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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69화 (170/201)

제169화

너무나도 그립고 행복한 꿈.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괴로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을 낚았습니다.]

[꿈지기들이 감별을 시작합니다.]

<낚았어.>

<낚았다!>

<네 꿈을 볼게.>

<꿈을 보자.>

꿈지기들이 내가 낚은 꿈을 감별하기 시작했다.

낚을 생각이 없었던 꿈이었다.

하지만 낚는다는 기준이 스스로가 그 꿈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느냐였던 모양이었다.

‘…꿈.’

그래, 꿈이었다.

꿈이라는걸 알면서도 그곳에 머물고 싶은 꿈.

최정재가 이야기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었지만 비슷한 정도는 되리라.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내 스스로 그 꿈에서 벗어나야 했더라면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리라.

꿈이라는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 꿈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슬픈 꿈을 낚았나보구나.”

최정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채 내 꿈을 감별하고 있는 꿈지기들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이 있었다.

“…….”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최정재도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볼 뿐 더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노인도 이곳에서 행복했던 꿈을 보았으리라. 그러니 그곳에 머물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겠지.

“헉!”

옆에 있던 신교진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꿈을 낚았습니다.]

[꿈지기들의 감별을 기다립니다.]

신교진이 꿈을 낚으며 깨어난 것이었다.

아직 내 꿈의 감별이 끝나지 않았기때문에 신교진의 꿈은 감별 대기였다.

“아, 지금 딱 좋은…. …어?”

나를 본 신교진의 눈이 커졌다.

“…누나….”

이상하게 뿌연 시야에 신교진의 당황한 얼굴이 들어왔다.

‘뭐지?’

뭔가 난처한 꿈을 낚았나 싶었다. 저렇게 당황해하는 신교진의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뭔가 오늘 신교진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는 것 같….

주륵.

흐릿했던 눈에서 무언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흠칫 놀라 손을 들어 볼을 훔쳤다.

‘눈물?’

나도 모르게 울고 있던 모양이다. 악몽보다도 더 악몽같은 그 꿈 때문에.

“…어…. 괘, 괜찮아요?”

신교진이 무릎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나를 달래줘야할지 몰라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을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우부 역시 내 무릎 위에 앞발을 다소곳이 올리며 내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푸우…? 주인, 슬퍼? 왜 울어? 우부가 위로해줄까?”

“…어…, 음….”

망설이던 신교진이 조심스럽게 끌어올린 소매로 내 볼을 닦아내었다.

“…괜찮아.”

먹먹해진 목소리를 내뱉으며 신교진의 손을 밀어냈다. 어쩔줄 몰라하던 그가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아직 눈가에 남은 눈물을 마저 닦아내는데 안내글이 떠올랐다.

[꿈지기들의 감별이 끝났습니다.]

<봤어.>

<네 꿈을 봤어.>

<행복해.>

<좋은 꿈이야.>

<따듯했어.>

<좋았어.>

<마음에 들어.>

꿈지기들의 속삭임 끝에.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 2/6]

원하는 꿈의 숫자가 올라갔다.

내 꿈은 두 번째. 꿈지기들이 원하던 꿈의 첫 번째는 최정재의 꿈이었으리라.

<이젠 다른 아이의 꿈을 감별할게.>

<아이의 꿈을 볼게.>

<우리가 꿈을 보는동안.>

<기다려줘.>

[꿈지기들이 감별을 시작합니다.]

꿈지기들이 다시 고개를 숙인채 신교진이 낚은 꿈에 집중했다.

주변을 에워싼 정적이 상당히 불편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조금전 낚았던 꿈에 계속해서 사로잡혀있는 기분이었다.

세라피스의 꿈일줄 알았던 그것이, 그 꿈일줄이야.

아마 마음 한 켠으로는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꿈을 들여다보는 것을 망설였으리라.

그것은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의 바다 깊숙히, 검은색의 꿈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건….’

입술을 꾹 깨물고 눈을 감았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빨리 다른 생각을….’

“누나. 제가 낚은 꿈이 뭔지 알아요?”

