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13)화 (13/112)

#13

“뭐죠?”

“가이드의 허락 없이 과한 접촉은 금지야.”

“…….”

테아로트의 지적에 케슬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사나운 눈빛을 하던 케슬란은 옆에 반테온이 있다는 것에 아차 싶었는지, 순식간에 순한 표정을 지었다. 테아로트의 발언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다시 반테온을 바라봤다.

“선생님. 방금 오셨으면 아직 구경 못 한 곳이 많겠네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저는 1차 충원 때 같이 와서 일주일 정도 여기 있었거든요.”

꼬리가 있으면 세차게 흔들릴 지경이다. 가볍게 무시당한 테아로트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어깨만 가볍게 으쓱거렸다.

케슬란은 평소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부드러운 눈이 반달처럼 휘고, 연한 갈색 머리카락이 어린 레트리버처럼 무해해 보였다. 다시 봐도 반테온의 취향에 부합하는 녀석이었다.

“어딜 가보고 싶으세요? 천막 위치는 어디예요?”

케슬란은 반테온 옆에 살갑게 붙어 팔짱을 꼈다. 테아로트가 제지할 것을 예상했는지 그와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달라붙었다.

반테온이 다시 제지하려는 테아로트를 말리자 케슬란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승리자의 미소다.

“너 경고했다.”

“선생님 괜찮죠? 제가 붙는 게 싫으세요?”

“상관없는데.”

“…….”

다 큰 성인 둘이 왜 유치하게 이러는 것일까. 원래 어리광이 많은 케슬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테아로트도 능글거리던 평소와 다르게 잔뜩 열이 난 모습이다.

케슬란은 짓궂게 웃는 표정으로 테아로트를 응시했다.

“그럼 2차 토벌대 조장님은 조원들에게 가보셔야죠. 선생님은 제가 안내할게요.”

“아하?”

“여긴 위험한 것도 없고. 안내는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케슬란의 말에 테아로트의 한쪽 눈썹이 슬쩍 내려갔다. 점차 험악해지려는 분위기에 반테온이 손을 들어 케슬란을 떼어냈다. 슬며시 멀어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테아로트를 바라봤다.

“그 말도 맞아. 너도 조원에게 가봐야지. 내일부터 당장 출진이라던데.”

“…….”

테아로트는 반테온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차마 인정하기 싫다는 듯 입매를 굳혔다. 반테온은 그런 테아로트를 다시 재촉했다.

“고집 피우지 마. 조장이 이렇게 자리를 길게 비우면 어쩌겠단 거야.”

“그놈들이 한두 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잘하겠지.”

“또 말도 안 되는 고집 피운다.”

“하…….”

테아로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본부 쪽에 불만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겠지. 알아서 하라고 조원을 내버려 두는 조장이라니.

“천막에 들어갈 때 연락해. 짐 푸는 거 도와주러 갈게.”

“그래. 그래. 나중에 보자.”

“……꼭 연락해.”

테아로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조금씩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케슬란은 한껏 신난 표정으로 반테온의 팔에 다시 붙었다.

“짐 정리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케슬란.”

“네?”

“너무 테아로트를 도발하지 마. 같은 A급이라도 차이가 나는 건 너도 알잖아.”

“……네.”

단호한 말에 풀이 죽은 대답이 돌아왔다. 테아로트는 케슬란과 같은 A급이었다. 하지만 테아로트는 능력치의 밸런스 문제로 그런 결과를 받았을 뿐, 파괴력과 집중도 부분에선 S급과 같은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겨우 A급에 턱걸이한 케슬란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대다.

“괜히 사이가 나빠서 좋을 건 없어.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 오기 부려봐야 네 손해야.”

“맞아요…… 그렇죠. 아직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놓지 않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 에스퍼가 승리욕이 있어서 나쁠 것 없지. 그래도 같이 임무를 하는 동안은 그러지 마.”

“네. 명심할게요.”

“그래. 착하다.”

포상으로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니 케슬란이 치아가 보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아무리 봐도 강아지 같은 녀석이다.

“일주일 전에 여기 왔으면 적응은 다 했겠네?”

“네! 그런데 조금 더 늦게 올 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센터에서 일어난 재밌는 구경을 놓치지 좀 않았을 텐데.”

“재밌는 구경?”

“아, 선생님도 모르시겠다. 선생님이 이곳으로 오시는 동안 생긴 일인데요. 얼마 전에 센터가 한 번 더 뒤집혔어요.”

케슬란은 방금 우울했던 기분을 잊고 신나서 설명했다.

“그 SS급 있잖아요. 델로즈. 2차 토벌대가 출발하고 며칠 뒤에 센터장실을 박살 냈대요.”

“뭐?”

“C동도 박살 냈는데, 센터장실이야 쉽겠죠. 센터장이 고의로 가이드를 숨긴다고 따졌다던데요. 이번엔 다른 센터 가이드 목록까지 깡그리 털어갔대요.”

