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73화 (174/201)

제173화

“어라. 의외의 손님이군요.”

집에 있던 이시결이 내 뒤를 따라온 에이단을 보고는 말했다.

“…응?

이시결을 마주한 에이단이 미간을 찌푸린 후 중얼거렸다.

“뭐야. 많이 들어본 재수없는 목소리인데.”

그에 이시결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에이단을 만났을 때는 이시결이 만든 거미줄 가면을 쓴 상태였다.

내 얼굴이야 많이 알려져 있어서 나를 바로 알아봤다고지만, 이시결은 그렇지 않았다.

에이단이 이시결의 진짜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리라. 집에서까지 가면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

입을 가린채 큭큭거리던 이시결이 안으로 손짓했다.

“일단 들어오시죠. 제 집은 아니지만.”

에이단이 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오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뭐야, 진짜 한 마디도 안 지던 그 새끼야?”

“그게 억울했으면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들어보지 그랬습니까.”

나른한 목소리로 빈정거리는 말투가 꼭 이시결의 명함이라도 되는것 같았다.

그걸 듣고 있자니, 나를 향한 말이 아님에도 짜증이 나는데.

듣고 있는 에이단은 오죽할까.

그는 이시결의 말투에 나름 적응을 한건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이 충격적이었는지 짜증을 부리지는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놀란듯 중얼거렸다.

“허, 참내. 남매였어? 하나도 안 닮았는데.”

도빈이가 들었다면 뒤집어졌을 소리였다. 내가 듣기에도 끔찍한 소리였고.

“제가 제대로 소개를 한 적이 없다지만 그런 오해는 상당히 별로군요.”

이시결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있었던 미등록 사건을 잘 모른다면 이시결의 이름을 듣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냐? 그럼 왜 같이 살아? 설마….”

에이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에게 왜 이시결이 이 집에 있는지 따위를 설명해줄 의무는 없었다.

더 짜증나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그의 말을 차단했다.

“그딴 헛소리 하려고 찾아온거면 가지?”

“…….”

에이단이 금세 꼬리를 내렸다.

이시결만큼은 아니었지만 다크서클이 짙어진 그가 침묵한 채 곱슬진 머리카락을 슥 쓸어올렸다.

아직 1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일부러 시계를 바라보았다.

“바쁜데.”

도빈이가 오기 전에 에이단을 내보내고 싶었다. 도빈이가 저놈을 본다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꼬치꼬치 캐물어올게 분명했다.

더이상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니 빨리 해결해야했다.

“3초 줄게.”

“잠깐만!”

에이단이 다급하게 들어올려지는 내 손목을 붙잡았다.

“거래하고 싶은게 좀 있어.”

“오. 암거래 상인이 거래를 청하다니 재밌는 상황이네요. 저도 같이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시결이 재미있다는듯 웃으며 물어왔다.

“난 상관없는데. 일단은 앉든지.”

대충 거실을 가리키며 말하자 에이단이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가 앉았다.

“그래서 뭐.”

양손을 모아쥔 채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그가 작게 입을 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암시장을 움켜쥐고 있잖아?”

“갑자기 자랑인가요?”

“서두니까 그냥 들어.”

핀잔을 주는 이시결에게 으르렁거린 에이단이 다시 말했다.

“그러다보니 이제 거래할 물건을 구하는데 좀 심혈을 기울이는 편인데.”

“서두가 긴걸 보니 선뜻 입이 안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아, 제발 좀 닥쳐봐. 얘기하고 있잖아.”

하나하나 일일이 반응하는 에이단을 지켜보는 재미가 꽤 있었기에 딱히 이시결을 제지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아이템들을 구하는 곳이 러시아야. 내가 이명으로 정식 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하고.”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러시아는 워낙 땅이 넓어 그만큼 게이트도 많이 나타나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이템을 구하기 제격인 곳이라는건 예상했었는데.

‘거기에서 이명으로 정식 활동을 한다고?’

여우 구슬이 보여준 이름은 에이단 맥카시.

저렇게 이명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니. 여우 구슬은 자신이 진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명이 뭔데?”

잠시 목을 긁적인 에이단이 대답했다.

“이고리 유리예비치 라자레프.”

“…이고리…, 뭐?”

이시결과 눈이 마주쳤다.

그 역시 이름을 들으니 떠오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러시아의 이름 자체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쪽 각성자들은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워낙 무법지대라 랭킹이 수시로 바뀌기 일쑤였지만. 1, 2위는 항상 부동이었는데, 그 중 2위의 이름이 저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확인을 위해 에이단에게 물었다.

