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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47)화 (47/112)

#47

귀족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브랜드로, 원활한 밤 생활을 도와주는 온갖 물건을 파는 걸로 유명했다.

공개적인 가게도, 유통처도 없었다. 제품을 사용하는 단골 사이에 비밀스럽게 거래되는, 없어서 못 구하는 브랜드라고 들었다. 굳이 찾을 이유가 없었기에 반테온도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별의별 물건이 다 들어오는군.

처음, 이 브랜드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땐, 부족한 놈들이 이상한 곳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반테온 눈에 보이는 붉은빛을 보니 평범한 약은 아닌 것 같았다. 소문만큼 제법 범상치 않은 기운이다.

그나마 들어온 선물 중엔 가장 흥미로운 물건이긴 했다. 반테온은 다른 선물들과 다르게 침대 가까운 곳에 슬며시 숨겨놨다. 상표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서 구석에 넣었다. 상자엔 별다른 설명서가 들어있지 않았다.

“오늘 선물은 이 정도인가?”

어느 정도 깔끔하게 정리된 방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 관리도 직접 하고 있으나 이대로 상황이 지속하면 사용인을 더 고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반테온은 고개를 저으며 재킷을 걸쳤다.

***

멀리서 갈색 털 뭉치 같은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케슬란이 달려왔다.

“선생님!”

뒤에 꼬리라도 달렸다면 신나게 흔들릴 듯한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케슬란과는 선약을 잡지 않아도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여긴 무슨 일이야?”

“앗, 저쪽이 제 숙소거든요. 선생님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여서 뛰어왔죠!”

케슬란이 가리키는 쪽은 제법 떨어진 에스퍼 숙소 중 한 군데였다. 반테온이 자주 걷는 산책로와 숙소 사이엔 별다른 장애물이나 건축물 없이 뻥 뚫려있긴 하지만, 가깝게 보일 거리는 아니었다. 가끔 잊고 살지만, 케슬란도 A급 에스퍼답게 능력이 좋았다.

케슬란은 눈을 반짝이며 반테온에게 물었다.

“소식 들었어요. 그 녀석이 사고를 쳤다면서요!”

그 질문에 가볍게 대답해주기엔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사고라는 말에 사람들의 귀가 더 쫑긋거리는 모습이 느껴진다. 반테온은 정중하게 웃으며 케슬란에게 고갯짓했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그 신호를 기민하게 알아챈 케슬란은 머리카락이 날리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평범한 사제지간인 것처럼 복도를 걸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다들 델로즈의 소문을 들을 것이겠지.

반테온과 델로즈가 어떤 사이이기에 밤에 몰래 만났으며, 무슨 일이 있었기에 비상 경고를 울린 것일까 흥미를 느끼는 눈길이 뒤따랐다.

“엄청나네요.”

반테온의 한 걸음 뒤에서 처음 그 시선을 겪는 케슬란이 작게 중얼거린다.

“부담스러워?”

“괜찮아요! 그것보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게 더 좋으니까요.”

사랑스러운 대답에 기특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반테온처럼 어디를 가나 주목받는 삶을 살았거나, 델로즈처럼 누가 봐도 상관없는 안하무인이 아니라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분위기일 텐데. 케슬란은 어색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꿋꿋하게 반테온의 옆자리를 지켰다.

“내 서재로 갈까?”

이런 분위기면 조용한 곳을 찾는 건 힘들었다. 에스퍼가 넘치는 곳이니 어디를 가도 귀가 열려있을 것이다. 차단 장치가 되어있는 자신의 서재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다.

반테온의 제안에 케슬란이 환하게 웃었다. 주변 시선이 더 따갑게 모인다. 요즘 워낙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니 이런 반테온의 행동도 곧 센터에 퍼질 것이다. 내일쯤 또 새로운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델로즈를 거부하고 어린 A급 에스퍼와 어울린다며 온갖 추측이 오가겠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잠시 시끄럽고 말 일이다.

어차피 델로즈의 증상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정식 파트너도 아니고 임시 매칭 상태였으니, 사태는 빠르게 해결될 것이다.

지금 과열된 관심이 집중될 뿐이지, 시간이 지난다면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난다고 시선 받을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서재에 도착하여 문을 닫자마자 케슬란이 재빠르게 팔뚝에 붙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그놈이 험하게 군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야.”

물론 밤중에 찾아와 남의 얼굴에 고개를 박긴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닿은 뺨과 목이 간지러운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케슬란에게 해서 괜히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도, 케슬란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머리 반 개는 작은 아이가 자신을 걱정하니 뭔가 주인님 지키려는 소형견 같아서 귀여워 보인다. 반테온은 복도에서 참았던 만큼 케슬란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었다.

“간지러워요.”

환하게 웃는 모습에 반테온의 머릿속엔 케슬란과 나눈 대화가 스쳤다.

