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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3)화 (3/112)

#3

어차피 결석한 학생이 많아 보충은 확정이다. 반테온이 교재를 덮자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좋아하지 마. 시험 범위에 넣을 테니까.”

“에이잉.”

“지금까지 자연 발생 에스퍼로 기록된 자들은 8명이다. 그건 기억나지?”

“네!”

자연 발생 에스퍼는 천 년에 가까운 왕국의 역사 속에서 8명밖에 나오지 않은 소수의 존재였다.

“처음 자연 발생 에스퍼가 나타났을 땐 에스퍼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지. 기록도 생기기 전에 나타나 구전으로 전해졌기에 사람들은 전설 속 인물이라 여겼어. 그 후 2번째 에스퍼와 3번째 에스퍼가 나타나 왕국을 세우기 전까진 쭉 그렇게 생각했다.”

자연 발생 에스퍼가 우연히 한 시대에 동시에 태어났다. 두 에스퍼는 각자의 가이드와 결혼하였고, 두 가정이 함께 왕국을 건립하였다.

지금 반테온이 사는 왕국의 시초였다.

“2번 에스퍼와 3번 에스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결혼했고, 그 자손들은 모두 에스퍼로 발현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에스퍼가 유전된다는 걸 알았다.”

“그건 알아요.”

“알아도 들어. 그 후로 에스퍼와 핏줄이 섞인 자들을 귀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알아요!”

귀족은 에스퍼의 자손들이 결혼하여 비정상적으로 발현 확률을 높이며 탄생한 계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이들과는 핏줄부터 다르다는 자부심과 그들만의 유대감이 겹쳐 새로운 기득권이 되었다.

반테온은 안경을 추켜세우고 다음 설명을 이었다.

“개국 후 자연 발생 에스퍼로 나타난 이는 총 5명. 모두 S급이었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첫 번째 에스퍼만 유일하게 SS급으로 추정되지.”

“SS급이 가능해요?”

“S급이랑 얼마나 차이 나는 거예요?”

“SS급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자 조용히 듣던 학생들까지 소란이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반테온은 책상을 소리 나게 탁탁 내리쳤다.

“조용히. 아직 첫 번째 에스퍼가 SS급이라는 확실한 자료는 없어. 추정일 뿐이야.”

“그래도 기준이 있을 거잖아요.”

“학회에선 S급 에스퍼의 수치보다 3배 초과할 경우 SS급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쳤다.”

“와, 그게 가능해요?”

조용히 시키기 전보다 더 시끄럽게 재잘대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럼 첫 번째 에스퍼는 얼마나 강했길래 SS급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한 학생이 그나마 유용한 질문을 꺼냈다. 반테온은 나머지 잡소리를 깨끗하게 무시하고 설명을 이었다.

“우리가 사는 대륙 가운데는 거대한 사막이 있다. 다들 알지?”

“네! 유아루 사막이요!”

“원래 유아루 사막이 있던 위치는 거대한 산맥과 깊은 숲이 있는 울창한 수풀 지대였다. 발굴되는 화석으로 봐도 활엽수나 열대종들이 발견되고 있으니까. 그곳이 사막으로 변한 이유가 첫 번째 에스퍼의 폭주 때문이다.”

첫 번째 에스퍼는 자신의 가이드를 찾지 못했다. 아마 가이드란 대상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평생을 고통받았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이명과 환각에 시달리다가, 점차 온몸을 난도질하는 고통 속에서 괴로워했겠지.

에스퍼를 처음 겪었던 사람들은 그 초월적인 힘과 기괴한 광증에 공포를 느꼈다. 에스퍼와 조금이라도 얽힌 사람이라면 동료, 친구, 연인 모두를 배척했다. 결국, 어린아이조차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고 했다.

사랑하는 이를 모두 잃은 첫 번째 에스퍼는 대륙 중앙에서 폭주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사막만이 남아 대륙을 양분하고 있었다. 토양 속 모든 수분까지 말려버린 그 힘에 수백 년이 지나도록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해버렸다.

“멋있다.”

“그럼 중앙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다 죽었어요?”

“당연히 다 죽었겠지. 바보야. 산이 사막이 됐는데 사람이 어떻게 살아.”

아이들은 처절한 과거를 영웅담 듣듯 눈을 빛낸다. 강한 자를 동경하는 것은 그 나이대의 특권이니까.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반테온의 계획과 크게 틀어진 수업이다. 거기에 통제를 벗어난 학생들을 보니 쓴웃음만 올라온다.

“어차피 집중도 못 할 것 같으니 남은 시간은 자습해.”

“선생님 더 알려주세요! 똑같은 S급이라도 자연 발생이면 더 센가요?”

“자연 발생 에스퍼의 가이드가 되면 좋은 점이 있어요?”

