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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71화 (172/201)

제171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똑같이 게이트를 닫고, 보상을 확인하고, 도토리들과 훈련을 하고.

성위의 수하는 여전히 조용했다. 꾸준히 게이트를 닫으며 세력과 실력을 착실하게 늘려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박성현을 감시하고 있는 이시결에게서 전해 듣는 이야기들도 별 건 없었다.

‘박성현이 움직이면 가장 먼저 칠 게 심지원 쪽인데.’

땅의 지배자 무리를 이끄는 심지원. 그들도 성위의 수하와 함께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다른점이라면 그들은 외계인을 대적해야할 상대로 본다는 것.

사실 신이라고 주장하던 세라피스를 만난 후.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허황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들에게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심지원 쪽이야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다행이지.’

세라피스 역시 광산의 게이트 이후로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혹시나 내게 흥미가 떨어진건가 싶었지만, 그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역시 계속해서 게이트를 닫아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야하나.’

오전동안 도토리들과 함께 단련을 했으니, 오후에 갈 게이트를 물색하기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기관 사이트에서 정보를 확인하기위해 인터넷을 켜자, 화면 가득 속보가 떠올라 있었다.

‘뭐지?’

각성 기관의 기관장인 안세인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각성 기관장 안세인 게이트 내에서 큰 부상]

[생명에는 지장없지만 당분간 게이트를 닫기는 무리라고 밝혀]

[안세인 기관장, ‘당분간 기관의 일은 김지석 이사가 맡아서 할 것’]

‘…부상이라고?’

게다가 당분간 게이트를 닫는게 무리일 정도의 부상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그럴리가….’

첫 회귀 전, 안세인은 이런식의 부상을 입은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찰과상 정도의 수준이었다. 가장 심각하게 다쳤던 때가 끊임없이 재생하는 트롤의 철퇴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것 정도였다.

사실 확인을 위해 김지석에게 연락을 해보려다가 멈칫했다.

당분간 안세인의 자리를 메꿔야하는 입장이라면 지금 그는 굉장히 바쁠 것이다.

‘김지석은 안되겠어.’

그래서 김지석 대신 권재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통화 연결음이 이어진 후 권재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도아 씨.]

권재경도 바쁜건 마찬가지겠지만 다행히 연락이 되었다.

“아저씨. 통화 괜찮으세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기사 보고 연락하신겁니까?]

평소에 권재경과 직접적으로 연락할 일이 크게 없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다른 이야기를 묻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 관장님이 부상을 입으셨다고…. 심각한가요?”

핸드폰 너머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이어졌다.

[…직접 만나보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아 씨가 찾아가면 관장님도 기뻐할 것 같네요.]

통화가 끝난 후 권재경은 곧바로 안세인이 있는 곳의 주소를 보내주었다.

곧바로 채비를 갖춘 후 그곳으로 향했다.

안세인이 있는 곳은 잠실에 있는 본인의 집이었다.

“와, 도아 씨 아냐? 여긴 왠 일이에요.”

안세인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지만. 나는 그에 상응하는 인사를 하지 못했다.

확인차 이곳에 오긴 했지만 내심 뼈가 부러져 당분간 이리나의 치료를 받아야하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왼쪽 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왼쪽 옷소매가 힘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

“하하. 그러고 있지 말고 들어와요. 심심했는데 잘 됐어.”

안세인이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내 팔을 끌어당겼다.

힘없이 딸려들어가자 그녀의 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소파 대신 빈백이 놓여있는 거실은 깔끔했지만, 주방의 싱크대에는 닦지 못한 식기류가 잔뜩 쌓여 있었다. 배달음식의 용기도 가득했다.

“좀 지저분하죠? 치우고 싶어도 한 손으로는 좀 힘들어서 어쩔 수가 없네.”

안세인이 웃으며 살짝 열려있던 방의 문을 쿵 닫았다.

얼핏 보였던 방 안은 거실과는 극과 극의 상태였다. 옷가지들이 널부러져있음은 물론 바닥에 뭔지 모를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심지어 깨진 유리 파편까지 보인 것 같았다.

