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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48)화 (48/112)

#48

“상은 잘 치르셨습니까?”

“네, 덕분에 잘 치를 수 있었어요. 한동안 정신이 멍했는데 이젠 괜찮아요. 사실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원래 불편하셨나 봅니다.”

그 질문에 소델 선생님이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네. 갑자기 돌아가시긴 했지만, 워낙 지병을 오래 앓으셨으니까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군요.”

“이미 지난 일인걸요. 그리고 사실 너무 놀라운 소식을 들어서 빨리 벗어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소식이라면, 반테온과 델로즈의 임시 가이드 매칭 소식일 것이다. 상을 겪은 사람도 반응하다니. 어이가 없음에 속으로 작게 웃었다.

“이제 장례도 무사히 치렀으니 다시 일상에 복귀해야죠. 그러고 보니 반테온 선생님의 부모님은 괜찮으시 ……아.”

소델 선생님은 이야기하던 내용을 끊고 입을 다물었다. 왕국에서 유명한 반테온 부모님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 돌아가셨습니다.”

“맞다. 죄송해요.”

“아닙니다. 제법 오래된 일이니까요.”

반테온의 부모님은 반테온이 어릴 때 돌아가셨다. 에스퍼와 가이드였던 부모님은 서로 서른이 넘은 후에 만났다. 일반적으로 에스퍼와 가이드가 어린 나이에 매칭 하는 것과 비교하면 늦은 시기였다. 두 사람이 만날 당시에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에스퍼였던 아버지는 괜찮았다. 원체 건강한 몸에 꾸준히 관리받은 덕에 질병도 부상도 겪지 않았으니까. 가이드인 어머니가 문제였다.

지금은 가이드에 관한 인권이 강화되어 과도한 가이딩을 금지하는 제도가 생겼다. 어떨 때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이드를 보호했다.

부모님 세대에는 아직 가이드를 에스퍼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풍조가 남아 있었다. 말로는 평등하다고 말하면서 은연중에 신체적인 한계를 지적하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두 분이 만나기 전, 가이드던 어머니의 몸은 이미 좋지 않았다.

가이딩의 원천은 생명력이다. 가이드의 생명줄을 갉아먹어 에스퍼를 지탱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 여러 에스퍼를 겪으며 무리하게 혹사당했었다.

아버지는 뒤늦게 만난 자신의 가이드를 하루라도 더 살리기 위해 온갖 귀한 것들을 동원했다. 넘치던 에슬란테의 재산을 쏟아부어 의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몸에 좋은 것들을 긁어모았다.

최근 의료 기술 중에는 그때 개발한 기술이 40%를 차지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생명은 돈으로 들어 올리기엔 너무 무거웠다.

지치고 야위어가던 어머니는 반테온이 10살이 된 해에 돌아가셨다. 동생은 기억도 못 하는 아주 어린 아이일 때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건강했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가이드를 따라갔다.

며칠간 왕국 전체에 부조기가 올라갈 정도로 그 당시의 충격은 굉장했다.

에슬란테가 살릴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살리지 못한다. 한 번 손상된 가이드의 생명력을 무엇으로도 복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제야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의 가이드만 싸고돌던 에스퍼들이 가이드의 인권에 눈을 돌렸다. 그 이후 정해진 횟수 내에서만 가이딩 하는 안정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오랜만에 떠오른 부모님 생각에 반테온은 괜스레 하늘을 바라봤다. 기억 속 부모님은 항상 침대에 누워있던, 낙엽처럼 마른 가이드와 그 모습을 축 처진 등을 한 채 바라보는 에스퍼였다.

무거워진 분위기에 소델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요.”

“괜찮습니다.”

“아, 사실 반테온 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서 여쭤보러 왔는데, 지금은 말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고…….”

눈치를 보는 소델 선생님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가요?”

“혹시, 반테온 님께서 센터 수료생과 친밀한 사이라는 소문이 도는 걸 아시나요?”

소델 선생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정확히 듣지 않아도 어떤 소문인지 알 것 같았다. 케슬란과 반테온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소문이 퍼진 것이겠지.

생각보다 빨리 퍼지긴 했으나 여기까진 반테온의 의도대로였다.

“그냥 가볍게 알아가는 단계입니다.”

“하긴 반테온 님도 혼자 지내신 지 오래되셨으니 문제 될 건 없죠. 케슬란 군도 교육을 수료한 지 제법 지났고…….”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도 끝을 흐리던 소델 선생님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럼 케슬란이 반테온 선생님과 조만간 함께 외출한다는 것도 진짠가요?”

그 말에 반테온의 눈썹이 움직였다. 앞선 소문은 복도에서 마주친 이가 많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지금 질문은 달랐다.

