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조금전까지만해도 그들을 심문해서 성위의 수하가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사실을 확실시한 후, 그것을 공표하고 놈들을 끝장내려했는데.
그런데 그들이 죽었다니…!
“여섯 명 전부요?”
[네. 전부요.]
어째서? 왜? 어떻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된거죠?”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최은서 씨가 깨어났어요. 그래서 오늘 바로 그 각성자들에 대한 심문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교도소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각성자들이 모두 죽었다고요.]
“사인은요?”
[그게 좀 이상해요. 심지원 씨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소등 시간 전에는 멀쩡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간밤에 소란이 일어서 가봤더니 여섯 명이 하나같이 경련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경련이라고?’
그들이 지병이 있었을리도 없었다. 아무리 지병이 있다고 해도 여섯 명이 동시에 경련을 일으킬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딱 한 가지.
걸리는게 있었다.
‘박성현의 스킬.’
이전 에이단에게 들었던 박쥐 신의 가호에 딸려있던 스킬에 분명 경련이 있었다.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여럿을 한번에 죽였다면, 사전에 무언가 손을 써둔 것이 분명했다.
“…혹시 경련말고 다른 증상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일단 감식반에서 조사 중이라서 결과가 나오는대로 연락을 받기로 했어요. 만약 정말 지병이 있었다거나 한다면 뭔가 이야기가 있을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으로 김지석과의 통화를 끝냈다.
“…교도소를 습격한게 성위의 수하라는 증거가 사라진겁니까?”
조용히 내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유지은이 물어왔다.
“…네. 지난밤 잡아뒀던 각성자들이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이제 놈들이 성위의 수하 소속이라는 것을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당연하지만 신원을 조회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곳을 습격했던 각성자들은 모두 진버들이나 강유조처럼 무소속인 상태였으리라.
‘…그런거였어.’
먼저 성위의 수하 쪽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가 잡히게 되면 당연히 놈들이 벌인 짓이라는게 드러나게 된다.
잡힐 경우 죽음을 피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손을 써둘 정도로 치밀한 박성현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할리 없었다.
“…그럼…. 성위의 수하를 해산시킬 수도 없겠군요.”
“…네. 그쪽에서 습격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요. 강제로 해산을 시키게되면 분명 기관의 횡포라며 들고 일어나겠죠.”
결국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 사태에 대해 사죄하고 수습하는 것 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유지은이 나를 보며 물었다.
“가만히 계실건가요?”
그걸 묻는 유지은의 의도는 분명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신이라도 따로 움직이겠다는 것.
‘…그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첫 회귀 전 놈이 죽은 이후로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이정도로 놈을 무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분명 놈들은 이번 사건 이후로 한동안 조용히 몸을 사릴 것이다.
예전같았으면 다시 놈이 움직이기를 기다렸겠지만, 더이상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박성현이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밑에서부터 하나씩, 놈의 수족들을 잘라버릴것이다.
“놈들은 같은 각성자를 죽였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대로 둔다면 또 언제 이런일을 벌일지 몰라요.”
다음번에는 공격 대상이 기관의 교도소가 아니라 기관 자체가 될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또 김지석을 노릴수도 있었고, 안세인이나 권재경이 타겟이 될수도 있다.
그에 유지은이 안심한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어왔다.
“혹시 저와 협력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유지은의 오른쪽 눈은 투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놈들을 잡아들여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습니다.”
유지은이 교도소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에 그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의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라 유지은을 괴롭혔겠지. 그녀는 그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으리라.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유지은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 제 눈 때문에 고민이 되시는거라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쪽 눈은 보이지 않지만 시력보다 더 좋은 감각들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안대로 가려진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리켰다.
“이 눈은 오히려 열감지에 특화됐습니다. 스킬을 발동하지 않아도 항상 열을 감지할 수 있어요. 시력이 아니어도 진동 감지로도 주변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시력보다 훨씬 좋은 감지수단이에요.”
유지은은 자신의 쓸모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그러더니 양손을 꽉 쥐며 말했다.
“이미 한 번 졌던 제가 다시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을거라는건 압니다. 그래도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요.”
만약 유지은의 협력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녀는 혼자서라도 놈들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이다.
그건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첫 회귀 전, 박성현의 정보를 캐냈던 그녀는 내가 각성도 하기 전에 놈에게 당했다. 이번 역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 유지은은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안전했다.
게다가 이미 겪었다시피 유지은의 정보력은 상당히 좋았다. 그런 중요한 전력을 거절하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좋아요. 협력하죠.”
유지은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단, 지은 씨는 놈들과 직접 맞붙는건 피해주세요.”
“네? 그건….”
내 말에 반박하려던 유지은은 곧 입을 다물었다. 불과 몇 초 전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이미 유지은은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전적이 있었다. 게다가 괜히 섣부른 복수심때문에 잘못해서 유지은이 죽기라도 한다면 소중한 전력을 또 잃게 된다.
“저도 놈들과 직접 맞붙을 생각은 없습니다.”
유지은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놈들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그 질문에 나는 빙긋 웃었다.
나에게는 나를 대신해 움직여줄 말이 있었다.
* * *
“경련이라면 선지자의 짓이군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시결이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일제히 경련을 일으키고 죽었다면 스킬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흠….”
커피잔을 들어올리던 그가 멈칫하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왠지 기분이 나빠지는 웃음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채 이시결을 바라보았다.
