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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67)화 (67/112)

#67

반테온은 두 손을 들어 손뼉을 치는 로한에게서 한 걸음 더 멀어졌다. 자신이 정신계 에스퍼라고 주장하던 마법사의 말을 역사는 거짓으로 판단했다. 수백 년간 그 사람을 제외하면 비슷한 사례도 없었다. 그렇기에 마법사의 말은 단순히 왕족 시해범의 궤변으로 치부되었다.

거기엔 마법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이유도 있지만, 정신계 에스퍼라는 능력이 얼마나 위험하게 쓰일지 알기에 묻어버린 이유도 있었다. 반테온은 왜 그 능력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는지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 마법사도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선대는 그런 사실을 기록에서 지우길 바랐을 것이다.

반테온의 경계도가 더 높아진다. 로한의 말대로라면 정신계 에스퍼가 왜 금지되어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왜 반테온에게 순순히 밝히는 것일까.

“왜 내게 그럴 걸 말하는 거지?”

“마음에 들었거든. 처음 보는 순간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

진부한 멘트에 잔뜩 긴장했던 눈썹이 일그러진다.

“작업을 촌스럽게 치는 편이군.”

“너무한데? 가볍게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살면서 이렇게 진지한 적은 없으니까.”

반테온이 경멸스럽게 인상을 찌푸리자 로한이 상처받았다며 슬픈 척했다. 저렇게 가볍게 구니까 믿기 힘든 것이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데려가고 싶지만, 오늘은 아직 시기가 일러.”

“누가 얌전히 따라갈 것 같아?”

“조금만 기다려 줘. 준비가 다 끝나면 데리러 올 테니까.”

로한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반테온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맞아. 전에 만났을 땐 작은 선물이 있었지. 이번에도 빈손이면 좀 서운할까 봐 준비했거든.”

작은 선물? 로한에게 무언가를 받은 기억은 없다. 받기는커녕 로한이 떠난 후 마을 전체에 마물이 창궐하여 고생했…… 마물?

“그때 마물을 부른 거 너 맞지?”

“제법 재미있는 구경이었지.”

로한은 자신을 추궁하는 반테온의 말에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었다. 검지와 중지가 부딪히며 경쾌한 파열음을 내자, 야센을 잔뜩 채우는 경고음이 터졌다.

-삐삑. 삐삑. 삐삑.

“화려하게 터지고 부서지는 광경이 제법 볼만했단 말이야.”

사방에서 요란하게 우는 소리는 지나가는 에스퍼의 허리춤에서 났다. 한 사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에스퍼와 가이드에게서 신호가 터졌다. 센터의 비상 호출음이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의 소음 속에서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춤을 춘다.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 보였다.

경악하는 반테온을 앞에 두고 로한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도니까 규모가 더 커야겠지?”

밖을 나가지 않아도 상황은 뻔하다. 예전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밖에서 재현되고 있을 것이다. 멀쩡한 하늘에 균열이 일어나고 바닥과 공중에서 마물이 튀어나온다. 날카로운 발톱이 사람들의 터전을 찢어발길 것이다.

“네 목적이 뭐지?”

“생각보단 냉정한데. 바로 뛰어나갈 줄 알았거든.”

“내 질문에 대답해.”

시끄러운 경고음을 무시하고 로한을 응시했다. 마물을 부리는 자가 로한이라면 결국 로한만 해결하면 모든 일이 정리된다는 뜻이다. 반테온이 흔들릴 기미가 없자 로한은 머쓱하게 손을 들었다.

“음, 사실 건물 안에 있는 건 좀 위험해서.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지.”

로한은 하늘로 손을 올려 다시 딱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주변에 고인 듯 멈췄던 기운이 다시 활기차게 움직였다.

흐릿하던 사람들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더니,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펴봤다.

상황 판단이 빠른 몇몇 에스퍼가 고개를 흔들며 주변을 살폈다. 점차 소리가 강해지는 경보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사이에서 로한은 능글맞게 웃으며 반테온의 뺨을 톡 건드렸다.

“이번엔 네 에스퍼도 조금 힘들걸. 제어 못 하는 강한 힘은 복잡한 수도에서는 역효과니까. 더 큰 문제를 만들지도 모르지. 그러니 혼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게 좋을 거야.”

“뭐?”

“그럼 다음에 봐. 도련님.”

로한은 자신의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허공에 키스를 날렸다. 요란하게 주변을 살피는 에스퍼 사이로 유유자적하게 걸어 나갔다. 로한을 따라가려고 움직이는 순간, 당황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반테온의 앞을 막았다. 의아함을 느낀 에스퍼들이 자신의 기계를 툭툭 치는 모습을 바라봤다.

“벌써 경고가 울린 지 5분이 지났다고?”

“왜 이래. 이거 고장이 났나?”

