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번거로운 임무에 끌고 가지 않는다면 반테온 입장에선 반길 일이다.
“이름은 위치 추적기지만요. 상대방의 파동이 불안정이나, 피로도까지 체크 가능하니까요. 필요하면 꼭 신청하세요.”
“네. 기억해두겠습니다.”
“…….”
델로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몸을 의자에 기댔다. 아까 반테온이 말을 자르고 위치 추적기를 거절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런 반응을 보자 반테온은 자신이 먼저 거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가이딩 날이죠? 가이딩실까지 이동하기 번거로우시면 이곳에서 하셔도 괜찮아요. 전 자리를 비켜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요르민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테온은 문밖으로 나가는 요르민 선생의 뒷모습을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지금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델로즈와 접점을 만들기 어려울 텐데. 저 미련한 델로즈는 뚫어지게 바라볼 뿐, 두 번의 수업 내내 사적인 대화 한 번을 나누지 않았다.
미련하게 앞에 데려다줘도 손 한 번 뻗지 못하다니. 매일 상대를 바꾸며 여자 가이드와 붙어 지냈다는 과거가 그리울 지경이다. 이렇게 둔해서야 반테온을 대신할 여자 가이드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속으로 머리를 싸매는 반테온 앞으로 커다란 손이 내밀어졌다. 마디가 굵고 단단한 손이다.
“가이딩. 안 할 건가?”
“……해야지.”
델로즈의 안정된 기운을 보면 가이딩이 없어도 충분한 상태였다. 그래도 센터에서 지정한 횟수를 채우기 위해 손을 뻗었다. 정해진 의무는 수행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반테온이 책임을 피할 수 있다.
눈앞에 나타난 단단한 손을 바라봤다.
토벌대에서 가이딩을 하기 위해 숱하게 잡았던 에스퍼의 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폭주했던 과거처럼 기운을 마음대로 뽑아가지도 않을 테고, 잠시 닿았다가 멀어지면 된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반테온의 하얀 손이 델로즈의 거대한 손아귀 안에 잡아먹힐 듯 갇힌다.
“……!”
끝만 닿을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제대로 된 접촉에 반테온의 어깨가 튀었다. 델로즈의 긴 손가락 끝이 반테온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쓸고 넘어갔다. 맞은편에 앉은 델로즈는 진정되는 기운을 느끼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닫힌 눈꺼풀이 열리더니 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긴 손가락 사이가 벌어지고 반테온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다. 손가락 안쪽 가장 연약한 부분에 뜨거운 살덩이가 간지럽게 맞닿았다. 생소한 느낌에 팔뚝까지 진동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깍지 낀 형태가 되자 반테온이 인상을 쓰며 상대를 마주 봤다.
“뭐야?”
“이게 더 효율이 높다고 하더군.”
그건 맞는 말이다. 접촉 부위가 넓을수록 가이딩 속도가 빨랐다. 그걸 알고 있지만, 그와 실제로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불편해하는 반테온의 반응에 델로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확인한다면서 조용하길래 말이야.”
“……무슨 말이야?”
“꼭 챙겨보라던 그 숙제에 나오던데?”
그 말에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잠시 잊고 있던 살색 향연의 홀로그램이 떠오른 탓이다. 당혹감에 입술을 꾹 다문 모습을 보며, 델로즈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숙제. 네 말대로 제대로 챙겨봤지. 1초도 넘기지 않고 말이야.”
“…….”
“칭찬은 해주지 않을 건가?”
이를 악물고 맞닿은 손바닥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다급하게 손을 뺐다.
“다 끝난 건가?”
반테온은 자신이 에스퍼가 아님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처음 가이드로 발현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숱하게 에스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실하게. 간절하게 에스퍼이길 바랐던 적은 없다.
자신이 에스퍼라면 저 승리감에 가득 찬 면상을 한 대 쳐버렸을 텐데. 때려봤자 자신의 손만 아플 걸 아는 냉정한 판단력이 원망스러웠다.
“간다.”
“벌써?”
“말하는 걸 보니 가이딩은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멀쩡해 보이네.”
반테온은 그대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걸어놓은 겉옷을 챙겨 교육실을 뛰쳐나왔다. 등 뒤로 쾅, 하고 요란하게 닫히는 문소리가 들렸다.
문이 다 닫히기 전 아주 짧게 델로즈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풀리지 않는 화를 담아 씩씩거리는 걸음으로 방을 향했다. 민망해할 걸 알면서 기어코 상기시키다니. 저 배려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에스퍼가 자신의 임시 에스퍼란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심지어 주 2회씩 얽혀야 하는 지독한 악연이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살았기에 이런 상황에 빠진 것일까. 마음대로 살았던 건 맞지만 이런 벌을 받을 만큼 잘못했던 것일까.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힘찬 걸음을 내딛다가, 발꿈치가 아파져 올 때쯤 걷는 속도가 줄었다.