“뭐야?”
“아뇨. 그 선지자,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싶어서 말이죠.”
나는 이전부터 박성현을 알고 있었기에 놈의 그 치밀함에 치를 떨었지만, 이시결은 달랐다. 박성현이 모든 상황에 대비해서 이런짓을 벌였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재미를 느낀 모양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소파 앞의 탁자에 잔을 내려두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선지자는 계속 이런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거군요.”
이런 상황이라면 기관의 주 전력이 다른 곳으로 쏠려있는 상황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겠지. 기관 교도소에 갇혀있는 각성자들을 빼내기위해서.”
잠시 날카로운 턱을 매만지던 이시결이 천천히 추측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서 주요 전력들을 일부러 무소속으로 해둔 것 부터 시작이겠군요.”
“맞아. 그리고 기관이 남해 섬의 게이트 브레이크에 집중하자 때를 맞춰서 움직였지. 습격 전에 그 인원 모두에게 경련 스킬을 심어두었을테고.”
“습격이 끝나고 복귀한 인원에게서는 그 스킬을 거둬들이거나 해독했겠죠. 붙잡힌 각성자들은 원격, 혹은 발동의 조건을 충족시켰기에 경련을 일으키고 죽었을 겁니다.”
정황상 가장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립하기위해서는, EX급의 가호가 깃든 돌에서 얻은 가호에도 랜덤 스킬 부여권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했다.
나의 경우에는 항상 악마의 고양이 특성에 한해서만 랜덤 스킬 부여권을 사용했기에 돌고래 신의 가호에 새로운 스킬을 부여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선지자에게 그런 발동 스킬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그걸 확실히 하려면 아무래도 윤도아 씨가 직접 선지자의 가호를 보는 편이 좋겠죠.”
이시결이 곁눈질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를 떠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확실한 방법임은 맞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여우 구슬로 정보를 보려면 놈에게 접근해야했다. 지난번처럼 숨어서 지켜볼 수는 있겠지만….
만약 직접 닿지 않더라도 놈이 스킬을 발현할 수 있다면? 놈의 주변에 가기만하더라도 스킬에 감염될 수 있다면?
최은서가 눈을 마주치기만 하는 것으로 무리짓기가 가능한것처럼 박성현 역시 그런 경우라면 나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과연 목숨 하나를 잃는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그의 정보를 볼 의미가 있을까.
상당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건 전염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
내 말에 이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염이 됐다면 놈들을 지키던 땅의 지배자 무리에도 피해가 있었겠죠.”
혹시나 싶어 이시결에게 물었다.
“너, 선지자한테 접근하지는 않았지?”
“당연하죠. 선지자는 제가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 정체를 아는 놈에게 섣불리 접근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이제 선지자 대신 따로 지켜봐야 할 사람이 있어.”
내 말을 움직일 차례였다.
“누굽니까?”
나는 그에게 진버들과 강유조, 둘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둘에 대한 정보는 유지은 씨가 전달해줄거야.”
“흠…. 알겠습니다. 지켜보도록 하죠. 국내 랭킹 7위라면 꽤 재미는 있겠군요.”
말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 자체는 시큰둥했다. 여전히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놈들에 대해서는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이시결이 삐뚜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나도 이제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생각이거든. 놈들때문에 우리도 피해를 입었으니 그만큼 갚아줘야하지 않겠어?”
이시결의 표정이 놀랍도록 변했다. 어찌나 놀랐는지 창백했던 얼굴에 되려 혈색이 도는 것 같았다.
그는 조금 흥분한듯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게 살짝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확실히 하죠, 윤도아 씨. 이건 서약이 걸려있으니 신중해야할 문제입니다. 윤도아 씨의 말은 제가 진버들, 강유조 각성자를 공격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이시결과 맺었던 서약.
내 허락없이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맹세였다.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이시결이 나를 재촉하듯 다시 물어왔다. 어울리지 않게 그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있었다.
그는 나와 서약을 맺은 이후로 다른 각성자를 공격한 적이 없었다. 천둥새 서윤지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처럼 내 허락이 있던 경우는 없었다.
만약 허락이 떨어진다면, 이시결이 둘을 공격해서 상처를 입힌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패널티, 즉 그들과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게 된다.
그러니 마음껏 그를 공격할 것이고, 어쩌면 죽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먼저 시작한건 놈들이다.
“허락할게. 다만 게이트 내에서만.”
이시결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 * *
유지은과 이시결은 각자의 임무에 충실했다.
유지은은 진버들과 강유조, 그리고 천둥새 서윤지까지. 박성현의 심복들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시결은 일단 가장 랭킹이 높은 진버들을 감시했다. 하지만 쉽게 게이트에 들어가 진버들을 상대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간만에 얻은 사냥감을 쉽게 잃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그것에 대해 무어라 핀잔을 주지는 않았다.
놈들보다 더 신경써야 할 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잊지 않았어.’
작년과 마찬가지로 연말이 되면 두 번째 간이 시험이 시작될 것이다.
첫 번째 간이 시험과는 다르게 두 번째 간이 시험의 내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두 번째 간이 시험은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 번째 간이 시험의 예고가 난다면 곧바로 각성자 회담을 개최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12월 1일이 되자, 예상대로 두 번째 간이 시험에 대한 예고가 날아왔다.
[2023년 12월 31일.]
[두 번째 간이 시험이 시작됩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