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시험을 치룰 사람으로 선택되었습니다.]
[10초 후 게이트 안으로 이동합니다.]
“…에에에엥?”
눈앞에 떠오른 안내문에 뭔가 반박을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변해버렸다.
“아니, 내가?’’
갑작스럽게 게이트에 입장해버린 신교진이 어처구니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누가 입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왠지 자신이 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될 줄이야.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생각에 힘껏 소리라도 질러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곧바로 고개를 홱 들어올리며 외쳤다.
“내가 왜….”
그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광경 때문에.
어두운 밤하늘에 일렁이는 빛의 물결. 푸른 오로라였다.
생전 처음보는 그 광경에 신교진은 잠시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몰아치는 추위에 몸을 움츠린 신교진은 추위에 찡그렸다.
그는 처음부터 두 번째 간이 시험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기에, 개의 이빨 사무실에서 단원들과 함께 있었다. 그렇기에 옷차림이 얇았다. 헌데 지금 이곳은 바깥보다 훨씬 추운 것 같았다.
그래도 덕분에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여기서 더 화를 내봤자 자신의 손해였다.
어차피 게이트에 입장한 후였고 자신이 입장하게 된것도 분명 자신에게 무언가 유리하기 때문이리라.
신교진는 운빨의 최강자였다.
그러니 분명 이곳에 입장하게 된것도 자신에게 이득일 상황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낫네.’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는 주변을 살폈다.
밤이었지만 하늘에 흩날리는 오로라의 빛으로 주변이 환하게 비추어보였다.
푸른 설원이었다.
설원의 한쪽 방향에는 새까만 나무들이 뒤덮은 숲이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푸른 오로라의 빛을 그대로 반사시키는 강의 표면은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감상하기에 굉장히 좋은 풍경이었지만, 이곳은 게이트 안이었다.
분명 뭔가를 해야할텐데.
이런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무엇을 해야할지 알수가 없었다.
겉옷이라도 입고 있었다면 조금 더 이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을텐데.
그때 강가의 앞의 시커먼 것이 눈에 띄었다.
‘뭐지?’
신교진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뽀득.
뽀드득.
걸음을 옮길때마다 쌓인 눈 깊숙이 발이 잠겼다.
밝은 빛이 없었기에 저 검은 물체가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냥 새까만 바위일수도 있었고, 어쩌면 신교진을 위협할 몬스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뭐든 자신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운은 내 편이니까.’
곧 신교진은 검은 물체의 앞에 도착했다.
그것은 바위도, 몬스터도 아니었다. 윤기가 흐르는 털을 가공해서 만든 겉옷이었다.
“웬 털옷?”
고개를 갸웃거린 신교진은 잠시 그것을 살폈다. 대충 살펴보아도 신교진정도는 덮고도 남을 크기의 옷이었다.
그럼 분명 이 옷을 입던 사람이 주변에 있을텐데.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뽀글.
강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신교진은 바로 그곳을 돌아보았다. 강의 표면에 푸른 오로라와 함께 그의 얼굴이 비추었다.
‘어라?’
물 아래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물고기인가 싶어 자세히 보려 미간을 찌푸리는데.
그것이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촤아악!
“으악!”
화들짝 놀란 신교진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옷을 파고드는 눈의 차가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신교진은 그 감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물에서 솟구쳐나온 커다란 그림자를 본 그는 그대로 손에 들고있던 활의 시위를 당겼다.
하얀 빛의 화살이 활에 새겨진 즉시 손을 놓자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피잉!
하지만 신교진의 화살은 그림자를 맞추지 못했다.
“!”
지금껏 한 번도 화살이 빗나간 적이 없는 그였다.
게다가 지금은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표적을 맞추지 못했다?
신교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아무렇게나 쏘더라도 궤적 간섭 스킬과 명중 스탯, 그리고 그의 가호 덕분에 항상 표적을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내 화살이 빗나간 것이 자신에게는 크나큰 행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자신의 앞에 우뚝 선 형체를 본 신교진이 살짝 떨리는 손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사, 사람?”
물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사람이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두운 색의 피부를 가진 근육질의 남성. 상체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우람한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그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신교진을 내려다보았다.
