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두 번째 간이 시험이 끝난 후, 기관에서는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다음 시험에 대비하고자 했다.
각 단계를 거친 각성자들은 자신이 겪은 단계에 대한 정보를 기관에 넘겼다.
기관에서는 모든것을 지켜본 나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했기에 나는 기관을 찾아 그들이 올린 정보를 살펴보았다.
“다들 열심히 해주셨네요.”
보고서를 보고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안에서 지켜보던 것들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맵이었던 가루다의 알을 옮기는 게이트. 그곳에서는 도린과 카터가 나가를 상대했었다. 둘은 시험 내용과 더불어 나가에 대한 정보들까지 있었다.
김지석이 입장했던 두 번째 맵은 생각보다 정보가 적었다.
내게 보고서를 건넨 김지석이 멋쩍은듯 웃었다.
“사실 저보다는 함께 입장한 다른 분께서 클리어를 해주신거나 마찬가지라서요.”
김지석의 말대로 두 번째 맵은 거의 에이단이 클리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맵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적었다.
사실 정보랄것도 없는게 그곳은 그냥 거대한 몬스터의 위 속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굳이 어떻게 해야 위경련을 일으켜서 몬스터를 게워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을 논할 필요는 없겠지.
“그러고보니 도아 씨는 제가 누구와 게이트를 클리어했는지 보셨겠군요.”
“네. 봤어요.”
특히 에이단의 반응을 아주 흥미롭게 관찰했었다.
“사실 그 분께서 안에서 자신을 만났다는걸 밝히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에이단에게 들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에이단은 게이트 내부에서 김지석을 만난것에 대해 한탄했고 어쩔수없이 자신을 러시아 랭커라고 밝혔다고 했다.
그는 김지석에게 자신을 만났다는 사실에 대해 함구해달라고 부탁했고 때문에 김지석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물론 내가 다른 인물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지석이었지만, 에이단은 그곳에서 많은 아이템을 사용했다.
당연히 그런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고 상당한 실력자임이라고 추측하겠지. 그에 혹여라도 내가 다른 곳에 에이단에 대한 이야기를 발설할까 싶어 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도아 씨가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얘기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이사실의 한 켠에 걸려있는 회색 코트를 바라보았다.
에이단이 자주 걸치고 다니던 코트였다.
그는 내심 김지석에게 걸쳐주었던 코트가 아깝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에이단이 저 코트를 돌려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다시는 김지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으니.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전달해줄수도 없었다. 내가 어떻게 러시아의 랭커와 안면이 있는지를 설명하는건 상당히 곤란했으니까.
어쨌든 에이단은 김지석에게 상당한 신임을 얻은 모양이었다.
실상을 알고나면 상당히 속이 쓰려할 것 같은데. 왠지 김지석을 속이는 기분이 들어 조금 미안해졌다.
“알겠어요.”
나는 다시 보고서를 살폈다.
세 번째 맵은 나라와 루크가 함께 했던 맵이었다.
“나라와 루크가 함께 입장한게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김지석의 말에 나 역시 강한 동의를 내비쳤다.
게다가 그곳의 안내자였던 가고일들은 무척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나라와 권재경이 처음 입장했던 게이트에서 만났던 가고일들. 그들을 만났기에 갑작스럽게 게이트에 입장하게된 나라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으리라.
신교진의 경우는 역시 운이 좋았다. 보고서는 신교진 혼자 올린 것이었고 그가 참여한 마지막 보스맵은 일 카미나가 클리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운빨 덕분에 신교진은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크게 덧붙일 내용은 없네요. 다들 잘 작성해주셔서. 제가 지켜봤다고해서 모두 알 수 있었던건 아니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김지석이 내가 건넨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문서보다는 직접 보는게 확실하겠죠.”
김지석의 말은 옳았다.
뭐든 글로 배우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고, 더 나아가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마침 어제 연구소장 박효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 남해 섬의 게이트 브레이크 때의 연구 결과물이 나왔다는 연락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수습된 후 박효진은 그곳에서 나이트메어의 핵을 발견했다.
