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2)화 (2/112)

#2

“얼마 전 토벌대가 결성된 건 알고 있지?”

“그래. 용병대 하나 처리하려고 에스퍼를 소집한 한심한 사건은 들었어.”

“단순하게 용병대 처리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마물이 종종 출몰하는 영지에선 용병을 고용하여 성벽을 지켰다. 어느 곡창 지대에서 거금을 들여 이름난 용병대를 고용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센터에 소속된 에스퍼는 훈련을 받고, 대형 마물이나 던전 관리에 동원된다. 그 외 작은 분쟁 지역에는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용병을 동원하여 해결했다. 영지에서 개인적으로 용병을 고용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런 용병대가 고용주와 분쟁을 일으켰다. 단순히 명령 불복종을 넘어 경비 대장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영지의 경비 대장이라면 못해도 준 귀족. 센터에서 나설 명분은 충분했다.

“겨우 용병 몇 명 때문에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반란이라도 일으켰어?”

“반란은 아니고. 정확히는 용병대 대장 한 명이 문제야. 홀로 경비 대장과 결투를 했다더라.”

“용병과 결투…. 그것도 웃지 못할 이야기네.”

애초에 명예가 없는 용병과 결투라니.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뼛속까지 귀족으로 태어난 반테온은 실없이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야. 죽은 경비 대장은 D급 에스퍼였거든.”

이어지는 테아로트의 이야기엔 넘길 수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내용에 웃으며 찻잔을 들던 손이 멈췄다.

일반인은 에스퍼를 이길 수 없다.

이건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전제였다. F급 에스퍼도 일반인 2배의 근력을 가진다. 1:1 대결로 훈련받은 D급 에스퍼를 이겼다면, 용병대 대장은 에스퍼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 확실했다.

“평민 에스퍼라….”

에스퍼가 유전된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상식이었다. 기록에 남은 평민 에스퍼도 종종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귀족의 사생아였다. 혈통을 중시하는 귀족들이 세력을 늘리기 위해 외부에서 자식을 가지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예외가 존재했다.

아주 드물게 귀족의 피가 1g도 섞이지 않은 평민이 에스퍼로 발현할 때가 있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에스퍼는 양손으로 세기 어려울 만큼 흔하지만, 후자라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졌다.

“설마 그자가 자연 발생 에스퍼란 뜻이야?”

“눈치가 빠른데.”

테아로트의 시원한 대답에 반테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요란하게 모집하더라.”

“그럴만하지. 정예로 뽑힌 토벌대 중에 A급 2명이 다치고, B급 5명이 입원했어.”

중태에 빠진 사람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반테온은 자신의 턱을 천천히 쓸었다. 자연 발생 에스퍼를 상대로 그 정도 부상이면 양호했다. 센터에서도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하게 한 것 같았다.

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성공적으로 자연 발생 에스퍼를 포획하였을 것이고, 곧 센터로 들어와서 교육을 받을 텐데….

“앞으로 시끄럽겠네.”

“감상이 그게 다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해. 부상자는 나왔어도 결국 잡혔잖아. 적당히 훈련받고 가문 하나 수여받겠지.”

300년 만에 나타난 자연 발생 에스퍼였다. 단순히 가문 하나 수여받는 정도가 아니라 온갖 화제의 중심이 될 것이 뻔하다. 당분간 센터 내에 온갖 세력이 분주하겠지만, 그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건국 이래 자연 발생 에스퍼가 몇 명이나 나왔고, 새 가문을 만들었지만, 결국 에슬란테 가문에게 위협이 되는 자는 없었으니까.

반테온은 이야기가 끝내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되레 다급해진 테아로트가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다시 생각해봐. 지금 태평할 때가 아니라니까. 검사가 끝나면 곧 센터로 들어올 텐데, 조심해야 할 것 아냐.”

“내가 조심할 일이 뭐 있어. 어차피 에슬란테랑은 상관없을 텐데.”

“가문은 그렇겠지. 근데 넌 아니잖아.”

의미 모를 말에 고개를 기울이자 테아로트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센터에 남은 가이드 중에선 가장 먹음직스러운 게 너잖아. 당연히 첫 테스트 가이드로 네가 지목될 텐데?”

먹음직스럽다는 저급스러운 표현에 반테온의 입매가 굳었다.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큼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말이다.

현재 센터에 에스퍼가 없는 가이드 중 가장 가문이 좋은 건 반테온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몰릴 것이고, 반테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그에게 먼저 매칭 테스트 제안할 것이다.

용병대 대장에 평민 에스퍼라.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하던 반테온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거절해야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

“용병이면 늙고 우락부락한 놈일 텐데. 절대 사양이야.”