두 사람이 외출 약속을 잡은 것은 반테온과 케슬란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케슬란이 경솔하게 데이트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닐 것 같진 않았는데.

잠시 표정을 숨긴 반테온은 언제나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군요. 그런 소문이 나고 있습니까?”

소델 선생님이 멋쩍게 뺨을 긁으며 말했다.

“앗, 아뇨. 확실한 건 아니에요. 역시 소문이겠죠? 케슬란이 다음 주에 외출계를 썼는데 상대가 반테온 님이란 말이 돌아서요.”

날짜까지 정확하게 나왔다면 언젠가 들킬 이야기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반테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케슬란과 만나기로 한 건 사실입니다. 소문이 퍼졌는지는 몰랐지만요.”

“헉, 혹시 그럼…….”

반테온의 긍정에 눈이 커다랗게 뜨인 소델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케슬란과 정식 매칭 한다는 소문도 진짜예요?”

“네?”

이번엔 완전히 사실과 다른 이야기였다. 앞선 소문과 함께 도는 헛소리인 것 같았다.

교묘하게 사실과 섞인 헛소문. 이 정도면 고의로 알리고 다녔다는 의미다. 누구의 짓일까.

“그건 아닙니다.”

“헉, 아. 아, 역시 아니겠죠? 그럴 리가 없겠죠? 델로즈 님이 계시는데…….”

“델로즈와도 상관없습니다. 아직 제가 정식 에스퍼를 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니까요.”

만약 케슬란의 짓이라면, 이번 일은 어린 에스퍼의 애교라고 이해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아직 소문의 주체가 케슬란이라는 증거도 부족했다. 델로즈를 자극하려는 소문일 수도 있고, 반테온의 의중을 떠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짐작되는 범인은 수없이 많았다.

“저는 이만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네, 생각보다 시간이 흘렀네요. 다음에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게 해주세요.”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반테온은 마지막까지 대외적인 미소를 유지하며 소델 선생님을 배웅했다. 그가 멀어지는 걸 끝까지 확인하고 돌아서는 입매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

반테온이 약속된 장소로 나가자 멀리서 기다리던 케슬란이 크게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도 옅은 갈색 머리가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렸다.

얼마 전에 들었던 소문의 주체가 누구일까. 케슬란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확실치 않은 사실에 흔들리느니 확실히 확인하자는 마음으로 나온 데이트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다.

“선생님. 와주셨네요!”

“약속했으니까.”

“헤헤.”

케슬란은 양쪽 입술을 환하게 올리며 웃었다.

“그럼 출발해도 될까요?”

케슬란이 미리 준비한 자동차 문을 열며 손을 내민다. 나름 에스코트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능숙하게 하려 노력하지만 어설픈 기색을 지울 수 없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어리다.

반테온은 케슬란이 열어준 차 문으로 들어가 앉았다. 케슬란은 조심스러울 정도로 약하게 문을 닫더니 재빨리 맞은편에 앉았다.

“후…….”

“안 하던 걸 하려니 긴장되지?”

“아, 아니에요.”

잠시 숨을 돌리던 케슬란이 황급히 부정했다.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기사와 방음벽으로 완전히 차단된 실내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제법 돈을 들인 태가 나는 준비였다.

“선생님. 혹시 연극 좋아하시나요?”

“연극?”

“네. 대공연장에 새로 개막하는 공연이 있어서요.”

뒷좌석에 미리 준비된 팸플릿을 꺼냈다. 케슬란의 말대로 오늘 새로 개막하는 공연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극의 내용과 배우를 살핀 반테온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업을 화려하면서 스토리는 진중하고, 신파도 비극도 아닌 연극은 제법 반테온의 취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개막극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기존에 상영하던 극은 사교를 위해 질리도록 봤기에, 사적인 만남에서까지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데. 제법 좋은 선택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네.”

“그래요?”

케슬란이 화색을 띠며 웃었다. 거창한 칭찬도 아닌 말에 세상을 가진 듯 웃는 얼굴이 귀여웠다. 무해함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만든다면 이런 형상이지 않을까.

만나게 되면 소문의 진실을 파보려고 했는데, 역시 이대로 멀어지기엔 아까운 상대다. 오늘을 충분히 즐겨보고, 하룻밤 지낸 후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겠지.

반테온은 스스로 질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슬며시 웃었다.

***

연극은 예상대로 만족스러웠다. 적당히 고조된 감정을 끌고 다음으로 찾아간 식당도 괜찮았다. 예약한 개인실의 분위기는 은밀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편안한 분위기의 식사가 끝나고 준비된 차까지 모두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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