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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77화 (178/201)

제177화

장막의 안은 어두웠다.

바깥의 새벽 하늘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한순간에 밤이 찾아온 것처럼 깜깜했다.

장막이 소리까지 차단을 하는건지 주변에서 들려오던 소리와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우선 상황을 봐야겠어.’

섬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기에 둘러보는건 얼마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크게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일단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안세인과 이리나에게 이곳의 상황을 전달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야 안심하고 다시 자신들의 일로 복귀할 수 있을테니.

탐지로 주변을 확인하며 섬으로 다가갔다.

이곳 역시 조용한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많은 각성자가 입장했음에도 조용한 건 이상한 일이었다. 클리어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면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소리는 커녕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전의 무인도처럼.

‘다들 어디에….’

나처럼 탐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험한 지형을 헤멜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은 게이트 안이 아니니 핸드폰이라도 켜서 주변을 살필텐데, 그 어디에서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불을 켜지 않았다.

빛을 보면 몰려드는 몬스터가 있을지도 몰랐다. 혹은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볼 수 있는 몬스터일지도 모른다.

신중한 움직임을 위해 기척을 없애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은신.’

스륵.

순식간에 내 모습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런 어둠 속을 거닐고 있자니 조금전 밖에서 들었던 나라의 기억현상이 떠올랐다.

밤하늘을 그려놓았다고 했지.

‘너무 정확하네.’

허공을 떠다니다보니 정말 나라의 기억현상처럼 밤하늘을 헤메이는 것 같았다.

내가 내려선 곳은 크고 작은 돌들이 쌓인 해변가였다.

발을 잘못 디디면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바깥의 소리마저 차단된 이런 고요한 곳에서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금세 들통이 날 터.

‘부유가 낫겠어.’

살짝 바닥에서 몸을 띄운 후, 주변을 탐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있는 사람의 형체가 탐지되었다.

부유의 속도를 높여 그에게 다가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80을 찍은 탐지 스탯은 그의 정체를 추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사님?’

손에 쥐여있는 권총을 보니 더욱 확신이 섰다.

조심스럽게 그의 앞쪽에 내려선 나는 은신을 풀고 김지석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미동이 없었다.

살며시 김지석의 얼굴에 손을 대어보았다.

얼음장처럼 차디찬 기온이 손끝을 타고 내게 흘러들었다.

이미 죽은 시체에 손을 댄 것 같은 오싹한 기분.

온몸이 싸늘해지고 손끝이 떨려왔다.

설마.

고개를 젖혀 살짝 드러나있는 김지석의 목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쿵. 쿵. 쿵.

다행히 심장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닿은 김지석의 목덜미 역시 차가운건 마찬가지였다.

탐지로 살펴보았지만 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브레이크를 대비해 평소와 다르게 가볍게 걸친 옷도 깔끔했다.

육체적인 부상이 없다면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었다는 것.

‘대체 뭐가….’

나는 차디찬 김지석의 얼굴을 감싸며 입술을 깨물었다.

* * *

쿵, 쿵, 쿵!

서걱!

서걱!

서걱!

눈앞에서 사람이 썰려나갔다.

살점이 부서지고 피가 흩날린다.

하나의 생명이 무참하게 짓이겨지고있다.

<…사…, 살려…, 줘….>

그럼에도 아직 숨이 붙은 그가 너덜거리는 팔을 뻗어온다.

‘아, 안돼…!’

마주 손을 뻗어 그의 피에 젖은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촥! 촤악!

천장에서 내리꽂히는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그의 머리를 관통한다.

푹!

<커헉!>

뻗어왔던 팔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툭!

그륵. 그르륵….

살려달라고 말을 내뱉던 그의 입에서 거품 섞인 피가 흘러나온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양의 피가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바닥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구둣발을 적셔온다.

‘이, 이건…. 아냐, 이건…!’

덜덜 떨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그 피는 도망치는 구둣발을 집요하게 쫓아온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 처럼.

조금 전 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각성자였다.

죽어서라도 그를 죽이고야말겠다는 의지라도 담겼는지, 바닥을 흐르는 피가 끈질기게 김지석을 쫓았다.

빠르게 도망쳤다.

도약과 가속, 방향 전환 등 스킬을 난사하며 피를 떨치려했지만.

피는 이제 사람의 형체로 변한 채 김지석을 따라 달려왔다.

<네가 죽어주기만 했어도.>

피로 만들어진 얼굴이 벙긋거렸다.

<내가 이렇게 죽을 일은 없었을텐데!>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텁!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김지석의 어깨를 누군가 끌어당겼다.

