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정말 굉장하네!’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돌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EX급 아이템 스킬 레벨 변경의 룬]
[일시적으로 사용자가 지닌 스킬들의 레벨이 확률에 따라 랜덤으로 변경됩니다.]
“이런건 처음 보는데.”
일시적으로 스킬들의 레벨을 변경한다니. 그것도 확률에 따라 랜덤으로.
“확률이라면 애매한데.”
여느 확률이 그러하듯 좋은 것이 높은 확률을 가질리는 없었다.
당연히 레벨 1로 변경될 확률이 가장 높고, 레벨 10이 될 가능성은 1%도 되지 않을 터.
이런 확률형 아이템이 EX급이라니. 의문이 들긴 했지만 1%의 가능성으로 스킬 레벨이 10이되면 EX급이라고 칭할 법 했다.
그럼에도 공짜로 준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사람이 많을것이다.
‘나라도 사양이야.’
어떤 사람이 쓰냐에 따라 EX급이 될수도 있고 그냥 독으로 전락해버릴수도 있는 아이템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상황인데 이걸로 도박을 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이 아이템은 스킬의 레벨이 낮은 초보 각성자가 아니라면 그닥 효용성이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한 명.
신교진.
이 아이템이 확실하게 EX급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확률하면 저죠.”
신교진이 씩 웃으며 룬을 움켜쥐었다.
신교진이 사용해야만 EX급의 효력을 발휘할 것 같았다. 그가 이것을 사용한다면 지금 그가 가진 스킬들의 레벨이 모두 10으로 증가할 것이다.
비록 일시적인 효과이지만 모든 스킬 레벨이 10이 된 운빨의 신교진이라니.
대체 어떤 행운이 그에게 찾아올지 무서울 정도였다.
헛웃음을 터트린 후 신교진에게 말했다.
“아껴둬. 일시적인거라 나중에 꼭 필요할 때 쓰는게 좋을거야.”
‘가령 시험때라던가.’
이어진 말은 속으로 삼켰다.
고개를 끄덕인 신교진은 히죽거리며 룬을 챙겼다. 자신에게 딱 맞는 아이템을 얻어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레부를 불러 내 보상을 넣어둔 후 잠시 기다리니 곧 주선오가 도착했다.
“누나가 앞에 타요. 저 뒤에 좀 누워도 되죠?”
신교진이 나를 앞좌석으로 밀었다. 차에 올라타는 중에 주선오가 고개를 꾸벅였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너도 고생했어.”
신교진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집으로 가실거죠?”
평소같았으면 바로 그랬겠지만 대답을 망설였다.
‘…하필 또 지역이 여기네.’
최정식을 따라올때는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곳은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누나?”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그 꿈을 본 이상 왠지 이번만큼은 피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저은 후 주선오에게 물었다.
“괜찮으면 잠깐 어디 좀 들를 수 있을까?”
* * *
윤도아가 가달라고 부탁한 곳은 근처에 있는 납골당이었다.
‘여긴 왜….’
묻고 싶었지만 질문을 던지기가 어려웠다.
신교진이 뒤에서 계속 조잘거렸지만 조용한 윤도아가 신경이 쓰였기에, 신교진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했다.
차를 몰며 흘끔흘끔 윤도아를 살폈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다문채 창 밖 만 내다보고 있었다.
차에 탈 때부터, 그녀는 평소와 달랐다.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그 너머에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표정에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크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개월 전, 함께 보너스 게이트에 다녀왔을 때. 자신에게 보상으로 받은 스킬을 건네주며 이야기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반짝이는 눈으로 기쁜듯 이야기를 하는건 처음봤으니까.
자신이 윤도아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설레기까지 할 정도였다.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며 더 실력을 키우기위해 게이트에 매진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었던 것도 마침 근처에 있던 게이트를 닫고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신교진에게 대충 듣기로는 그리 어려운 게이트도 아니었다. 게이트의 난도를 떠나서 다른 문제가 있었던게 분명했다.
생각에 잠긴채 운전을 하다보니 어느새 윤도아가 이야기했던 납골당 앞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자 윤도아가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주선오가 그녀를 따라서 벨트를 풀려하자 윤도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있어. 잠깐이면 돼.”
“…네. 알겠습니다.”
윤도아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뒤에 앉아있던 신교진이 앞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는 소근거렸다.
