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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93화 (194/201)

제193화

김지석이 사라진지 1시간이 지났다. 초조하게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던 안세인이 물었다.

“아직도 다른 각성자가 입장했다는 이야기는 없죠?”

전세계의 각성 기관들과 소통을 맡고 있던 박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는 불안한듯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사님 혼자 입장하신 건 아니겠죠?”

사실 각성자로서의 김지석은 큰 힘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호 자체도 전투와는 크게 관련이 없었고, 무기도 원거리 무기라 근접전에서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으니까.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안세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는 일이죠. 조금 전에는 두 명이 같이 입장했다고 했지만 지금은 또 다를 수도 있고요.”

윤도아가 입장한 이후로 전세계의 어떤 각성자도 입장을 하지 못하던 중, 루마니아의 기관장 도린과 캐나다의 랭커 카터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둘은 몇 시간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둘의 이야기를 전해듣자하니, 둘은 갑자기 게이트에 입장하게 됐고 그곳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후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주어진 임무는 가루다의 알을 강 건너로 옮기는 것. 그 과정에서 나가들과의 싸움이 이루어졌고, 둘은 나가들을 처리하고 주어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만약 이번에도 그런 류의 임무가 주어진다면, 김지석 혼자서 그것을 처리하기란 힘들 것이다.

최악의 결과는 김지석의 죽음.

안세인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양손검을 꽉 쥔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권재경이 말했다.

“박 소장님과 연락을 하는 각성자들은 한정적이잖습니까. 어쨌든 이번 간이 시험은 윤도아 각성자의 말대로 랜덤으로 입장이 되는 상황이니, 어떤 각성자가 몇이나 입장하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건, 이번 간이 시험이 단계가 나뉘어져있다는 것이었다. 단계별로 랜덤으로 선발된 각성자가 입장한 후 그 단계를 클리어한 후 돌아온다.

앞으로 몇 번이나 이어질지, 누가 입장할지,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아예 정보가 없던 상황보다는 나았다.

“일단 돌아오기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겠죠.”

안세인이 말했다.

사실 권재경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빨리 이번 간이 시험이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했던 가장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어떤 각성자가 입장하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건 즉 자신의 옆에 있는 어린 딸이 갑자기 입장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었다.

작은 토끼 인형을 안은 채 박효진의 옆에 앉아있던 나라가 권재경을 바라보았다. 나라는 자신의 아빠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그런 일은 없어야할텐데.’

권재경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김지석이 나타난건 그로부터 30분 정도 후였다.

그는 갑자기 사라졌던 것처럼,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털썩!

“김 이사!”

“이사님!”

기관의 옥상에 쓰러진 채 나타난 김지석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권재경이 그를 살폈다.

맥박은 잘 뛰었고 숨도 안정적으로 쉬고 있었다.

“살아있어요. 기절한 것 같습니다.”

권재경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카락과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진 것 외에는 외관상 다친 곳도 없어보였다. 다른점이라면 입장할 때와는 다르게 품이 큰 코트를 하나 걸치고 있었다.

“후…. 다행이네요.”

안세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옮기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선오가 김지석의 앞에 앉아 윤도빈에게 눈짓했다. 윤도빈은 주선오의 등에 김지석을 업히고는 함께 옥상을 내려갔다.

잠시 그들을 바라보던 안세인이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더 좋았으련만. 어쨌든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네요.”

“네. 일단 저는 이사님이 돌아왔다고 알려야겠어요.”

박효진이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가 자판을 빠르게 두드렸다.

“아마 다른 각성자가 함께 입장했던 것 같죠?”

“아까는 없던 코트를 걸친 걸 봐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권재경의 대답에 안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몬스터들이 그런 옷을 입지는 않겠죠. 정확한건 김 이사가 깨어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박효진이 가만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이사님이 돌아왔으니까 이번 단계도 끝났다는 것 같은데….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거나 아니면 다른 각성자가 입장하게 되겠네요.”

“이걸로 끝난다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죠.”

왠지 안세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들어갔던 윤도아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아직 누가 입장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박효진이 초조한듯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기관의 옥상에 모여있던 각성자들 역시 초조한건 마찬가지였다. 혹시 다음번 입장을 하는게 나는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그들의 얼굴에 스며있었다.

권재경은 나라의 옆에 선 채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내가 선택됐으면.’

그리고 이번으로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때 나라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내려섰다. 그러더니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행동에 권재경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라야?”

나라가 미소를 띠며 권재경을 바라보았다.

“갔다올게, 아빠. 걱정하지 마.”

무슨 소리냐며 채 되묻기도 전에 투명한 일렁임이 나라를 감쌌다.

권재경이 황급히 나라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나라는 이미 사라져버린 후였다.

“나라야!”

권재경의 비명섞인 외침이 기관 옥상에 울려 퍼졌다.

* * *

“잠깐만, 이건…!”

나는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두 번째 간이 시험의 세 번째 맵에 선택된 사람 중 한 명이 8살의 아이였기 때문에.

어른들조차 버거운 간이 시험을 어째서 저런 아이가 겪어야 하는거지?

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나라에게 가호가 주어졌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내 강렬한 항의에도 세라피스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뭐가?”

“저런 아이한테 어떻게….”

내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내 앞에 있는 생명체는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과연 그가 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가 보기에는 그저 다 같은 인간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냥 크기가 다를 뿐인, 같은 인간.

그러니 왜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지에 대해 영문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아무리 내가 이해를 시키려고해도 그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미 선별은 끝이 났고, 나라는 게이트 안에 입장해버렸다.

