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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72화 (173/201)

제172화

무조건 반대할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시험이 앞당겨지고 있다면 우리도 그만큼의 대비를 해야했다.

연구소장 박효진이 열심히 게이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역시 좋은 결과를 뽑아내려면 그 재료의 급이 높아야했고.

그러려면 당연히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게이트의 급이 높아야했다.

급이 높으면 그만큼 수준이 높은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고, 그런 몬스터는 그만큼의 연구 결과를 가져다줄테니까.

‘기회가 있을 때 해야해.’

무인도라면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이런 게이트가 나타날지 모르고, 시기를 놓쳤다가는 이미 게이트가 모두 사라지고 난 후일지도 몰랐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안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게이트를 다녀오면서 든 생각인데.”

김지석이 안세인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동안, 안세인의 왼쪽 소맷자락에 머물렀다. 이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안세인을 보았지만 눈빛에 담겨 있는 걱정과 안타까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게이트 난이도가 상당히 올라간 것 같아요. 이전만해도 S급 스킬 게이트의 난이도가 이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아직까지 큰 난이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회귀를 한 시점에서 이미 나는 첫 번째 시험을 치르다가 패배한 상태였다. 그러니 회귀 시점의 게이트들이 싱거운 건 당연했다.

그런데다가 은밀한 고양이에 필적할만한 악마의 고양이 특성을 얻었으니 지금껏 온 힘을 다해 싸워본 적이 없었다.

즉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게이트의 난이도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누군가 다치고 나서야 게이트의 난이도 변화를 눈치챌 수 있게 됐다니.

“…그런 것 같아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난도가 높아졌다면 연구 성과 역시 높아져야겠죠. 높은 급의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키면 그만큼의 결과물이 나타나지 않겠어요?”

안세인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여전히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이제 내게 선택이 맡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내 선택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각성자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것은 아닐지.

또 다시 나때문에 다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각성자가 생기지는 않을지.

“…도아 씨?”

김지석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팔을 잃은 안세인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내 이런 모습이 안세인에게는 더욱 큰 상실감을 줄지도 몰랐다.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상을 입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정의 눈빛은 오히려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 죄책감에 이기지 못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흠.”

안세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김지석을 향해 말했다.

“김 이사 생각대로 진행하죠. 도아 씨한테 조언을 구했던건 없던 일로 해요. 어차피 도아 씨는 지금 기관 소속도 아니고. 랭킹 1위라고는 하지만 모든걸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건 기관에서 진행하는 일이고 기관의 일은 우리가 판단해서 진행해요.”

단호한 이야기였다.

표정에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낸 것일까.

나를 배재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져요. 내가 기관의 관장이고 총 책임자이니까.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안세인이 시선을 떨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도아 씨. 나는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같은 행동을 할거에요. 그게 각성자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니까. 여럿의 희생보다는 한 명의 희생이 미래를 봤을 때 더 낫겠지. 게다가 각성자들을 봤을 때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나이에요. 팔을 잃은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요.”

자신의 심정을 나지막히 이야기하는 안세인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안세인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회귀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나보다 살아온 시간이 길었고 더 깊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꾹 눈을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세인이 탁자를 툭 내리치며 말했다.

“자, 그럼.”

그런 그녀의 행동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평소같았으면 박수를 쳤겠지만 이제 그 간단한 동작도 할 수 없는 처지라 손을 마주치는 대신 탁자를 내리치는 것을 선택한 것 같았다.

“환자는 좀 쉬어야겠어. 자기들, 이제 돌아가도록 해.”

안세인이 탁자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네? 하지만….”

김지석이 당황했지만 안세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어서 일어나요. 한 팔 밖에 없는 사람이 일으켜줘야 일어나겠어?”

그 말에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를 본 안세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이사, 고생이 많아요.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네. 내 대신 일하느라 바쁜건 알지만 그래도 쉴 땐 쉬어야지. 남은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하고, 일단은 도아 씨 좀 바래다 줘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얼른 손사레를 쳤지만 안세인은 내 말을 들은체도 하지 않고 우리를 밖으로 몰아냈다.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밀려난 우리는 잠시 안세인의 집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탐지로 안세인의 상태를 살펴보려면 살펴볼 수 있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떨구었다.

옆에서 가벼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어쩔 수 없네요. 가죠, 도아 씨.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김지석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살짝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기분으로 더 이상 사람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지석이 뒤로 물러나던 내 손 끝을 살짝 붙잡았다. 손끝에 따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같이 가요.”

흠칫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걱정돼서 그래요.”

그의 말대로 나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오긴 했지만 확실히 지금의 상태로는 그것을 몰고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김지석의 손에 이끌려 그의 차에 올랐다.

조용히 차를 몰던 김지석이 입을 열었다.

“관장님의 팔은 연구 중에 있어요.”

이상한 이야기에 김지석을 돌아보았다.

“연구 중이라뇨?”

김지석이 왼팔을 창틀에 괴고 머리를 짚은채 말을 이었다.

“아무리 이리나 씨라고 하더라도 잘려나간 팔을 재생시키지는 못하더군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만약 안세인의 잘려나간 팔이 게이트 밖으로 함께 이동됐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팔과 팔을 연결시키는건 그녀의 특성으로 가능했을테니까.