“앉아요. 그러고 있지 말고.”

안세인의 팔에 이끌려 빈백 중 하나에 앉았다. 빈백 안으로 몸이 푹 내려앉으며 편안했지만, 마음은 절대로 편하지 못했다.

첫 회귀 전에는 멀쩡했던 안세인이 이렇게 팔을 잃게 된 이유.

내가 회귀를 한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회귀를 해서 내 수준은 물론 다른 각성자들의 수준도 함께 올라가는 것 같아서 기뻤는데. 죽었어야할 사람을 살린것도 뿌듯했는데.

정말 그것때문에 다치지 말았어야할 사람이 다쳤다면. 죽지 말았어야할 사람이 죽었다면.

‘…그건 내 탓이나 마찬가지야.’

“차라도 마실래요?”

안세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살짝 미소를 지은 안세인은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 위의 선반에서 컵 하나를 꺼내 옆의 커피머신 위에 두고 능숙하게 커피를 내렸다.

커피의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향이 집안에 번졌다.

안세인이 커피 두 잔을 모두 내리는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괜찮냐고 묻지 못했다.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웃고는 있었지만 아마 거짓이리라.

아까 본 난장판이 된 방 안이 그녀의 진짜 마음이 아닐까.

안세인은 애써 자신의 혼란과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각성 기관의 기관장으로서, 그래야만 했다.

“도아 씨. 미안한데 이것 좀 가져갈래요?”

안세인의 말에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밖에 사용할 수 없는 안세인이 커피잔 두 개를 동시에 옮기는 것은 무리였다.

빠른 걸음으로 주방으로 다가가 커피잔 하나를 들었다.

“손님한테 심부름을 시켜서 미안하네. 그거 마셔요.”

“…아뇨. 감사합니다.”

겨우 말을 꺼냈다.

우리는 다시 거실의 빈백으로 돌아가 앉았다.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안세인이 커피잔을 옆의 탁자에 내려두며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말은 해야지 생각했는데 자기가 더 빨랐네.”

“…….”

“그렇게 안 봐도 돼요. 다행히 난 오른손잡이고. 오른손은 무사하잖아요?”

안세인이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웃었다.

흠칫 놀라며 시선을 떨궜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비어있는 안세인의 왼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흠.”

안세인이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내가 나이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 표정을 읽는데는 눈치가 빠르거든.”

안세인이 나를 보며 물었다.

“왜 도아 씨가 그런 표정을 지어요? 도아 씨 잘못은 전혀 없는데.”

마음을 읽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너무 얼굴에 티가 난 것일까.

고개를 숙이자, 안세인이 이어 말했다.

“이건 순전히 내 탓이에요. 내가 방심한 탓이고, 내가 부족했던거야.”

이어지는 자조적인 웃음.

겨우 입을 열어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게이트였나요?”

대체 무엇이 안세인을 이렇게 만든건지 알고 싶었다. 그녀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탁자를 톡톡 두드리던 안세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S급 종합 보상이었는데, 섬멸형이었어. 그 안에 있는 모든걸 죽이는.”

“섬멸형이요?”

놀라 되묻고 말았다.

섬멸형이라면 말그대로 게이트 내부의 모든 것을 죽여야만 클리어가 되는 것.

게이트 안에 죽여야할 개체가 몇인지의 안내조차 없었다. 그저 입장한 각성자들만이 살아남아야 끝이 나는 게이트.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기에 체력의 안배 또한 중요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이트라면 시작의 날로부터 5년 이후에나 등장을 해야했다.

‘그게 벌써 나타났다고?’

“그래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게이트는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당황했는데 같이 들어간 각성자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다행히 후각 스탯이 있어서 놈들을 찾아내는건 쉬웠어요. 근데 숫자가 워낙 많아서 말이지.”

안세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각성자들을 보호하며 싸울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내가 관장인데다가 초기 각성자인데 물러설 수는 없잖아요? 다들 나를 믿었고 말야. 정신없이 몰려드는 놈들을 상대하다보니 어느새 팔이 없어졌더라고. 그래도 괜찮아요. 다른 각성자들을 잃지는 않았으니까.”

