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66)화 (66/112)

#66

조금 전, 야센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이미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마지막, 떠나기 전 남자의 시선이 잠시 반테온을 향했다. 피가 타는 듯 검붉은 눈동자와 그림자 아래서도 빛나는 금발의 남자.

‘로한.’

멀리서 바라봤음에도 바로 앞에서 바라본 것처럼 각막에 깊이 꽂혔다.

일부러 반테온을 부른 듯 선명한 모습에 홀린 듯 입구로 걸어갔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손은 기계처럼 움직여 정장 상의 속 주머니를 더듬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인식 방해 귀걸이가 손끝에 걸리자 바로 꺼내 귀에 꽂았다. 어두운 곳에서 다급하게 끼워 귓불에 상처 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헐겁게 귓불에 고정했다.

야센에 들어서자 귓가에 꽂히는 익숙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공간 사이사이 조명이 깃들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이에서 고개를 빠르게 움직였다.

전에 만났던 테이블에도 없고, 눈에 보이는 좌석에도 비슷한 금발을 찾을 수 없었다. 그사이 룸으로 들어간 것일까.

입구에 서 있던 서버가 조심스럽게 반테온 옆으로 다가왔다.

“어디로 모실까요? 찾는 손님이라도 있으십니까?”

“방금 들어온 금발 남자. 어디 있지?”

“금발…… 말씀입니까?”

분명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서버는 금발을 기억하지 못했다. 말꼬리를 흐리며 고민하는 모습에 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니다. 그냥 방금 들어온 사람이 어디로 갔지?”

“방금…… 여러 명이 들어오셔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부분 홀로 가셨습니다. 혹시 상대분의 아이디 번호를 알려주시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이디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회원인지도 모른다. 그의 능력을 몰라도 지금까지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런 곳에 정체를 숨기고 들어오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수도에 기어 들어와 야센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반테온은 단말기로 테아로트를 부르려다가 차에 두고 내린 걸 떠올렸다.

엉망이다. 로한의 이유 모를 행동에 휘둘리는 것도 거북한데, 자신의 페이스까지 잃어버렸다. 다시 준비하고 와야 할까. 홀 방향을 바라보던 반테온은 고개를 저었다.

자동차 안에서 그 짧은 찰나 로한을 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로한이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최소한 로한은 반테온을 직접 해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전에 만났을 때도 경고만 하고 물러났으니까.

“홀 쪽으로 안내해.”

그렇다면 부딪치는 것이 빠르다. 조용히 자신들의 시간을 즐기고 있지만, 건물 안에 사람 수는 적지 않았다. 외진 곳에서 만나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편이 좋다. 야센엔 몰래 유흥을 즐기러 온 에스퍼도 많았으니까.

홀로 향하는 길목은 평소보다 더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로 짙은 색이 많던 그 전의 분위기와 달랐다. 머리 색도 다양했다. 반테온같이 반짝이는 은발도 눈에 튀지만, 그보다 더한 사람도 많았다.

축제를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회원이지만 먼 곳에 살아 자주 오지 못한 사람들까지 방문했다. 예전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상대를 가볍게 물색할 공간을 차갑게 가라앉은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얼마 이동하지 않아 반테온은 자신의 목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안내는 이제 됐어.”

당황하는 서버를 두고 성큼성큼 걸어서 앞으로 나갔다. 다급한 발걸음에 어깨를 부딪힌 사람들이 낮게 짜증을 냈으나 반테온의 귓가엔 들리지 않았다.

정면에 선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장신의 남자에게 시선이 꽂혔다.

반테온이 다가가자 금발의 붉은 눈동자가 가면 아래 또렷하게 보였다. 상대는 놀란 기색도 없이 반테온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역시 인식 방해 귀걸이가 무색하게 한방에 반테온의 정체를 알아봤다.

“오랜만이야. 다행히 무사했구나.”

“로한!”

음악을 뚫고 반테온의 소리가 쏟아졌다. 친구를 만나듯 손을 들어 반기는 로한을 보자 열이 머리끝까지 솟았다.

“전엔 혹시나 해서 미리 경고했는데, 그래도 다쳤을까 봐 걱정했거든. 네 옆에 에스퍼가 힘은 좋아도 좀 무식해 보여서 말이야.”

로한은 웃는 낯으로 능글맞게 서서 반테온을 맞이한다. 반테온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너 대체 정체가 뭐지?”

“그렇게 물어보면 답해주기 어렵잖아. 자 나의 어떤 부분이 궁금해? 내 취향? 성벽? 쓰리 사이즈?”

당장이라도 저 매끈한 얼굴을 때리고 싶으나 꾹 눌러 참았다. 살갗에 닿으면 자신이 손해라는 걸 알기에 주먹만 꽉 쥐고 한 걸음 떨어졌다.

