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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92화 (193/201)

제192화

끼이익.

뒤에서 비치는 등불의 빛에 그의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늘어졌다.

에이단에게 어둠 속을 보는 능력은 없었기에 주변에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훅 들이쳤다.

“뭐가 보입니까?”

뒤에서 김지석이 물어왔다.

“아직. 기다려봐.”

보이지 않는다면 볼 수 있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에이단은 보관의 장갑 안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선글라스 형태를 한 A급 아이템 야시경이었다.

에이단은 야시경을 쓴 채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꽤 넓은 공간이었다.

폭은 좁았지만 위로 솟은 벽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건 평범한 벽이 아니었다.

잔뜩 주름이 진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그 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굴인가?”

에이단의 중얼거림에 그의 뒤로 다가온 김지석이 궁금한듯 조심스레 밖을 살폈다.

에이단은 고개를 숙여 그가 밟고 있는 땅을 살폈다.

그들이 있던 오두막은 작은 모래의 언덕 위에 있었다. 그 주변에는 벽에서 흘러내린 것과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좀 느낌이 안 좋은데.”

에이단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김지석이 오두막 안에 있던 등불을 들고 나와 주변을 비추었다.

그 역시 주변을 둘러싼 액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물인가요?”

“평범한 물은 아닌 것 같아.”

에이단은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어 그 끝을 조심스레 액체에 닿게 했다.

치이이익!

머플러 주변의 액체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에이단이 다시 머플러를 들어올리자 그곳에는 녹아내리다 만 일그러진 머플러가 남아 있었다.

“…이건….”

김지석이 창백해진 얼굴로 에이단의 머플러를 바라보았다.

에이단은 가볍게 혀를 내두르고는 머플러를 액체로 휙 집어던졌다.

그러자 액체에 닿은 머플러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꾸르륵.

꾸륵.

잠시 침묵한 채 기포를 일으키는 액체를 바라보던 김지석이 말했다.

“…여기는 무언가의 위 안인겁니까?”

에이단과 김지석의 생각이 일치했다.

머플러를 녹인 저 액체는 위액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싼 주름진 내벽은 위의 벽일테고.

에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김지석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우선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겠네요.”

에이단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모래 바닥 위에 쪼그려앉았다.

“상당히 성가신 게이트야.”

김지석은 팔짱을 낀 채 위액을 바라보았다.

다시 침묵이 흐르자 위 안에서 들려오던 괴이한 소리가 다시금 귀에 꽂혔다.

꾸륵.

그오오오.

꾸르륵.

저 소리는 위액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서서히 소화시키는 소리이리라.

잠시 그 소리를 듣던 김지석이 입을 열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편이 좋겠네요. 위벽에 공격을 퍼부으면 쉽게 위를 게워낼텐데…. 그런데 위액과 함께 뱉어지는게 안전할까요?”

그의 물음에 에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녹아버리겠지. 이놈의 식도가 얼마나 길지도 모르는일이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에이단에게는 스스로를 보호할 아이템이 많았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이든 시도를 해야했다.

지금은 그나마 게이트 내부의 상황에 정신이 팔려 개인적인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지만 이상태가 지속된다면 분명 또 다른 이야기들이 오고갈지도 모른다.

‘절대 사양이다.’

에이단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김지석에게 던졌다.

얼결에 코트를 받아든 김지석이 당황한 얼굴로 에이단을 바라보았다.

“걸치고 있어. 어느정도는 보호해줄테니까.”

“…네?”

에이단이 입고 있던 코트는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S급의 아이템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김지석이 죽든말든 에이단 혼자서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윤도아가 걸렸다.

분명 윤도아는 두 번째 간이 시험에 가장 처음으로 입장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그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렇다는건 어디선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괜히 김지석을 죽게 만들어서 윤도아의 신경을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김지석을 여기서 죽게 둔다고해서 에이단이 큰 이득을 받을 일은 없었다. 마주치기에 껄그러운 사람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김지석이 러시아에서 자신과 척을 진 다른 조직원도 아니었고, 자신의 조직에 피해를 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고리 님은….”

잠시 에이단의 코트를 바라보던 김지석이 걱정이 섞인 눈으로 에이단을 바라보았다.

“내 걱정은 됐고.”

