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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98화 (199/201)

제198화

“쿄!”

레부가 화들짝 놀라며 불길을 일으켰다.

하지만 번개의 빛이 사라지자마자 우리를 바라보던 반투명한 사람이 사라졌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조금 전 그것을 봤을때는 착각이었나 싶었지만. 두 번째 그 모습을 목격하니 확신이 섰다.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뭐였죠?”

주선오 역시 놀라 커진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낡았지만 고풍스러워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었고, 반투명해서 뒤쪽의 복도와 복도 끝의 창문이 비추어 보였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유령에 가까운 모습.

딱히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것은 처음 보았던 때와 조금 전 보았을 때 모두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를 공격할 의사는 없어보였는데.’

레부의 빛이 계속해서 복도를 밝히고 있었지만 그 유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

“번개가 칠 때만 보이는 것 같은데.”

내 이야기에 주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지는 체취도 없습니다. 그것도 몬스터일까요?”

“글쎄.”

아직 확언할 수는 없었다.

“일단 움직여볼까.”

내가 먼저 앞장서서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두어걸음을 떼었을 때, 갑자기 복도 끝의 창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웅!

“누나!”

주선오가 황급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창문에서 시작된 공간의 소용돌이는 복도와 문들을 중앙으로 끌어모았다. 공간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며 중앙의 점으로 흡수되었고, 거대해진 소용돌이는 한참동안 우리의 앞에서 요동쳤다.

우우웅….

잠시 후, 소용돌이가 움직임을 멈춘 후 흡수했던 공간을 한순간에 내뱉었다.

화악!

조금전까지 보고 있던 복도와 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우리의 앞에는 따로 문이 달리지 않은 아치형의 입구가 있었다.

그 너머에는 고풍스럽게 꾸며진 응접실이 보였다.

“…공간이 바뀌었습니다.”

주선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탐지로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꽤 의아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서있는 작은 복도와 눈앞의 응접실의 주변에는 서재와 침실, 홀, 주방 등의 여러 공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들은 모두 막혀있었고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없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길은 눈앞의 응접실로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저기로 들어오라는 것 같지?”

내 물음에 주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치형의 입구를 지나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 고풍스러운 응접실의 가장 눈에 띠는 점은 삼각형의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다갈색의 나무와 황토색의 벽지로 사방이 둘러싸여있었다.

한쪽 면에는 알수없는 그림이 그려져있는 액자와 창문이 있었고, 다른 한쪽 면에는 응접실 내부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 여러개가 매달려있었다. 우리가 들어온 면에는 작은 책장과 함께 아치형의 문이 있었다.

그 세 개의 벽면이 만나는 천장의 중앙에는 작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있었다. 바로 아래쪽에는 낡은 갈색 테이블과 그것을 둘러싼 소파 여러개가 놓여있었다.

“쿄오….”

레부가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 앞으로 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본 주선오가 말했다.

내 시야와 탐지에도 응접실 내부에 특별한 것은 눈에 띠지 않았다.

우르릉, 콰광!

다시 한번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쿄옷!”

레부의 비명에 빠르게 거울 쪽을 바라보았다.

레부는 바닥에 철퍽 주저앉은 상태였다.

“왜 그래?”

“쿄, 쿄오. 아까 봤던 반투명한 인간이 여기에 서 있었습니다.”

레부가 자신의 바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투명한 인간이라면 복도에서 보았던 유령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우리를 따라다니는 걸까요?”

주선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레부의 말대로라면 유령은 거울의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거울을 보고 있었어?”

내 질문에 몸을 일으키던 레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눈이 없어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쿄오….”

나는 유령이 서 있었다던 거울의 앞으로 다가가 동그란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바로 앞에 비치는 내 모습 뒤로 응접실의 내부가 비추어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제 눈으로 보던 응접실의 모습과 다른것이 하나 있었다.

“선오야.”

내 부름에 주선오가 내 뒤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거울 한 켠을 가리켰다.

