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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81화 (182/201)

제181화

또다시 맥의 악몽 속으로 빨려들어갈까봐 긴장을 잔뜩 하고 있었는데.

맥이 건넨 제안은 의외의 것이었다.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그러고보니 기분나쁘게 웃던 모습도 사라지고 여러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았다.

이시결 때문일까 싶어 그를 돌아보았다.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길래 반사적으로 그를 제압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가 맥의 악몽에 초대를 거부했기때문에 내가 깨어날 수 있었던건가 싶었다.

‘아니, 맥의 악몽이 아니라 나이트메어의 악몽이지.’

이제 왜 맥이 꿈과 환상이 아닌 악몽을 보여줬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전까지 맥을 조종하던 것은 나이트메어의 무리였다.

그놈들이 빛의 맥에게 몰려들어 맥을 이용해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고, 그를 조종해서 이 장막을 치고 사람들을 악몽 속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한 것이었다.

맥의 제안을 보아하니 이 게이트의 클리어 목표 또한 그것이었을 것이다.

맥에게 들러붙었던 나이트메어들을 없애는 것.

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맥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좋아. 그럴게.”

내 대답에 맥의 눈이 살짝 휘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나이트메어의 악몽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은근슬쩍 맥에게 저 사람들을 깨워달라는 압력을 넣었다.

맥이 답했다.

<저들을 악몽 속에 가두고 있던 나이트메어들이 도망갔으니 저들에게 깨어날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어.>

그 말에 즉시 옆에 있던 도빈이를 흔들었다.

“도빈아. 윤도빈!”

어느덧 차가웠던 도빈이의 뺨이 따듯하게 변해 있었다.

몇 번 볼을 톡톡 두드리자 곧 도빈이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누나…?”

정말 다행이었다.

이대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악몽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마지막에 붙잡았던 그 차디찬 손처럼 도빈이마저 그렇게 잃었다면 내 정신은 더이상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잠시 눈을 깜빡이던 도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 나, 꿈에서 아, 아빠가….”

도빈이 역시 아버지에 대한 악몽을 보았나보다.

백화점이 무너졌던 날. 그날 그곳에 가서 장난감을 사고싶다고 우겼던게 도빈이었다.

도빈이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와 나, 도빈이는 그때의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건 모두에게 힘든 기억이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입을 다문 것이었다.

“…괜찮아, 도빈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한번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건 내 잘못이 아니고 도빈이의 잘못도 아니다. 그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욕심이 아버지를 죽게 만들 줄은 몰랐을테니.

“우리 잘못이 아니야.”

내 말에 도빈이가 눈을 가리며 이를 꽉 다물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하고 일어나시죠.”

이시결의 탐탁치않은 목소리에 윤도빈이 흠칫 놀라며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조금 빨개진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그쪽은 또 언제 왔어요.”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면 필요없습니다. 그것보다 빨리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시결이 나를 보며 작게 말했다.

“여기가 이런 꼴이 나고 중점이 되는 각성자들 대부분 이쪽에 치중하면서 놈이 움직일 낌새를 보였습니다.”

“뭐라고?”

이시결을 끌고 몇걸음 물러났다.

“무슨 소리야.”

“그놈이요. 지금을 기회로 삼아서 뭔가 저지를 낌새였습니다. 일단 주선오 씨 한테 이야기를 해두고 내려왔으니 너무 걱정은 마시죠.”

몸을 일으키고 옆에 떨어져있떤 낫을 주워든 도빈이가 우리를 돌아보는 바람에 더 이상의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그놈이라면 분명 성위의 수하, 박성현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뭔가 저지를 낌새라니.

확실히 지금 게이트 브레이크의 여파로 기관의 핵심인물들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게다가 다른 힘 있는 무리의 단장과 랭커의 전력도 많이 치중되어 있는 상태.

‘개의 이빨 무리가 그곳에 남아있는게 천만 다행이야.’

놈들이 어떤 일을 꾸민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돌아가봐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맥에게 물었다.

“지금 나이트메어들은 어디에 있어?”

내 물음에 맥이 잠시 둥그런 눈을 감았다.

<내가 통제를 되찾으면서 다들 빛을 피해 도망쳤어.>

그렇다면 아직 장막을 거두어서는 안됐다. 안과 밖을 분리하는 맥의 장막이 사라진다면 나이트메어들은 빠르게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일단 사람들을 다 깨워올테니까. 기다려줘.”