덤덤한 목소리.

안세인의 연륜 때문인지 목소리에서는 그녀의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안세인에게 계속해서 내 죄책감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애써 울렁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질문을 던졌다.

“…몬스터의 종류는요…?”

“키메라.”

…키메라?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은 방문객이 많은걸. 잠깐 있어요.”

몸을 일으킨 안세인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새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이,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섬멸형 게이트와 마찬가지로, 키메라 또한 5년 이후부터 나타났던 상위 몬스터에 속했다.

키메라는 딱히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두 개 이상의 몬스터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몬스터. 그러니 그 종류도 겉잡을 수 없이 많았고, 그에 따라 그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달랐다.

그렇기에 나타나는 시기가 늦은 것이었다. 지난 5년간의 경험이 있어야 놈들을 죽이는 것이 수월했다.

‘확실해.’

이 변화는 첫 회귀 전에 비해서 많은 각성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고, 그들의 수준 또한 올라갔다는 뜻으로 좋게 생각할수도 있었지만.

자꾸 좋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첫 번째 시험이 앞당겨지는건가?’

심장이 조용히 가라앉고 온 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시험이 도래하기 전, 게이트들은 모습을 감추었다.

마치 게이트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던것처럼.

때문에 우리는 준비되어있던 일정 수량의 게이트가 동이 나면 첫 번째 시험이 열리는 시스템일 것이라고 추정했었다.

벌써 키메라와 생존형 게이트가 나타났다는건 그만큼 많은 게이트가 닫혔다는 것이고, 첫 번째 시험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회귀 전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였다.

‘이것 역시 내 회귀의 영향….’

“도아 씨!”

반가움이 가득한 부름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안세인의 옆에 김지석이 서 있었다.

“…아, 이사님.”

김지석이 나긋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각성 기관을 나온 이후로는 딱히 마주칠 일이 없는 사이였다.

가끔 일적인 통화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마주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깔끔히 차려입은 정장과 단아한 얼굴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일에 치여 조금 지쳐보이는 것만 뺀다면 1년 전 처음 만났을 때비슷했다.

그때에 비해서 행동거지에 더욱 자신감이 붙어있었는데 그건 각성을 하고 실력을 키웠기 때문이리라. 허리춤에 보이지 않게 차고 있는 총과 함께 제법 노련한 각성자의 태가 났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김지석이 살풋 웃어보였다.

“기관의 일로 의논드릴것이 있어서 왔는데, 마침 잘 됐네요. 도아 씨께도 의견을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 의견이요?”

“앉아요. 앉아서 얘기하죠.”

우리의 앞에 앉은 김지석이 들고 있던 노트북을 펼치며 말했다.

“그동안 기관에서 연구를 위해 계속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켜왔던 것, 도아 씨도 아시죠?”

“네.”

지난번 권재경에게 얼핏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고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기사로 충분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기관은 두 번정도 브레이크를 일으켰고 모두 성공적으로 브레이크를 처리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를 일으킬 생각입니다. 마침 최근에 남해 쪽의 무인도에 게이트가 하나 생겼더군요.”

무인도라면 브레이크를 일으키게 두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인명 피해가 없을테니까.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곳이 S급이라는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요.”

“S급이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각성자들의 실력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S급 게이트의 브레이크라니.

김지석이 나와 안세인을 향해 노트북 화면을 돌리며 말했다.

“S급 스탯 보상 게이트입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김지석이 이야기하는 무인도의 게이트 정보가 떠 있었다.

안세인의 부상을 야기한 게이트를 보았을 때 최근 나타나는 게이트들은 그와 비슷한 난도를 가졌을 터.

그나마 종합 보상이 아닌 스탯 보상이었기에 난이도의 차이가 조금 있겠지만, 그래도 위험한건 마찬가지였다.

“브레이크 시점은 서너달 후로 추정하고 있어요. 그래도 S급인만큼 이번에는 기관 각성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무리의 힘을 빌려야할 것 같습니다.”

김지석은 우리를 번갈아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에 대해서 두 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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