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최정재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노인의 말대로 나는, 그리고 신교진은 아직 어리니까. 회귀 전을 생각하더라도 노인의 반절도 살아보지 못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흐음?”
신교진은 팔짱을 낀 채 최정재에게 말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은 안하세요?”
“…기다린다?”
최정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머리를 긁적인 신교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가 여기에 왜 온줄 아세요? 최정식 사장님 부탁 때문이에요.”
“…정식이가 부탁을 했단 말이냐?”
“맞아요.”
내 간략한 대답에 최정재가 눈을 내리깔았다.
침묵하던 노인은 잠시후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나같은 노인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아. 이 늙어버린 몸뚱이로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집 안에서 잠만 자고 밥이나 먹고 티비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그렇게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할 뿐이네. 사라져 주는게 오히려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런 상황에서 내가 내 죽을 자리를 선택한다는게 잘못된 일인가?”
최정재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생각으로 입장을 한 것 같았다.
게이트를 무덤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리 추천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데.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나눌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혹독했다.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눈을 꾹 감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애는 가호자나 각성자를 싫어하네. 그런 부탁을 할리가 없어.”
노인은 우리의 말을 믿지 못했다. 신교진이 답답한지 가슴을 퍽퍽 치고는 말했다.
“할아버지. 봐요? 저희가 예전에도 최 사장님 건설 현장에 생긴 게이트를 닫아준 적이 있어요. 그때 사실 엄청 욕먹었거든요? 물론 처음에 그랬고 게이트 닫고 난 다음에는 제대로 보상받긴 했지만. 저도 알아요, 그 사장님 가호자 각성자 싫어하는거. 근데 그런 최 사장님이 저희한테 와서 부탁을 하셨다고요. 제발 할아버지를 좀 구해달라고. 그런데도 이해가 안 되세요?”
최정재가 다시 침묵했다.
한참 말을 쏟아내던 신교진은 슬쩍 나와 최정재의 눈치를 살폈다. 말이 조금 심했나 싶은 모양이었다.
“…음.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저희랑 같이 나가시자는 거에요. 최 사장님이 기다리니까요.”
최정재는 여전히 아무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
그 침묵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신교진은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좀 해달라는 눈빛.
하지만 나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능력은 없었다.
그때 고개를 숙였던 꿈지기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꿈지기들의 감별이 끝났습니다.]
<다 봤어.>
<다 봤어.>
<낚은 꿈을 봤어.>
좋은 타이밍이었다.
우리를 바라보던 최정재의 시선 역시 꿈지기들에게 향했다.
“…그래. 이번 꿈은 어떤가?”
최정재가 물었다.
<슬픈 꿈이야.>
<좋은 꿈인걸.>
<안타까워.>
<즐거웠어.>
<재밌기도 했지만.>
<너무 슬펐어.>
꿈지기들이 최정재가 낚은 꿈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최정재가 어떤 꿈을 낚았는지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 꿈을 볼 수 있는 것은 꿈을 낚은 사람과 꿈지기들 뿐이었다.
신이 나서 꿈에 대해 감정하던 꿈지기들이 최정재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꿈은 아니야.>
<다시 낚아줘.>
<또 꿈을 낚아줘.>
<우리가 원하는 꿈을!>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 0/6]
흥분한 꿈지기들의 속삭임에 순식간에 꿈의 바다가 시끄러워졌다.
그 꿈지기들 사이에서 최정재는 다시 웃었다. 노인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들 말은 잘 알았네. 우선은 꿈지기들을 부탁을 들어주는게 좋겠어.”
그러더니 늘어진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다시 꿈을 낚기 시작한 것이다.
최정재가 정말로 우리의 말을 잘 알아들은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계속해서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가는 수밖에.’