“뭐야. 누가 여기에 있나?”
둘은 납골당으로 향하는 윤도아의 뒷모습을 살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주선오는 기다렸다는듯 신교진에게 물었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 누나 좀 이상하지?”
신교진은 앞좌석에 턱을 괸채 말했다.
“흠. 게이트가 꿈의 바다에서 꿈을 낚는 게이트였거든.”
보통 꿈을 낚는다고 하나?
의아했지만 그리 중요한것은 아니기에 그에 대해 질문하지는 않았다.
“근데 그 꿈이라는게 내 기억이나 내 꿈이랑 연관이 있더라고. 그러니까 누나도 그랬겠지?”
팔짱을 낀채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던 주선오는 이어진 말에 흠칫 놀랐다.
“누나 울더라.”
“…울었다고?”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놀란 주선오의 표정을 보고는 신교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깜짝 놀랐다, 야. 차라리 도빈이가 울면 울었지 누나가 우는건 진짜 생각도 못했거든. 막 펑펑 울거나 그런건 아니고 그냥 눈물만 주륵 흘렸는데. 근데 본인도 자각을 못하고 있던 것 같더라고.”
주선오가 보던 윤도아의 모습은 항상 강인했다.
시작의 날, 파출소의 조사실에서 처음 윤도아를 보았을 때부터 그랬다. 온몸에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 쓰고 있음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던 모습.
함께 갔던 게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술래잡기를 했던 보너스 게이트부터 쌍둥이 게이트, 캐나다의 게이트 등 많은 게이트 안에서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모습의 윤도아가 앞에 서 있었기에, 주선오는 안심하고 그녀를 쫓아갈 수 있었다.
그런 윤도아가 눈물을 보였다니 믿기 힘들었다.
‘…다행이다.’
자신도 모르게 든 생각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대체 뭐가? 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대련을 했던 보너스 게이트 이후처럼 윤도아의 새로운 모습을 알았기 때문일까?
항상 기계처럼 게이트를 닫아오던 그녀가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건 윤도아가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다.
“그런 꿈을 봤나봐. 그 이후로 계속 가라앉아있어서 난처했는데 네가 와서 좀 낫다야.”
신교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시 침묵하던 주선오는 윤도아가 향한 납골당을 바라보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대략적으로 생각해보니.
꿈의 바다에서 윤도아는 무언가 슬픈 꿈을 보았다. 그 꿈은 누군가를 잃는 꿈이었거나 혹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 대한 꿈. 그래서 눈물을 흘렸고, 마침 근처에 그에 관련된 사람이 모셔진 납골당이 있어 이곳을 찾았다는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윤도아나 윤도빈이나 둘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성남에 있는 본가에도 아무도 살지 않았고, 명절에도 어디를 가는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주선오는 물끄러미 납골당을 바라보았다.
둘의 부모님이 이곳에 모셔져 있는걸까?
“아, 맞다.”
신교진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의 정보를 살펴보기도 전에 신교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 EX급 아이템 먹었다~?”
“…뭐?”
잘못들은건가?
설마 싶은 마음에 신교진이 들고 있는 돌같은 것의 정보를 살폈다.
“흐흐흐. 너 아직 EX급은 없지?”
정말로 EX급의 아이템이었다.
잠시 말문이 막혔던 주선오가 겨우 물었다.
“…B급 게이트 아니었어?”
“맞아. 그래도 EX급이 안나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봤냐? 이게 바로 형님의 운빨이다.”
1년 넘게 신교진의 운을 옆에서 지켜봐왔다. 게이트를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매번 이렇게 자랑질을 해대서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B급에서 EX급 아이템이라니.
A급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테고 S급이었으면 진짜 운 좋은 놈이라고 투덜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EX급?
이건 당연히 부러울수밖에 없었다. 부러움을 넘어서 얄밉기까지했다.
물론 신교진이 받은 가호의 덕이고, 그게 그의 운이니 질투해봤자 본인의 마음만 심란해질 뿐이었지만.
자신의 눈앞에 EX급의 아이템을 들이밀며 낄낄거리는 신교진을 보니 이번만큼은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혀를 차고는 신교진의 얼굴을 뒤로 밀어버렸다.
“악! 왜 밀어, 개새끼야!”
잠시 투닥거리고 있는데 앞좌석의 문이 벌컥 열렸다.