평소라면 자습이라는 말에 쌍수를 들 놈들이 요란스럽게 삐약거린다. 반테온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가볍게 누르고 한쪽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상대해주면 수업이 마칠 때까지 떠들 기세다.

“조용히 자습.”

“에잉….”

원하는 정보를 더 얻을 수 없을 것 같은지, 학생들이 한둘씩 조용해지고 쏟아지던 질문이 멈췄다. 슬슬 눈치 보면서 소곤거리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그 정도는 포기했다.

다 큰 테아로트 놈도 신나서 떠드는데, 어린애들은 더 하겠지.

반테온은 중간중간 비어있는 자리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문을 떠올리며 되짚었다. 생각보다 반응하는 가문의 수가 많았다.

불안한 예감이 든다던 테아로트의 말이 떠올랐다. 짐승 같은 감을 가진 놈이니 아예 무시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의 예상대로 반테온과 엮여서 귀찮아질 확률은 거의 없을 테지만, 확실히 주변은 시끄러워질 것이다.

반테온은 수업이 거의 끝날 시간임을 확인하고 칠판에 과제를 적었다. 수업을 못 한 만큼 과제를 줄 테다.

점점 길게 적히는 과제 목록에 뒤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반테온은 찡얼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에 분필을 놓았다.

이 들뜬 분위기도 며칠 뒤면 가라앉을 것이다. 당분간만 참고 지내면 된다. 지금까지 자연 발생 에스퍼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S급이란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후엔 기존의 에스퍼와 섞여서 훈련받을 것이다. 센터에서 적당한 가이드도 붙이겠지.

처음엔 흥미를 느끼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을….

“야! 속보! 그 자연 발생 에스퍼 말이야. 방금 SS급 나왔…! 헉, 선생님.”

강의실로 한 학생이 뛰어들어오면서 외쳤다.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돌진한 아이는 뒤늦게 강단에 선 반테온을 발견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학생을 훈계해야 옳지만, 그전에 아이들이 환호가 먼저 터졌다.

SS급이라는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지르는 비명이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반테온은 찢어질 것 같은 고막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눌렀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오늘 레테랑 같이 있던데?”

“대단하다. 어제는 요안나였잖아.”

소문의 SS급 에스퍼와 행동반경이 겹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원치 않은 정보들이 들렸다.

이름은 델로즈. 192㎝라는 에스퍼 중에서도 큰 키에 푸른빛이 도는 흑발을 가지고 있었다.

실물을 본 자들은 잘생겼다고 요란을 떨었으나 반테온에겐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이미 존재부터 민폐인 사람이 잘생겨 봤자 보기 좋은 민폐로 바뀔 뿐이다. 그리고 덩치만 큰 사내는 그의 관심에서 가장 먼 존재였다.

그래도 시간이 답인지라 처음 소란에 비하면 비교적 안정된 일상이 지나갔다.

그 에스퍼가 듣는 수업 중 반테온의 수업은 없었다. 초급 단계부터 빠르게 이수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고급 단계를 수업하는 반테온에게 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그전에 이 화제가 빨리 정리되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델로즈가 누구랑 매칭될 것 같아요?”

“여자 가이드가 되겠지.”

“아, 맞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델로즈가 센터에 들어오면서 반드시 지켜 달라며 한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자신의 가이드는 반드시 여자로 정할 것.

사람을 에스퍼와 가이드로 나누는 센터에선 동성 간 교류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평생 평민으로 자란 델로즈는 동성 가이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드물게 기특한 행동이다.

그 요청에 따라 여자 가이드들은 매일 델로즈와 매칭 테스트하기 바빴다. 그중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가이드는 밤중에 몰래 그의 방을 드나든다고 한다.

센터 규칙상 매칭 하지 않는 자들의 성적 접촉은 금지였다. 엄격하게 관리되는 센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델로즈는 넘기기엔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남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떨어질까, 냄새 맡으며 다들 눈감아주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남자 가이드가 델로즈의 방에 숨어 들어갔었다. 몰래 들어간 가이드는 깊은 새벽에 비명과 함께 핏덩어리가 되어 델로즈의 방을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그날 이후 장난으로라도 델로즈 곁에 가까이 가는 남자 가이드는 없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도 에스퍼가 가이드를 때리다니. 그것도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로 강하게. 상종도 하기 싫은 천박한 행동이다.

그 독특한 성벽 덕분에 반테온은 테아로트의 불길한 예상과 달리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럼 여자 가이드 중엔 누구랑 될까요?”

“그중 매칭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겠지”

“에이, 누가 그걸 몰라요. 매칭률이 다 비슷하니까 그렇죠. 조만간 임시 가이드를 고를 텐데 후보가 너무 많잖아요.”

“그건 SS급 마음이겠지. 어서 자리로 돌아가자.”

아이들은 미지근한 반테온의 대답에 투덜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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