<좋아.>

나는 곧바로 이시결과 윤도빈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각성자들 모두 깨운 후에 다시 여기로 와.”

맥이 환한 빛을 내뿜고는 있었지만 뒤쪽의 산 너머 까지는 그 빛이 닿지 않을 것이다.

도망친 나이트메어들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맥이 제정신을 차린 이상 섣불리 사람들을 다시 악몽으로 초대하지는 못할 터.

“레부.”

심연의 불꽃을 꺼내 레부를 불러냈다.

“쿄오!”

경쾌한 레부의 목소리와 함께 붉은 불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부. 도빈이 따라가.”

“알겠습니다.”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레부가 윤도빈의 옆에 섰다. 가만히 레부를 바라보던 이시결이 물었다.

“저는요?”

자신에게는 불을 주지 않냐는 것 같았다.

“알아서 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이시결이 라이터를 켜고는 산 속으로 이동했다.

“나도 갔다올게.”

도빈이가 레부와 함께 이시결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나는 근처에 있던 설재민과 김지석을 깨우기위해 왔던 길을 되짚었다.

맥의 빛 덕분에 자갈이 쌓인 해변가 쪽은 환했다.

조금 걸음을 옮기자 쓰러져있는 설재민이 보였다.

“재민 씨.”

조심스레 설재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으….”

잔뜩 식은땀을 흘리던 그가 몸을 움찔거렸다.

“설재민 씨. 정신 차리세요.”

“…으,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설재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헉, 허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처럼 빠르게 숨을 헐떡이던 그가 황급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오른쪽 얼굴을 더듬었다.

“부, 불이…. 불이…!”

‘불?’

아직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불이라면….

어쩌면 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게 멋이나 취향이 아니라 흉터를 가리기위함인지도 몰랐다.

그는 새빨개진 눈으로 온몸을 털어내려 애썼다.

황급히 설재민의 팔을 붙잡았다.

“설재민 씨!”

“헉!”

튀어나올듯이 커진 설재민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재민 씨. 나에요, 윤도아. 정신 차려요. 꿈에 빠지지 말고.”

“…헉…, 허억….”

설재민의 호흡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곧 다시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흐억! 유, 윤도아 누님?”

다행히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맞아요.”

“…부, 불은…. 불이….”

설재민이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당연히 주위에 불이라고는 없었다. 자갈밭과 자신의 얼굴, 몸을 몇 번 더듬던 설재민은 곧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사라졌네….”

아직 완벽하게 정신이 돌아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며 설재민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요, 어서. 저 뒤에 빛 보이는 쪽에 가 있어요. 브레이크 마저 처리해야죠.”

“…아, 알겠습니다!”

설재민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살짝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맥의 빛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김지석을 깨울 차례였다.

내가 알던 김지석만 보았을 때 그에게 남았을 트라우마는 딱 하나였다.

자신을 죽이려던 미등록 각성자의 죽음.

빠르게 김지석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사님. 이사님, 정신 차리세요.”

“…!”

다행히 김지석은 단번에 눈을 떴다.

하지만 그 큰 눈망울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사님?”

“…도아 씨….”

김지석이 손을 들어올려 조심스레 내 얼굴을 만졌다.

“네, 이사님. 저에요. 정신이 드세요?”

그의 손을 붙잡아 얼굴에서 내리며 물었다. 김지석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눈 가득 눈물이 맺혔다.

“…나, 나는…,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 정말로, 나는 그 사람을 구하고 싶었는데…. 이미, 그 사람은 이미 내부의 함정에 걸려서….”

김지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내가 생각했던대로 미등록 각성자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알아요, 이사님. 이사님이 거짓말하실 사람이 아니라는거, 잘 알고 있어요.”

차분한 대꾸에 김지석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이곳에 오자마자 잡았던 그의 손과는 확연히 다른 온도였다. 그 따스함에 다시금 맥의 악몽이 깨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어나세요, 이사님.”

그를 안심시키기위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의 눈물을 닦아냈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김지석이 곧 몸을 일으켰다.

“…후…. 못난 꼴을 보였네요.”

고개를 돌린 김지석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가요. 브레이크 마저 처리해야죠.”

내가 먼저 몸을 일으키자, 곧 김지석도 몸을 추스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아 씨는 괜찮으셨나요?”

빛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 김지석이 물었다.

나는 대답대신 씁쓸한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김지석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맥의 앞에는 멀찍이 쪼그려앉아있는 설재민 뿐이었다.

왠지 안절부절 못하던 그가 우리를 보더니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왔다.

