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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18)화 (18/112)

#18

충격적인 이야기에 반테온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주변에 흔들리는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가이드가 넘치는 센터에서 온 사람이 왜 이렇게 불안정한 건지 의아했는데, 이런 이유라니.

상황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가이딩을 받지 못한 에스퍼는 언젠가 폭주로 죽는다. 낮은 급의 에스퍼라도 폭주의 파괴력은 본래 에스퍼의 힘보다 몇 배나 강력했다. 그런데 SS급이 가이딩을 받지 못하여 폭주한다면?

첫 번째 자연 발생 에스퍼가 그랬듯 대륙 중앙이 양분화될 것이다.

처음엔 아직 임시 가이드도 없고, 교육도 받지 않은 델로즈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궁금했었다. 이제야 델로즈를 이곳에 보낸 센터의 의도를 알 것 같다.

가이드를 찾을 수 없는 에스퍼는 시한폭탄이다. 왕국의 중앙인 센터에 둘 수 없는 거대한 재앙이었다. 그러니 센터와 가장 먼 곳에 격리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쪽과는 혹시 가능할지 확인하러 왔는데, 눈만 버렸군.”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토벌에 합류할 것이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끝은 정해져 있었다. 마물의 아지트가 정리되거나, 버티지 못한 델로즈가 폭주하여 죽거나…….

아니. 그보다 델로즈는 자신이 외진 곳에서 죽으라고 이곳에 발령되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반테온이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혹시라도 그의 무표정한 얼굴 구석에 조금의 그늘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폈다. 하지만 델로즈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모든 가이드와 가이딩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상황이다.

아무리 교육을 끝내지 못한 상태라도 상황의 심각성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에스퍼라면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한 번 폭주의 위기를 겪었던 그였으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인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희가 아는 대로 되겠지. 폭주하거나… 내가 왜 이런 걸 설명하고 있지?”

말을 멈춘 델로즈는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그는 짜증 난다는 투로 돌아섰다.

“애초에 사내놈이랑 가능할 리 없지. 내가 실수했다.”

“…….”

“괜히 기분 더럽게 눈만 버렸군. 오늘 들은 건 잊어.”

델로즈는 그대로 천막 밖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나타났을 때처럼 기별도 없이 멀어지는 동안, 반테온은 그대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홀로 남은 반테온은 괜히 천막을 느린 걸음으로 서성거리며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델로즈가 폭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SS급의 폭주라면 재앙과도 같다. 또다시 대륙의 절반이 날아가는 대형 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학생들에게 폭주 관련 강의를 했던 반테온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자료를 접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진 재앙인지.

어딘가 갑갑한 속을 누르고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는 왜 멀쩡히 진행되던 가이딩이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일까.

과거를 되짚어도 딱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센터가 운영되는 수백 년 동안 델로즈와 같은 증상을 겪은 에스퍼는 없었다. 폭주의 위기에서 벗어난 상대도 많았으나, 그 이후 가이딩에 문제를 겪었다는 기록도 본 적이 없었다.

델로즈를 강제로 폭주시켰다는 그 약 때문일까. 불법적인 약품이 섞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그 부작용이 생긴 걸지도 몰랐다.

“음…….”

반테온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던 중 한 가지 더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델로즈는 왜 그 많은 가이드 중에 반테온을 찾아온 것일까.

에스퍼들의 감은 짐승보다 뛰어나다. 남자 가이드인 걸 알면서도, 폭주를 막은 가이드가 반테온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다가왔다면…….

‘혹시 나는 가이딩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날 먹은 약의 부작용으로 그때 가이딩한 반테온의 기운이 강하게 박힌 것이라면? 델로즈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끌려서 반테온에게 다가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뻗친 반테온은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에 자신만 델로즈의 가이딩이 가능하다면, 억지로 그에게 묶일 것이다. 그건 반테온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결과였다. 당연히 당장 멀어져야 할 상황이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륙 전체의 안전이 걸린 문제였다. 개인의 안위를 생각하여 몸을 숨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일이 어떻게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그날 델로즈를 무시해야 하는 거였나. 하지만 그대로 폭주했다면 수도 전체가 폭파되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결론은 같았다.

