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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71)화 (71/112)

#71

당장이라도 소리치려던 반테온의 목에서 힘이 빠졌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을까. 아무리 반테온이어도 오래된 친우가 감정에 휘둘린다고 신고할 정도로 매정하진 않다.

“확실히 가이드 강제 접촉에, 법으로 금지된 친족간 가이딩이니까. 독방 정도로 끝나진 않겠네.”

“잘 아는 애가 왜 이래. 이거나 놔.”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래. 이미 알잖아. 나 너 좋아하는 거.”

“……!”

화들짝 놀라 손을 떼려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테아로트는 반대편 손까지 내밀며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보자 씨익 웃으며 나머지 장갑을 잡아당긴다. 질 좋은 장갑이 부끄럽게 살갗을 벗어나 이미 벗겨진 짝 옆에 떨어졌다.

“이왕 잡혀갈 거면 조금만 더 닿아보면 안 될까?”

반대편도 잡으려 드는 손을 쳐냈다. 짝 소리 나게 쳐낸 건 반테온인데, 정작 자신의 손등이 아팠다. 충격적인 고백에 반테온의 다물린 입이 파르르 떨렸다.

“그딴 거 몰라. 인생 끝내고 싶으면 혼자 망해. 친족간 가이딩은 쌍방 처벌인 거 몰라? 난 감옥에 같이 들어갈 생각 없어.”

“아, 맞다. 그랬지.”

테아로트는 그제야 손을 풀더니 양손을 들고 한 걸음 물러섰다. 바닥에 엉망으로 뭉친 장갑을 스쳐보고 비상용으로 준비된 다른 장갑을 찾아 꼈다. 부드러운 천에 손가락이 감싸이자 조금 전 소름 돋던 접촉이 떠올라 몸서리쳐진다.

제자리에 우뚝 선 테아로트는 작게 중얼거렸다. 감옥이라…… 즐겁지 않은 단어를 뭉개어 발음하더니 씨익 웃는다.

“우리 귀한 반테온 님을 그런 곳에서 고생시킬 순 없지. 그래.”

“정신 차렸으면 그만 나가서 망가진 머리나 식혀. 오늘 일은 모른 척할 테니까.”

“그걸로 되겠어? 뺨이라도 맞을 줄 알았는데.”

“대신 앞으로 내 서재에 오지 마.”

“그래. 그래.”

테아로트는 반테온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멀어졌다. 별것 아닌 일처럼 치부하며 떠나면 그만일 것처럼 굴었으나, 가볍게 끝낼 일은 결코 아니었다. 최근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돌발적인 사건이 생기니 그제야 확실히 할 마음이 들었다.

반테온은 떠나는 테아로트 등을 보며 통보했다.

“우리 이제 밖에서도 마주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 테아로트.”

매정한 말에 테아로트의 어깨가 굳었다. 능글거리던 얼굴에 금이 가더니 무표정하게 깨진다. 이런 행동을 하려면 각오는 했어야지.

“정말?”

“그딴 짓을 하고 뻔뻔하게 내 얼굴을 볼 생각이었어?”

“……그렇겠지. 그래야 반테지.”

씁쓸하게 읊조리던 테아로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큰맘 먹고 건넨 고백에 돌아온 건 다시는 보지 말자는 작별 인사라니. 테아로트는 매정하다고 투덜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다른 변명도 핑계도 없었다. 그저 무심하게 멀어지는 테아로트의 뒷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터벅터벅 걸어가 문고리를 천천히 잡았다. 평소 수십 번은 익숙하게 돌렸을 금속 쪼가리를 쥐고 망설이던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잘 있어.”

미련이 철철 남은 작별 인사다. 그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기운 빠진 모습에 저도 모르게 나가려는 위로의 말을 삼켰다.

방금 테아로트가 한 행동을 눈감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량을 베풀었다. 이거면 충분하다. 아무리 반테온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행위라 하여도 죄는 죄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멀어지는 테아로트의 그림자가 보였다. 좁아지는 문틈으로 실루엣이 까맣게 사라진다. 반테온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로 옆자리에서도 듣기 어려울 만큼 희미한 크기였다.

“진심으로 마음이 정리되면 그때 찾아와.”

그 말에 잠시 멈춘 테아로트의 그림자를 끝으로 문이 완전히 닫힌다. 아무도 없는 서재에 홀로 남은 반테온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홍차를 천천히 준비했다. 뜨거운 찻주전자를 기울이는 손끝이 떨렸다.

서재로 오기 전보다 배는 피곤하다. 이대로 델로즈의 가이딩 신청이 들어오면 거절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피로에 젖은 몸이 무거웠다.

매번 반테온을 보며 둔하다 욕하던 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아무리 둔해도 조금 전 테아로트의 상태를 모를 수 있을까.

“미치겠다.”

시가를 꺼내 피울 생각도 들지 않는다. 차가운 책상 위에 뺨을 대고 눈을 감았다. 방금 따른 홍차 향이 얼굴로 쏟아진다. 눈꺼풀 너머로 떠오르는 과거를 눌렀다.