에이단은 보관의 장갑에서 다른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C급의 아이템인 사슬낫이었다. 최대 5미터까지 늘어나는 기다란 쇠사슬의 양 끝에 추와 날카로운 칼날이 달려있었다.

S급 이상의 아이템이 가득한 에이단에게 사실 C급의 아이템은 그닥 필요가 없었지만, 이 사슬낫은 온통 쇠로 이루어져 에이단의 전류를 흘려보내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었기에 종종 사용을 하는 것이었다.

에이단은 왼손으로 사슬들을 정리해 붙잡은 후, 낫부분의 쇠사슬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무기 들어.”

얼결에 에이단의 코트를 걸친 김지석은 자신의 총을 꺼내들었다. 어디를 조준해야할지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에이단이 말했다.

“아무데나 쏴도 다 위벽이니까 막 쏴도 돼.”

“아, 알겠습니다.”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총을 장전했다. 그 사이 에이단은 손에 들고 있던 사슬낫을 위를 향해 힘껏 던졌다.

휘익!

푹!

빠르게 날아간 낫의 칼날이 주름진 외벽에 박혔다. 낫이 외벽에 단단히 박힘을 확인한 에이단은 즉시 전류를 발생시켰다.

‘전류 발산.’

파지지직!

에이단의 손에서 발생한 전류가 쇠사슬을 타고 올라갔다. 전류는 빠르게 낫의 칼날을 통과해 둘이 갇힌 위벽에 닿았다.

쿠구구구!

전류의 충격이 느껴진건지 뭔지모를 몬스터의 위벽이 크게 수축되었다.

그 거대한 흔들림에 김지석이 잠시 비틀거렸지만, 곧 자세를 바로잡고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앙!

김지석이 쏜 총알이 위벽에 박히자 위가 크게 꿈틀거렸다.

쿠구구구!

그어어어….

사방에서 거대한 울림이 들려왔다. 왠지 모르게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울림이었다.

위의 경련에 비틀거리던 에이단은 쇠사슬을 잡아당겨 위벽에 박혀있던 낫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는 보관의 장갑 안에 쇠사슬을 보관하는 동시에 선택의 라이플을 꺼내들었다.

그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라이플로 낫이 낸 상처를 겨누었다.

‘무한의 라이플.’

촤륵.

라이플의 옵션이 빠르게 변경되었다.

에이단은 즉시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쿠궁!

상처가 난 곳에 또 한번 충격을 받으니 고통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꾸르르륵!

에이단과 김지석이 딛고 있던 모래 바닥이 크게 울렁였다.

다시 라이플을 보관해둔 에이단은 균형을 잃은 김지석에게 달려갔다.

“안으로!”

“네!”

위벽은 점점 더 크게 흔들렸다. 둘은 빠르게 오두막의 안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궁!

“꽉 잡고 있어.”

에이단의 말에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두막 내부의 나무 기둥을 꽉 붙잡았다.

그 사이 에이단은 보관의 장갑에서 S급 1회용 보호막 스킬권을 꺼냈다. 종이를 손에 쥔 에이단은 빠르게 김지석에게 다가갔다.

쿠구구구…!

그어어어억!

오두막이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윽!”

김지석이 황급히 넘어질뻔한 에이단을 붙잡았다. 하지만 오두막의 경사는 점점 더 심해졌고, 위액이 오두막의 안으로 침범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오두막이 뒤집어졌다. 그들이 딛고 있던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다.

동시에 오두막 안으로 스며든 위액이 둘을 덮쳐왔다.

촤악!

“1회용 보호막 스킬 사용!”

에이단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 쥐어있던 종이가 반짝 빛났다.

위액이 둘에게 닿기 직전.

우웅!

간발의 차이로, 투명한 막이 둘을 감쌌다.

* * *

“…하….”

나는 꽉 쥐었던 손에 겨우 힘을 풀었다.

에이단이 보호막을 사용하는 것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둘은 몬스터의 위액에 녹아버렸을지도 몰랐다.

새하얗던 손바닥에 피가 돌며 손이 저려왔다.

“와!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네.”

세라피스가 감탄하며 말했다.

곧 연못의 표면에 바닥으로 뱉어진 몬스터의 위액과 오두막의 잔해들이 비추어졌다.

그 속에서 캡슐 같은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단이 사용한 보호막이었다. 그 안으로 얼핏 둘의 모습이 보였다.