‘헉!’

숨을 들이키며 옆을 돌아보았다.

새빨간 손.

너덜너덜한 살점 아래로 드러난 근육과 뼈.

<…살려줘….>

머리에 창이 꽂힌 해골이 웃었다.

* * *

잠시 살펴보고 오겠다던 윤도아가 사라졌다.

말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였다.

안세인은 입술을 꾹 깨문채 앞쪽의 딱딱한 허공을 매만졌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있던 무인도 역시 윤도아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허상인가?’

텅 빈 바다로 보이는 이 모습은 허상이고, 섬은 그대로 이곳에 있는게 아닐까?

윤도아가 사라진 것은 이 단단한 막의 안으로 이동했기 때문이고.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딱딱한 막을 뚫고 안으로 이동한걸까.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텐데.

주먹을 꽉 쥔 안세인이 허공의 막을 툭툭 두드렸다.

가만히 허공을 쏘아보며 침묵하던 안세인의 눈이 번뜩였다.

‘쳐볼까.’

이곳에서 가만히 선 채 윤도아와 다른 각성자들이 돌아오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 게이트의 브레이크를 허락한 것은 자신. 어쩌면 왼팔을 잃은 고통에 객기를 부린 것일지도 몰랐다.

책임져야했다.

‘최대 강화.’

특성 스킬 강화를 너클을 낀 오른손에 둘렀다.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꽉 쥔 주먹에 오른팔이 터져나갈것 같이 부풀었다.

“과, 관장님?”

뒤에 서있던 이리나가 놀라며 안세인을 불렀다.

“물러나.”

“안돼요! 관장님 어깨에 무리가…!”

하지만 이리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안세인이 몇발짝 뒤로 물러나자, 이리나도 어쩔수없이 뒤로 물러났다.

“후우.”

숨을 가다듬은 안세인이 다시 번뜩이는 눈으로 앞의 허공을 바라보았다.

허리를 크게 뒤틀며 왼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어깨높이로 들어올린 팔을 한껏 뒤로 젖힌 후.

‘후려치기!’

뒤틀었던 허리를 바로돌리며 주먹을 힘차게 내질렀다.

안세인의 주먹이 허공의 막에 닿았다.

콰앙!

충격파가 장막을 뒤흔들었다.

잠잠했던 바다에 파장이 일어 주변에 모여있던 배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꺅!”

안세인이 타고 있던 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심을 잃은 이리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한 팔을 잃은 안세인 역시 균형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털썩!

온 힘을 다한 후려치기였다.

웬만한 몬스터들을 한방에 가루로 만들던 스킬이었는데.

고개를 든 안세인의 앞에는 여전히 텅빈 푸른 바다만이 보였다.

“…하하….”

안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일그러진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장막을 깰 수 없나.’

한계에 부딪힌 안세인이 입술을 짓씹었다.

잘린 어깨에서 열기가 올라왔다. 조금 전의 무리한 움직임으로 왼팔의 상처가 다시 터지기라도 한걸까.

금새 옷이 축축하게 젖어들고 비릿한 피냄새가 풍겼다.

“관장님!”

비명을 지른 이리나가 후다닥 기어와 안세인의 왼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안세인은 독기서린 눈으로 자신의 온 힘을 버텨낸 장막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걸 부숴야했다.

* * *

화르륵!

집안이 온통 불로 뒤덮여 있다.

‘…뜨거워.’

어디를 돌아봐도 출구 따위는 없다.

거센 불길이 금방이라도 덮쳐올듯 넘실거렸고 안의 공기는 이미 숨쉴 수 없을 정도로 매캐해졌다.

그럼에도 설재민은 기절하지 않았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매캐한 연기는 그 틈새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뜨거워. 나가고 싶어.’

그를 둘러싼 불길은 점점더 거세어졌다.

화륵!

화르륵!

마치 축제라도 열린듯 넘실넘실 춤을 추는 불꽃들이 서서히 설재민에게 손을 뻗어왔다.

<같이 춤추자.>

<우리와 함께 불이 되자.>

‘시, 싫어!’

뒷걸음질치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자신을 옭아매는 불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불꽃에 녹아들어.>

<편해질거야.>

뻗어온 불길이 설재민의 오른쪽 얼굴을 쓸어내리자 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뜨, 뜨거워! 아파!’

울먹이며 볼에 붙은 불을 털어냈지만, 불은 그의 손으로 옮겨붙을 뿐이었다.

불은 그의 손목을 타고 올라가 옷가지와 함께 팔을 태웠다.