“네 취향이 어리고 귀여운 녀석인 건 아는데. 이번엔 자연 발생 에스퍼라니까?”

“난 그런 거에 관심 없어. 없어도 충분히 살만하고.”

“…맞는 말인데 정말 재수 없다.”

반테온은 끝까지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테아로트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의 반응대로 흥미로운 존재이긴 하나, 이미 권세를 잡은 반테온의 가문에서 도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설픈 놈들이 욕심내서 달려들 테고, 어차피 나에게 순서가 올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되려나….”

“쓸데없는 가정은 집어넣어.”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줘도 테아로트는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에스퍼답게 뛰어난 감을 가진 놈이지만, 이번만은 틀렸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불안해하는 테아로트의 등을 툭툭 쳤다.

“할 말 끝났지? 이제 곧 수업 시간이다.”

꼬리를 흔들며 찾아온 케슬란부터 소란스러운 감시역까지. 오늘따라 변수가 많았다. 케슬란은 귀엽기라도 하지 테아로트는 징그럽고 영양가도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와 준 공을 생각하여 발로 걷어차지 않고 얌전히 손을 흔들어 축객령을 알렸다.

“잘 가.”

“간다 가. 진짜. 넌 에슬란테 아니었으면 그 성격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너도 가문 덕 보면서 살잖아.”

“쳇.”

에슬란테 가문의 방계 핏줄인 테아로트는 짧게 혀를 찼다. 그도 좋은 핏줄 덕에 A급 에스퍼로 발현했으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테아로트는 떠나기 싫다는 듯 투덜거리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끌며 서재를 떠났다.

반테온은 그런 모습에 피식 웃었다. 하는 짓은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 저 커다란 덩치만 아니었으면 좀 더 놀아줬을 텐데 반테온은 자신보다 머리 반 개는 큰 덩치를 귀여워하는 취미는 없었다.

‘그나저나 자연 발생 에스퍼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존재의 등장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반응했지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돌아갈 세력도가 펼쳐졌다. 자연 발생 에스퍼에 욕심을 낼 어리석은 후보들이 몇몇 추려지고, 가능성 큰 가설이 몇 가지 떠올랐다.

“그냥 조용하게 지나가면 좋겠군.”

적당히 쥐여주는 위치에 만족하고 제 분수를 아는 놈이길 바랐다. 반테온은 이미 엉망으로 꼬인 일정을 마무리하고 책상을 정리했다. 자신의 학술 자료가 들어간 비밀 서랍에 코드를 입력하고, 처음 서재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상태로 만들었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챙기고 잠시 벗어둔 안경을 썼다. 혼란스럽던 조금 전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가 보였다.

흐트러지지 말 것.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할 것. 귀족이라면 가장 먼저 배우는 태도였다. 비록 미숙한 에스퍼를 가볍게 희롱하거나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지만, 반테온의 출생부터 따라온 그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멋있으시네요.”

“아, 잠깐만요. 저 지각 아니에요.”

강의실에 들어가자 시끄럽게 조잘대는 소리가 울렸다. 고등 과정을 수료하는 학생들이니 대부분 10대 후반일 텐데, 하는 짓은 8살짜리와 다를 게 없었다.

“자리에 앉아. 교재 펴고.”

“에에….”

대답도 부정도 아닌 애매하게 기운 없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의기소침할 때가 제일 귀엽다. 평소처럼 교재를 정돈하고 내부를 살피는데, 평소와 다른 점이 보였다. 꽉 차 있던 교실에 이가 빠진 것처럼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다들 어디 갔지?”

“오늘 면회 온 애들이 많아요.”

“다 결석계 제출했어요”

병아리처럼 조잘거리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테온은 교탁 아래쪽에 정리된 출석부를 펼쳤다. 아이들의 말대로 면회로 자리를 비운 학생이 많았다. 자리를 비운 학생은 대부분 가이드다.

“지금 난리 났잖아요.”

“…….”

“선생님 미간에 주름 생겼어요!”

센터에 도착도 하지 않은 사람 때문에 벌써 일상에 균열이 간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자연 발생 에스퍼가 출몰했다는 소문에 가이드의 후원자들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겠지.

자기가 후원하는 가이드와 자연 발생 에스퍼를 엮기 위해서 말이다.

‘종마가 따로 없군.’

그것도 유례없이 질 좋고 주인도 없는 종마. 시끄러운 앞날이 눈앞에 선했다.

“선생님. 자연 발생 에스퍼 알려주세요.”

“학기 초반에 했잖아.”

“기억 안 나요! 더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평소에 학구열이 이렇게 뛰어나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소엔 시무룩한 표정으로 교재만 넘기던 학생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