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55)화 (55/112)

#55

“이 정도로 머리가 좋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아는 것이 생긴단 말입니다. 과연 에스퍼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S급만 되어도 그들의 한계는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SS급이라…… 과연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마치 타인의 이야기를 하듯 냉정하게 평가하며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냈다.

다른 사람의 질문이면 모르겠으나, 에스퍼로 태어나 에스퍼의 능력으로 높은 위치에 오른 상대에게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반테온이 묵묵히 침묵을 지키자 센터장은 용무가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한 말을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반테온 님이라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센터장과 집무실 바깥을 번갈아 바라봤다. 공손하지만 뼈가 담긴 소리였다.

더는 얽히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반테온은 미련 없이 집무실을 걸어 나왔다. 원하던 대로 델로즈를 격리실에 오래 가뒀음에도 개운치 않은 감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

거대한 그림자가 왕립 에스퍼 센터 위를 지나간다. 유유하게 흐르던 긴 원통 덩어리는 흙먼지를 날리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지금부터 비행선 착륙을 위해 82구역 출입을 제한합니다. 돌풍과 먼지가 동반되오니 관계자 외 접근을 자제하여 주십시오. 비행선이 약 30분 후 도착 예정입니다. 관계자분들께서는 자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다과라도 준비해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좌석에 앉아있던 반테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중하게 물러난 직원은 말 한마디 걸었다고 친구와 소곤거리며 사라진다. 지금 도착하는 비행선은 마물의 습격으로 무너진 마을 복구 임무에 투입되었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반테온은 그 비행선과 함께 돌아올 테아로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연착이 30분이라. 예상 착륙 시간 20분 전에 미리 대기실에 도착했으니,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기상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비행정은 기후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매번 예상 시간과 틀어졌다. 30분이면 양호한 수준이다.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평소 테아로트가 임무 파견 나가는 것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오면 왔구나, 가면 갔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했었다. 이번 파견에선 유독 연락이 어려웠고, 생각도 많은 것 같으니 특별히 수고를 들이는 중이었다.

멀리서 작은 점처럼 보이던 비행선이 점차 다가왔다. 하얗고 동그란 몸체가 한눈에 보기 힘든 크기를 자랑하며 내려왔다. 기술자를 제외하고 복구 인원만 300명을 실은 규모이니 거대한 건물이 내려앉는 기분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비행선이 뿌연 시야 속에서 땅에 당도했다. 굉음을 내던 모터가 꺼지고 빠르게 회전하던 프로펠러가 멈췄다.

[비행정 BS-275가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활주로 통제를 해제합니다.]

전광판 주변에 빨간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멀리서 개방된 비행선의 출구로 사람들이 차례대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똑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원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저기 있는 흔한 적갈색 머리 중 한 명이 테아로트겠지.

몸을 일으키던 중에 멀리서 손을 흔드는 인영이 보인다. 먼 거리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아도 누군지는 뻔하다. 이렇게 반기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을 헤치고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이 가까워지자 익숙한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보였다.

“반테! 마중 나온 거야?”

신이 나서 달려오는 얼굴이 환했다.

혹시라도 풀이 죽어있지 않을까 했던 우려가 부질없게 느껴질 정도로 밝아 보였다. 전에 통화로 했던 말처럼 고민은 모두 정리된 것 같았다.

“웬일이야. 이런 적 없잖아.”

“아예 없지는 않을걸?”

“맹세하는데. 네가 자발적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야.”

뭘 맹세씩이나. 두 손을 모으고 감동하였다며 기도하는 테아로트의 모습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하긴 그 전엔 테아로트가 2박 3일 붙어서 마중 나와달라고 부탁하면 못이기 척 나온 적이 전부였다. 그것도 파견 갈 때마다 긴장하던 옛날이야기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종종 마중 나올까,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겹게 대기한 시간 때문에 가볍게 사라져 버린다. 테아로트의 편안한 표정을 보면 그리 심각한 고민도 아닌듯하니 다음부턴 내버려 두어도 될 것 같았다.

“맞아. 어떻게 된 거야? 델로즈 그놈 사고 쳤다면서!”

“조용히 해봐.”

안 그래도 주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은데, 델로즈의 이름이 나오자 다른 이의 눈에서 안광이 돌았다. 뒤늦게 입을 막는 테아로트의 팔을 툭툭 치자 눈치껏 방향을 돌려 걸었다.

자연스럽게 반테온의 서재 방향으로 걸었다. 이동하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억지로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더니, 서재 문이 닫히자마자 요란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놈 탈출한 거 진짜야?”