“…너, 랭커?”

“큼. 그래. 러시아 2위의 랭커라고.”

에이단이 헛기침을 하더니 허리를 꼿꼿이 펴며 말했다.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운 모양인데, 기가 막혀서 한마디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이 암시장이나 쥐고 흔들고 있다니.”

회귀 전이야 이놈이 박성현과 연관된 놈이라는 것 외에는 크게 아는 바가 없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나니 안타까워 절로 탄식이 났다.

“그런데 이렇게 자리를 자주 비우는데도 2위가 유지가 된다고?”

놈은 한 달의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는데 상당히 의아했다.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거 아닐까?”

본인의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가볍게 놈을 쏘아보는데 그를 보는 이시결의 눈빛이 살짝 변해 있었다.

랭커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꽤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조금 강해보인다싶으면 관심을 두는 성격은 전혀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유지되어야 이시결을 부려먹는게 유용하긴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다 반응하면 조금 곤란한데.

이시결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에이단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이어 말했다.

“하여간. 거기에 아이템을 공급해주는 내 부하들이 꽤 많은데, 최근에 한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에서 녀석들이 많이 죽어나갔어.”

그래서 그렇게나 안색이 나빴던 모양이다.

부탁이란건 뻔했다.

보나마나 부하들이 죽어나간 S급 게이트를 처리해달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모른척 물었다.

“그런데?”

에이단이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거래를 좀 하자. 너도 나를 기관에 바로 찌르지 않고 이렇게 이용하고 있는걸 보면, 내 위치가 필요한거잖아? 내가 이 이상으로 부하들을 잃게 되면 암시장을 붙잡고 있는게 힘들어질수도 있어. 그건 너도 원하는 상황이 아닐거고 말야.”

진지한 모습.

암시장을 괜히 움켜쥐고 있는건 아닌지 제법 머리를 굴려 생각한 티가 났다.

부정하지는 않았다. 에이단의 말은 사실이었으니까.

“거래를 하려면 대가가 있어야지.”

긍정의 답변으로 받아들였는지 에이단이 내게 살짝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 게이트를 클리어해준다면, EX급 가호를 하나 공짜로 넘길게.”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에이단에게서 가호를 사들일 돈줄이 생긴 나에게는 큰 메리트가 아니었다.

“흠.”

내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놀란건 에이단이었다.

“이게 별로라고? EX급 가호를 주겠다는데?”

“뭐, 나쁘지는 않은데.”

일부러 팔짱을 끼고 뜸을 들이며 말했다.

“네가 언제 EX급 가호를 구할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지금 네 손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언제 기다리고 있어.”

“…….”

에이단이 침묵했다.

그걸로 대충 나를 구슬려볼 속셈이었나본데,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에이단은 지금 나에게 약점을 잡혀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내게 게이트를 닫아달라는 도움을 청한다?

‘이게 함정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나?’

어쩌면 나를 없애기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만 하는게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이시결이 지적했다.

“에이단 씨가 윤도아 씨를 죽이려고 하는거라면?”

에이단이 못마땅한 얼굴로 이시결을 돌아보았다.

“게이트 안의 일은 기록으로 남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당연히 에이단 씨도 잘 알고 있겠죠.”

“잘 알지.”

“그런데 윤도아 씨가 뭘 믿고 그런 부탁을 들어줍니까?”

에이단은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한들, 윤도아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겠어? 네 슬라임 부하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거고 말야. 괜히 너 하나 죽이겠다고 내 부하들을 다 잃을 생각은 전혀 없어.”

에이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이 그의 태도에서 묻어났다. 그와 부하들 사이에는 생각보다 끈끈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을거라는 사실에 납득했는지 이시결은 그에 대해 딱히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에이단 씨는 랭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왜 본인이 나서지 않고 윤도아 씨에게 부탁을 하는거죠?”

나도 궁금하던 차였기에 가만히 에이단의 답변을 기다렸는데.

돌아온건 잘못들었나 싶을정도로 뻔뻔한 대답이었다.

“난 죽으면 안 되잖아.”

이시결조차 당황했는지 잠깐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금세 가늘어진 눈으로 에이단을 쏘아붙였다.

“…에이단 씨는 죽으면 안 되고 윤도아 씨는 죽어도 된다? 그건 무슨 시덥잖은 논리입니까?”