테아로트가 자신에게 과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안다. 우정이라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씩 변질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도 아닐 거라, 예민하게 생각할 뿐이라 외면했다. 마지막엔 썩어 터질 걸 알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모른 척,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는 것이 반테온의 최선이었다.

결국, 시간과 감정에 삭은 풍선은 터져버렸다. 이미 퍼진 공기를 다시 주워 담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주변에 섞여 그 정체를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려지길 기다려야 했다. 섞이고 중화되고 산화되어 날아갈 때까지. 테아로트가 불가능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그 시간 동안 반테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며칠 동안 깊이 잠들지 못한 몸이 무거웠다. 테아로트의 돌발적인 행동은 여파가 컸다. 가문과 연락 수단이 되어주고 중간중간 주변의 정보를 가지고 찾아오던 이가 사라지자 소소한 일이 늘었다.

없어서 힘들진 않으나 묘하게 한 번씩 더 손이 간다. 단말기에 중요한 공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미리 일러주던 테아로트가 사라지니, 매일 정기적으로 확인할 것이 늘어 귀찮았다.

사소한 일상의 불편이 겹칠 때마다 자꾸 테아로트의 일이 생각났다.

딱딱하게 굳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가이딩실 가구는 그리 편하지 않다. 에스퍼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에 편리성보다 성능과 내구성을 중시했다. 양손으로 옮겨야 하는 철제 의자와 딱딱한 테이블. 그나마 부드러운 가구는 응급용으로 옆방에 준비된 침대 정도다. 거기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 차가운 등받이에 허리를 받치고 몸을 기댔다.

“…피곤해 보이는군.”

센터에서 가장 피곤해야 할 사람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반테온은 흐릿한 머리를 털었다.

눈앞에는 며칠 동안 밖에서 활동하고 겨우 돌아온 델로즈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테아로트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델로즈를 싫어하지 않냐고, 제법 마음에 드는 것 아니냐고 캐물었다.

새삼 델로즈를 바라보는 눈이 가늘어진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봐도 긍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반테온이 테아로트를 아는 만큼, 그도 반테온을 알았다.

반테온이 델로즈에게 호감을 느낀 것처럼 보였다라.

“뭘 그렇게 보지?”

“그냥 오랜만이다 싶어서.”

무덤덤한 인사에도 델로즈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저런 모습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테아로트의 말이 맞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만난 델로즈의 기운은 불안정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힘을 쓰고 복구에 전념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사태가 정리되고 바로 가이딩 받을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델로즈는 일주일이나 수도를 돌아다니며 복구 활동에 매진했다. 효율을 생각하면 중간에 잠시라도 와서 가이딩을 받고 가는 것이 옳았다.

눈에 보이는 대로 불안정한 상태라면 심각한 두통과 매스꺼움을 느낄 터인데. 끝까지 수도 복구에 참여해 2차 팀이 출동할 때까지 현장을 지킨 건 의외였다.

“여기.”

손을 내밀고 잡으라고 바라봐도 델로즈는 불만스럽게 인상을 쓰고 내려다볼 뿐 움직이지 않는다. 저 상태에선 반테온의 손이 사탕 덩어리보다 달콤하게 느껴질 터인데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이딩 안 받을 거야?”

“안색이 좋지 않아.”

“별일 아니야. 가이딩 끝나고 쉬면 괜찮아.”

“흠…….”

재차 손을 흔들어도 굳게 낀 팔짱은 풀릴 기색이 없었다. 내민 팔이 아파져 오자 포기하고 그냥 내렸다. 본인이 받지 않겠다는데 반테온이 가이딩 해준다고 매달릴 이유는 없으니까.

바라볼 그림 한 폭 없는 가이딩실에서 성인 남자 두 명이 마주 앉아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시간만 채워도 상관없으나 30분은 긴 시간이다.

“수도 상태는 어때?”

“급한 일은 정리됐다. 이제 천천히 재건하겠지.”

마물을 처리하고 수도를 복구하는 동안 그는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현장을 지켰다. 의무감 하나 없을 것 같던 델로즈의 선택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도의 복구를 위해 거대한 성벽과 돌덩이를 옮겨야 했다. 무너진 지붕을 들어 올리고 사람들을 구출하고, 바닥으로 쓰러진 건국왕의 동상을 일으켜 세웠다.

모든 활동에서 델로즈의 힘은 물리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작용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내년쯤 건국왕 동상 옆에 델로즈의 동상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떠들었다.

그럴 일이 생기면 돈을 보태겠다고 성금을 들고 모일 자들이 넘칠 것이다. 델로즈가 나선 덕에 복구는 유례없이 빨랐고, 특히 에슬란테의 저택이 있는 동부는 그중에도 복구율이 높았다. 동상 비용을 홀로 충당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성과다.

“생각보다 봉사 정신이 투철하던데. 복구까지 자청할 줄은 몰랐어.”

“……너만 하진 않지.”

“내가?”

마물 습격 사건이 터진 후에 가장 안전한 곳에 앉아 쉬었던 반테온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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