그 오싹한 눈빛에 신교진은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신교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슥 훑어보았다. 상당히 기분나쁜 눈짓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는편이 좋을 것 같았다.
신교진이 입을 꾹 다문채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았다.
싸늘한 정적이 둘 사이를 휘감았다. 하지만 정적은 둘째치고, 살을 에는듯한 추위에 신교진의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얼어죽을 것 같았다. 움직이기라도해야 할 것 같아서 신교진은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그 모습을 마주하니 다시금 움츠러들고 말았다.
신교진의 머리는 겨우 그의 가슴팍에 닿을 정도였다. 근육질의 몸 또한 신교진을 움츠러들게 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왠지 압도당한 신교진은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 앞에 선 남자가 움직였다.
“힉!”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신교진이 흠칫 놀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남자는 바닥에 놓여있던 뭔지모를 동물의 털로 만든 까만 옷을 집어들 뿐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털옷을 신교진의 머리 위에 툭 걸쳤다.
“엥?”
당황한 신교진이 털옷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처음보다 상당히 누그러진 시선으로 신교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묵직한 울림이 담긴 목소리였다.
하지만 신교진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게이트에 입장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신교진은 당연히 통역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로 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건 당연했다.
그래서 신교진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할말을 시작했다.
“대, 대체 왜 물 속에 들어가 있어요? 몬스터인줄알고 활을 쏴버렸잖아요!”
사실 신교진의 주장은 타당한 것이었다.
대체 어느 누가 이런 설원의 물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올거라고 생각할 것인가.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신교진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그가 걸쳐준 모피가 상당히 따듯해서 금세 몸도 녹았기에 신교진은 계속 말했다.
“이건 100퍼센트 제 과실이 아니에요! 제가 운이 좋아서 화살이 빗나가지 않았으면 그쪽 죽을수도 있었다고요!”
뭔가 적반하장의 느낌이었지만 소리를 모두 지르고나니 상당히 후련해졌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신교진이 후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신교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는지, 남자의 표정은 미묘했다.
하지만 곧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신교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괜히 움찔한 신교진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무어라 이야기를 하더니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냥 가는거?’
신교진은 그의 넓은 등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게이트 안에서 만난 사람이니 저 남자 역시 각성자일것이다.
물론 왜 이 추운 날씨에 얼음장같은 강물 속에 뛰어들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게이트에 함께 입장한 이상 이곳을 클리어하려면 힘을 합치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통하는 상대와 어떻게 협동을 해야하나.
그때 앞서가던 그가 뒤를 돌아보더니 손짓했다.
“따라오라고?”
되물었지만 그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작게 투덜거린 신교진은 후다닥 그의 뒤를 따랐다.
사실 다리 길이의 차이가 컸기에 그의 걸음을 쫓으려면 신교진은 경보를 해야 할 판이었다.
한 5분 정도 걸었을까.
금세 지쳐버린 신교진이 더이상 못가겠다며 투덜거리려는 순간,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나 아직 아무말도 안했는데요.”
괜히 흠칫 놀란 신교진이 변명을 내뱉었지만 그는 신교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의 시선은 앞쪽으로 꽂혀있었다.
‘뭔데?’
신교진이 남자의 팔 너머로 눈앞에 펼쳐진 설원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설원이었다.
다만 그 위에 거대한 발자국이 찍혀있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뭐야, 저게?”
신교진이 놀라 중얼거렸다.
남자는 조심스레 그 발자국을 향해 걸어가 꼼꼼히 그것을 살폈다.
발자국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신교진이 그 안에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 있는 몬스터의 발자국이리라. 다만 저정도의 발자국을 남기려면 그만큼 그 덩치 역시 커다랄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집 한 채 크기는 될 것 같은데.’
크기를 상상해본 신교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에게 그런 덩치의 놈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신교진은 기껏해야 화살을 날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윤도아나 주선오 쯤은 있어야 가능했을텐데.
‘차라리 주선오가 들어왔었어야 했던 거 아냐?’
투덜거리던 신교진의 눈에 발자국 앞에 쪼그려앉아 그것을 살피는 남자가 들어왔다.
겉모습만 봐서는 사실 국내 랭커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보이는 남자였다.