정적을 깨고, 신교진이 짐짓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데. 의외였다.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도 신교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전에 누나가 선오 시간, 저한테 넘긴적 있잖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주선오를 그렇게 굴려본적이 없었는데 누나가 그 조건을 걸어준 덕분에 원없이 굴렸어요. 저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제 말에 따르는데. 그게 얼마나 재밌던지. 진짜 그 일이 평생 못 잊을 일이 돼서 꿈도 많이 꿨거든요. 그런데 안에서 꿈들을 보다보니까 그게 딱 보이더라고요? 당연히 다시 봤죠. 아, 또 생각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데. 크크크크.”

덧붙여서 그는 주선오를 어떻게 굴렸는지에 대해 상세히 얘기해주었다.

일단 자기보다 절대 눈높이가 높으면 안됐기에 무릎을 꿇은 자세는 기본. 거기에 추가로 존댓말은 당연했다.

그 상태로 신교진의 온갖 행패를 받아주는 것은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그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해야했다.

“그런 꼴 직접 보면 진짜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그가 말한 모습들이 상상이 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 눈치를 살피던 신교진이 안심한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꿈지기들의 감별이 끝났습니다.]

안내문과 함께 꿈지기들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재밌어.>

<재밌는 꿈이야!>

<굉장히 즐거웠어.>

<이렇게 즐거운건 오랜만이야.>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 3/6]

숫자가 하나 더 올라갔다.

그에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꿈을 낚은 이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것. 꿈지기들은 우리의 감정의 동요에 반응하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답을 알면 찾기가 쉬워지지.’

앞으로 3개.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한번 꿈지기의 노래를 들으며 꿈의 바다로 잠수했다.

* * *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 6/6]

[꿈지기들이 원하는 꿈을 모두 낚았습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긴 안내글이 주르륵 떠올랐다.

‘…끝났다.’

조용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B급의 게이트였지만 급을 떠나서, 내게는 힘든 게이트였다.

하지만 꿈을 얻게 된 꿈지기들은 상당히 만족한 것 같았다.

<즐거웠어.>

<고마워.>

<덕분에 행복했어.>

<다음에 또 꿈을 낚아줘.>

<잘가, 아이들아.>

꿈지기들은 양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은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배웅하는 것이리라.

각자의 앞으로 자그마한 보라빛 덩어리가 스르륵 떨어져내렸다. 게이트의 클리어 보상이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보상은 확인하지 않았다. 그저 빛을 손에 움켜쥐고는 최정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최정재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 배 좀 붙일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빛을 손에 쥔 신교진이 내게 물었다.

“우부.”

우부에게 가볍게 손짓하자 우리가 탄 푸른 나룻배가 노인이 탄 나룻배로 다가갔다.

신교진이 나룻배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더니 최정재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나가요.”

최정재가 물끄러미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나도 한마디 덧붙였다.

“아드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이렇게 고집피우시면 저희도 못돌아가요. 저희끼리만 돌아갔다가 최 사장님한테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요? 저희 그렇게 두실거 아니죠?”

신교진이 투정을 부리듯 최정재에게 말했다.

“아, 할아버지~! 같이 가요!”

이제 그는 할아버지를 귀찮게하는 손자처럼 굴기 시작했다.

확실히 최정재의 나이라면 우리같은 나이대의 손자 손녀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실제로도 최정식에게는 우리 또래의 딸이 있었다.

“허허.”

최정재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졌네, 내가 졌어. 알겠네.”

노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세. 집으로.”

* * *

게이트 밖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게이트의 변화에 반응했는지 우리가 나왔을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또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몇몇의 기자들도 있었다.

“나왔다!”

“어르신은 무사하신가요?”

“저기 뒤에!”

신교진의 부축을 받고 있는 최정재가 기자들의 주 목표였다.

플래시가 번쩍이는 와중에 그들을 헤치고 최정식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이 달려나왔다.

“아이고, 아버지!”

“아, 아버님!”

“할아버지!”

최정식의 딸이 먼저 노인의 품에 안겼다.

“흐어어, 할아버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뒤를 이어 최정식의 아내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저, 정말….”