“케슬란. 예전에 델로즈가 네 뼈를 부러트렸다고 했지?”

“네.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적이에요.”

그때 케슬란의 말을 듣고는 당연히 기분 탓이리라, 오해가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게 맞을지 모른다. 언제부터 가이드 자각 증후군을 겪고 있는지 몰라도, 이미 그때도 반테온만 가이딩이 가능한 상태였으니까.

짐승 같은 놈이 본능적으로 케슬란을 경계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독방에서 나온 후 케슬란을 또 위협할 확률이 높았다. 지금은 독방에 있으나 생각해보면 이번 일의 계기도 케슬란이었다. 단둘이 밀회를 즐겼다는 이유로 밤에 막무가내로 찾아오지 않았던가.

“케슬란.”

“네?”

“혹시 델로즈가 독방을 나온 후에 또 비슷한 행동을 하면…….”

“괜찮아요.”

꺼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케슬란이 방긋 웃었다. 반테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로웠다.

“분명 그 무식한 녀석이 견제하겠죠.”

“위험하지 않겠어? 지금이라도 나와 거리를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괜찮아요. 제가 다치면 선생님이 걱정해 주실 거잖아요.”

반테온 경고는 절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케슬란은 이미 뼈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케슬란은 그런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말간 얼굴로 생글거렸다.

“몸을 다쳐도 좋으니 선생님이 곁에 있고 싶어요.”

“음…….”

본인이 저렇게 말하면 강제로 떼어내기도 어렵다. 걱정이 아니라 거절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케슬란에게 말했다.

“그래도 델로즈가 위협하면 바로 단말기로 연락해.”

“저 선생님 단말기 코드를 모르는걸요.”

지금껏 단말기 코드도 알려주지 않았나 보다. 반테온은 자신의 무심함의 새삼 감탄했다. 케슬란과 개인적인 만남을 지속한 지 1년도 지났는데, 생각해보면 그의 숙소가 어딘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단말기 줘봐. 추가해 줄게.”

“정말요?”

“위험한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헤헤.”

반테온이 케슬란의 단말기를 받아서 조작하는 동안, 케슬란은 뺨을 붉히며 수줍게 웃었다.

“오늘 제가 운이 좋은가 봐요.”

“혹시 다른 건 필요한 건 없어? 가능하면 들어줄게.”

반테온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질문을 했다. 남에겐 하지 않을 말이었으나, 반테온과 함께 있었단 이유로 다리까지 다쳤던 케슬란에게 가벼운 보상을 해줄 생각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잠시 고민하던 케슬란은 슬쩍 눈동자를 위로 들어 눈치를 살폈다. 말을 꺼내도 될지 조심스럽게 눈치 보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편하게 말해봐.”

“저랑 센터 밖에서 데이트해 주시면 안 돼요?”

단둘이 데이트라는 말에 손이 멈췄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모를 요청에 말을 아꼈다. 반테온의 침묵이 길어지자 눈치를 살피던 케슬란이 손을 저으며 당황했다.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저도 갑자기 든 생각이라…….”

“……뭐, 괜찮으려나.”

“어?”

놀란 토끼 눈처럼 케슬란의 눈이 커졌다.

케슬란이라면 나쁘지 않은 상대다. 귀엽고 눈치도 빠르고, 무엇보다 주제를 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델로즈와 엮는 불쾌한 소문도 슬슬 기분이 나쁘니, 이쯤에서 확실히 반테온의 취향은 이런 사람이라고 주변에 알리는 것도 괜찮겠지.

“어…… 그러면,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케슬란의 눈이 반짝인다. 지금까지도 매번 반짝인다고 생각했던 눈에서 빛이 쏟아져 내릴 듯했다.

“그래. 네 마음에 드는 데이트가 될진 모르겠지만.”

“물론이죠! 뭐든 좋아요! 데이트 코스도, 준비도 전부 제가 할게요.”

“그럼 고맙지.”

“와!”

반테온의 승낙이 떨어지자 케슬란은 신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둥대며 서재 문을 열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모습에 작게 소리 내 웃었다.

반테온이 축객령을 내리기 전에 케슬란이 스스로 사라진 건 처음이다. 이런 맛에 연하를 만나지. 반테온은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

“쉬고 계셨어요?”

소델 선생님이 웃으면서 반테온에게 다가왔다.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있던 반테온은 순식간에 대외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전에 대리 수업해 주신 보답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오래 걸렸죠?”

“아닙니다. 제가 자리를 비운 탓이죠.”

대리 수업에서 델로즈를 마주친 후 바로 토벌대로 도망쳤었다. 소델 선생님은 그 후에 센터로 돌아왔기에 지금까지 마주칠 일이 없었다. 복귀한 후에도 수업 없이 쉬고 있으니 만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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