천천히 걷기 시작하며 반테온은 정원 분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형편없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델로즈를 조금은 괜찮은 놈일지 모른다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다. 그가 상대의 민망함을 고려할 마음 따위 없는, 안하무인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반테온은 발아래 펼쳐진 초록빛 잔디를 박차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사람들이 반테온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항상 뒤따르던 익숙한 동경과 신기함 사이 새로운 감정이 끼어들었다.
시기. 질투. 시샘. 이런 것들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겪어보지 못한 시선이었다. 태어났을 때 가진 신분에는 날을 세우지 못하면서 반테온이 SS급 에스퍼의 가이드가 된 상황을 아니꼬워하는 것이다.
‘델로즈가 정말 탐나나 보군.’
반테온 눈에는 걸어 다니는 오염물 정도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황금 덩어리로 보이겠지. 에슬란테가 SS급 에스퍼를 가졌다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떠드는 이들도 많았다. 불공평이라…….
그 말은 반테온이 제일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렇게 델로즈를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왜 하필 자신과 엮여서 이 고생을 겪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델로즈 님이 남자 가이드와 매칭하다니…….”
“역시 에슬란테인가?”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어렵지 않게 귀에 들어온다. 그래. 다른 사람은 반테온이 델로즈를 차지했다고 생각하겠지.
복도를 천천히 걷는 동안 수많은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가 돌아선다. 몇 배로 늘어난 관심과 경계 따위 대수롭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살았으니, 새삼 새로운 시선이 추가된다 해도 대수롭지 않았다.
그저 당장이라도 델로즈를 봉투에 담아서 던져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서글플 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슬란테 가문이 힘을 독점하는 것이다. 델로즈가 가이딩이 되지 않는 것도 에슬란테의 수작일지도 모른다. 등등 다양한 추론이 들려왔다. 누구보다 델로즈와 멀어지기 바랐던 반테온 입장에선 억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반테온은 대수롭지 않게 느긋한 걸음으로 그 사이를 지나간다. 어차피 말만 시끄럽게 떠들 뿐, 반테온에겐 털끝만 한 위협도 끼치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에겐 당장 눈앞에 더 큰 장애물이 버티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지정된 가이드실 앞에 멈췄다.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일주일에 두 번 약속된 가이딩 날이다. 델로즈는 항상 반테온보다 일찍 도착했으니,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괜히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며 옷을 정돈했다. 복도 옆 창문으로 주름 하나 없는 깔끔한 복장이 보인다. 다듬을 필요도 없는데 괜히 손이 간다. 어떻게든 시간을 늦추고 싶은 반테온의 작은 반항이었다.
크게 숨을 쉬고 손잡이로 손을 뻗는데, 두꺼운 나무문이 안쪽으로 스르륵 열렸다. 안에서 제복을 대충 걸친 단단한 가슴팍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높이에 남의 가슴이 있는 경험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안 들어오고 뭐 하지?”
“…….”
그래. 50m 떨어진 거리에서도 대화를 듣는데, 문 앞에 선 반테온의 기척은 손바닥처럼 쉽게 보일 것이다. 괜히 긴장한 모습을 보인 것 같은 머쓱함에, 반테온은 델로즈를 가볍게 밀고 방으로 들어갔다.
델로즈는 별말 없이 그런 반테온의 뒤를 따라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눈에 보이는 그의 기운은 깊게 고인 호숫물처럼 잔잔하고 고요했다. 유리알처럼 단단한 형태에 반테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본인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왜 꾸역꾸역 주 2회를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와 손을 맞잡고 있는 시간이 그에게도 즐겁지 않을 행위일 텐데.
반테온은 자연스럽게 두꺼운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러곤 대충 약하게 가이딩을 시도한다. 최소한 기운이 움직이는 느낌만 나도록 움직인다. 이미 안정적인데 뭘 가이딩 한단 말인가.
이제는 익숙하게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끼운 델로즈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기운에 유독 예민한 것 같군.”
“뭐?”
“종종 닿기도 전에 상태를 아는 것처럼 바라볼 때가 있어. 가이드에게 그게 가능한가?”
그 말에 반테온의 동공이 약하게 흔들렸다. 가벼운 그의 태도에 방심했던 것일까. 티가 나게 가이딩을 소홀히 했던 탓일까. 반테온은 자신의 속이 들킨 느낌에 침을 삼켰다.
자신이 방심했다 하여도 그걸 이렇게 눈치채다니. 예민한 건 반테온이 아니라 델로즈였다. 일반적으로 가이드와 닿아 주변 기운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가이딩 중이라 생각하기 쉽다. 이렇게 기운이 안정된 상태에선 정말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제대로 가이딩을 실행하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