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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76화 (177/201)

제176화

한국에 돌아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무인도의 근처 항구에 올때까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끼익!

차를 세운 에이단이 선글라스를 고쳐쓰며 말했다.

“나는 여기까지.”

“고마워.”

대충 감사인사를 한 후 차에서 내리려는데 에이단이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인상을 확 찌푸리며 에이단의 손을 뿌리쳤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는 걸 그도 잘 알 터. 그런데 왜 붙잡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에이단은 다시 힘을 주어 내 손목을 잡아챘다.

“진정 좀 해!”

“진정하게 생겼어? 도빈이가 저기에 말려들었는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결국 언성을 높였다.

선글라스 너머로 에이단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비췄다.

죽일듯이 쏘아보는 내 시선에도 그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가라앉히며 이를 악 물었다.

“지금 이럴 시간 없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데,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도빈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빨리 가야돼.”

다시 에이단의 손을 뿌리치고 차 문을 열려는데.

철컥.

문이 잠겼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즉시 몸을 돌려 에이단의 멱살을 잡아챘다.

“뭐하자는거야, 지금. 부숴버리기 전에 당장 열어.”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에이단을 물어뜯기라도 할듯이 말했다.

에이단은 선글라스를 벗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신차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해봤자 좋을거 없다는거 알잖아. 네 동생? 당연히 구해야지. 근데 너라고 거기가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알아? 너까지 개죽음 당하려고? 네 동생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놈의 멱살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알고 있다.

에이단의 말대로 내가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럴때일수록 냉정해야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첫 회귀 전에 겪었던 도빈이의 죽음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또 동생을 지키지 못한다면?

또 도빈이가 죽는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시간을 되돌릴거야.’

나도 모르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래, 그러면 돼.

정말 만약의 경우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도빈이를 되살리면 된다.

“도아. 냉정해져. 그 섬을 통채로 날려버리기라도 할 생각이야?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너라서 하는 충고야.”

에이단이 그의 멱살을 잡았던 내 손을 풀어내며 말했다.

그는 게이트 안에서 내 마나구의 위력을 직접 확인한 사람.

당연히 내 정신상태를 신경쓸수밖에 없었다.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폭주라도 하게 되면 찾아올 악몽을 그는 짐작할테니까.

거칠었던 숨이 조금 차분해지자, 에이단이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나도 가서 돕고 싶은데. 한국에서는 내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어.”

한국에서 그의 입지는 암거래 상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괜히 잘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가는 나까지 곤란해진다.

“됐어. 가서 네 할일이나 해. 내가 처리할 수 있어.”

내 말에 에이단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이래야 윤도아지.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이걸 써.”

에이단이 내게 작은 칩 하나를 내밀었다.

C급의 아이템 1회용 위치 공유기였다.

이건 지정된 사람에게 딱 한 번, 내 위치를 공유하는 아이템이었다.

지정인은 에이단 맥카시.

“이걸 왜?”

“말했잖아. 도움이 필요하면 쓰라고. 물론 네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만. 상황이란게 전부 네 뜻대로 흘러가는건 아니잖아?”

그러면서 찡긋, 한쪽 눈을 깜빡여보인다. 넉살스러운 그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칩을 챙겨넣자 에이단이 다시 선글라스를 쓰며 차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철컥.

“간다.”

씩 웃어보이는 에이단을 뒤로하고 차에서 내렸다. 새벽의 차디찬 공기가 온몸에 오한을 일으켰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항구로 향하는데 근처를 서성이고 있던 한 여자가 내게 달려왔다.

“도아 언니!”

창백한 얼굴의 이리나였다.

“리나야.”

이리나는 내 팔을 꽉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 언니가 와서 다행이에요.”

이리나의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도아 씨. 왔군요.”

그 뒤로 안세인이 나타났다.

드물게 굳은 얼굴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연한 표정이었다.

“…관장님.”

어깨에 코트를 걸쳐 잘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왼쪽 팔이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직인가보네.’

지난번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의 알 게이트에서 얻었던 S급 아이템인 부서지지않는 강철을 연구소장 박효진에게 넘기며 그것과 마나석으로 안세인의 왼팔을 대신할 팔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여전히 비어있는것을 보니 아직 대체할 왼팔을 만드는데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안세인이 눈치챌까싶어 빠르게 그녀의 비어있는 소매에서 눈을 돌렸다.