<춤추자. 불이 되자.>

<같이 타오르자.>

‘오지마, 제발! 여기서 나가고 싶어!’

설재민은 온몸을 웅크리며 주저앉았다.

작아진 그의 주변으로 거대한 불꽃들이 모여들었다.

<재민아.>

<설재민.>

<재민 오빠.>

불꽃들이 춤을 추며 그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도 여기에 있어.>

<우리는 가족이잖니?>

<언제나 함께야.>

화르륵!

볼에 달라붙은 불꽃이 설재민의 입안으로 파고들었다.

얼굴이 녹아드는 끔찍한 고통.

하지만 이내 찾아온 텅 빈 허함에 자신도 모르게 볼을 더듬었다.

분명 볼이 있어야 할 곳에 딱딱한 이빨이 만져졌다.

꿀꺽 침을 삼키려했지만 뻥 뚫린 볼 바깥으로 줄줄 새어나갔다.

붉다못해 까맣게 타버린 팔을 벗어난 불꽃이 목을 향해 올라왔다.

‘너무 뜨거워! 너무 아파….’

<네 모든 것을 태우면.>

<더이상 아프지 않아.>

툭! 후두둑!

설재민을 둘러싼 불꽃이 하나 하나 설재민의 위로 떨어져내렸다.

설재민은 그 불꽃에 끝없이 파묻혔다.

온몸이 불타오르고, 모든것이 무너져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불꽃이 가득한 공간과 설재민 뿐이었다.

화르륵!

‘…무서워. 이럴바에는 그냥 죽는게 나아….’

* * *

이곳은 작은 섬이었기에 다른 각성자를 찾아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쓰러진 김지석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몸을 띄워 그곳으로 이동해 자세히 모습을 살펴보았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코부터 아래쪽의 얼굴을 모두 가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 웬디고 게이트 브레이크 때 만났던 경상도 출신 각성자였다.

‘히말라야의 유령 설재민.’

그의 상태는 김지석과 같았다.

몸이 차디차고 의식이 없었다.

다행히 아직 심장은 뛰고 있었지만, 이 상태라면 언제 숨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다들 이런 상태인건가?’

이곳 어딘가에 있을 나라도, 도빈이도. 다른 각성자들도.

이곳을 잠식한 몬스터가 어떤 놈들인지 어느정도 추측이 되었다.

혹시 모르니 한 명만 더 확인을 해보기위해 다시 몸을 띄웠다.

돌무더기의 해변을 지나 위로 치솟은 절벽과 그 위의 풀숲 쪽을 살펴보니.

그 근처에도 한 명이 쓰러져있었다.

‘!’

탐지로 살펴본 그의 실루엣이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나는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엎드려있던 그의 몸을 돌리자, 확실히 얼굴의 윤곽을 탐지할 수 있었다.

윤도빈이었다.

덥썩 도빈이의 손을 붙잡았다.

차디찼다.

그순간 도빈이에게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아, 안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도빈이의 얼굴을 더듬었다.

다행히,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차디찬 도빈이의 얼굴을 감싸고 있지도 않을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첫 회귀 전과 같은 상황을 보지 않게 돼서, 정말로 고맙다고.

하지만 의식이 돌아오기 전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조심스레 도빈이의 손을 내려놓았다.

‘깨워야해.’

한시라도 빨리 이들의 정신을 돌려놓아야했다.

이곳에 어둠의 장막이 쳐져있는 이유. 사람들이 모두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는 이유.

그 원흉은 나이트메어일 확률이 컸다.

사람들에게 악몽을 심는 몬스터.

얼핏보면 꿈지기들과 비슷하다고 생각될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부류였다.

꿈지기는 순수하게 꿈을 모으는 놈들이었다. 꿈의 주인의 감정에 반응하는 꿈을 모으는 놈들. 기쁨과 슬픔, 즐거움. 모두를 모았지만, 그들이 모으지 않는 단 한가지가 있었다.

‘트라우마.’

꿈지기는 꿈의 주인에게 깊숙히 새겨진 상처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 꿈은 취급하지 않지만, 꿈지기와 정 반대인 것이 바로 나이트메어였다.

꿈의 주인의 트라우마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악마.

그저 수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산시켜 그 주인의 정신을 망가트리는 것을 즐기는 악마였다.

‘절대 이놈들에게 잡혀서는 안 돼.’

나이트메어에게 붙잡히는 순간, 나 역시 트라우마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럼 분명히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아주 잘 알기에.

그때문에 지금 도빈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알기에.

빨리 악마의 악몽에서 이들을 깨워야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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