꿈지기들은 꿈을 낚기 시작한 최정재에게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희도 꿈을 낚아줘.>
<어서 눈을 감아.>
<눈을 감으면.>
<우리가 꿈을 낚을 수 있게 도와줄게.>
꿈을 낚는다는 것이 어떤것인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게다가 조건도 조금 까다로웠다.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을 5개 낚아야한다는 것이 애매했다. 그들은 어떤 꿈을 원한다는 이야기도 없이 무조건 꿈을 낚아달라고 보챘다.
어쨌든 최정재 혼자서 꿈을 낚는 것 보다는 함께 꿈을 낚는 것이 확률이 더 커질 것이다.
한숨을 내쉰 신교진이 활을 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러자 꿈지기들의 얼굴이 이제 나에게 쏠렸다.
<눈을 감아.>
<잠들 수 있게.>
<노래를 불러줄게.>
꿈지기들의 흥얼거림이 시작됐다.
라라라…
라라라라…
보랏빛의 오묘한 세상과 꿈지기들의 나른한 자장가.
꿈을 낚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꿈의 바다 안에 있었다.
‘꿈을 낚기위해 직접 꿈의 바다로 들어온건가?’
몸 자체가 바다로 빠진 것은 아니리라. 최정재가 꿈을 낚을 때 나룻배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신교진이 조금 걱정이었다.
직접 빠진 것이 아니더라도 느끼기에 이곳은 물 속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물에 빠졌다는 느낌보다는 물에 동화되었다는 느낌이 컸다. 안개화를 해서 공기 중에 퍼졌던것처럼, 물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괜찮겠지.’
물 속에 빠진것처럼 허우적댈 이유도, 공기대신 물을 들이키지도 않는 상황이니까.
말이 바다이지 오히려 하늘을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바깥에서 보던 풍경도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으니 그 둘을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주변을 살폈다. 꿈의 바다는 꿈으로 가득했다.
나룻배에 앉아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직접 들어와보니 알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하던 색감 자체가 꿈이었다. 꿈들이 물고기처럼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내 앞으로 노란빛의 꿈이 하나 흘러갔다. 살짝 몸을 움직여 빛에 닿자, 꿈의 바다가 순식간에 노랗게 물들었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도 변했다.
‘여기는….’
온통 노란빛을 띤 그곳은 내게 굉장히 익숙한 공간이었다.
‘집?’
성남에 있는 본가였다. 그것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의 집.
현관의 신발장에는 어머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현관을 지나쳐 안으로 가자 주방의 식탁 위에 올려져있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가방.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방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혀있었지만, 그 문을 열면 왠지 어머니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려는데.
스륵.
노란빛의 공간이 사라지고 다시 꿈의 바다가 나타났다.
노란빛의 꿈은 나를 지나쳐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꿈에 닿으면 그 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 보았던 노란 꿈에 대한 생각을 되짚기도 전에, 이번에는 푸른 꿈이 나를 스쳤다. 이번에는 푸른 빛으로 뒤덮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 역시 내게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옛 각성 기관의 관장실에 있었다.
건너편의 소파에는 김지석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상석에 앉은 안세인이 우리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지?’
이상했다.
이곳은 꿈의 바다인데 왜 내 기억들이….
안세인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음성까지 지원되는건 아닌것 같았다. 꿈지기는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멍하게 미소를 띤 김지석을 보는데 다시 푸른 꿈이 사라지고 바다로 돌아왔다.
‘…그런거였나.’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이곳은 꿈의 바다.
내 꿈의 바다였다.
이곳의 꿈들은 내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꿈들.
최정재도 그렇고 신교진도 그렇고, 다들 각자의 꿈의 바다 속으로 꿈을 낚으러 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각자의 꿈 중에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이 있는걸까?
‘대체 그게 뭐지?’
내 꿈 중에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이 있을까?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빠르게 꿈을 낚아 꿈지기들에게 감정을 받는 편이 좋았다. 여러가지 꿈을 감정받다보면 그들이 원하는 꿈이 나올 확률이 커지니까.
하지만 이것들이 내 꿈이라는 걸 안 이상, 이것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기억을 기반으로 한 꿈이다.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꿈.