소문의 가이드 반테온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 센터를 떠나면 그 예의 없는 천둥벌거숭이의 이야기를 모르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어디를 가나 자연스럽게 소문이 흘러들어왔다.

“이미 매칭 에스퍼가 있는 가이드 목록까지 전부 다 털어갔다니까요. 진짜 미친 것 같아요.”

“…엄청나네.”

“다른 에스퍼와 매칭한 가이드라도 마음에 들면 뺏겠다는 건데. 지금 자기 가이드 뺏길까 봐 에스퍼들이 다 긴장 상태예요.”

“…큰일이겠네.”

“뭐, 저는 뺏길 가이드가 없어서 상관없지만요.”

반테온에게 기댄 케슬란의 고개가 더 깊어진다. 그는 반테온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는 듯 뺨을 비비적거리는 행동을 취했다.

“그 미친 SS급이 선생님을 노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러게.”

반테온은 애써 대답하며 창백한 얼굴을 돌렸다.

***

반테온의 급하게 지은 티가 나는 자신의 천막 앞에 도착했다. 다른 천막보다 유독 깨끗하고 각이 잡혀 있었다. 미리 도착한 반테온의 짐들이 그 앞에 차례대로 쌓여있었다.

힘없이 걸어 들어가 개인 물품을 깔지 않아 딱딱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델로즈가 조금 더 철저하게 가이드를 수색한다는 말에 괜히 심장이 덜컹거렸다. 안전한 곳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아직 델로즈는 초급 교육을 듣는 중이었다. 중급을 수료하기 전까진 센터를 벗어날 수 없으니 토벌대에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토벌대 기간은 짧아도 6개월. 그때까지 여기서 버텨야 한다. 필요하다면 1년을 있더라도 델로즈를 피할 마음을 가졌다.

반테온이 피곤한 눈가를 꾹꾹 누르고 있을 때, 단말기에 빨간 불이 깜박이며 알림 소리가 들린다.

신경질적으로 잡아채서 내용을 확인하자 그 안에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반테온의 일정이 표시되어 있었다.

에스퍼는 일주일에 4일 정도 파견을 나가고, 가이드는 매일 3시간 정도 가이딩을 의무로 시행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 난조로 힘들 경우엔 오전 중에 미리 보고 바란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센터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보자,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체감되었다.

정신 차려야지.

반테온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센터와 다르다. 정착지이긴 하나 여긴 전장이다. 지척에서 마물이 튀어나오는 긴박한 장소였다. 여기서만큼은 델로즈를 생각하지 말고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보내자.

그렇게 6개월을 보내면, 그사이 다른 임시 가이드를 찾겠지. 설마 그때까지 비워두겠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에스퍼다. 가이딩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던 시절에야 버텼겠지만, 한 번 가이딩 받아본 에스퍼가 반년을 버틸 리 없다.

반테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쌓여 있는 짐으로 손을 뻗었다.

***

머리를 비우고 싶다던 반테온의 소망은 훌륭하게 이뤄졌다.

“3조 지원 좀 해주세요.”

“여기도 오버 차지 상태예요, 혹시 여유 되는 분 없으신가요?”

“제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테온 님!”

하루 3시간 가이딩은 무슨. 마물이 표준 근로 시간을 지켜 줄 리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마물 때문에 에스퍼들은 24시간 경계 상태였고, 덩달아 가이드도 추가 근무가 확정이었다.

최소한의 휴식을 취한 후 현장에 투입된 가이드들의 눈 그늘이 날이 갈수록 짙어졌다. 반테온이 소속된 2차 토벌대가 도착한 후, 잠시 숨을 돌라는가 했더니 또 똑같은 상태라고 했다.

점차 폐광의 깊은 곳을 탐사하기 시작했고, 외부를 떠도는 것과 달리 목숨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마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심 에스퍼 전력들이 모두 폐광 쪽에 파견되자, 가이드도 함께 가게 되었다. 탐사 지대가 깊어지면서 효율이 높거나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들이 동행한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가이드들과 2차 토벌대의 가이드가 본부에 남아 전투력이 부족한 에스퍼를 다독이며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역시 반테온 님…….”

가이드는 유전과 상관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에게 경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왕국에서 가장 귀한 핏줄이 제일 험한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토벌대의 사기가 올랐다.

그를 귀족의 모범이라며 추켜세우는 목소리도 틈틈이 흐르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반테온 옆에 1조 소속 가이드가 살갑게 붙었다.

“석 달째 추가 근무를 하시고 있잖습니까. 물론 많은 덕을 보고 있지만, 쓰러지실까 봐 걱정됩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버틸 만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순수한 감탄이 섞인 목소리다. 그의 감상처럼 반테온도 자신의 체력에 놀라고 있었다. 수많은 가이딩을 하면서도 한계가 온 적이 한 번도 없기에 남들보다 가진 능력이 클 거란 예상은 했었다. 물론 그 예의 없는 델로즈에게 잡혔을 땐 잠시 위험했으나, 그때를 제외하고는 가이딩을 힘들게 여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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