중앙 소파의 위에 무언가 흐릿한 것이 앉아있었다. 거울을 통해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었다.

내 가리킴에 역시 그것을 발견한 주선오가 그것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들고 있던 칼을 뒤쪽으로 휘둘렀다.

검격증폭 스킬을 썼는지 거울과 소파의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그의 칼날은 소파까지 닿았다.

사악!

주선오의 칼은 정확히 그것을 반으로 갈라냈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그것은 반쪽으로 나뉘더니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 실제 소파 위를 바라보았지만, 그것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우웅!

그때 우리가 입장했던 아치형의 입구 쪽에서 다시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복도의 반대편에 또다른 방이 나타나있었다.

레부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쿄? 저곳은 저택 입구 아니었습니까?”

“맞아. 그런데 방금 응접실에서 뭔가를 베어내니까 다른 공간이 열린 것 같은데.”

저택의 원래 주인을 몰아내고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것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추측이 되기 시작했다.

아직 확신은 일렀기에 우리는 일단 새로 열린 공간으로 이동했다.

저택의 입구 자리에 나타난 공간은 큰 침실이었다.

문 맞은편의 벽면에는 커다란 창이 나 있었고, 그 앞쪽으로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는 성인 세 명이 누워도 될 정도로 컸고 침대 주변에는 하얀색의 레이스 커튼이 늘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화장대와 그 위의 작은 거울.

거울을 본 레부의 눈이 살짝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거울 안에 뭔가가 보이는겁니까?”

녀석이 후다닥 거울의 앞에 가서 섰다. 나도 레부의 뒤를 따라 거울을 바라보았지만, 이번에는 응접실처럼 거울을 통해 무언가 다른것이 비춰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한번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방 안이 번쩍였다.

콰광!

“쿄옷!”

역시나 번개의 번쩍임에 유령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다만 이번에 나타난 유령은 아까와는 다르게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의 여자였다.

유령은 우리에게 등을 진 채 창문의 앞에 서있었다.

“…힌트일까요?”

주선오가 중얼거리며 유령이 서있던 창문의 앞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조금 전 응접실에서 유령이 나타났던 거울의 앞에 서자 응접실 내부의 흐릿한 형체를 발견했고 그것을 베어내자 다음 공간이 열렸다.

“그럴 것 같은데.”

나도 주선오를 따라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창문을 거칠게 내리치는 빗물 너머로 저택을 둘러싼 가시덩쿨들이 보였다.

주선오가 창문을 열어보려했지만 창문은 덜컹거리기만 할 뿐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바깥 쪽에 뭐가 있지는 않을 거야.”

어찌됐든 공격을 하려면 창문이 열리고 바깥과 통할 수 있어야했다. 나는 비전 마법을 이용해 그것이 충분히 가능했지만 웬만한 각성자들은 활을 쏘든 칼로 베든 하기위해서는 열린 공간이 필요했으니까.

“흠….”

주선오가 팔짱을 끼며 창문을 쏘아보았다.

“그럼 힌트가 아닌걸까요?”

유령은 분명 이 앞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것에 힌트가 있다면.

“창문 자체를 가리킨걸지도.”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주선오에게 말했다.

“베어볼래?”

고개를 끄덕인 주선오가 곧바로 창문을 베어냈다.

서걱!

스르륵.

깔끔하게 베여나간 창문이 곧 아래로 녹아내렸다.

이후 다시 문 밖에서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그것을 확인한 주선오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유령이 서있던 자리가 힌트가 되는군요.”

나도 이제 이곳을 차지하고 있는 몬스터에 대해서 확신이 들었다.

“보가트야.”

주선오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보가트라면 어떤 몬스터입니까?”

“요정의 일종이라 그렇게 힘든 몬스터는 아니야. 대신 이 저택을 통제하고 있어서 지금처럼 저택의 공간들을 자신의 마음대로 이동시킬 수 있는거지.”

“아. 그놈을 찾아내면 되는거겠군요.”