“전화로 설명했다시피, 상황이 그래요. 저기.”

안세인이 바다를 가리켰다.

이곳에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새벽의 차디찬 바다에 여러척의 배가 떠 있었다.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형태로 모여있었지만 그 중앙은 텅 비어있었다.

이틀 전, 이곳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닿을 수 있는 섬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

기관의 주도 하에 발생한 게이트 브레이크였다. S급 게이트였기때문에 기관에서도 철저한 준비를 했고 다른 무리의 각성자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협력을 받은 상태였다.

브레이크가 일어나고 각성자들이 섬에 들어간지 1시간 후.

“보다시피 사라졌어요.”

무인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사라진건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저 이상으로 접근을 해보려고 했지만 무언가가 막고 있어서 말이죠.”

섬은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장막이 쳐져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브레이크가 일어난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이 섬의 바깥으로 흩어지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다.

적어도 저 안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으니.

‘그것도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역시 직접 가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봐야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안세인이 근처에 대기중이던 작은 배로 나를 안내했다.

배가 출발하고 안세인이 잠시 선장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이리나에게 물었다.

“누가 들어가있댔지?”

이리나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같은 얼굴로 내게 서류를 건넸다.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를 대비하면서 김지석이 만들어둔 서류같았다.

게이트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함께 이 브레이크 제어에 참여하는 인원의 이름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빠르게 그것을 훑었다. 모르는 이름도 꽤 있었지만 아는 이름도 많았다.

일단 기관 소속 각성자 중 아는 이름은 셋.

권재경, 김지석, 문기훈.

다른 무리의 각성자 중 지원을 온 각성자 중에는.

‘도약의 달인 김지형, 매의 발톱 정시언, 히말라야의 유령 설재민….’

그리고.

‘…날개 돋친 범 윤도빈.’

입술을 꾹 깨물고 눈을 감았다.

“저희, 개의 이빨 무리는 이번 게이트 브레이크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모든 무리가 참여하면 내륙의 게이트를 닫을 사람도 없어지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인원이 필요해서….”

이리나가 변명을 하듯 이야기했다.

잘한 일이었다.

당연히 그랬어야했다.

모든 각성자가 게이트 브레이크에 매달릴 수는 없었다. 다른 게이트를 정리하고 혹시 모를 뒷 일을 처리해줄 각성자들이 필요했다.

“잘했어. 너도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내 말에 이리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리나는 한 명 뿐인 치유 특성의 소유자였다. 절대 잃어서는 안될 소중한 전력.

그리고 그런 전력이 한 명 더 있는데….

‘설마.’

다시 브레이크 참여 인원을 훑어보았다. 그곳에는 이름이 없었지만, 왠지 모를 싸함을 느낀 나는 이리나를 보며 물었다.

“…나라는?”

이리나가 시선을 떨구었다.

“나라는.”

재차 물었지만, 이리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나라도 휘말렸어요.”

뒤에서 들려온 안세인의 목소리에 뒤통수를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나라가 안에 있다고요?”

안세인이 두 눈을 꾹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요? 나라가 왜 저기에 들어갔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운걸까? 하지만 그렇다고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저곳에 일곱 살 아이를 보내다니! 아빠를 따라간다고 해도 뜯어 말렸어야 했는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나라 예지는요? 아니, 기억 현상이요. 예전에 기억 현상으로 게이트 브레이크를 대비했었잖아요.”

“썼어요. 그냥 밤하늘의 그림뿐이었어. 그래서 사실 우리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은 탓도 있어요. 다 내 불찰이야.”

안세인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자신있게 강행했는데. …정작 나는 이런 꼴이고…. 정말 면목이 없네요.”

그녀는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몇 개월 전 팔을 잃었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

역시 자신의 팔을 잃는 것보다 다른 각성자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녀에게 더욱 큰 공포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니,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애써 안세인에게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요. 깨진 게이트는 없애면 그만이에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말했다.

그때 뒤쪽에서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앞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모여있는 배들 사이의 텅 빈 바다.

‘탐지!’

즉시 정신을 집중해 주변의 공간을 살폈다.