내 과거는 그닥 밝지 않았다. 좋은 기억보다는 좋지 못한 기억이 많으리라.
그런 기억들을 다시 본다는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또한 회귀 전의 기억과 꿈들도 이곳에 있을 것이다.
꿈지기들이 아무리 게이트 안에 있는 생명체라고 하더라도 내 과거, 내 회귀를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이미 알고 있는 신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세라피스!’
그 신의 꿈이라면.
꿈지기들도 만족하지 않을까?
신의 꿈은 쉽게 볼 수 있는 꿈이 아닐 것이다. 만약 꿈지기들이 그런 독특한 꿈을 찾는다면 분명 그것은 효과가 있으리라.
이곳에 세라피스에 관한 꿈이 있을까 싶었지만, 분명 나는 그의 꿈을 꾸었다.
그를 만나고 앓아누웠던 그때.
세라피스는 꿈에서 나를 괴롭혔다.
‘찾아보자.’
드넓은 꿈의 바다에서 세라피스의 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빠르게 주변을 떠다니는 꿈들을 훑었다. 일부러 내용에 크게 집중하지는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최정재의 말처럼 그 꿈에 빠져 깨어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어느정도 꿈들을 훑어보자, 각 꿈들이 가진 색의 의미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내 감정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노란색은 내게 소중한 추억, 푸른색은 크게 의미가 없는 평범했던 꿈, 붉은색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던 것, 초록색은 슬펐던 기억이 주를 이루었다.
보라색은 내용을 알 수 없는 기묘한 꿈이었다. 정말 개꿈으로 치부될만한 그러한 꿈들. 그래서 이 바다가 보라빛을 띠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기억에 남는 꿈보다는 개꿈으로 치부되는 꿈이 많았으니까.
여러가지 색이 섞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한 꿈에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을 때가 그런 것 같았다.
‘이런 것들은 아니야.’
세라피스의 꿈은 이중 어느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의 꿈은 내게는 악몽이었으니까.
빠르게 꿈의 바다를 유영하며 보지 못했던 색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발견한 검은 물결.
움직임을 멈추었다.
암흑처럼 새까만 그 물결은 바다 깊숙한 아래쪽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꿈들처럼 바다를 유영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그곳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누가봐도 악몽이라고 생각될법한 꿈이었다.
천천히 그 꿈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꿈을 들여다보려다가 멈칫했다.
‘이걸 봐도 되는건가?’
선뜻 들여다볼수가 없었다.
이게 내가 찾고 있던 세라피스의 꿈이라면 괜찮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잊고 싶었던 꿈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이곳에 있다면.
‘…….’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것을 포기하고 그냥 다른 꿈들을 낚는 것이 나을까.
만약 이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냐. 꿈이라는걸 인지하고 있는 이상 괜찮아.’
충분히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마른침을 삼킨후, 그 꿈을 들여다보았다.
순식간에 주변이 까맣게 물들었다.
‘이건 꿈이야. 꿈을 보는 것 뿐이야.’
계속해서 내 마음을 다잡으며, 눈앞에 세라피스의 우주가 펼쳐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건 세라피스가 아니었다.
내 눈앞에 나타난건….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짧게 친 까만 머리가 잘 정돈되어 있었고 회색빛의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너무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힌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30대 중후반의 얼굴.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도빈이가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얼굴.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아버지의 입이 달싹였다.
도아야.
쿵.
순간적으로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내 몸의 상태와는 다르게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다.
아버지가 웃으며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땅이 멀어졌다. 작은 몸뚱이가 아버지의 손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어릴적의 나였다.
나를 안아올린 아버지가 비어있던 손을 옆으로 뻗었다.
아버지의 품에 기댄 채 그 손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손이 나타나 아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어린 도빈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나와 아버지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세상의 전부였다. 어린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세상.
이 기억은, 이 꿈은 그 세상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 전이었다.
이게 그저 꿈일 뿐이라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