“누, 누님! 이사님!”

혹시 뭔가 또 일이 생겼나싶어 그를 살폈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어보였다.

“재민 씨, 괜찮아요?”

김지석이 다급하게 달려온 그를 달래며 물었다.

“괘, 괜찮긴 한데, 저, 저거. 뭐에요? 아, 아까 기절하기 전에 본 것 같은데….”

설재민이 눈을 감은채 하얀 빛을 내뿜는 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것을 본 김지석 역시 흠칫 놀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섬광을 품은 맥에게 당해 악몽 속으로 빠져들었을 둘이 놈을 보고 놀라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아까 우리를 악몽 속으로 빠트린건 저 맥이 아니에요.”

그와 함께 이시결이 악몽에 빠지지 않은 덕에 나이트메어들이 일시적으로 힘을 잃었고, 그 틈을 타 본래의 맥이 자신의 통제권을 되찾았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김지석과 설재민은 빠르게 수긍했지만 그래도 쉽사리 맥의 근처에 다가가지는 못했다.

놈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다른 각성자들이 깨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악몽에서 깨어났기 때문인지 다들 각자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 역시 어떻게 해야 나이트메어들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나이트메어는 실체가 없어.’

오직 빛에 의해서만 그 위치가 드러나고, 그곳을 공격해서 머릿속에 악몽을 심는 맥을 쫓아낼 수 있었다.

그건 말그대로 쫓아내는 것일 뿐 죽이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트메어를 죽이는 방법은 하나.

놈들이 뭉쳐서 실체가 생겼을 때, 강한 빛을 쐬게 되면 그대로 증발하게 된다.

그러기위해서는 일단 놈들을 뭉치게 한 후 장막을 열어야하는데. 사실 놈들을 뭉치게 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이곳에 맥이라는 좋은 미끼가 있긴 했지만…. 맥의 통제권을 빼앗은 나이트메어가 선사하는 악몽으로의 초대를 또다시 버틸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이시결이 있기에 금방 깨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 악몽을 다시 보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장막도 문제야.’

고개를 들어 깜깜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맥이 다시 나이트메어의 통제에 빠지면 당연히 장막을 거둬들일리가 없었다.

생각에 잠겨있는데 이곳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맥의 악몽 속에서 다들 힘든 사투를 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인원이었다.

기관 소속 각성자인 권재경과 문기훈, 매의 발톱 정시언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와 자주 함께 다니던 랭킹 10위 김지형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인원이 다야?”

“아뇨, 사람들이 더 있을텐데….”

김지석 역시 모인 각성자들의 수를 파악해보았는지 이상하다는듯 중얼거렸다.

“…그게….”

도빈이가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도빈이를 대신해서 이시결이 대답했다.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어나지 못했다고요…?”

김지석이 그의 말을 되뇌었다.

이시결은 팔짱을 끼며 별것 아니라는듯 말했다.

“뻔하지 않습니까. 본인의 트라우마에 잡아먹혀 벗어나지 못한겁니다.”

김지석의 표정이 무너졌다.

도빈이가 그런 이시결을 살짝 쏘아보고는 이어 말했다.

“…문기훈 씨가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추스르고 계세요.”

“권 선생님께서는요?”

김지석이 곧바로 물었다. 그에 도빈이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왠지모를 불안감에 숨죽인채 도빈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라가 일어나지 못해서 나라의 옆에 계세요.”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외상이라면 빨리 이 장막을 깨고 나가 이리나에게 치료를 부탁하기라도 하겠지만, 이런 정신적인 문제는 대체 누구한테….

“!”

내 고개가 빠르게 옆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하얀 맥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빠르게 놈을 향해 걸어갔다.

감겨있던 맥의 눈이 스르륵 열렸다.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한테 네 환상을 덮어줄 수 있어?”

맥의 맑은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 나에게 향했다.

<그럴 수는 있지만 그럼 그틈을 노려서 나이트메어들이 다시 나를 통제할거야.>

몇 초 동안 맥과 시선을 맞추었다.

나이트메어가 다시 맥을 통제하게 되면 결과는 뻔했다.

악몽이 반복된다.

다시 그 악몽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라의 악몽을,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악몽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이트메어를 실체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할 위험.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는 이시결을 믿었다.

그리고 이미 한번 악몽에서 깨어날 의지를 가진 이곳의 각성자들을 믿었다.

“그건 걱정마. 확실하게 나이트메어들을 없애줄테니까 그렇게 해줘.”

<좋아.>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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