나이트메어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훔쳐내 트라우마를 읽어내곤 했다. 박효진은 그것을 이용해서 게이트 내부를 기억할 수 있는 저장 장치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연구소에는 바로 가보실 생각이십니까?”
김지석이 보고서를 탁자 한 켠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러려고요.”
“아마 도아 씨와 선오에게 테스트를 부탁할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지석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마침 잘 됐어.’
간이 시험도 끝났으니 이제 주선오와 이야기를 해야했다.
나는 김지석과 인사를 나눈 후 연구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주선오가 도착해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살짝 고개를 꾸벅여보이고는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간이 시험 전, 가호에 대해 물은 이후로 우리는 크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있었다.
주선오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전까지 나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도 그런 질문을 받은 상태에서 아무런 대답도 없이 태연하게 다른 이야기를 할만한 뻔뻔함은 없었다.
그렇기에 마주칠때마다 묘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서로에게 좋을 일은 없었다.
나는 박효진을 기다리며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는 주선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전에 물었던거.”
그러자 주선오가 홱 나를 돌아보았다. 순식간에 나를 보는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이 테스트 끝나면 얘기해줄게.”
“…정말입니까?”
주선오의 눈에는 미약한 불신이 남아있었지만 그것을 덮을만한 기대감이 가득 실려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주선오의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오셨어요?”
때마침 나타난 박효진이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박효진의 안내에 따라 그녀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대충 말씀은 드렸지만 남해섬 게이트 브레이크 때 찾은 핵으로 저장 장치를 만들었어요.”
박효진이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우리가 소파에 앉자 그녀는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챙기며 계속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게이트 내부에서 영상도 찍고 했지만 막상 밖에 나와서 재생을 하면 화면이 먹통이었잖아요.”
박효진의 목소리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그랬죠.”
내가 수긍하자 박효진이 계속 이어말했다.
“근데 이번에 나이트메어 핵으로 만든 저장 장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요. 여기.”
박효진이 우리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녀의 양손에는 직사각형의 기계가 들려있었다.
“이건 360도 카메라에요. 촬영을 하면 저장도 여기에 되요. 일단 내부 영상이 저장된다는건 확인을 한 상태고요. 사용 방법은 일반 카메라랑 똑같아요.”
이미 기관 내부에서 테스트는 마친 모양이었다.
“그럼 저희가 뭘 하면 됩니까?”
주선오의 물음에 박효진이 답했다.
“두 분께서 해주실건 사람들에게 공개할 영상을 찍어주시는거에요.”
“공개?”
“이런 영상을 찍으려는 이유가 일반사람들에게 게이트 내부를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각성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에요.”
박효진이 카메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아무래도 게이트 내부에 대해서 말만 듣고 입장하는 것보다는 어떤 형태의 게이트들이 있는지 직접 영상으로 확인하는 편이 좋잖아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그게 불가능했기때문에 처음 게이트에 입장하는 각성자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상 장치가 상용화된다면 더이상 그런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기존의 각성자들 역시 훨씬 다양한 경험을 접함으로써 앞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이 더욱 수월해질 터.
“그러니까 이왕이면 S급 종합 보상 게이트를 클리어해주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인 주선오가 테이블 위의 카메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바로 가죠.”
빨리 질문에 대한 답을 받고싶은 모양이었다.
당황한건 박효진이었다.
“아, 바로 가시게요?”
“한시라도 빠르면 좋은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피식 웃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갔다올게요.”
우리가 향한 곳은 경기 외곽지역의 S급 종합 보상 게이트였다.
살펴본 게이트의 정보는 조금 애매했지만 나와 주선오이기에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S급 종합 보상 게이트]
[오래된 저택이 있는 종합 보상 게이트입니다.]
[저택을 올바른 주인에게 되돌려주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주선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촬영은 내가 할게.”
주선오가 이걸 들고 칼을 쓸수는 없지만 나는 염력으로 카메라를 들 수 있으니 문제 없었다.
