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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88화 (189/201)

제188화

사무실로 돌아온 주선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지켜본 윤도아는 다른 사람에게 크게 기대려 하지 않았다.

안세인이나 김지석이 있는 기관, 자신은 물론 동생인 윤도빈에게도.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그들을 도우면 도왔지 그들에게 짐을 떠맡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있었던 회담에서의 윤도아는 이상했다.

그건 지난 첫 번째 시험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그때는 자신 혼자 들어갈테니 주선오와 윤도빈에게는 절대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각성자들도 대비를 해야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시험 방식이 달라진다는 생각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평소같았으면 그런 생각을 한 윤도아에게 감탄하며 믿고 따랐을텐데.

이번에는 왠지 첫 번째 간이 시험 이후의 일들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의심이라고 생각해서 애써 지웠었는데.’

첫 번째 간이 시험 직후, 게이트에서 빠져나온 윤도아가 지었던 미묘했던 표정. 그 이후에 이시결과 나누었던 대화.

다시금 그때의 기억에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쉬웠다는 대답과는 다르게 미묘했던 표정과 레버넌트를 상처 하나 없이 단번에 제압했다던 그 행동에 대한 의문.

그렇게 시작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어.’

주선오는 윤도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유지은에게 연락을 받고 찾아간 파출소의 조사실에서 처음 윤도아를 만났다.

혼자서 S급 게이트를 닫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선오의 후각은 윤도아에게 묻어있던 고블린의 피냄새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 다른 피냄새.

‘분명 그리폰의 피였어.’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했다.

시작의 날, S급 종합 보상의 게이트에서 홀로 그리폰을 잡은 윤도아.

그때는 그저 윤도아에 대한 경외심밖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 번 의심을 품고 나니 생각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S급 게이트를 40분만에 클리어한 일도 의아했다.

안세인, 이리나와 함께 갔던 보너스 게이트에서 자신에게 보였던 믿음. 웬만해서는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을 믿는다는건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윤도아와 크게 친밀한 관계도 아니었고 자신이 그렇게 윤도아에게 큰 믿음을 준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윤도아는 주선오에게 먼저 협력 관계를 요청했고 그런 믿음을 보였다.

또한 윤도아는 게이트와 그 안의 몬스터들에 대해 굉장히 해박했다.

첫 번째 간이 시험에 나타났다던 레버넌트나 그림 리퍼에 대한 것도 그랬다. 윤도아는 그것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단번에 레버넌트를 제압하고 손쉽게 그림 리퍼를 가두었으리라.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처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던 주선오는 자신의 생각에 멈칫했다.

‘…알고 있다?’

예지라도 하는걸까?

하지만 윤도아가 예지를 할 수 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일들이 많았다. 미등록의 사건도 그렇고 성위의 수하 일만 봐도 그렇다.

게이트에 한해서만 예지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실제로 예지의 특성을 가진 나라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 같았다.

‘예지는 아니야.’

하지만 예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걸까.

‘이미 모든걸 겪어본 것 처럼….’

“!”

벌떡!

“아, 씨! 깜짝이야!”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바라보던 신교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주선오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왜 갑자기 일어나고 지랄이야!”

하지만 주선오는 신교진의 성질에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책상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모든걸 겪어봤다면 지금까지의 행동들이 다 이해가 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주선오의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주선오는 주먹을 꽉 쥔 채 책상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뭐야? 무슨 일 있어?”

깊은 생각에 잠긴 주선오에게 신교진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건가?’

하지만 그렇다고하기에는 찝찝했다.

만약 윤도아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전에 미등록에게 죽을뻔했던 김지석을 내버려뒀을까? 안세인이 팔을 잃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뒀을까?

다른 각성자들을 위해 일일이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벅찼거나 혹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에 조건이 필요한걸지도 몰랐다.

그 조건이 윤도아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라면?

주선오는 고개를 저었다.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남해 섬의 게이트 브레이크. 듣기로는 그곳에서 윤도아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했다. 단순히 그런 조건이었다면 윤도아가 그곳을 클리어하기는 쉬웠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다른 조건. 윤도아가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했다면.

