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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82화 (183/201)

제182화

맥과 함께 세운 계획을 실행하기 전, 우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각성자들을 모두 해변가로 옮겼다.

나이트메어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각성자들은 꽤 여럿이었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한 그들의 옆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재경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나라를 품에 안고 중얼거렸다.

“…나라야…. 나라야, 제발…. 제발 일어나, 나라야….”

그리고 그런 권재경과 나라를 바라보는 문기훈의 표정 또한 좋지는 못했다. 이미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는 그는 지금 권재경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그런 그들의 옆에서 정시언 역시 손톱을 깨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앞에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김지형이 누워있었다.

청계천에 있는 아이템 상점에 함께 갈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던 둘이었다. 걱정이 되는게 당연하리라.

다른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무리 각성자 혹은 친근한 사이인 각성자들의 앞에서 그들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빨리 계획을 실행해야했다.

맥에게 눈짓을 하자 곧 놈이 천천히 하늘 위로 떠올랐다.

화악!

맥을 중심으로 하얀 빛줄기들이 반짝이며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 즉시 환상을 흩뿌리는 맥에게 씌이기위해 모여드는 나이트메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스슥!

스스슥!

모여있던 각성자들이 경계를 하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나이트메어를 찾을 수 있을리 없었다.

사삭!

훅! 후웅!

땅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맥을 향해 달려드는 나이트메어들의 그림자였다.

“…누나.”

윤도빈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림 리퍼의 낫을 꽉 쥐었다.

“기다려.”

아직 때가 아니었다.

나이트메어들이 다 모인후, 맥이 완전히 통제권을 빼앗겼을 때.

그때를 기다려야했다.

우우웅…!

우우우웅!

수십개의 그림자가 우리를 스쳐지나간 후, 맥의 주변으로 푸르스름한 빛무리가 형성되었다.

푸른 빛은 맥의 두툼한 네 개의 발 끝부터 서서히 위쪽으로 번져나갔다.

나이트메어들이 잠든 이들에게 환상을 뿌리고있는 맥을 조금씩 잠식해나가는 것이었다.

<으으…. 아, 아파…. 도와줘…. 악몽은 싫어….>

눈물을 머금은 까만 눈동자가 도움을 요청하기라도 하듯 우리에게 향했다.

“…윽….”

김지석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놈들의 악몽을 한차례 겪은 우리들이 맥의 고통을 모를리 없었다.

나 역시 그것을 알았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계획을 이야기하며 맥이 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내 빛이 완전히 푸르게 변할 때까지 기다려. 내가 아무리 도와달라고 애원해도.’

푸른 빛은 이제 맥의 허리를 지나고 있었다.

<…아파, 무서워…! …으윽…! 싫어…!>

맥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 빛이 전부 푸르게 변하면 그때가 나이트메어들이 나를 완전히 잠식한거야.’

우우우웅!

푸른 빛이 가슴팍을 지나 목덜미를 너머 얼굴로 뻗어나갔다.

슬슬 준비를 해야했다.

‘보이지 않는 손.’

맥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두 개의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냈다.

나이트메어들이 맥을 모두 잠식했을 그때, 놈을 가두기 위한 준비였다.

푸른 빛이 맥의 감은 눈을 지나 기다란 코와 커다란 귀를 뒤덮고 머리 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푸르게 변한 맥이 눈을 뜨자, 노란색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꺄르륵!>

<되찾았다.>

<되찾았어!>

<이제 다시 악몽 속으로!>

푸른 맥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지켜보고 있던 각성자들이 긴장하며 뒤로 물러났다.

환상을 퍼트리던 하얀 빛이 되감기되듯 맥에게로 돌아갔다.

푸른 맥이 하얀 빛을 모두 흡수했을 때….

‘지금!’

즉시 보이지 않는 손을 모아 그 안에 맥에게 씌인 나이트메어를 붙잡았다.

훅!

두 손의 공간 안에 푸른 맥이 붙잡혔다.

동시에 푸른 맥의 주변으로 부른 빛들이 번지기 시작했다.

확!

그에 몇몇 각성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이게 뭐지?>

<뭐야?>

갑자기 멈칫한 푸른 맥이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뻗은 놈의 앞 발 중 하나가 보이지 않는 손에 닿았다.