하지만 각성자는 겉모습이 다가 아니었기에, 신교진은 과연 저 남자에게 이곳의 몬스터를 잡을만한 능력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때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다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 같이 가요!”
신교진이 후다닥 그의 뒤를 쫓았다.
그는 막힘없이 걸었다.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신있게 걸음을 옮기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마 가지 않아서 신교진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멀리 하얗고 큰 덩어리가 보였다.
눈이 쌓인 언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언덕이 스스로 움직일리는 없으니까.
언뜻보면 코끼리같기도 했다.
아래로 축 늘어진 기다란 코의 양 옆으로 상아가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코끼리의 상아에는 저런 무시무시한 가시들이 돋혀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온몸이 늘어진 털로 뒤덮여있었다. 등에서부터 시작된 털은 그것들끼리 뭉친채 두터운 기둥같은 다리위로 늘어져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시돋힌 상아가 자라난 머리였다. 그것의 머리는 굉장히 단단해보이는 바위같은 덩어리가 뒤덮여있었다. 그것은 상아와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얼마나 두꺼운지 머리의 뼈가 등보다도 훨씬 높이 솟아 있었다.
“…매머드인가…?”
바위같은 머리뼈의 사이로 노랗게 빛나는 두 눈은 신교진과 남자를 향해있었다.
잠시 후 귀를 찢을 듯한 매머드의 울음소리가 설원에 울려퍼졌다.
우오오오오오오——!
이어서 매머드가 둘을 향해 돌진했다.
쿵!
쿵!
쿠웅!
놈의 육중한 움직임에 설원의 땅이 크게 흔들렸다.
“헉!”
신교진이 다시 들고 있던 활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시위를 당기려는 찰나.
다시 한번 남자의 손이 신교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신교진을 흘긋 돌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아무래도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신교진이 활을 내리자 남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들에게 돌진하는 매머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남자가 무언가를 낮게 읊조리자.
스륵.
유난히 어둡던 남자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어?’
그러고보니 지금은 밤이었다. 아무리 오로라의 빛이 설원을 내리쬐고 있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짙은 그림자가 생길리 없었다.
그건 신교진의 그림자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짙었다.
스르륵.
그리고 그 그림자는 곧 설원의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히익!”
놀란 신교진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솟아난 남자의 그림자는 곧 무언가의 형태를 만들었다. 날렵한 고양잇과 동물의 모습.
표범같기도 했고 퓨마 혹은 치타같기도 했다.
그림자가 만들어낸 형태였기에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불러낸 그림자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매머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매머드와 맞붙기에는 너무 작은 크기의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림자가 점점 멀어질수록 둘의 크기는 얼추 비슷해져갔다.
곧 매머드와 그림자가 격돌했다.
쿠웅!
매머드의 상아가 그림자를 꿰뚫었다.
흩어진 그림자는 순식간에 매머드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러자 순간 매머드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어라?’
아무래도 매머드에게 흡수된 그림자 자체가 매머드의 움직임을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목표물이 고정되자 이번에는 남자가 움직였다.
어느새 남자의 오른손에는 그의 키와 비슷해보이는 기다란 창이 들려있었다.
창의 끝에는 날카롭게 벼려진 까만 유리같은 것이 박혀있었다.
남자는 창을 든 손을 한껏 뒤로 끌어당겼다.
그의 시선은 자신들에게 돌진하는 매머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곧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힘껏 집어던졌다. 그의 모든 근육이 크게 요동쳤고 손에 들려있던 창은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쇄애애액!
손으로 던진 창이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굉음이 설원의 공기를 갈랐다.
빠르게 날아간 창은 달려오던 매머드의 두터운 머리에 닿았다.
콰드득!
창이 지나간 매머드의 머리 정중앙에는 뻥뚫린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그 구멍에서 붉은 핏물이 솟구쳤다. 놈은 핏물과 함께 하얀 설원 위로 쓰러졌다.
쿠웅!
단 한 번의 공격.
그걸로 끝이었다.
신교진은 튀어나올듯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곧 쓰러진 매머드의 짙은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거대한 시체를 집어삼켰다.
하얀 설원에는 매머드의 피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