“어디까지 들었는데?”

“그냥 규칙을 어겨서 독방에 들어갔고, 중간에 탈주해서 기간이 늘어났다고 들었지. 다들 그 소식 듣고 난리가 났어. 독방 탈출은 살다 살다 처음 들어봤네.”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탈출한 후 반테온의 방에 몰래 들어왔다는 소식 퍼지지 않았다. 일 처리가 빠른 센터장이 미리 손을 쓴 것이겠지. 마음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실력은 좋은 사람이다.

테아로트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다급하게 물었다.

“넌 이유 알지?”

“알지.”

“……그냥 자연스럽게 이유를 말하면 안 되냐? 어서 아는 대로 전부 털어놔 봐.”

그러고 싶은데 짧게 요약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반테온이 아는 대로 전부 이야기하려면 케슬란과 데이트했던 이야기부터 나열해야 했다.

밤중에 찾아와서 이상한 말을 털어놓고, 집착하던 행동까지 전달해야 하는데. 역시 그건 내키지 않았다. 사소한 사건은 모두 생략하고 중요한 사건만 간단하게 전달했다.

“…그래서 뒤늦게 가이드 자각 증후군에 걸려서 내 방에 몰래 들어왔고, 격리실에 한 달 정도 갇혀 있을 거야.”

“네 방을 왔다고? 무슨 정신으로?”

테아로트가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하며 소리를 높이더니, 반테온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다친 곳은 없는지, 상한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잠시 잊었다. 이 녀석이 얼마나 정신없는 놈인지를.

잠시라도 걱정한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그건 나도 모르지.”

“그렇겠지. 그 녀석 속을 누가 알겠…… 맞아 그날 너 데이트하는 날이었지?”

테아로트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럼 델로즈는 네 데이트를 방해하려고 탈출한 거겠네?”

테아로트가 한 번에 정답을 찾았다. 이해된다는 듯 끄덕이는 고개가 더 강하게 움직인다. 입가엔 능글맞은 웃음이 서렸다.

“드물게 기특한 짓을 했네.”

테아로트는 처음으로 델로즈의 행동을 만족스럽게 평가했다.

델로즈만이 아니라 테아로트도 케슬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반테온에게 기대는 에스퍼들을 다 경계하긴 했어도 유독 케슬란에게 날을 세웠었다. 문뜩 그날 밤 델로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케슬란을 향한 이해 못 할 평가를 남겼었다.

욕심이 넘치고 음흉하다라. 케슬란은 대외적으로 평이 나쁘지 않았다. 학점도 좋은 편이고,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예의 바른편이었다.

그를 향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고, 아직도 동의하기 힘들었으나 계속 머릿속에 찝찝하게 남아 있었다.

“테아로트. 혹시 네 눈엔 케슬란이 어떻게 보여?”

“좋아 보이지는 않지. 욕심도 많고, 생각도 많아 보이고. 솔직히 믿을만한 놈은 아니야.”

“그래?”

“하는 짓은 누가 봐도 네 취향인데. 난 그것도 가식적으로 보인단 말이야.”

표현은 달라도 델로즈의 의견과 비슷했다. 델로즈의 머릿속은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낸 테아로트의 성향은 잘 알고 있다. 테아로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없는 말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야 옳았다.

천천히 턱을 쓸어내렸다. 반테온에게는 한없이 순진하게 보이던 상대였다. 물론 오래 반테온 곁을 지킨 이유가 오롯이 순수한 애정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조금의 욕심은 바라고 있었겠지. 반테온이 가진 후광이 워낙 거대하여 그걸 원치 않은 상대를 찾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래도 남들 눈에 다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었나 하는 생각에 뒷맛이 씁쓸했다.

“뭐, 어쨌든 델로즈 놈도 격리실에 들어갔고, 케슬란도 외부 교육 들으러 갔으니 당분간 조용하겠네?”

케슬란의 교육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반테온의 기억대로라면 졸업한 에스퍼가 추가 교육을 받을 예정은 없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정이다.

“갑자기 교육?”

“오늘 출발했을걸. 삼 개월짜리던데.”

준비 기간도 없이 갑작스러운 발령이다. 반테온은 혹시 케슬란과 자신이 어울린다는 소식에 가문에서 힘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의문에 테아로트를 바라봤다. 시선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테아로트가 손을 흔들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엔 우리 아니다. 이쪽에서 알았을 땐 벌써 교육 일정이 나온 뒤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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