<뭐야!>

<막혔어!>

<다가갈수가 없어!>

푸른 맥의 반응에 긴장하고 있던 각성자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붙잡았나요?”

김지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짓이야!>

<우리를 가두다니!>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푸른 맥이 그곳을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이것 또한 맥이 이야기해준 것 중의 하나였다.

‘놈을 멀리 잡아두면 아무리 놈이 푸른 빛을 내보낸다고해도 그게 너희에게까지 닿지는 않을거야. 놈들이 나를 제어하는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그 이야기는 나이트메어들이 맥을 제어하는데 익숙해진다면 멀리서도 소용이 없다는 것.

그러니 놈들이 맥을 제어하는데에 익숙해지기 전에 빨리 다음 계획을 실행해야했다.

‘이제 다음은.’

이곳을 감싸고 있는 장막을 깨는 것이었다.

이 장막은 나이트메어들이 맥을 통제하면서 만들어낸 장막이었다. 당연히 풀 수 있는 것도 놈들 뿐. 하지만 놈들은 절대 장막을 풀어줄리 없었다.

‘너희가 이 장막을 깰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어.’

그것에 대한 힌트는 이시결이 이곳에 들어온 방법이었다.

마나석을 이용해 만들어진 팔을 연결한 안세인이 온 힘을 다해 장막을 후려쳤고, 이시결은 잠깐이지만 장막이 찢어진 틈을 타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안세인에게 새로운 팔이 생겼다는 것과 그 팔의 위력이 내 생각 이상이라는 것은 기다리던 소식이었지만 그것에 기뻐하는건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 그 이야기에서 필요한 정보는 장막이 찢어졌다는 것.

장막을 깨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외부에서의 그런 충격이 필요했다.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이곳에서, 외부에다가 장막을 공격해달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힘들었다.

이곳으로 들어올 때 처럼 블링크를 사용해서 밖으로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보이지 않는 손이 풀리기라도 하면?

이곳의 각성자들은 다시 끔찍한 악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남은 방법은 하나.’

성공여부가 확실하지 않았지만 시도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칩을 꺼내들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에이단에게 받았던 위치 공유기였다.

분명 그는 도움이 필요할 때 쓰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에이단은 상당히 눈치가 좋은 놈이다. 내가 이것을 사용하면 본인이 뭘해야하는지 눈치채겠지.

“이사님.”

내 부름에 총을 손에 쥐고있던 김지석이 나를 돌아보았다.

“준비하고 계세요.”

김지석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부유를 이용해 탐지로 확인한 장막의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염력으로 위치 공유기를 움직여 장막에 가져다댄 후.

곧바로 그것을 작동시켰다.

‘위치 공유.’

딸칵.

* * *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쌀쌀한 날씨에 코를 훌쩍인 에이단이 코트를 여몄다.

에이단이 있는 곳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내륙의 산 꼭대기였다.

윤도아가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난 섬의 장막 안으로 들어간지 하루가 넘었다.

그 사이 일어난 일이라고는 각성 기관장 안세인이 상처를 낸 장막의 틈으로 이시결이 들어갔다는 것 뿐.

새로운 해가 떠오른 지금까지 장막은 걷히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일에 신중하고 냉정한 판단을 해온 에이단이었다. 지금껏 사적인 일에는 모든 감정을 배제했고 자신의 조직과 본인의 안위 외에는 신경쓰지 않았는데.

왜 윤도아에게 이렇게 매여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윤도아가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초반까지는 그랬다.

윤도아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의 알 게이트를 다녀온 이후로는 생각이 조금 변했다. 지금은 윤도아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윤도아에게 들러붙고 있는 것 같다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에이단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뒷목을 긁적였다.

‘솔직히 그렇잖아. 그런 광경을 봤는데 어떻게 안 달라붙겠냐고.’

윤도아가 세계 랭킹 1위라는 사실은 공공연했고, 정확한 특성은 모르지만 어쨌든 굉장한 마법사라고 알려져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러시아의 게이트의 클리어를 그녀에게 부탁했었다.

윤도아의 힘은 에이단의 생각보다도 더욱 굉장했다. 그정도면 어지간한 군부대의 화력과 맞먹을 정도였다.

만약 그런 그녀와 척을 지게 된다면. 잘못해서 그녀에게 찍혀 맞붙어야할 상황이 오기라도 하면.