이제와서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세라피스가 선택을 한것도 아니고 수많은 각성자 중 희박한 확률로 선택이 된 것이다.

“저 작은 인간이 걱정인거야?”

세라피스가 턱을 괸채 연못 표면에 비치는 나라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꼭 갓태어난 인간을 보는 것 같긴 하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지금까지 입장한 각성자들 중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보이는데.”

세라피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가장 처음 입장했던 도린과 카터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두 번째로 입장했던 김지석은 당황한 얼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전의 두 각성자에 비하면 훨씬 안정된 상태였다. 입장 전 그 둘에게서 어느정도 정보를 전해들었으리라. 에이단이야 김지석을 만났다는 사실에 표정을 감추느라 아무런 티가 나지 않았지만.

그에 반해 나라의 얼굴은 평온했다.

마치 이곳에 들어올 것을 예상이라도 했던 것 처럼….

그때 나라가 가진 특성과 스킬이 머릿속을 스쳤다.

‘예지했구나!’

정확히 어떤 예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라는 자신이 두 번째 간이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권재경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겠지.

말하지 않은 이유? 뻔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라가 예지를 보았든 보지 않았든, 어쨌든 나라는 간이 시험에 입장하게 됐을 것이다. 이건 결국 일어날 일. 어떤 짓을 해도 나라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말을 해봤자 주변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건 나라를 걱정하는 것 뿐이었다.

나라는 자신의 아빠가, 혹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제 나이에 맞지 않게 커버린 나라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나도 불편해졌다.

‘그래도 함께 입장한 각성자가 루크라서 다행이야.’

루크는 카피바라 신의 가호를 받아 사람들의 언어를 통역해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능력은 몬스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루크와 나라가 함께 해결해야할 이번 맵의 목표는 역시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세 번째 맵 : 인형들 사이에 숨어있는 인형술사를 찾아내십시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형이 되어 버립니다.]

목표만 봐서는 루크와 나라가 함께 게이트에 입장하게 된 것이 굉장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 맵의 목표를 아는 것은 나 뿐이다. 게이트의 밖에서 나라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권재경과 다른 각성자들은 그 시간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라 역시 각성자였다.

나이를 떠나서 게이트를 클리어할 능력이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귀중한 능력이.

그러니 이번에는 8살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는 한 사람의 각성자가 이 맵을 무사히 클리어해주기를 바라야했다.

나는 숨을 죽인채 연못 표면에 비치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안녕하세요.”

루크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것 같은 키의 아이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사실은 갑작스럽게 게이트에 입장하게 된 것도 당황스러웠는데 그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굉장히 어려보이는 아이가 게이트 안에 있다니. 상당히 충격적인 상황이었지만, 어쨌거나 이곳에서 만났다는건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해내야할 동료라는 것이었다.

루크는 아이에게 마주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아이의 앞에 쪼그려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루크를 바라보던 아이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라에요. 오빠는요?”

“루크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자신을 나라라고 소개한 아이가 이번에는 루크에게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악수를 청하는 의외의 행동에 루크가 당황하자, 나라가 말했다.

“아빠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랑 이렇게 인사했어요.”

그에 살짝 웃음을 터트린 루크가 아이가 내민 손을 살짝 붙잡았다.

“나도 잘 부탁해요.”

그러자 나라가 뿌듯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고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이답지 않은 차분함이었다.

루크는 나라를 보며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라지만 이곳에 입장한 이상 같은 각성자라는 이야기였다. 분명 많은 게이트를 돌았겠지.

그래도 다행이었다.

자신과 함께 입장한 이상 몬스터와 싸울 일은 없을테니까.

안심한 루크도 나라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에게 어울리는 인형으로 가득 찬 방이었다.

나라는 인사를 나눌 때부터 이미 품에 토끼 인형을 안고 있었다. 혹시 그것이 아이템일까 싶어서 살펴봤지만 딱히 그런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인형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라는 수많은 인형들을 보고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뭔가를 찾아야하는걸까?”

루크가 중얼거렸다.

방안의 인형들을 둘러보던 나라가 한쪽을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어!”

그러더니 갑자기 인형들을 헤치고 한쪽 구석으로 다가갔다.

루크는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의 뒤를 따랐다.

아이는 자그마한 몸으로 인형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토끼 인형을 내팽개치고는 쌓여있던 인형 더미 위에서 한 인형을 집어들었다.

“이거!”

나라가 집어든 인형은 하얀색의 인형이었다.

머리 위 작은 두 개의 뿔, 양쪽 등에 솟아 있는 작은 날개. 등을 따라 솟아있는 비죽한 돌기들과 그 밑으로 이어지는 짤막한 꼬리. 짜리몽땅한 네 개의 발. 커다란 까만 두 눈 중 하나의 눈 위에는 동그란 단안경까지 끼고 있는 인형이었다.

그 인형을 바라보는 나라의 눈이 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루크가 그런 나라의 옆에 서며 물었다.

“아는 인형이에요?”

요새 한국에서 유행이라도 하는 인형인가 싶었다. 꽤 귀엽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이들 사이에 유행한다기에는 꺼림칙한 것이, 인형의 생김새가 가고일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알아요.”

나라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첫 게이트에서 만났던 인형이에요.”

‘첫 게이트?’

루크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나라와 하얀 가고일 인형을 바라보았다.

나라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안녕, 인형아!”

그순간, 넓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인형들의 눈이 모조리 나라에게 쏠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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