게 있어 큰 일이 생긴 것이리라.
“근데 의뢰 받을거에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내게 신교진이 물었다.
당연히 해야했지만.
왠지 나도 그때 사기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그닥 유쾌하지는 않았기에, 순순히 의뢰를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신교진의 운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했다.
내 물음에 신교진이 다시 팔짱을 끼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호일펌으로 구불구불한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스레 말했다.
“맘같아서는 그냥 두고 싶은데. 머리로 생각하면 가야죠. 사실 제 가호는 둘째치고, 그냥 생각해봐도 하임 건설 사장이잖아요. 그 사람 부탁 안 들어줘서 좋을것도 없을 것 같고. 차라리 이번에 도와주고 대가를 더 크게 받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요.”
결론은 비슷했다.
“그래, 그럼. 일단은 얘기나 들어봐야겠네.”
말은 그리 했지만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신교진은 앞장서서 휴게실을 나섰다.
“근데 선오는?”
그를 따르며 물었다. 신교진은 복도를 지나 개의 이빨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게이트요. 그때 누나랑 보너스 게이트 갔다온 이후로 아주 신났던데요? 하루라도 게이트에 안가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것처럼 맨날 게이트에 간다고요.”
그리고는 뒤이어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멀쩡하게나 오면 몰라. 꼭 무모하게 하다가 어디 한 군데는 꼭 다쳐서 오더라고요. 같이 가자고해도 맨날 시험해볼게 있다고 혼자 간다고하고 가버리더라고요.”
그 이야기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선오는 헤이스트 스킬을 얻은 것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마 매일같이 게이트를 가는 것도 그 스킬을 올리고 테스트해보기 위함이었겠지.
“저 안에 있어요.”
신교진이 단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바로 단장실로 들어서자 그 안을 서성이던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보았다.
‘…최정식?’
분명 하임 건설의 사장 최정식이었다. 살짝 의문을 품었던 것은 생각보다 더 늙어버린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작년에 보았던 그는 50대 중후반이라는 나이에 맞는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1년 사이에 저렇게 늙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를 이렇게 늙게 만든건 그가 의뢰한 게이트와 연관이 있으리라. 그 모습을 보니 그가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자네!”
그는 나를 보더니 다급한 얼굴로 후다닥 내게 다가왔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는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만큼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제, 제발. 제발, 우리 아버지를 좀 구해다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