솔직히 아무리 EX급 아이템으로 무장을 한 에이단이라도 윤도아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어제 동생때문에 눈이 돌아간 그녀가 살떨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겨우 감정을 감추었다.

‘…최대한 잘 해줘야지.’

윤도아를 이곳까지 데려다주고 위치 공유기를 쥐어준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쥐어주었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곳을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도 연락도 없었다.

‘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상황을 알기라도 하면 덜 답답할텐데.’

머릿속으로 잔뜩 푸념을 하고 있을 무렵.

띠링.

갑작스럽게 울린 알림에 에이단은 화들짝 놀랐다.

[위치가 공유되었습니다.]

배들이 포위하듯 둘러싼 바다 위의 텅빈 공간. 그곳에 공간좌표가 나타났다.

살짝 휘어진 구의 일부처럼 생긴 것이 섬을 뒤덮은 장막의 일부분이 좌표로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리고 금빛의 삼각형이 그 중앙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에이단은 아이템을 소환했다.

‘선택의 라이플 소환.’

찌익!

스륵.

장갑 앞의 공간이 찢어지며 선택의 라이플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택해야할 옵션은 당연히 사거리가 무제한인 저격의 라이플이었다.

이곳에서 윤도아가 위치를 공유한 곳 까지의 거리는 7km가 넘었다.

그런 거리라면 에이단 또한 맨 눈으로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는 곧바로 또 하나의 아이템을 소환했다.

‘공간확대의 외눈알 소환.’

에이단의 손안에 은색 테두리의 외눈안경이 나타났다.

그것을 오른쪽 눈에 장착한 후 즉시 저격을 위해 라이플의 앞에 엎드렸다.

왼쪽 눈을 감은 후 라이플의 조준경에 오른쪽 눈을 가져다대었다.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 금빛 표식이 보였다. 맨눈으로 보는 것 보다 확대되어 보였지만 여전히 너무 멀었기에 정확한 조준은 힘든 상황.

‘확대.’

그러자 카메라의 줌을 당긴 것처럼 그의 시야가 표식을 향해 빨려들었다.

공간확대의 외눈알은 고작 C급의 아이템이었지만 지금같은 상황의 저격수에게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에이단의 시야에 금빛 표식이 가리키는 지점이 정확하게 들어왔다.

그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쏘자마자 튄다.’

일부러 내륙쪽의 산 꼭대기에 올라와있던 이유였다.

윤도아에게 말했다시피 에이단이 한국에서 모습을 드러내서 좋을 일은 없었다. 그러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저격을 한 후, 빠르게 사라져야했다.

에이단은 차분히 호흡을 고른후, 방아쇠를 당겼다.

* * *

내리쬐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안세인은 왼쪽 어깨를 조심스레 움직였다.

장막을 찢은 후 느껴졌던 끊어질듯한 고통은 사라졌다.

계속해서 의수와 연결된 왼쪽 어깨의 상태를 봐주고 회복시켜주던 박효진과 이리나는 지쳐서 잠이 들어있었다.

‘다시 한 번 찢을 수 있을까.’

안세인은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앞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장막을 찢었을 때 이시결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안에서의 소식은 없었다.

이제 어느정도 몸이 회복되었으니 다시 한번 후려치기를 사용해서 장막을 찢은 후, 안으로 들어가봐야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안세인의 귀에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쇄애액!

‘뭐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 소리에 안세인은 주먹을 움켜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야에 무언가 걸렸다라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 장막에 부딪혔다.

그것은 안세인의 후려치기와 맞먹는 위력으로 장막을 뒤흔들었다.

콰아앙!

동시에 장막이 거세게 진동했고 평온했던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배를 붙잡으며 버티는 안세인의 머릿속을 가득채우는 의문이었다.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어질듯 흔들렸고 그에 잠들어있던 박효진과 이리나가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꺄악!”

“꽉 잡아요!”

‘누가? 어디서?’

하지만 일순 보았던 작은 총알같은 것이 날아온 곳은 항구 쪽이 아닌 내륙의 방향이었다.

그쪽에서 무언가를 쏘았다고 하더라도 수 키로가 넘는 이 장막을 맞추었다는게 믿을 수 없었다.

“…장막이!”

박효진의 외침에 안세인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한번, 장막이 찢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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