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50)화 (50/112)

#50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는 이미 차갑게 가라앉았다. 은은하게 몰려오던 취기도 쫓아낸 듯 사라졌고, 찬물을 맞은 듯 선명한 머리가 이성적으로 돌아갔다.

반테온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자신에게 붙어 있는 케슬란을 바라봤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즐기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방해받다니.

시선을 내려 자신의 재킷을 쥔 케슬란의 손을 바라봤다. 이상하게 상황이 케슬란과 함께하지 말라고 발목을 잡는 듯 흘러간다.

“미안하다. 상황이 좋지 않네.”

“이럴 순 없어요.”

“…….”

“설마 이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겠죠?”

여리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케슬란은 재킷을 잡은 팔에 힘을 주고 앞을 노려봤다. 앞에 있는 경호원의 전력을 탐색하듯 날이 선 시선이 쏟아진다. 그 기색을 알아챈 경호원들 역시 내렸던 손을 방어적으로 들었다.

“케슬란?”

“아…….”

단호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케슬란의 눈동자가 금세 평소처럼 돌아온다. 언제 돌변했냐는 듯 순진하게 눈을 휘며 어색하게 웃었다.

“탈출 소식에 놀라서 예민해졌나 봐요. 죄송해요.”

본인의 예민한 행동을 깨달았는지 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최근 계속 의외의 모습을 본다. 고의로 소문을 낸 것부터 예민한 모습까지. 본능적인 이질감에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저는 여기 있다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그럴래?”

“네. 예약한 방도 있으니까요.”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이는 케슬란의 머리를 버릇처럼 쓰다듬었다. 과연 조금 전, 경호 부대를 공격할 것 같던 모습은 실수일까. 아닐까.

“돌아간다.”

각 잡힌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경호원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반테온의 걸음이 이동할 때마다, 뒤에서 구둣발 소리가 일사불란하게 들렸다. 남은 건 센터로 돌아가서 델로즈가 독방에 다시 수감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절로 작은 한숨이 나왔다.

다시 생각해도 번거롭기 그지없는 상대다. 호텔 앞에 대기 중인 검고 큰 리무진에 올라탔다. 케슬란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차량보다 크고 고급스러운 차였다.

아직 시장에는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을 동원하여 만든 모터를 장착하였기에, 차의 움직임을 체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이동했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반테온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이내 눈을 감았다.

***

센터에서 보기 힘든 경호 부대가 복도를 가로지른다. 어두운 복장에 위압감 넘치는 사람들이 주변을 경계하며 움직여도 고개를 내미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독방에 수용된 죄인의 탈출로 센터 전체에 무게감이 맴돌았다. 물론 델로즈가 독방에 갇힌 이유는 교육을 위한 처방일 뿐이라 알려졌으나, 제어할 수 없는 인물의 돌발 행동은 모두를 긴장시키기 충분했다.

‘번거롭게.’

복도 한쪽에 난 창문으로 요란하게 돌아가는 붉은 경고등이 보였다.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리는 신호음도 동반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에 도착해도 잠을 깊이 자기는 글렀다.

문 앞을 다가가자 다른 방과 다르게 반테온의 방 앞에만 센터 보안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상황은 어떻습니까.”

“변함없습니다. 여전히 델로즈 님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센터는 임시 가이드인 반테온 님의 호위를 위해 주변에 요원들을 배치할 예정입니다.”

“흠…….”

아직 상황은 그대로다.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한 델로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물론입니다. 편히 쉬십시오.”

열심히 경비 구역을 나누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섰다. 외출했을 때와 조금 다른 분위기에 혀를 찼다.

단순히 밖을 붉게 물들인 경고등 때문만은 아니다. 델로즈가 탈출하면 반테온을 찾아왔을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이미 반테온의 방을 수색한 것이겠지. 평소라면 개인적인 공간에 침범한 걸 따질 수 있으나, 지금은 위급 상황이었다.

센터장의 명으로 위급 상황이라고 결정되면 센터 구성원 개인의 사적인 공간에도 침범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지침은 반테온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책상에 올려진 단말기에 빨간 알림이 무더기로 올라와 있었다. 델로즈가 사라진 상황에서 마음대로 반테온의 방에 들어오기 힘드니 열심히 연락한 흔적이었다.

아마 연락을 꾸준히 해도 도저히 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강제로 수색을 이행한 것이리라.

데이트는 사적인 일정이라는 이유로 단말기도 챙기지 않은 자신의 과실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이런 사태를 만든 상대에게 원망이 조금 더 돌아간다.

‘어디로 간 걸까.’

얌전히 독방에 있더니 무슨 바람이라도 들어서 꼭 이런 시점에 문제를 일으킨단 말인가.

소란스러운 바깥 상황이랑 상관없이 반테온은 몸을 죄는 옷을 벗어 던지고 몸을 씻었다. 방 수색을 마쳤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이 방은 안전하다는 의미니까.