‘게이트에서 실패는 결국 죽음….’

죽음.

윤도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일까?

단순히 죽은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면 지금의 윤도아가 미래의 일을 알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윤도아는 모든걸 경험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죽은 후에 과거로 돌아온 것.

그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건 분명 윤도아의 알려지지 않은 가호와 관련이 있을 터.

“…교진아.”

주선오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신교진을 불렀다.

신교진이 슬쩍 주선오의 눈치를 살폈다.

“왜?”

“동물 중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동물이 있어?”

신교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선오를 바라보았다.

회담에 다녀온 이후로 심각하게 혼자 생각에 잠겨있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저런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간이 시험을 앞두고 너무 긴장이라도 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괜히 예민한 신경을 건드려서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 뿐.

신교진은 코웃음을 치며 까칠한 대답을 해주었다.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봐? 뭔 목숨이 여러개도 아니고 어떻게 죽었다가 살아나냐?”

잔뜩 핀잔을 준 신교진은 다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불사조같은거라면 가능하긴 하겠네.”

“…불사조….”

주선오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금껏 윤도아가 보여준 특성을 생각하면 불사조와는 크게 연관이 없는 것 같았다.

“아. 목숨 여러개하니까 생각났는데 뭐 그런 말도 있긴 하네. 고양이 목숨이 9개라는거.”

신교진의 말을 들은 주선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 *

두 번째 간이 시험을 대비해서 외곽 지역을 돌며 게이트를 닫았다. 그렇게 며칠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주선오가 있었다.

그는 아파트 앞의 화단에 걸터앉은채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후각 스탯으로 내가 돌아왔음을 눈치챘을텐데도, 주선오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연락을 했었나싶어 핸드폰을 확인해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여기서 뭐해?”

그제야 주선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며칠 사이에 상당히 초췌해진 얼굴. 게다가 눈밑에는 이시결만큼이나 짙은 다크서클까지 베어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건 주선오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나 역시 적잖이 당황했다.

어딘가를 다치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뭔가 정신적으로 피해를 받기라도 한건가?

잠시 어쩔줄 모른채 주선오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있어?”

하지만 주선오는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그를 이대로 내버려둔채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주선오의 옆에 앉아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분명 며칠 전의 회담장에서 주선오가 두 번째 간이 시험에 참여하겠다는 이야기는 수락했는데.

무슨일로 연락도 없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괜스레 나까지 마음이 불안해지고 싱숭생숭해지는 무렵, 드디어 주선오가 입을 열었다.

“…누나.”

앞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는 눈빛에는 무언가 미묘한 감정들이 섞여있었다.

의문과 서운함, 실망감이 뒤섞인….

‘…뭐지?’

뭔가 심상치않았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뭔데?”

그러자 주선오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괜한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누나가 받은 가호, 알려줄 수 있어요?”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가호?”

내게 직접적으로 가호를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호를 추측하는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그건 모두 커뮤니티에서 일어났던 일들이었고 그것에 굳이 내가 답해줄 의무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주선오가 직접 내게 그것을 묻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필히 이유가 있을 터.

‘회담 때 뭔가 말실수라도 했었나.’

동시에 첫 번째 간이 시험이 끝난 이후에 그와 했던 대화도 떠올랐다.

그때도 주선오는 간이 시험을 클리어하고 나온 내게 의문을 표했었다.

그런 그가 내게 가호를 묻고 있다. 내 회귀에 대해 무언가 눈치를 챈걸까.

“…그건 왜?”

대답대신 되묻자, 주선오는 다시 입을 닫았다.

가을이 끝나고 다가오는 겨울의 서늘한 날씨였지만,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자리를 피해야할지, 아니면 주선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주선오가 확실히 내 가호를 추측해냈다면 숨기려고 해봤자 좋을일은 없었다. 계속 숨기다가 오히려 주선오와의 신뢰 관계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확실히 내 가호를 아는게 아니고, 어림짐작으로 나를 떠보려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에게 내 짐을 나눠지게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어서야 주선오의 생각이 어떤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주선오의 생각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말을 아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도 쉽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게 미묘한 대치 상태가 계속되던 중.