파도만이 출렁이고 있는 바다를 감싸고 있는 돔 형태의 얇은 막이 탐지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라진 섬이 있었다.

‘사라진게 아니야.’

일단 한 가지 걱정은 해결이 되었다.

이곳의 막이 섬이 사라진것처럼 위장을 하고 있을 뿐, 실제로 섬이 사라진건 아니었다.

“잠시 살펴보고 올게요.”

안세인과 이리나에게 말을 한 후 배를 박차고 도약했다.

배가 크게 출렁였지만 뛰어오르는데에 문제는 없었다.

도약의 정점에서 부유를 사용하자 아래로 떨어지는대신 허공에 머무를 수 있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싼 막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그것에 손을 대자.

딱딱했다.

상당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잠시 막을 더듬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머릿속에 무언가 번쩍 떠올랐다.

‘산신의 보호막!’

베트남에서 보았던 산신의 보호막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설마 게이트 안에 있던 것이 신급 몬스터인가?

흠칫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세라피스에게 들은 이야기로 추측해보면 신급의 몬스터가 보스 몬스터로 나타나는건 첫 번째 시험의 이후일 터.

그전에도 게이트 안에 신급 몬스터가 있을 때가 있었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게이트는 없었다.

그럼 대체 어떤 몬스터가 이런 방어막을 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이걸 어떻게 뚫어야할까.

이 안으로 들어가야만 안에 있는 각성자들을, 나라를, 도빈이를 구할 수 있을텐데!

또 눈앞에서 동료와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진정 좀 해.’

아까 들었던 에이단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리는 것 같았다.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서둘러봤자 좋을 일은 없었다.

차분히 하나씩.

다시 생각해보자.

섬은 사라진 게 아니다.

보호막의 위장 때문에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고, 이 보호막은 신급 몬스터의 것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하지만 신급 몬스터를 잡아야하는 게이트가 이 시점에 나타날 리 없으니, 안에 신급 몬스터가 있더라도 놈을 잡는 것이 목표는 아닐 터.

‘게이트의 클리어 목표 자체가 몬스터와의 전투가 아닌가?’

얼핏 든 생각이었다.

신급의 몬스터가 있지만 신급 몬스터를 상대하지 않는 게이트.

전투가 아닌 다른 목적의 게이트. 그런 게이트가 브레이크를 일으킨다면 대게 이런 형식이었다.

‘그래, 맞아. 그랬어!’

떠오른 기억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투 게이트의 브레이크는 그곳에서 쏟아져나온 모든 몬스터를 죽여야만 끝이 나지만, 그 외의 게이트는 원래 그 게이트가 지니고 있던 클리어 목표를 달성하면 말끔하게 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 클리어 목표를 달성한다면 해결되는데.

이제 어떻게 이 안으로 들어가냐가 문제였다.

마나구로 실험을 해볼 수는 없었다. 그 폭발에 휘말렸다가는 안과 밖의 사람들 모두가 위험에 빠질수도 있었다.

‘…블링크로 뚫을 수 있을까?’

이전에 보았던 산신의 보호막은 마음대로 뚫을 경우 산신의 노여움을 살 가능성이 있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신급 몬스터가 어떤 몬스터인지도 알 수 없었고, 노여움을 사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안에 있을 나라가, 도빈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심을 굳힌 나는 곧바로 보호막 안 쪽의 마나에 집중했다.

‘블링크.’

훅!

* * *

“상당히 소란스럽네요.”

인터넷으로 기사들을 살펴보던 남자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에 옆에 있던 여자가 날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성공하지도 못할 일을 벌이고 있네요. 신경쓰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그분들께서 알아서 다 처리를 해주실테니까요.”

“그럼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어요.”

남자의 중얼거림에 여자가 날카로운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뭘 하면 될까요?”

남자는 의자에 기댄채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곧 눈을 감고 입을 달싹였다.

여자가 양손을 앞으로 모으더니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눈을 뜬 남자가 여자를 보며 말했다.

“주요 인물들의 발이 묶여 있으니…. 빼앗겼던 동료들을 되찾아와야할 때가 됐군요.”

“…아, 아아!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도록 할게요. 맙소사, 드디어.”

여자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남자의 앞에 무릎을 굽히며 머리를 숙였다.

“성위의 뜻대로. 다녀오겠습니다, 선지자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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