편안하게 가운으로 갈아입고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닦으며 나왔다. 욕실에 들어가기 전 올려놓은 주전자가 뜨겁게 달아올라 김을 내고 있었다. 적당히 데워둔 컵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향긋한 차가 목구멍 너머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평소라면 이완된 몸을 푹신한 침대에 눕히고, 잠들어야 하지만 오늘은 쉽지 않았다.

커다란 창문 밖에서 요란한 불빛이 반짝인다. 델로즈를 찾을 때까지 계속 저렇게 요란하게 빛나겠지. 하여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반테온은 느긋하게 창가로 다가갔다. 두꺼운 커튼이 어느 정도 눈부심을 막아줄 것이다. 얇은 속 커튼과 두꺼운 외부 커튼까지 한 번에 잡고 끝을 잡아당겼다. 따라오던 천 자락이 어디에 걸린 듯 팽팽하게 펼쳐졌다.

“……뭐 하는 거지?”

“오랜만이군.”

움직이지 않는 커튼에 이상해서 고개를 드니, 창틀 밖에 거대한 그림자가 보였다. 눈앞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 반테온은 거칠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번 일의 원흉이 느긋하게 좁은 창틀 위에 가볍게 앉아있었다.

저 거대한 몸을 버틸 창틀은 없을 테니 염동력을 써서 벽에 붙어 있는 것일 테다.

아연한 눈빛으로 델로즈를 바라보았다. 놈의 꼴은 가관이었다. 독방에 갇힌 내내 관리하지 않은 머리는 산발이었다. 회색빛의 단출한 수감복 단추는 어디서 다 잃어버리고 왔는지 풀어 헤쳐져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노숙자처럼 보였을 것이, 저 거대한 덩치 때문인지 가볍게 마실 나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토록 눈에 띄는 놈을 어째서 이제까지 못 잡은 것인지.

“이게 무슨 소란이야.”

“생각보다 시끄럽긴 하네.”

느긋하게 뱉은 말이 빈말은 아닌지, 경고음이 울릴 때마다 델로즈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설마 독방을 탈주하면서 이 정도 소란도 예상 못 한 건 아니겠지. 아니, 저놈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반테온은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관자놀이를 손으로 눌렀다.

“얌전히 독방에 있었으면 며칠 뒤에 나왔을 거잖아.”

“원래라면 그러려고 했지.”

독방에 수용돼는 건 센터에서 주는 처벌 중 무거운 벌에 속했다. 자기 방 돌아다니듯 가볍게 오갈 수 없는 곳인 건 확실하다. 그런 곳을 이렇게 소란스럽게 탈출했으니. 원칙대로라면 독방에 갇히는 기간은 배로 늘어날 것이고, 추가 징계가 따랐다.

정작 당사자는 무덤덤한 얼굴이 남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뭘 지적해야 하는 걸까. 복잡한 머리를 싸매고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도 되나?”

“그래도 이번엔 허락은 구하는군.”

전에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먼저 쳐들어 왔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크나큰 발전이다. 물론 그 변화가 반가운 건 아니었다. 찾아온 방법이 상식 밖인 건 변함이 없다.

지금 방밖에는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에스퍼가 많은 센터의 특성상 숙소의 방음엔 특별히 신경을 썼으나, 큰소리가 나면 당장 들어오겠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반테온의 눈에 형형한 눈길의 델로즈가 보였다.

그가 진심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면 델로즈를 독방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밖에 서 있는 에스퍼, 아니 센터 전체 전력이 붙어도 불가능하다.

전에 얌전히 끌려간 것도 예상치 못한 비상벨 때문에 통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숨어들어오면 무력으로 돌려보내는 건 어려웠다. 말로 잘 타일러서 보내는 수밖에.

반테온은 한숨을 쉬었다.

“들어와.”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몸이 날렵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독방에서 이곳으로 바로 온 것인지 다행히 델로즈는 맨발이었다. 잘 닦인 카펫 위에 흙뭉치라도 떨궜으면 질겁을 했을 터인데,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이런 것에 안도하는 처지가 씁쓸하다.

창틀을 넘어 들어오는 델로즈의 팔목에서 두 동강이 난 채 달랑이는 수갑이 보였다.

“수갑은 소용없었나 보군.”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얌전히 있었을까.”

경비병의 걱정대로 저 수갑이 SS급에게 소용없다는 건 확실해졌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상부에 보고는 해야겠군.

델로즈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탈옥한 거야.”

“몰라서 물어?”

델로즈가 낮게 으르렁거린다. 지금까지 안정된 모습이 거짓인 양 눈을 파랗게 빛낸다. 하긴. 며칠 남지 않은 독방을 제 발로 나올 정도면 멀쩡한 상태일 리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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