게워내는 위액에 휩쓸리는 바람에 둘다 정신을 잃은 것 같았지만 외상은 없어보였다.

‘다행이야.’

에이단이 김지석을 확실하게 보호해준 것 같았다.

연못의 표면을 통해 그들을 지켜본 것이기에 소리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때문에 둘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에이단은 능구렁이같은 면이 있어서 김지석을 대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물론 속으로는 굉장히 한탄을 했겠지만.

곧 연못 표면에서 둘의 모습이 사라지고 안내문이 떠올랐다.

[몬스터의 뱃속에서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두 번째 맵이 종료됩니다.]

두 번째 맵이 무사히 클리어되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연못에서 시선을 돌려 세라피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을 할 차례였다.

세라피스는 조용히 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첫 번째 질문을 너무 애매하게 던진 면이 없지 않았다.

게이트가 뭐냐라는 질문보다는 오히려 게이트는 왜 나타나는 것이냐, 혹은 게이트의 안쪽 세상은 어디인가 등의 상세한 질문을 던졌다면 더 자세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다시 게이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에는 앞으로 남은 질문의 기회가 몇일지 알 수 없었기에.

일단은 이전에 들었던 대답에 대해 상세히 파고들기로 결정했다.

“대재앙이 뭔지 자세히 설명해줘.”

“흠…. 자세하게라.”

세라피스는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가 침묵하는동안 나 역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시 떠올렸다.

게이트는 대재앙의 전조.

만약 다음번 맵으로 보스가 선택된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질문의 대답에 따라서 다음 질문을 결정해야했다. 대재앙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파고들지, 아니면 다시 게이트에 대해서 물어볼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다른 질문을 던질지.

“대재앙은.”

세라피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테이블을 바라보던 시선을 들어 그의 붉은 동공을 바라보았다.

“우주의 재해야.”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단답형의 대답이었다.

설마 또 저기에서 대답을 끝내지는 않겠지.

나는 매서운 눈으로 세라피스를 쏘아보았다. 그에 피식 웃은 세라피스가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서 너희가 있는 지구로 비교하자면. 태풍같은 자연적인 재해랄까?”

“자연적인 우주의 재해?”

되물음에 세라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로노스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지.”

크로노스?

갑자기 언급된 시간의 신 크로노스의 이름에 흠칫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크로노스의 흐름? 크로노스라면 시간의 신을 이야기하는거야?”

“뭐, 그렇게도 불리지.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크로노스란 시간 그 자체를 뜻해.”

잠시 고개를 숙인채 그의 말을 정리해보았다.

대재앙이라는 것이 크로노스의 흐름,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우주의 재해라면.

게이트는 그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이니, 시험들이 끝난다면 결국에는 지구에 대재앙이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아닌가?

그럼 대재앙을 겪은 지구는 어떻게 될까.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 혹은 나라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보면 대재앙을 겪은 지구가 나타낼 모습도 어느정도 상상할 수 있었다.

모든것이 부서지고 망가진, 황폐화된 지구.

…어쩌면 대재앙은 지구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멸망….’

터무니없이 들리는 이야기에 도저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래, 사실 게이트는 우리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게이트보다 더 큰 재앙이 다가온다니. 게다가 그 재앙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라니.

그렇게되면 우리가 아무리 이렇게 발버둥치더라도, 우리는 대재앙을 맞이할수밖에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러면 지금껏 내가 해왔던 일은…?’

나는 첫 번째 시험을 깨고, 이어질 시험들을 모조리 깨버리겠다는것을 목표로 이렇게 치열하게 게이트를 닫아왔다.

만약 그 목표를 실행하더라도.

결국 지구는, 내가 살고 있던 곳은, 내가 지키고자 했던 모든 것은.

‘우주의 재해 앞에 사라져버리는거잖아?’

아니, 아니다.

아직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섣불렀다.

그렇게된다면 굳이 우리에게 가호를 주고 이런 전조를 겪게 할 이유가 없다. 곧바로 대재앙을 일으키면 그만일텐데.

분명 이런 대재앙의 전조를 만든 이유가 있을 터.

우리가 게이트에 입장하고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건 우리가 받은 가호 덕분이었다.

‘그럼 우리한테 가호는 왜 주어진 거지?’

세 번째 질문이 정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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