“누나. 선오 형.”

우리 앞을 지나가던 도빈이가 우리를 알아보았다.

윤도빈은 침묵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뭐해? 추운데. 안 들어가? 들어가서 얘기해요, 형.”

도빈이가 아파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흘끔 주선오를 돌아보았다.

만약 주선오가 정말 내 회귀를 눈치채서 가호를 묻는거라면, 도빈이가 있는 자리에서의 대화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윤도빈이 내 회귀 사실을 알게되면 분명 또 갈갈이 날뛸 것이 분명하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을 해야….’

그때 주선오가 입을 열었다.

“아냐. 갈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착잡함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본 그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고개를 돌린 후 자리를 떠났다.

잠시 그런 주선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도빈이 놀란얼굴로 물었다.

“…뭐야? 누나 선오 형이랑 싸웠어?”

“…아냐. 들어가자. 춥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빈이의 등을 떠밀며 집으로 향했다.

언젠가는 내 회귀에 대해 모두가 알게될 날이 있을거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물론 아무도 모른채로 조용히 지나가는것이 가장 좋을 일이었지만, 남은 시험들을 치르면서 어쩔수없이 회귀 사실을 알려야할지도 몰랐고.

내가 말하기 전에 누군가는 눈치를 챌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적어도 지금은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첫 번째 시험도 다가오지 않았는데 벌써 눈치를 챘다는건 그만큼 내 행동이 조심스럽지 않았던걸까. 아니면 주선오가 그만큼 눈치가 빠른걸까.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타이밍이 그닥 좋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두 번째 간이 시험을 앞둔 상태였으니.

우선 이번 간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이후에 주선오와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두 번째 간이 시험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 간이 시험이 진행됐던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의 세계는 크게 침체되지는 않았다.

세계 랭커들이 두 번째 간이 시험에 참여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에 따라 함께 간이 시험에 입장할 각성자들이 대략적으로 추려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이번 두 번째 간이 시험도 무사히 클리어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저 게이트는 여전하구나.”

윤도빈이 하늘 곳곳을 뒤덮은 투명한 게이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시험의 게이트는 항상 같으니까.’

전세계에서 동시에 치뤄야하는 시험의 게이트는 당연히 하늘에 있을수밖에 없었다.

“도아 씨. 준비되면 말씀해주세요.”

뒤에서 연구소장 박효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각성 기관 위의 옥상이었다.

두 번째 간이 시험에 참여하는 각성자의 수는 대략 쉰 명.

전세계의 각성자들이 모인만큼 이전처럼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입장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사실 이 인원 모두가 입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굳이 한 자리에 모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참여하는 각성자들은 모두 자국의 각성 기관에서 기관끼리의 소통을 통해 함께 입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 후였다.

때문에 이곳에는 두 번째 간이 시험에 참여하기로 한 나와 윤도빈, 주선오가 모여 있었다.

“다른분들은 다 준비 되셨나요?”

내가 뒤쪽의 박효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박효진은 노트북을 통해 전세계의 각성 기관과 소통을 진행하고 있었다.

“네. 다 준비 되셨데요.”

박효진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하늘 위의 투명하게 일렁이는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가장 먼저 입장을 하는건 나였다.

나 역시 입장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입장이 가능하다면 최대한 먼저 입장을 해서 주변을 파악해두는 것이 좋았으니까.

“그럼 먼저 갈게.”

도빈이와 주선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선오는 이전에 비해 차가워진 눈빛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착잡해졌지만 애써 그 마음을 부정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입장.’

동시에 하늘의 모든 게이트들이 나를 바라본다는 착각이 들었다.

울렁.

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느낌과 동시에, 나는 하늘의 게이트 안으로 빨려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찰랑이는 머리카락. 내게 꽂혀 있는 불같이 일렁이는 동공.

“안녕. 오랜만이야.”

세라피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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