하지만 안세인의 팔은 게이트 안에서 키메라들에게 찢겨 사라졌을 터.

이리나에게 그것을 재생시키는 능력은 없었다.

“티를 안내려고는 하시지만 많이 힘들어하고 계세요. 그래서 어떻게 도움을 드려야할지 막막하던 찰나에 박 소장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브레이크에서 얻어낸 것들로 진짜 팔을 대신할 팔을 만들어드리자고요.”

‘!’

박효진 연구소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내 얼굴을 본 김지석이 살짝 웃음을 흘렸다.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관장님의 실제 팔보다 더 강한 팔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고요.”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관장님은 아직 모르세요. 성공여부가 확실해졌을 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태가 안타깝긴 했지만 괜히 희망고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안세인을 떠올렸다.

안세인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 오면 또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팔을 잃은 안세인을 위로해줘야하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내 회귀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인정을 받은 듯한 느낌.

안심이 됐다.

“박 소장님에게 마나석을 넘기셨었죠?”

“네. 맞아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김지석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마나석에 대한 테스트를 저랑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아직 그 건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런가요? 어떤 테스트죠?”

“마나석을 총알로 가공해서 사용해봤어요.”

김지석의 무기는 총. 마나석으로 총에 맞는 탄환을 만들었다니. 가장 테스트해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결과는요? 쓸만하던가요?”

마나석은 마나의 응집체나 다름없었다.

그때 확인했던 주먹만한 마나석 하나는 수십미터 반경의 마나를 응축해놓은 것과 비슷했다.

그것을 가공하여 총알로 만들었다면, 그걸 쏘았을 때의 위력은 내가 응축해서 던지는 마나구와 비슷할 것 같았다.

아니, 내 마나구의 폭발력을 상회할지도 몰랐다.

“목표물에 닿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꽤 큰 폭발을요.”

김지석의 눈이 반짝였다.

“그 다음으로 게이트 안에서 몬스터에게 테스트를 해봤을 때는….”

김지석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확인 사살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일격에 산산조각이 나버려서 사체를 찾는것도 힘들었으니까요.”

역시! 마나석은 굉장했다.

비전 마법과 맞먹을 정도의 폭발력이라니.

하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그게 나쁜 마음을 품은 각성자, 예를 들어 박성현같은 놈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연구소에 준 마나석이야 내 소유라서 테스트가 아닌 다른 각성자에게 흘러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게이트 안에서 다른 각성자가 마나석을 캐기라도 한다면.

‘상당히 별로인데.’

박효진처럼 그것을 가공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단순히 마나를 공급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겠지만, 이런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 전세계에 박효진 밖에 없지는 않을 터.

‘에이단한테 마나석의 매물이 있는지도 확인해봐야겠어.’

“그 테스트 이후로는 마나석으로 만든 총알에 속성을 입혀보고 있어요.”

역시 알아서 착착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속성이라면….

“어떤 속성이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웬디고 게이트 때 만났던 설재민 각성자라고.”

“아!”

확실히 기억이 났다.

까만 해골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던, 설표 신의 가호를 받은 냉기 마법사 설재민.

같은 고양잇과라 그런지 나와 비슷한 전용 스킬을 가졌던 각성자였다.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들었었는데 올라왔나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올라와서 테스트를 도와주고 있어요. 탄환에 심을만한 속성 마법을 가진 마법사 중에는 재민 씨가 가장 괜찮은 것 같아서요.”

나는 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런쪽에는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불을 다루는 니엘은 독일의 각성자라 쉽게 불러들일수가 없었고, 흙을 다루는 심지원의 경우에는 마나탄과 크게 시너지가 없으리라. 조이의 어둠 마법이라면 조금 시도해 볼 법 했지만 역시 미국의 각성자라 힘들었고.

번개를 쓰던 천둥새 서윤지는 기관의 테스트에 협조해줄리 없었다.

에이단의 전기 마법도 꽤 유용할 것 같았지만 기관이라면 일단 도망치고 보는 암거래 상인이었기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잘 진행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네. 재민 씨의 냉기를 섞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게 확인되면, 그걸 이용해서 또 다른 무기를 만들어볼 생각도 하고 있어요. 박 소장님이 벼르고 있더라고요.”

김지석이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내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관장님의 팔을 대신할 팔을 만드는데 마나석을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만했다.

안세인은 내게, 각성자들에게 큰 전력이었으니까.

“고마워요, 도아 씨.”

순간 내가 그런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나 싶었지만. 애써 그 기분을 지워냈다.

우리는 곧 집 앞에 도착했고 김지석은 내게 성과가 생기는대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김지석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서 내리는데 아파트 보안 요원 권선일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셨습니까!”

언제나처럼 밝은 인사.

이제는 그 인사가 없으면 집에 돌아온 기분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살짝 고개를 꾸벅여 인사한 후 그를 지나쳐 아파트로 들어가는데.

“참, 윤도아 씨!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네? 손님이요?”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찾아올게 아니라 내게 연락을 했을텐데.

의아해서 핸드폰을 꺼내보니, 그새 폰의 전원이 꺼져 있었다.

‘아….’

“누군가요?”

이곳에 오는 사람이래봤자 주선오나 신교진, 이리나 정도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권선일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에이단?”

상당히 수척해진 얼굴의 에이단 맥카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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