웬일로 맞는 말을 하나 싶었는데 무심하게 한마디 덧붙인다.

“그건 절대 안됩니다. 윤도아 씨를 죽이는 건 제가 예약해뒀으니까요.”

구겨지려는 미간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이건 또? 무슨 사이인가 했더니 그런거였어?”

에이단이 재미있다는듯 우리를 번갈아보며 웃었다.

“하여간 다시 말하지만 나도 윤도아를 죽게 할 생각은 없어. 말했다시피 내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걸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을 뿐이고. 윤도아 너라면 그런 게이트 쯤 씹어먹을 실력이 있다고 믿으니까 거래를 하자는거야.”

그의 밑에서 여러 아이템들을 구하던 부하들이라면 분명 상당한 실력을 가진 각성자들 일 것이다. 그가 거래하는 아이템들은 A급 이상의 최상급 아이템들이었으니.

그런 각성자들을 계속해서 죽게 두는 것은 내 목표와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를 도와야했지만.

‘그만한 대가는 받아야지.’

놈도 상인인만큼 그 대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했고, 내게 EX급 가호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호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수는 없었다.

“좋아. 대신. EX급 가호는 킵해두고. 혹시 마력석이라고 알아?”

에이단의 특성 또한 마법에 속했기에 그라면 마력석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마력석? 그런게 있다고는 들은 것 같은데.”

아직 직접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마나가 응축된 광석이야. 앞으로 그걸 구하면 무조건 나한테 가져와. 그게 두 번째 대가.”

“끙….”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내 대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에이단의 눈빛에서 순간 욕설이 느껴진 것 같은건 착각일까.

“가호가 깃든 돌을 얻기 전까지 러시아 게이트에 마음껏 입장할 수 있게 해줘.”

러시아는 땅이 넓은만큼 게이트의 수가 많았다.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회귀 전, 고가에 거래됐던 아이템들도 그곳에서 많이 나타나곤 했었다.

그러니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에이단이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봐,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게….”

“네 랭킹. 사실은 네 부하들이 유지시켜주고 있는 거지?”

추측이었지만 에이단이 흠칫 놀라는 것을 보니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러시아는 무법지대인만큼 각성 기관 또한 그리 체계적이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모든 게이트를 상세하게 관리하지도 않았고 누가 어떤 게이트를 닫는지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게이트를 닫은 각성자가 알아서 신고를 해야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신고를 하는데에 각성증도 필요 없었다. 그냥 가서 서류 한 장만 작성해서 내면 끝.

‘랭킹 조작이 너무 쉬워.’

순위 변동이 잦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에이단의 부하들은 게이트를 닫은 후, 에이단의 이명으로 신고를 한 것이고 그게 에이단이 부동의 2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였으리라.

그렇다고 에이단에게 실력이 없는건 아니었다.

그런 부하들이라면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을 따를리 없었다.

게다가 그런 결속력.

“그렇게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다는건, 아마 게이트가 열리기 이전부터 그런 조직을 이뤄왔다는 것일거고.”

러시아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마피아라던지 말이다.

“너는 그 조직의 우두머리일테니, 내가 러시아의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건 일도 아니지 않아?”

그러려면 나라간의 협약이 조금 걸림돌이었지만 그 협약에도 헛점은 있었다.

그 나라의 각성자와 함께라면 다른 나라의 각성자도 얼마든지 그 나라의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다는 것.

에이단과 함께 게이트를 닫고 에이단의 이명으로 신고를 한다면 큰 문제가 일어날 일은 없었다.

내 얼굴이 알려져있다는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정도야 스타일을 조금 바꾸거나 하는 정도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에이단을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사실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제시한 조건을 다 들어주는 수밖에.

그의 자포자기한 깊은 한숨이 집안에 울려퍼졌다.

* * *

이시결이 우리를 따라오고 싶어했지만 그건 거절했다.

그는 박성현을 계속해서 감시해야했다. 잠시 눈을 뗀 사이에 무슨 일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그땐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도 이시결의 감시는 주선오에게 맡겼다. 상당히 싫어하는 티가 났지만 내 부탁이었기에 어쩔수없이 받아들여준 것 같았다.

‘조만간 또 같이 보너스 게이트에 가야겠어.’

주선오는 박성현에 대한 일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도빈이에게는 러시아의 게이트에서 의뢰를 받아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정확한건 아니었지만 틀린말도 아니었기에 큰 죄책감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에이단과 함께 러시아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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