“벌써 멀어지는 거야? 서운한걸.”

“겁도 없네.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주변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중엔 붉은 기운이 일렁거리는 자들도 많았다. 몰래 가면을 쓰고 향락을 즐기는 에스퍼들이 넘치는 공간이다. 그리고 수도에 거주하는 에스퍼는 대부분 왕립 에스퍼 센터 소속이다.

얼마 전 축제 중인 도시에 마물 떼가 쏟아졌다는 소식은 기사로 대서특필되었다. 그 원흉이 여기 있다는 걸 알면 당장 덤벼들 사람이 넘쳤다.

“저런, 무섭네. 당장이라도 잡힐 것 같은데?”

긴장이라곤 조금도 없는 목소리로 대응한다. 당장 센터에 연락해야 했다. 단말기가 없더라도 가지고 다니는 비상 장치를 이용하면 센터에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액세서리로 된 비상 장치를 꺼내려는 순간, 반테온의 등골을 관통하는 생소한 감각에 동작을 멈췄다. 분명, 이곳은 수많은 에스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붉게 일렁이는 기운이 조명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테온만 알 수 있는 미묘한 감각이 흘러들어왔다.

왜지? 에스퍼들의 형태가 이상했다. 일렁이는 기운들이 마치 병에 갇혀 맴도는 것처럼, 제자리에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누군가 시간을 조종하는 듯 현실감이 사라진다.

“오, 이걸 눈치챘어?”

“왜…… 다들…….”

놀란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인식 차단 장치를 꼈다고 해도 어디를 가나 시선을 끌던 반테온이다. 로한 역시 눈에 띄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머리카락 색과 눈 색을 기억할 수 없다고 해도 저 훤칠한 외형이 쉽게 묻힐 리 없다. 그런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증거로 반테온에게 부딪힐 듯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을 피해 한쪽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충돌할 뻔했던 남자는 아무 일 없는 듯 들고 있는 잔을 흔들며 동행과 이야기했다.

“옆으로 나와 있어. 비싼 옷이 더러워지면 아깝잖아.”

“어떻게 된 거지?”

“이런, 많이 놀랐나 보네.”

만약 로한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흐리게 하는 능력은 있다고 해도, 닿지도 않은 반테온까지 완벽히 감추는 건 불가능했다.

“지능계? 아니, 이런 게 가능할 리 없는데.”

로한의 능력은 미지수였다.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마물을 부리고 정보를 차단하는 것으로 보아 뛰어난 지능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에스퍼의 기운을 통제할 방법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지능계라니. 그런 쓸데없는 능력으로 치부하면 슬프다고.”

에스퍼의 종류는 학술적으로 육체계와 지능계와 나뉘고, 그 외 소수의 특수계가 있었으나 단독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다른 에스퍼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강한 경우도 드물었다. 보통 특수 능력은 육체계의 부속 능력으로 뒤따랐다.

그럼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반테온의 혼란을 눈치챈 로한의 미소가 짙어졌다.

“네 머릿속 정도는 뻔하지. 내 능력이 어떤 계열인지 열심히 고민 중일 텐데. 육체계와 지능계 중에 어느 쪽인 것 같아? 아, 능력 취급도 못 받는 떨거지 같은 특수계로 여기진 말아줘.”

“…….”

“재미있지 않아? 에스퍼의 기원도 모르면서 에스퍼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나눠 놓았다는 게?”

에스퍼의 기원. 센터장에 이어서 로한까지 이상한 소리를 뱉는다. 그의 말대로 에스퍼의 기원은 모른다. 어떤 조건에서 자연 발생 에스퍼가 나타나는지, 무엇이 다른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없었다. 그러나 두 종류로 나눈 이유는 명확하다.

“긴 역사 동안 그 두 부류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닐 텐데. 다른 경우가 더 있잖아. 역사가 묻고 싶어서 외면했던 에스퍼가.”

“그런 게 있을……리…….”

대답하던 반테온의 머릿속에 문장 한 줄이 짧게 지나갔다. 아니,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왕실의 이야기다. 400년 전, 자신이 마법사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 전국으로 공연하러 다니던 그는 자신이 동물의 말을 알아듣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쇼에 열광했다. 사자가 물구나무서고,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 그가 말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걸 보면서 손뼉을 쳤다.

결국, 마법사는 왕실 행사까지 초대받았다. 화려한 공연을 선보이던 그는 쇼 중간에 자신이 키우던 맹수를 동원하여 왕족을 해치려 했다. 경호 중인 에스퍼에게 제압당한 마법사는 죽기 직전 유언처럼 외쳤다고 했다.

자신은 에스퍼라고, 육체계도, 지능계도 아닌…….

“……너 정신계 에스퍼야?”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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