최정재의 손을 꽉 붙든 최정식이 고개를 푹 숙인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에게 안겨있는 손녀의 등을 토닥이는 노인의 얼굴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 가족을 향한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가자.”

신교진을 끌어당겼다.

지금은 하임 건설 사장 가족에게 기자들의 시선이 쏠려 있었지만 분명 충분한 사진을 찍고 나면 우리에게도 몰려들 것이 뻔했다.

게다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계속 이곳에 있으면 또다시 게이트 안에서의 꿈이 떠오를 것 같았다.

최정식은 이 상황이 정리된 후에 우리에게 따로 연락을 줄 것이다.

“…네. 가요.”

우리는 빠르고 조용하게 그곳을 벗어났다.

이곳에 올 때는 최정식의 차를 타고 왔기때문에 돌아가는 길이 조금 막막했다.

택시를 타야하나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 살폈는데 도빈이에게서 문자가 꽤 와 있었다.

[아직도 안 나온거야?]

[무슨 게이트길래 하루가 넘게 걸려? 나오면 연락 줘.]

‘하루가 넘게?’

날짜를 확인해보니 정말 하루가 지나 있었다.

“…헐. 날짜 바꼈네요.”

신교진도 확인을 한건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꿈의 바다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주변은 온통 보라빛으로 일정했으니까. 시간이 흐른다기보다는 오히려 멈춰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고작해야 몇 시간 지났겠거니 싶었는데. 어느새 하루가 지나있었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기에 최정재의 가족들과 기자들이 모여 있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옆에서 통화를 하던 신교진이 전화를 끊고는 말했다.

“누나. 선오가 데리러 온데요. 마침 근처라고. 잠깐 기다려요.”

“잘됐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건 조금 꺼려졌었는데 다행이었다. 급하게 오느라 얼굴을 가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분명 나를 알아볼테니까.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라 사람들과 마주치는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우리는 주선오가 오기 전까지 근처의 편의점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여기요, 누나.”

편의점에 들어갔다온 신교진이 내게 목을 축일 음료를 내밀었다.

“고마워.”

딱히 생각이 없었기에 그것을 받아들기만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옆에 앉아 목을 축이던 신교진이 물었다.

“참, 누나. 보상 확인 했어요?”

“아직.”

“그거나 확인해봐야겠네요.”

신교진이 잔뜩 기대를 품은 얼굴로 주머니를 뒤적여 보라색의 빛 덩어리를 꺼냈다.

나 역시 꽉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안에 있던 빛 덩어리가 반짝였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것보다는 그게 나으리라.

‘보상 확인.’

세게 한번 반짝거린 빛이 사그라들며 작은 구슬로 변했다.

꿈의 바다와 같은 색을 띤 구슬이었다.

[B급 아이템 꿈지기의 꿈]

달랑 하나였다.

B급의 게이트였고 사실 게이트 내부의 보상을 바라고 간 것도 아니었기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아이템에 대한 설명을 보아하니.

[B급 아이템 꿈지기의 꿈]

[꿈지기가 보관하는 꿈 중 하나를 다른 이에게 이입시킬 수 있습니다.]

[이입시키는 꿈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부가적인 조건이 조금 아쉬웠다. 꿈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B급의 아이템이리라. 크게 효용성은 없을 것 같았다.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

레부를 불러내서 꿈을 보관하도록 하려는데.

“누나, 이것 좀 봐봐요.”

신교진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푸른빛의 작은 돌맹이였다.

‘설마 EX급의 가호인가?’

흠칫 놀라며 그것을 살폈지만 가호가 깃든 돌은 아니었다.

그런데….

EX급의 아이템은 맞았다.

“…EX급?”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B급 게이트에서 EX급이라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B급 아이템 게이트의 보상은 B급 이상의 아이템으로 하한선은 정해저있었지만 상한선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B급에서 EX급이 나올 수는 있었다. 다만 그 확률이 극악의 극악이라는 것이 문제.

‘복권 당첨 확률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긴 하는데….’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는건 여전했다.

그때 뭔가 머리를 스쳤다.

신교진이 바다라는 악조건을 감수하며 게이트에 입장한 이유.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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