“아마 저택의 구조는 계속해서 바뀔거야. 우리가 이렇게 각 공간마다 놈이 심어둔 분신을 처리하면 이 공간은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거고. 그러다보면 결국 놈의 본체가 있는 공간만 남게 될테지.”

이건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곧바로 놈의 본체를 찾아내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게이트에 들어온 목적이 게이트 내부를 바깥에 보여주기 위함이었기에, 최대한 정석대로 처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차근차근 공간의 뒤틀림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음번 방은 서재였고, 뒤틀림을 일으킨 보가트의 분신은 책상 위의 깃펜이었다. 그것을 찾는 단서는 역시나 우리를 따라다니던 귀신들이 제공해주었다.

그 이후로도 욕실의 수도꼭지 장식, 드레스룸의 작은 반지, 식당의 은수저 등을 부수었다.

그렇게 저택의 공간들은 거의 대부분 본래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처음 저택에 들어왔을 때 마주쳤었어야할 홀이었다.

홀은 지금까지 지나쳤던 어떤 방보다도 넓었다. 드높은 천장에는 응접실보다도 더 화려하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아래로 붉은 융단이 쭉 깔려있었다. 그 융단은 넓은 홀을 지나쳐 앞쪽의 계단으로 이어졌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양옆으로 갈라지는 부분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다른 방들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밖과 통하는 창문이 없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지금껏 우리에게 보가트의 분신에 대한 힌트를 주던 귀신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 만들었던 뒤틀린 공간이 우리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가자, 화가 난 보가트가 먼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끼기기긱!

천장의 샹들리에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나는 우리의 머리 위로 마나 방패를 생성해냈다.

촤르륵!

7레벨의 마나 방패가 빠르게 생성되었다.

하지만 샹들리에는 우리의 머리 위로 추락하는대신 매달려있던 자잘한 유리 장식들을 털어내었다.

촤락!

후두둑!

그리고 그 너머에서 유리 장식들을 지탱하고 있던 뼈대들이 길게 늘어나며 우리에게 내리찍혔다.

쾅!

그 일격에 머리 위의 마나 방패가 반 쯤 뚫렸다.

몇 개는 마나 방패의 같은 지점을 계속해서 내리찍었고, 다른 뼈대들은 마나 방패를 벗어나 우리의 옆을 노리기 시작했다.

주선오가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찔러들어오는 날카로운 샹들리에의 뼈대를 베어내며 말했다.

“저게 본체인 모양이군요.”

“맞아.”

정석대로 놈을 찾아내는 과정을 모두 찍었으니, 이제 놈을 정리한 후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된다. 놈을 잡는 방법은 각성자마다 다를테니 굳이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서 잡아야한는 쓸데없는 장면들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날카로운 마나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마나 방패를 집요하게 내리찍던 뼈대를 베어낸 후, 이어서 천장의 샹들리에를 반으로 잘라냈다.

서걱!

깔끔하게 잘려나간 샹들리에가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져내렸다.

나는 마나 방패를 해제한 채 바닥을 살짝 박차고 도약해 뒤로 물러났고, 주선오는 헤이스트 스킬로 이동속도를 높여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곧 우리가 서있던 곳으로 반으로 갈린 샹들리에의 잔해들이 떨어져내렸다.

쿠웅!

와장창!

샹들리에에 남아있던 유리들이 깨지며 날카로운 파격음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의 눈앞에 게이트의 클리어를 알리는 알림글이 떠올랐다.

아마 저 알림글은 영상에는 잡히지 않을 것이었다.

“끝났네요.”

주선오의 말이 알림글을 대신해 게이트가 클리어됐음을 알렸다.

나는 곧바로 영상 녹화를 종료한 후 카메라를 레부에게 맡겼다.

주선오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앞쪽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서 이야기할까.”

우리는 계단으로 가 자리를 잡았고,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할지.

가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사실 숨길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고양이 신의 가호를 받았어.”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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