반테온에게 쥐어진 선택지는 두 개다. 델로즈의 가이딩을 시도해보고 그에게 묶인 몸이 되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수도로 도망쳐서 델로즈가 폭주하여 죽는 걸 기다리거나.

무얼 선택해도 끔찍한 이야기다.

반테온은 단말기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델로즈가 폭주한다면 대륙의 절반이 날아가는 피해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외곽에서 폭주한다고 하나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당연히 인명 피해가 날 것이고, 폐허가 된 땅은 수백 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않는다.

스스로 양심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자신의 위치를 마음껏 누리며 살았다. 범죄와 합법 사이를 넘나들며 편한 인생을 즐겼다. 죄책감, 책임감, 정의감 따위는 반테온의 인생과 가장 동떨어진 단어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델로즈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돌아가면 된다. 어차피 반테온의 가이딩이 통한다는 확신도 없고. 도망친다고 해도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가 폭주하여 희생자가 난다고 해도 그걸 반테온의 잘못이라 지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 진짜.”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변할 리 없는 단말기 화면을 뚫어지라 노려본다. 처절하게 싸우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결국 무게추가 기울었다.

아직 확실한 건 없다. 델로즈가 반테온과 가이딩 가능할지 모른다는 건 오직 추측일 뿐이다.

한 번만 확인해보자.

델로즈가 자신과도 가이딩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센터로 복귀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날 폭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도 죄책감이 들진 않겠지.

화면이 꺼진 단말기를 거칠게 치우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빨려들 듯 전신이 꺼진다. 몸을 돌려 베개에 고개를 묻었다.

“내가 미쳤지”

입 밖으로 한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

“너 미쳤어?”

“…….”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리가 없지. 어디 아파? 정신과 상담이라도 예약할까?”

“…….”

“말이라도 해 봐!”

테아로트가 크게 소리쳤다. 대꾸도 하지 않는 반테온의 행동에 가슴을 치며 답답해한다.

어젯밤 내내 고민하던 반테온은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왕 확인할 것, 델로즈와 가까운 곳에서 빨리 확인하고 센터로 도망치기로.

지금 반테온이 근무하는 본부에 있으면 델로즈와 마주칠 일이 적었다. 밤새 고민한 끝에 델로즈가 소속된 폐광 진입 조로 전출을 신청했다.

한시라도 빨리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 소식을 알게 된 테아로트가 아침부터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중이다.

“갑자기 토벌대를 지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때라도 정신과에 보내야 했는데.”

“진정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테아로트는 명단이 띄워진 단말기를 거칠게 흔들더니 반테온의 앞에 소리 나게 집어 던졌다.

감정을 가득 실은 외침에 고막이 따갑다.

“진짜 이유 말 안 해줄 거야? 이 지경이 되도록?”

“…….”

넘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같이 발을 구르는 테아로트의 모습에 반테온은 갈등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걸까.

“제발 말 좀 해봐. 갑자기 왜 이래.”

테아로트는 거의 울 듯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테아로트라면 다른 곳으로 말이 새어 나갈 걱정은 없겠지. 이곳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갈등하는 이유는 반테온 자신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꼬여버렸으니 지금이라도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금은 한 명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할 처지였다.

“알았어. 앉아봐.”

“좋아.”

반테온에 부름에 테아로트는 냉큼 맞은편에 앉았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열의에 가득 찬 태도였다. 반테온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너 델로즈에 대해선 어디까지 알아?”

“뭐! 센터 가이드랑 다 어긋나서 여기로 쫓겨난 거? 조만간 폭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거?”

역시 정보에 빠른 놈답게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맞아. 그런데 나는 가이딩이 가능할 것 같아서.”

“왜? 다른 사람이 다 안 되는데 왜 너만 될 거라 예상하는 거야?”

“어디까지 믿어줄진 모르겠지만, 사실…….”

테아로트는 얼마나 대단한 이유를 말하는지 들어보자는 태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직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반테온은 침을 깊게 삼키고 입을 열었다.

“내가 그 가이드야.”

“무슨 가이드?”

“델로즈가 찾는 가이드라고.”

“……응?”

“…….”

“응? ……어?”

테아로트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되새기며 고개를 기울였다. 잠시 후, 반테온의 말을 완벽히 이해했는지, 눈알이 튀어나오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테아로트의 눈이 경악스럽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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