반테온은 소란스러운 에스퍼 사이를 헤치고 밖을 향했다. 경고음에 방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튀어나오자 걸음을 걷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

아무리 정신계 에스퍼라고 해도, 이 많은 사람을 동시에 조정할 수 있다고?

정체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상대였다. 반테온에게 적대적이진 않으나, 분명 왕국에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어느덧 출구에 도착한 반테온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들어올 때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은 이미 사라졌다. 대신 눈에 보이는 건 검붉은 하늘이다.

하늘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지면에서 자주색으로 피어오른 매연과 굉음이 사방을 메꾼다. 그 중앙에 별처럼 빛나는 수백 개의 빛은 모두 하강하는 마물 들의 눈동자였다.

그제야 방금 겪었던 일이 실감 나게 와닿았다. 요란하게 울리는 비상음 속에서 홀린 것처럼 넋을 잃은 사람들 사이에 단둘만 남았던 상황이. 괜스레 스며드는 찬 기운에 팔을 끌어안았다.

반테온의 뒤를 따라 야센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비명을 지르며 뒤섞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호 대장이 반테온을 찾아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경호 대장이 자동차 안에 보관한 반테온의 짐을 건넨다. 다른 센터 소속 대원들처럼 반테온의 단말기도 요란하게 울렸다. 시선을 하늘에서 떼지 못한 채 기계처럼 손이 단말기 화면을 켰다.

[경고. 수도 10km 지점 정체 모를 게이트 발생. 재난 등급 S. 센터 소속 에스퍼 모두 부대로 복귀. 가이드는 방공호로 대피.]

짤막하게 필요한 정보만 적은 내용에서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느껴졌다. 수도에서 조금 외진 곳에 있는 야센에선 아직 마물의 흔적이 없으나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서둘러 반테온을 대피시키려는 경호 대장을 잡고 물었다.

“나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 있을 텐데. 확인했어?”

“경고가 울린 이후 반테온 님이 가장 먼저 나오셨습니다.”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말이다. 로한은 또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를 악물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센터 뒤쪽에 있는 방공호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뻥 뚫린 도로를 따라가는 동안 차체가 덜컹거리며 흔들린다. 승차감과 방어에 모든 것이 집중된 자동차가 흔들리다니. 창밖을 바라본 반테온은 입술을 악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수도 중심은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다. 점차 수가 많아지는 마물 때문에 매끈하던 도로가 깨지고 주먹만 한 돌조각이 튀었다. 강화된 유리창에 자갈 조각이 후두두 붙었다 떨어진다. 점차 심해지는 진동에 내부 손잡이를 꽉 쥐었다.

“반테온 님. 죄송합니다만, 이 이상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침통한 목소리로 읊조린 경호 대장은 정면을 가리켰다. 그 앞에는 도로 전체를 짓누른 거대한 성벽 조각이 보였다. 그 주변 골목 역시 마찬가지. 자동차가 지나갈 넓이는 아니었다. 아직 센터 방공호까지는 수십 km가 남았다. 곤란한 상황에 손에 쥔 단말기를 바라봤다.

센터에 연락하면 비상 전력을 보내줄 테지만, 이미 폭주하는 정보량으로 단말기는 먹통이다. 어쩔 수 없이 자력으로 벗어나야 했다.

“저희가 먼저 내려 상황을 살피겠습니다. 보호 마석을 꼭 쥐고 계십시오.”

앞쪽에 탄 자들이 내려 창문을 둘러쌓고 보호하듯 주위를 살핀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굉음과 비명이 흘러들어왔다. 수도 외곽 쪽 도로에서 들릴 정도라면, 중앙은 이미 지옥처럼 변했을 것이다.

“반대편으로 내려주십시오. 샛길로 나가겠습니다.”

“아, 대장님 저쪽에 그렘린입니다!”

반쯤 열리던 문이 다시 닫혔다. 성벽 조각이 가로막은 도로 반대편에서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오는 그렘린 한 마리가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한 마리는 위협적이지 않으나, 무리로 다니는 습성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쪽에서 회색 그렘린이 뒤따라 줄줄이 나타났다.

“가문에 추가 전력을 요청해놨으니, 잠시만 버티면 될 겁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경호 대장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반테온의 안위를 위해 전력을 요청했으니, 빠른 시간 내에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무엇 보다 우선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건 요청이 제대로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다.

에슬란테 저택은 명성답게 수도의 중앙 쪽, 화려하고 번화한 곳에 있었다. 가장 가치가 높은 땅에 거대한 크기를 차지한 저택은 지금까지 에슬란테의 자랑이었으나, 지금은 불구덩이 한 중앙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저택에는 고용된 에스퍼도 많고, 에슬란테 사람 중의 절반은 에스퍼였으니 어떻게든 지키겠지. 그러나 제대로 지원 요청이 전달되었을까. 센터의 단말기도 먹통이 된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걸 알기에 반테온을 안심시키는 경호 대장의 표정도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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