그가 건넨 카메라를 받아든 후, 우리는 곧장 게이트로 입장했다.
* * *
게이트의 내부는 음산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의 아래에 저택으로 향하는 좁은 언덕은 가시덩쿨이 잔뜩 엉켜 있었다.
그 너머에 우리가 가야할 저택이 있었다. 가시덩쿨로 감싸인 회색 벽돌로 쌓아올린 외벽과 갈색의 창틀을 가진, 첨탑이 높이 솟아오른 2층 짜리의 저택이었다.
주선오가 나를 돌아보았다. 정확히는 내 손에 들려있던 카메라를.
나는 녹화 시작 버튼을 누른 후, 카메라를 허공에 띄워두었다.
지금부터 이 게이트의 내부는 모두 녹화가 될 터.
“가자.”
그러자 주선오가 앞장서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가시덩쿨은 상당히 두꺼웠다. 내 팔보다도 더 두꺼운 굵기였다.
그 위에 박힌 가시들은 가시라기보다 작은 칼날들을 박아넣어둔 느낌에 가까웠다. 스치기만해도 살갗따위는 쉽게 찢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웬만한 각성자라면 이 덩쿨을 베어내는것조차 힘에 부칠 것이다. 도끼로 내려찍지 않는 이상 쉽게 잘려나가지는 않을 터.
하지만 주선오에게는 간단한 일일 것이다.
가만히 가시덩쿨을 살피던 주선오가 손목에 있던 은색의 팔찌를 발동시켰다.
곧 팔찌는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주선오의 주먹 안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솟구쳐 날렵한 칼날을 만들어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을 들어올린 주선오가 말했다.
“베겠습니다.”
내가 한걸음 물러서자 주선오가 손을 휘둘렀다.
슥.
스윽.
그의 가벼운 손놀림에 언덕을 가로막고 있던 가시덩쿨들이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나는 염력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시덩쿨들의 잔해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냈다.
우리는 언덕을 따라가며 같은 일을 반복했고, 금세 저택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택의 입구 역시 덩쿨로 틀어막혀있었다.
역시 주선오가 칼을 휘두르자, 문을 막고 있던 가시덩쿨이 후두둑 잘려나갔다.
반면 문은 멀쩡했다.
그가 가진 선별 스킬 덕분이었다.
베어낼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
그 스킬을 사용하면 적과 아군이 뒤섞인 전쟁터에서도 그는 적만을 베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높은 레벨의 선별이어야 가능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나는 염력을 이용해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나무문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내부는 어두웠다.
밖 또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어둑한 하늘이었지만, 문 안으로 내리쬐는 어둑한 빛이 그나마 내부의 돌바닥을 비춰주고 있었다.
물론 나는 탐지로 내부의 형태를 알 수 있었고 주선오에게는 암소시 스탯이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우리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가 스스로 닫혀버렸다.
쿵!
주변은 암흑으로 뒤덮였다.
“이래서는 영상을 찍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살짝 앞에서 들려오는 주선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불을 밝힐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있었다.
레부를 불러내려는 찰나.
우르르릉.
콰쾅!
저택 밖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동시에 쏟아지는 빗소리에 저택 내부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두둑.
타이밍 좋게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몇 초 뒤, 번개의 빛에 일시적으로 저택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
‘방금 뭔가….’
꺼림칙한 무언가를 본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빠르게 레부를 불렀다.
“레부.”
“쿄!”
심연의 불꽃에서 레부가 나타나자 곧 저택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일반적인 저택이라면 보통 들어서자마자 이런 광경이 보이지는 않을터. 이곳은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갔을 때 마주했어야할 풍경에 더 가까웠다.
우리의 앞에는 안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와 양 옆에는 굳게 닫힌 나무문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더 이상한 점은 조금 전 번개가 쳤을 때 보았던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주선오가 내게 물었다.
“보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쿄? 뭘 말입니까?”
레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평범한 저택 같습니다만….”
하지만 잠시 후. 다시 한번 천둥번개가 쳤을 때, 레부는 우리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앞에 선 채 텅 빈 눈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