깔짝대는 신교진을 쥐어박으려던 주선오는 황급히 손을 내렸다.
“왜 싸우고 있어?”
윤도아가 살짝 미소를 띤 채 물어왔다.
“…아닙니다.”
헛기침을 한 주선오는 속으로 신교진을 욕하며 운전대를 붙잡았다.
“아니긴 뭘 아냐. 제가 EX급 아이템 먹었다고 부러워서 이러는거에요.”
백미러를 통해 신교진을 죽일듯이 쏘아보는데 옆에서 윤도아가 피식 웃음을 흘리는게 보였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신건가?’
안심한 주선오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 * *
일주일 정도 후.
예상했던대로 최정식이 우리를 찾아왔다.
개의 이빨 사무실에서 만난 최정식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1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우리를 보던 눈빛만은 그때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정말 고마웠네.”
그 눈빛에는 확실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네, 뭐. 당연히 그러셔야죠.”
신교진은 여전히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직도 최정식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하긴. 내게 주사위 내기에서 속아 부려먹혔다는 걸 알았을 때만 봐도, 그가 얼마나 속에 일을 담아두는 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실을 알게 된 이후로 몇 달 동안, 나를 마주칠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며 투덜댔었다. 나중에는 슬슬 짜증이 나 또 골려줘야하나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그냥 입금만 해주시면 되지 뭐하러 여기까지 오셨데요. 안 그래도 바쁘실텐데.”
신교진이 비아냥거렸다.
그의 말대로 최근 하임 건설은 다양한 분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사장인 최정식이 굉장히 바쁘다는건 매번 쏟아져나오는 기사들만봐도 알 수 있었다.
최정식은 신교진의 비아냥거림에도 이전처럼 발끈하지 않았다.
“아닐세. 당연히 찾아와서 인사를 해야지.”
그에 신교진이 왠일이냐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례금은 여길 나가는대로 곧바로 보내주겠네. 그리고.”
최정식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자네들을 후원할 생각이네.”
“…네? 후원이요?”
신교진이 되물었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선오 역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최정식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됐어.’
첫 회귀 전 박성현에게 향했던 그의 후원이, 이제 우리에게 향했다.
틀어졌던 것을 하나 더 바로잡았다는 기쁨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후원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거죠?”
“필요한게 있다면 모두 나에게 말하게. 이미 부사장과 다른 이사진, 주주들과도 이야기를 끝냈네. 물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건 물질적인 면 뿐이겠지만. 그쪽에서는 아무런 제한없이 자네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줄거라 약속하네.”
“…헐….”
신교진이 넋빠진 얼굴로 최정식을 바라보았다.
“그 지원,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주선오와 신교진의 시선이 빠르게 내게 향했다. 최정식은 조금 안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심 거절할까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네. 자, 이거.”
최정식이 탁자위에 자신의 명함을 내려두었다.
하임 건설이 아닌 하임 기업의 사장 최정식의 명함이었다.
“필요한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게. 바로바로 받을거라 장담은 못하지만 확인을 하는 즉시 연락을 줄테니까. 급한 일이 있는데 연락이 안된다면 여기.”
탁자 위에 몇 개의 명함이 더 놓였다.
하임 기업 부사장 강재호, 그리고 둘의 비서들의 명함까지.
“다 이야기 해두었으니 걱정말고 이쪽으로 연락을 하면 바로 연락이 닿을 수 있을거야.”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탁자 위의 명함들을 받아들었다.
“사장님 덕분에 각성자들이 한층 더 발전할 것 같네요.”
최정식에게 씩 웃어보였다.
이제 에이단에게서 EX급의 아이템들을 사들일 준비는 끝났다.
그와 더불어 하임 기업의 지원이라면 다른 각성자들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아, 그리고….”
최정식이 헛기침을 하고는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신교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눈을 마주했다.
“…가끔 아버지에게 찾아와주면 고마울 것 같네. 자네들이 잘 있는지 물으시더라고.”
그의 말에 게이트 안에서 보았던 노인이 떠올랐다.
뻘쭘한 듯 뒷목을 긁적이던 신교진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뭐. 시간 나면요.”
잘 토라지고 한 번 당하면 마음에 담아두는 기간이 길었지만 그만큼 정에 약한 그였다.
‘조만간 찾아가겠네.’
시간이 맞는다면 함께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